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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책방의 진화

책이 안 팔리는 시대라고 하지만 책을 둘러싼 생태계는 다양하게 변화하고 있다. 동네책방, 독립서점을 넘어 최근에는 한 달에 한 권만 소개하는 서점, 유료 회원제로 운영하는 도서관, 오래된 책의 가치를 보여주는 헌책방 등 저마다 실험적 운영 방식을 내세운 책 공간이 등장했다. 세 곳의 이색 책 공간과 그들이 이 가을 추천하는 책을 소개한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유토피아 소전서림

소전서림의 문학서가.

소전서림(素磚書林)은 '흰 벽돌로 둘러싸인 책의 숲'이란 의미로 스스로 생성하며 순환하는 숲처럼 책을 통한 문화적 경험이 스스로를 성장시킨다는 믿음이 담긴 곳이다. 지난 2월에 개관했으며 이제껏 익숙한 책 공간과는 조금 다른 유형을 제시한다. 멤버십형 문학 도서관으로 비평가, 시인 등 각 분야의 전문위원이 약 1년에 걸쳐 문학, 예술, 인문학 분야의 책 4만여 권을 엄선했다. 예담, 청담, 하오재 등으로 구성된 공간은 공동 테이블이 놓여 있거나 1인석, 소파 등 저마다 책을 가장 편안하게 읽고 느낄 수 있게 꾸며져 있다.

하지만 이곳을 방문한다면 비단 책을 읽은 것에 그쳐선 안 된다. 스위스 건축가 다비데 마쿨로(Davide Marcullo)가 설계하고 원오원 아키텍츠가 설계 및 시공한 아름다운 건축물이라는 점, 어윈 올라프, 프랜시스 베이컨 등의 현대미술 작품이 곳곳에 걸려 있다는 점, 핀율, 카시나 등 디자이너 가구로 채워져 있다는 점에서 단순히 독서 경험이 아니라 총체적인 문화적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학과 문화, 예술과 건축, 디자인까지 모든 요소가 섬세한 미감으로 선별되어 있으며 그렇기에 일종의 문화적 유토피아에 가까워 보인다.

'예술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란 뜻의 예담은 도록 중심의 예술 인문학 서적들로 구성돼 있다.

소전서림은 연간 회원가입을 통한 멤버십으로 운영하지만, 반일이나 종일권을 구매해 방문할 수도 있다. 또한 소전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통해 인문학 강좌를 들을 수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운영 계획 변동은 인스타그램(@sojeonseolim)을 통해 확인할 수 있으며, 소전서림의 북 큐레이터는 이 시기를 보내기에 좋은 책으로 이제니 시인의 <그리하여 흘려 쓴 것들>을 추천한다. 가을에 읽기 좋은 적당히 묵직하고 잔잔한 시집으로 시를 잘 읽지 않는 사람들도 쉽게 다가갈 수 있다. 요즘처럼 어려운 시기에 마음을 위로하는 책으로 적당하다.

개인 서가 모습. 조용히 책에 집중하기 좋은 공간이다.
'맑은 못과 같은 깨끗한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란 뜻의 청담.
  • 주소: 서울시 강남구 영동대로 138길 23
  • 운영 시간: 화~토요일 11시~23시 / 일요일 10시~18시
  • 문의: 02-542-0804 / sojeonseolim.com

책의 생명이 이어지는 곳 서울책보고

다종다양한 독립출판물이 전시돼 있다.

헌책방 하면 곰팡이가 슬어 풍기는 특유의 종이 냄새, 발 디딜 틈 없이 천장까지 빼곡하게 쌓인 책더미가 떠오른다. 어쩐지 마음이 푸근해지는, 비슷한 추억을 떠올리는 사람이라면 이 공간이 꽤 반가울 것 같다. 지난 3월 오래된 책의 가치를 담아 문을 연 헌책방 큐레이션 서점이자 복합문화공간 서울책보고가 문을 열었다. 서울시가 도시 재생 프로젝트를 목적으로 유휴공간을 새롭게 리모델링해 조성했으며 29개의 헌책방과 명사 기증 도서와 독립출판물의 전시 공간, 북 카페와 프로그램 공간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동네마다 한두 곳 자리 잡고 있던 생계형 중고서점이 있던 풍경을 기억하며 헌책의 가치를 알리기 위한 행보를 이어나가고 있다. 그러기 위해 일반 시민의 기증은 받지 않는다. 이는 출판사, 서점, 작가가 배제된 독자들 간의 거래 및 유통을 지양해 건강한 출판생태계를 위하는 노력이다.

한편으로 서울책보고는 조금 불편한 서점이기도 하다. 장르별, 제목별로 검색해 바로 찾을 수 있는 보통의 서점이나 도서관의 서가 배치와 달리 헌책방별로 자리 잡고 있기에 어디에 꽂혀 있는지 최소한의 정보만 가지고 직접 헌책방들을 돌아다니며 책을 찾아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느리고 수고스러운 시간이야말로 제목만으로도 끌리는 책, 절판돼 구하기 힘든 책, 어린 시절 읽은 추억 속의 책을 우연히 맞닥뜨리는 행운을 마주할 가능성을 높인다.

북 콘서트, 기획전시 등 매달 시기에 맞는 문화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서울책보고의 상징적인 공간인 원형 서가.

헌책 13만 권, 독립출판물 2천700여 권을 보유하고 있으며, 매주 5명씩 어떤 책을 읽을지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한 '어디서든 책 처방', 북 콘서트나 기획전시 등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코로나19 시대를 맞아 지난 7월부터 온라인 판매 서비스를 개시했으니 휴관 기간에는 온라인으로 헌책방을 찾아가보자. 지금 이 시기에 어울리는 책으로 서울책보고의 북 매니저는 권정생 작가의 <사과나무밭 달님>을 추천한다.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들이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통해 존재의 근원을 사색해보길 권한다.

  • 주소: 서울시 송파구 오금로1
  • 운영 시간: 월~금요일 11시~20시 / 주말 및 공휴일 10시~20시
  • 문의: 02-6951-4979 / www.seoulbookbogo.kr

한 권의 커다란 세계 한권의 서점

내부 사진

서촌의 작은 골목길, 주변 풍경과도 어울리는 자그마한 규모의 서점이 있다. 전면의 쇼윈도를 통해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데, 서점이라기엔 책이 많지 않다. 단 한 권만을 취급한다는데 어떻게 된 걸까. 이곳은 '느린 동네 서촌에서 하나의 책을 주제로 매달 변하는 북 스토어'라는 테마를 가진 한권의 서점이다. 숙소 큐레이션 플랫폼 기업인 스테이폴리오에서 운영과 기획을 담당하고 있으며, 스테이폴리오가 서촌에서 운영하는 숙박시설인 누와, 서촌영락재, 아담한옥의 컨시어지 역할도 한다. 이들은 매월 한 단어를 선정하고 이와 어울리는 한 권의 책을 골라 세 평 남짓의 공간을 재구성한다.

단순히 책만 진열하고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책의 콘텐츠와 관계된 예술가와 협업해 관련된 전시를 함께 보여주며 한 권의 책을 오롯이 경험할 수 있도록 돕는다. 책을 단순히 종이라는 물성으로만 이해하거나 독서로만 소화해야 한다고 한계를 짓지 않는 것이다. 일례로 <파란 고양이>라는 그림책을 소개할 때는 허지영 작가의 원화를 함께 전시하고, 일부는 포스터와 엽서로 제작해 판매했다. 한권의 서점은 모든 정보가 넘쳐나는 이 시대에 우리가 한 권만이라도 제대로 보고 느끼고 경험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가 되묻는다.

한권의 서점은 매달 한 권의 책을 소개하며, 세 평 남짓한 공간을 책의 콘텐츠와 연관된 하나의 전시장으로 꾸민다.

9월에는 '무해'라는 단어를 선정하고 신지혜 작가의 <무해한 하루를 시작하는 너에게>를 소개한다. 한없이 유해한 상황이 반복되는 요즘, 나와 우리 모두에게 무해한 삶의 방식을 고민해보자는 의미다. 도서와 함께 제로웨이스트를 지향하는 '함께하는 그날 협동조합'의 친환경 제품으로 공간을 채웠다. 지금 우리에게는 작은 하나를 탐독하는 무해한 시간이 필요한 것만 같다.

  • 주소: 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9길 241
  • 운영 시간: 화~일요일 11시~20시
  • 문의: 0504-0904-2021 / of-onebook.com
  • EDITOR: 이수빈
  • 이미지 제공: 소전서림(김인철-원오원 팩토리), 서울책보고, 한권의 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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