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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령도행 쾌속선 기항지인 대청도 선진 포구에는 어선이 많다. 1905년부터 일제강점기 내내 이곳은 동양포경주식회사(일본인소유)의 서해 전진기지였다. 매년 50~100마리 정도의 고래가 잡혔는데, 그중엔 대왕고래도 5~10마리나 됐단다. 지금은 홍어를 주로 잡는다. 대청도가 홍어 산지임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흑산도 홍어로 팔리는 것 중 상당수가 실제로는 대청도 인근에서 잡힌 것이다.

대청도에선 홍어를 미끼 없이 잡는다. 바늘 서너 개를 한 묶음씩 모두 150바늘 묶음이 연결된 줄을 바다 밑에 깔아두고 며칠 후 거두는 방식이다. 홍어 철에 대청도에 가면 홍어애와 홍어회를 맛볼 수 있다. 대청도에선 홍어를 삭히지 않고 말려서 보관한다. 덕분에 철이 지나도 말린 홍어찜을 먹을 수 있다. 대청도에 사람들의 발길이 많이 늘어난 것은

2018년 가을 '삼서트레킹' 코스가 열리면서다. 삼각산에서 시작해 서풍받이 해안단구로 이어지는 트레킹 코스라고 해서 앞글자를 따 붙인 이름이다. 기름아가리라는 작은 만(灣)을 끼고 광난두 정자각으로 되돌아오는 이 코스는 걷기가 만만치 않다. 삼각산 자체도 가파른 데다 서풍받이 벼랑의 가장자리 길 역시 급경사여서다. 대신 국내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풍광을 경험할 수 있다. 대청도는 U자 형태 산지와 절벽 해안이 바다와 어울려 환상적인 경관을 빚어낸다.

이곳 대청도 사람들은 "삼각산은 왕궁 주변에나 있는 산"이라고 전한다. 실제 이곳에 왕궁이 있었다는 설이 있다. 중국 원나라의 마지막 황제 혜종(순제 1333~1370)이 왕위찬탈로 엎치락뒤치락 대던 원 말기에 귀양(1330년 7월) 와 왕궁을 짓고 1년 5개월간 살다 돌아갔다는 것. 현재 대청초등학교가 그 터로 알려져 있다.

풀등, 하늘과 구름 반사 장면 압권

삼각산의 수목은 대체로 키 작은 소나무다. 산길을 한참 올라 정상에 도착하면 눈이 시리도록 파란 가을하늘이 기다린다. 사방 툭 터진 주변은 온통 바다다. 산 정상에 적힌 이정표엔 이렇게 씌어 있다. '서울 201km, 평양 149km, 장산곶 14km, 산둥반도 180km'

문득 북한 땅 장산곶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다가온다. 산에서 내려와 서풍받이 해안벼랑을 따라 걷는 길은 호젓하다. 아직은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아, 주중이라면 온종일 혼자 걷는 호사를 누릴 수도 있다. 서풍받이는 거의 수직으로 낙하하는 76m 높이의 벼랑이 이어져 있다.

쉼 없이 불어대는 서풍을 장구한 세월 온전히 맨몸으로 막아낸 흔적이자 상처다. 길은 벼랑의 끝자락으로 이어지고, 그 정상엔 전망대가 자리 잡고 있다. 다시 내리막길로 접어들어 숲을 통과해 내려가면 기름항아리라는 재밌는 이름의 해안가 경치가 펼쳐진다. 그곳에서 해안을 등지고 언덕을 오르면 트래킹을 시작한 광난두 정자각이 얼마지 않아 나타난다. 배에서 내려 부지런히 걸어야 해 질 녘 해넘이를 이곳에서 여유 있게 감상할 수 있다.

대청도에는 숨겨진 보물이 하나 있다. 바로 '풀등'이다. 썰물에만 모습을 드러내는 수중 모래톱인데, 우리나라에서 딱 세 곳에서만 볼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자연현상의 결과물이다. 옥죽포와 미아동 농여해변에서 만날 수 있는 풀등은 모두 섬 동편이라 아침 해 뜰 시간에 썰물 때에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물이 덜 빠져 야트막한 수면이 해변을 덮고 있을 때 거대한 면적의 모래사장이 거울처럼 변해 하늘과 구름을 반사하는 장관이 압권이다. 옥죽포에 발달한 사구(沙丘) 사막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대청도에는 '늙은 신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는 두무진(頭毛鎭)이 있다. 촛대처럼 수면위로 치솟은 이 절벽바위는 열두 장군이 머리를 맞대고 작전을 숙의하는 모습처럼 보인다. 해안절벽 경승의 으뜸으로 꼽히는 거제도 해금강도 두무진에는 감히 견주기 어렵다.

두무진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선 선상 유람보다는 해안 길 따라 내려가는 도보 투어를 추천한다. 두무진 일대 절벽의 주인은 가마우지 무리다. 수시로 다이빙 잠수로 고기를 잡아먹다가 잠시 바위에 앉아 깃털을 말린다.

장산곶이 바라다보이는 해안언덕에는 심청각이 있다. 바로 그 앞바다가 옛 소설에 등장하는 심청이가 봉사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몸을 던진 인당수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또르르' 멜로디 같은 돌 구르는 소리

백령도의 대표적인 음식은 황해도식 사곶냉면이다. 주민 상당수가 한국전쟁 중 황해도에서 잠시 피난 왔다가 돌아가지 못한 실향민인 까닭에 향토음식으로 남았다. 사곶해변(3km)과 콩돌해안(1.2km) 산책도 추천한다. 사곶 비행장으로도 불리는 사곶해변에선 연평도 포격 사건 직후 대규모 상륙작전이 펼쳐졌다. 평소 헬기 착륙장으로 사용하지만, 비상시엔 화물기도 착륙할 수 있다고 한다.

해변 한쪽에는 자그마한 풀등도 나타난다. 정확한 명칭은 '사곶해빈(海濱, 바다에서 밀려온 미세퇴적물로 이뤄진 해변)'인데, 자그마한 몽돌로 이뤄진 '콩돌해변'과 더불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특별한 지형이다. 사곶해변은 고운 퇴적물 입자로 이뤄져 있어 바닥이 단단해 대형버스가 마치 아스팔트에서처럼 질주할 수 있다.

콩돌해변도 여행자들에게 독특한 경험을 선사한다. '또르르' 파도에 휩쓸려 구르는 돌 소리가 청아한 가을하늘과 어울려 듣는 이의 기분을 무척 즐겁게 한다. 아름다운 멜로디처럼.

한편 백령도는 천주교와 기독교, 두 종교의 역사와도 깊이 연결돼 있다. 이 섬이 중국에서 서해를 통해 한반도로 이어진 전교(傳敎)의 징검다리가 돼서다. 천주교는 이 섬을 경유해 조선 땅을 밟은 외국인 선교사가 19명이나 된다. 그중 7명이 성인품에 올랐다. 김대건 신부의 순교 사건도 이 섬과 관련이 있다. 1846년에 중국선교본부로 보내는 서한을 중국 선원을 통해 전달하려다 적발된 게 화근이었는데, 그 장소가 백령도 부근이었다. 인천교구의 백령성당이 그런 역사를 기린다. 1832년에 한반도 최초로 전해진 개신교 성서도 그 무대가 이 백령도다. 올해 122년 역사의 중화동교회(1898년 설립)가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시발점 역시 한국기독교의 최초순교자로 기록된 로버트 토마스 목사가 1865년 백령도에 찾아와 드린 예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