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자각하는 간경변증,
그 합병증은 생명 위협한다
인체의 간은 70%가 망가질 때까지 별다른 전조 증상이 없어 질환이 한참 진행된 후에야 자각 증상이 나타난다. 대표적인 간질환인 간경변증은 간암으로 진행할 수 있는 위험이 높다. 고려대 안산병원 소화기내과 정영걸 교수를 만나 간경변증에 대해 물어봤다.
간은 인체의 가장 큰 화학공장이라 불린다. 우리 몸에 필요한 각종 영양소를 만들어 저장하고, 탄수화물, 지방, 호르몬, 비타민 및 무기질 대사에 관여한다. 또한 약물이나 몸에 해로운 독소를 해독하고, 소화 작용을 돕는 담즙산을 만든다.
그런데 사람은 간에 이상에 생겨도 상당 기간 자각하지 못할 수 있다. 간경변증도 그런 상태에서 악화된다. 그렇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 정영걸 교수는 "간경변증은 간섬유화가 발생하여 생긴 만성 질환으로, 섬유화가 상당히 진행되면 이전의 상태로 회복하기가 힘들다"고 설명했다. 이어 "진행된 섬유화 및 간경변증은 간암의 발병이 높아지므로 적어도 6개월마다 혈액으로 간암 표지자 검사와 간 초음파 검사를 받고 간암 발병 여부를 체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간경변증이란 무엇인가.
간에 만성적으로 염증 또는 손상이 지속돼 간의 형태가 울퉁불퉁해진 상태를 말한다. 간세포 손상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간에 흉터가 쌓이는 간섬유화증이 나타나고 화학 공장으로서의 기능이 떨어지는 것이다. 심한 경우에는 이식까지도 고려해야 하며 만성 간질환의 말기 상태가 되기도 한다.
비만에 의한 비알콜성 지방간도 주의해야
간경변증의 주요 원인은 무엇인가.
국내에서는 B형 간염으로 인한 간경변증이 약 70% 정도로 가장 많고, 알코올성 간염, C형 간염이 그다음 순이다. 이외에도 자가면역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간경변증에 노출될 수 있다. 면역 체계에 이상이 생겨 자신의 간세포에 대한 자가항체가 생성되고 면역세포가 정상적인 간세포를 공격하는 것이다. 최근에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비알코올성 지방간도 무시할 수 없는데, 주로 비만이나 당뇨병, 고지혈증 등이 원인이다.
초기엔 대부분 증상이 없다고 하던데, 주된 증상은.
간경변 초기에는 무증상이 대부분이다. 병이 진행되어야 비로소 쇠약감, 피로, 근경련, 체중 감소가 나타나고 식욕부진, 구역과 때때로 심한 구토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복통과 월경 장애, 성기능 장애, 성욕감퇴, 불임 등이 생기기도 한다. 이외에도 간 기능 장애로 의식장애가 발생하고, 지혈 능력이 저하돼 잇몸이나 코에서 출혈이 잦아지며 피부에 멍이 잘 들게 된다.
간경변증으로 위식도 정맥류가 생기기도 하나.
그렇다. 간으로 흘러가야 할 혈류가 제대로 간을 통과하지 못하게 돼 간으로 피를 운반하는 간문맥 혈관의 압력이 높아지게 된다. 그 결과 비장이 붓고, 위와 식도의 정맥들이 팽창한다. 이 때문에 혈관이 파열되면 대량의 피를 토하거나 혈변을 보게 된다. 위식도 정맥류 출혈은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응급질환이다.
간경변증의 진단은 어떻게 하나.
과거 병력에서 간경변증의 원인이 될 만한 질환이 있었는지를 확인하고 혈액검사, 초음파 검사 및 CT 검사 소견 등을 종합하여 진단하게 된다. 혈액검사 결과 혈소판 수치가 낮아져 있으면 간경변증이 진행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간이 안 좋으면 비장 비대가 생기게 되면서 혈소판 수치가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또한 혈액응고 수치, 알부민 농도 등이 낮아졌을 때에도 간의 손상을 의심할 수 있다. 초음파 검사로 복수의 유무와 간의 해부학적 이상을 확인할 수 있고 CT 검사를 통해 비장 비대와 위식도정맥류 등을 확인하여 간경변증을 진단할 수 있다. 조기 진단 등을 위해서 간 조직 검사를 시행할 수도 있지만, 조직검사용 바늘을 간에 찔러 조직을 채취하기에는 환자의 불안감이 크고 검사 후 통증과 합병증도 간혹 발생할 수 있어서, 최근에는 "간 탄성도 검사"를 통해서도 좀더 정밀한 진단이 가능하다.
간경병증 심해지면 위식도 정맥류 출혈 위험
간경변증의 합병증인 위식도 정맥류는 어떻게 검사하나.
간경변증이 있는 환자에서 내시경을 시행하면 빈번히 위식도 정맥류가 발견된다. 처음에 위식도 정맥류가 없더라도 간경변증이 악화되면 발생이 가능하고, 위식도 정맥류가 있던 환자도 간 기능 악화 시에 위식도 정맥류가 커지거나 출혈이 발생할 수도 있으므로 의료진과 상의하여 주기적으로 내시경 검사를 받는 게 좋다.
고위험군 환자는 검사를 어떻게 해야 하나.
간염 환자 및 알코올성 간염 환자 모두 간암의 위험도가 높다. 특히 만성 B형 간염, C형 간염 및 알코올성 간경변증 환자가 간암의 고위험군이며, 간암은 40세 이전에도 발생은 하지만, 40세 이후로 발생률이 빠르게 증가한다. 고위험군 환자의 경우 6개월 간격으로 간초음파와 혈액검사로 간암표지자인 알파태아단백 검사를 권고하고 있다.
간경변증의 치료법은.
원인이 되는 질환을 최대한 치료해서 섬유화의 진행을 막는 것이 중요하다. 만성 B형 간염과 C형 간염은 이미 효과적인 약물들이 개발돼 있어 초기에 치료하면 악화를 막을 수 있다. 또한 만성적인 음주 습관이 원인인 경우에는 금주와 함께 비타민과 무기질 보충 등으로 증상을 완화할 수 있다. 비알코올성 간경변은 식이조절 및 운동을 통해 체중을 감량해야 한다. 원인이 되는 비알코올성 지방간이 대개 비만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간 섬유화가 진행되면 회복 가능성이 아예 없나.
과거에는 간경변증을 비가역적인 질환으로 규정해 한번 섬유화가 진행되면 회복될 수 없다고 봤다. 최근에는 B형 C형 간염에 의한 간경변증의 경우 항바이러스제 치료로 간경변증의 조직학적 호전을 보였다는 연구 결과가 지속적으로 보고되고 있다. 기존의 개념이 조금씩 바뀌고 있어 간섬유화가 진행된 간을 어느 정도는 회복시킬 수 있다고 보는 추세다.
간이식은 어떤 경우에 하게 되나.
주로 합병증의 정도가 심해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경우 간이식이 고려될 수 있다. 또한 약물로도 조절되지 않는 정도의 복수로 인해 호흡 곤란을 야기하거나 황달이 심해지면 이식술을 시행할 수 있다. 또한 간 기능의 저하로 제거되지 못한 암모니아가 뇌로 유입되면서 여러 가지 신경학적 증상을 보이는 간성혼수(간성뇌증)가 나타날 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식 수술 후 감염, 출혈, 거부 반응, 간동맥 혈전증 등과 같은 다양한 합병증과 부작용이 생길 수 있어 의료진과 충분히 상의하여 결정하는 것이 좋다.
간암 초기에도 무증상, 정기 검진이 최선
간경변증이 있으면 간암 발생률이 높아지나.
간경변증이 지속되면 간암 발생의 위험도가 현저히 증가한다. 간암은 간경변증이 심하고 고령의 남자에게서 더 많이 발생한다. 간암의 증상으로는 오른쪽 윗배에 통증이 있거나 덩어리가 만져지는 것, 복부 팽만감, 체중 감소, 심한 피로감, 소화불량 등이 있다. 간경변증 환자에게 간암이 생기면 갑자기 황달이나 복수가 심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대개 간암 초기에는 증상이 전혀 없으므로, 주기적인 복부 초음파 혹은 CT 검사와 혈액 내 알파태아단백 검사 등의 주기적인 추적관찰이 중요하다.
간경변증을 예방하려면.
우선 위험인자를 없애야 한다. B형 간염 바이러스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백신을 접종하고 C형 간염 바이러스의 경우에는 아직 백신이 개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감염되지 않도록 특히 주의해야 한다. 다행히 C형 간염은 일상적인 접촉만으로는 전염이 되지는 않고 주로 혈액을 통해 전염되기 때문에 오염된 바늘, 손톱깎이, 면도기 등의 기구를 함께 사용하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지나친 음주를 삼가고 적정 체중을 유지해야 한다.
간경변증 환자들이 특히 주의해야 하는 음식은.
영양소를 골고루 충분히 드시도록 권고한다. 고단백, 고열량, 고비타민 식사를 하는 것이 원칙이다. 간경화가 발생하면 기초대사량이 증가하면서 상대적으로 더 많은 열량을 필요로 하게 되고 특히 단백질이 부족해질 수 있다. 하지만 환자의 상태에 따라서 염분이나 단백질 섭취를 제한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만약 간경변증 환자가 하지부종이나 복수가 차는 등의 증상을 보이면 염분 섭취를 제한하는 것이 필요하다. 염분이 증상을 악화시키기 때문이다. 초기 간경변증의 경우에는 저염식을 고집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일일 권장량 이상의 소금 섭취는 지양해야 한다. 또한 간성혼수가 나타날 때는 저단백식, 비만으로 인한 비알콜성 지방간은 체중을 줄이기 위해 식단을 조절하는 것이 필요하다.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간독성 약물은 무엇이 있나.
항생제, 진통제, 결핵약, 항암제 등이 있다. 또한 개인별로도 약물에 대한 감수성 차이 및 기저질환에 따라서 같은 용량에도 다르게 반응하는 사람도 있어서 예상치 못하게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약으로 해열진통제인 아세토아미노펜(타이레놀)이다. 과량 복용 시 간독성이 발생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다행히도 국내에서는 의사와 약사에 의해서 관리가 되고 있어서 복용자가 의도하지 않는 이상 쉽게 발생하지는 않는 편이다.
건강기능식품으로 간독성이 생기기도 하나.
요즈음은 건강보조식품의 오남용으로 인한 간독성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해외여행 시 사오는 건강보조식품 및 수입산 다이어트 제품 등의 무분별한 유입으로 인해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서 주의가 필요하다. 최근에는 수입산 헬스 근육 보충제와 노니 등의 해외 건강보조식품 오남용으로 인한 간독성 환자를 자주 경험하고 있다.
만성 간염 환자에서 간에 좋은 기능을 하는 영양소가 있나.
지방간 질환자에서 비타민 E, 알코올성 간질환자에서 비타민 B, C, 원발성 담즙성 간염 환자에서 지용성 비타민 A, D, K, 그리고 만성 간질환자에서 비타민 D 등이 도움이 된다. 주로 항산화 효과 및 비타민 부족으로 인한 합병증 예방에 도움이 된다.
진화하고 있는 항바이러스 의약품
간염바이러스는 항바이러스제로 치료가 잘 되나.
현재 B형 간염 바이러스의 경우 1990년대 주사제인 인터페론 및 경구용 제픽스 출시 이후로 약제가 개발 보완됐다. 2016년 베믈리디, 2017년 베시보까지 여러 항바이러스 약들이 나오고 있다. 현재는 내성률이 1% 미만으로 매우 강력한 항바이러스 효과를 보이고 있어서 안심하고 사용해도 된다. 장기 사용 시 부작용이 있지만 적극적으로 모니터링을 진행하고 있고, 현재 완치를 위한 새로운 B형 간염 치료제의 2상 3상 임상이 진행 중이다. C형 간염의 경우 2010년경부터 경구용 항바이러스제가 개발되고 발전되어, 지금은 국내에서는 하보니, 마비렛 등의 강력한 항바이러스제로 98% 이상의 완치가 가능하게 되어 적극적으로 치료를 권고하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주의해야 할 점은.
간경변증은 만성적인 간질환으로, 치료와 함께 관리도 매우 중요하다. 먼저 규칙적인 식습관을 통해 건강한 영양상태와 적정 체중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 또한 간에 좋다는 말에 현혹되어 검증되지 않은 민간요법이나 건강보조식품을 복용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 특히 간경변증 등의 간질환을 앓고 있다면 주치의가 처방하는 약물 이외의 것들은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 대부분의 약들이 간에서 대사되어 독성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꼭 필요한 경우에는 의료진과 상담 후에 복용하는 것이 안전하다.
- EDITOR: 장치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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