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중 50세 이하 암 환자 있다면
'유전자 검사'로 예방·진단·치료해야
건강검진 문진표에 반드시 답해야 하는 질문이 있다. 바로 가족력과 관련된 질문이다. '부모와 형제 중에 암을 앓았거나 사망한 경우가 있느냐'는 것. 암 발병에는 유전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고려대안암병원 종양혈액내과 이수현 교수에게 유전성 암에 대해 들어봤다.
이수현 교수는 얼마 전 60대 중반 여성 환자에게 대장암 확진 결과를 알렸다. 환자는 의외로 담담했다. 환자는 35세에 최초 암을 진단받은 이후 수년에 한 번씩 암을 진단받아 이번이 벌써 여섯 번째. 유전자 돌연변이가 반복되면서 생기는 다중 암(Multiple cancer) 환자였던 것이다. 다행히 매번 치료 후 완치됐다.
이 교수는 "40대 이전에 암을 진단받은 환자가 가족 내에서 유사한 암이 발생한 전력이 있다면 유전자 변이가 있을 가능성이 높고 이는 계속해서 암 발생 확률을 높인다"면서 "이 때문에 이들 환자와 가족들에게는 유전자 검사를 권한다"고 말했다.
'앤젤리나 졸리 이펙트' 유전자 검사 증가
미국의 유명 배우 앤젤리나 졸리가 암에 걸리지 않았는데도 지난 2013년 양쪽 유방절제술을 받고 2015년에는 난소 절제수술을 받아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졸리의 엄마와 이모가 유전성 암 유전자 중의 하나인 BRCA1 보유자였고, 실제 난소암으로 사망했다. 졸리는 암을 진단받지 않았지만 유전자 검사를 통해 자신에게도 같은 유전자 변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이 유전자의 특성상 70세가 될 때까지 유방암과 난소암에 걸릴 확률이 65% 이상이라는 사실을 듣고 예방적 수술을 받은 것이다. 수술 후 졸리의 유방암 발병 가능성은 87%에서 5%로 줄었다. 이후 국내에서도 유전자 검사를 받는 유방암, 난소암 환자가 늘고 예방적 유방암 수술을 받는 환자의 비율이 25%가량 증가했다.
유전성 암이란 무엇인가?
암이란 어떤 원인에 의해 세포 내에서 발생한 유전자 변이가 축적돼 무한으로 증식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유전자는 손상돼도 스스로 복구하는 능력을 갖고 있지만, 복구하는 유전자에 변이가 있는 경우 정상 세포가 암 발생 위험요인에 계속 노출되면 손상된 유전자가 복구되지 못하다가 어느 순간 돌연변이가 축적되면서 암이 된다. 이렇게 생기는 암을 유전성 암이라고 한다.
암 발병한 부모의 자녀에게도 같은 암이 발생할까?
태어날 때 부모로부터 소인을 물려받은 경우가 많다. 하지만 물려받지 않아도 특정 유전자가 손상돼 발생하기도 한다. 특히 가족은 생활 습관을 공유하기 때문에 유전자 이상이 아니더라도 같은 암이 발생할 수 있다. 담배 피우는 아버지와 간접흡연을 하게 되는 가족에서 폐암 발생 가능성이 높은 것이 이에 해당한다.
유전성 암의 특징은?
유전성 암은 진행 속도가 매우 빨라서 젊은 나이에도 생길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보통 대장 내 용종이 암으로 발전하는 데 10~15년이 걸리는데, 특정 유전자 돌연변이가 있으면 2~3년만 지나도 양성 용종이 악성 종양으로 변할 수 있다.
유전자 돌연변이가 특정 암과 1:1로 매치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특정 유전자 돌연변이가 있으면 특정 암이 생기는 방식이라기보다는 여러 종류의 암을 발생시키는 양상으로 나타날 확률이 높다. 가령 30대에 MSH2라는 유전자 변이를 가지고 있으면 70세가 됐을 때 방광암이나 신장암이 발생할 확률이 40% 이상 올라간다. 또 종양 억제 유전자의 일종인 APC(암 억제 유전자)의 특정 위치에 생식세포 변이가 있다면 용종이 100개 이상 발생하는 가족성 용종증을 유발하는데, 이 경우 대장암이 발생할 확률이 최대 90%에 육박한다. 앤젤리나 졸리에게 발견된 BRCA1 유전자에 특정 변이가 생기면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65%, 난소암 위험은 75%에 달한다. 이 때문에 유전자 검사로 어떤 유전자에 변이가 발생했는지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유전자 검사는 어떻게 하나?
우리 몸에서 DNA를 확인할 수 있는 어떤 조직에서도 가능하지만, 혈액으로 검사해야 검사의 민감도와 정확성이 가장 높다. 예전에는 한 번의 혈액 검사로 특정 유전자 한 개의 돌연변이를 검사했지만, 요즘에는 기술이 발달해 차세대 염기서열분석(NGS, Next Generation Sequencing) 유전자 패널 검사로 유전성 암의 발생에 관여 한다고 알려진 수십 개의 유전자를 한꺼번에 검사할 수 있게 됐다.
유전자 변이, 자손에게 유전될 확률은 50%
어떤 사람들이 NGS 검사를 받아야 하나?
첫째로 평균 암 발병 연령보다 일찍, 젊은 나이에 암 진단을 받았다면 주의가 필요하다. 유방암이 40세 이하, 대장암이 50세 이하에 발생했다면 유전성 암을 의심해야 한다. 둘째, 한 사람에게서 시차를 두고 암이 여러 번 생기는 경우다. 셋째, 가족 내에 같은 종류의 암 환자가 많거나 내시경 검사에서 다발성 용종증(린치 증후군, 가족성 용종증)이 발견됐거나 직계가족 또는 형제 자매에서 유전성 암이 확인됐다면 유전성 암 클리닉을 찾아 상담을 받아볼 필요가 있다. 변이 유전자가 나오면 자녀한테도 유전자 변이가 있을 확률이 50%에 달해 직계가족에 대한 추가 검사가 필요하다. 특히 가족 중 가장 어린 나이에 암을 진단받은 환자보다 10년 이상 빨리 유전자 검사를 받는 것이 필요하다.
가족 중에 암 환자가 있다면 예방적으로 검사를 받는 것이 필요한가?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암을 진단받은 직계가족(부모, 자녀, 형제)이 50세 이하의 나이로 암을 진단받았다면 유전자 검사를 받는 것이 필요하다. 할아버지가 80세의 나이로 암을 진단받았다면 유전성 암 검사를 받을 필요가 없다. 또한 NGS 유전자 검사 결과는 임상적 상황과 연동해 해석해야 의미가 있다. 건강한 사람의 평균 건강 정보와 비교하며 가족력과 유전자 검사를 종합해서 파악해야 하기 때문에 유전자 자체만으로 100% 진단을 내리진 않는다.
유전자 이상이 있다면?
비관할 필요는 없지만 유전자 변이가 자손에게 유전돼 내려갈 확률이 50%라는 점에서 죄책감 등의 마음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결코 나의 잘못에 의해 발생한 것이 아니다. 나에게 유전자 이상이 발견될 때 미성년 자녀의 유전자 이상은 자녀가 20세 이상의 성인이 되어 자기 결정권이 생겼을 때 자녀에게 고지하고 검사를 진행하는 것이 좋다. 나의 배우자, 자녀가 결혼할 배우자에게도 섣불리 말하기 어려운 문제일 수 있다. 의학적인 것뿐 아니라 철학적, 문화적인 문제까지 결합된 사회문화적 관습, 법이 결합된 문제다.
유전자 이상 환자 임신 관련 법·제도 미비
유전자 이상이 있는 환자가 아이를 낳으면 유전되나?
확률은 50%다. 하지만 낙담할 필요는 없다. APC 유전자 이상에 의한 가족성 용종 증후군은 국가가 인정한 희귀난치성 질환에 포함돼 있으므로 결혼 후 난자와 정자로 수정란을 만들어 72시간 이내 수정란에 유전자 검사를 해볼 수 있다. 수정란에서 추출한 DNA에서 부모와 같은 APC 유전자 이상이 발견되지 않으면 수정란을 엄마의 자궁에 착상시켜 출산할 수 있다. 그러나 유전성이 명확히 알려진 BRCA 관련 유방암, 난소암, 소화기암에서 발견되는 린치 증후군 등 다른 유전자 이상이 있을 때 수정란 검사는 아직 불법이다. 유전자 연구가 발전하고 지식을 확장하고 있는 것에 비해 법과 제도가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BRCA1, 2 돌연변이가 있는 젊은 엄마는 수정란 검사를 위해 외국으로 나가 수정란 검사를 하고 원정 출산을 해야 할 판이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여전히 임신을 망설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불행하게도 이런 사례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
유전자 변이가 있다면 치료는 어떻게 하나?
변이 유전자를 갖고 있다면 일반 암 환자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치료와 예방이 이뤄진다. 검사 결과 보인자로 확인되면 유전성 암 클리닉에서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모니터링을 한다. 가령 APC 변이가 확인되면 매년 위·대장 내시경 검사를 통해 장내 변화를 관찰해야 한다. MLH1, MSH2 유전자 변이가 있는 린치 증후군 환자는 대장암 이외에도 비뇨기계암, 다른 소화기암에 대한 검사가 필요하고, 여성의 경우라면 자궁내막암이나 난소암의 위험이 높기 때문에 정기적인 산부인과 검진이 필요하다. 출산 계획이 없다면 예방적 자궁 난소 절제술을 하는 것을 권하고 있다. 특히 유전성 암은 변이 유전자에 따라 암의 진행 속도와 유형이 다르기 때문에 유전성 암 전문의의 판단 아래 진단과 치료가 중요하다.
유전성 암 상담 및 검사가 권고되는 경우
- 1) 평균 암 발병 연령보다 일찍 암이 생기는 경우(유방암은 40세 이하, 대장암은 50세 이하).
- 2) 한 사람에게서 여러 종류의 암이 발생하는 경우 또는 한 가족 내에서 같은 종류의 암 환자가 많은 경우.
- 3) 내시경 검사에게 다발성 용종증(린치 증후군, 가족성 용종증)이 발견된 경우.
- 4) 직계가족, 형제자매에게서 유전성 암이 확인된 경우.
- EDITOR: 장치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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