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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LING TRAVEL

겨울철 강릉 여행 푸른 파도에 상념 씻고,
따뜻한 햇살과 커피로 새로운 감흥 맛본다

강릉 사천항에서 바라본 일출.

연말에 모처럼 강릉을 찾았다. 그날은 주말. 그래선지 해변의 커피숍 빌딩이 라스베이거스(미국 네바다 주)의 카지노 스트립처럼 줄지은 안목해변 거리는 북적댔다. 겨울바다 여행객인데 대개가 젊은 세대였다. 그 주말은 확산일로의 오미트론 변이 바이러스로 인해 정부의 방역기준이 다시 강화된 시점. 그럼에도 그 도돌이표는 여행자의 강릉행 발길을 돌려세우지 못했다. 거세게 몰려와 힘없이 부서지며 하얀 포말만 남기고 사라지는 파도. 가슴에 찌들 듯 남은 상념의 찌꺼기를 씻어버리려는 듯 해변에 선 채로 하염없이 파도를 응시했다. 이름하여 '파멍'. 파도의 우렁찬 포효에 갑갑했던 가슴도 뻥하고 구멍이 뚫린 듯 시원해졌다.

수학능력시험이 끝나고 수험생들에게 물었다.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고. 여러 가지가 등장했지만 통틀어 가장 많은 대답은 여행이었다. 그것도 꼭 짚어 '동해바다'. 거기엔 당연히 해돋이가 포함돼 있다. 참으로 의미심장한 선택이다. 수능은 곧 입시지옥의 최절정. 그리고 해돋이는 '희망'의 상징. 결국 수험생의 동해 여행은 '지옥 끝, 천당 시작'의 선포다. 그렇다. 우리에게 해 뜨는 동해는 늘 그렇게 해방과 희망의 공간이자 새 출발의 상징. 그런 동해에서도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곳, 강릉과 주문진이다.

강릉항의 일출
강릉항의 일출.

새해엔 베이징(중국)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린다. 그러고 보니 강릉이 동계올림픽 무대가 된 지도 벌써 4년. 까맣게 그걸 잊고 산 건 아무래도 코로나-19에 온정신이 팔린 탓 아닐까 싶다. 그런데 그것과는 무관하게 강릉을 찾는 여행자는 계속 늘어나는 추세. 아무래도 평창 동계올림픽 효과인데 그 중에서도 효자는 KTX경강선이다. KTX 개통은 강릉여행 스타일을 하루아침에 바꿔 놓았다. 그 이전엔 손수 운전해야 제대로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내 차 대신 현지 택시를 이용하면서부터다. 대중교통(철도) 이용으로 서울에서 두 시간 권에 편입되면서 생긴 변화다. 방탄소년단(BTS)과 K-드라마로 세상의 시선이 대한민국에 집중된 이즈음. 나는 더 나아가 이 한반도를 '작은 거인'이라 일으켜 세운다. 한반도 지형을 보자.

안목 해변 태양
안목 해변에서 바라 본 태양.
안목 해변 모래사장
안목 해변의 모래사장.

산과 바다, 호수와 강이 섬과 대륙을 거느리는 형국이다. 바다도 그렇다. 반도의 폭이 300km 안팎에 불과해도 동서 양편이 딴판이다. 남북으론 또 어떤가. 척추 격 백두대간(백두산~태백산~지리산)이 대륙과 바다를 쥐고 흔들고 있지 않은가. 거기에서도 강릉은 독특한 입지다.

'동해의 수도'라는 것인데 우리에게 동해는 그저 바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맞댄 땅(영동의 9개 군)까지 아우른다. 조선시대에 전국으로 뻗어나간 대로(大路) 9개 중 동해로 난 건 제3 대로. 그건 '관동대로'라 불리며 백두대간의 '대관령'고개를 넘어 강릉으로 이어졌다. 이후엔 남행하여 동해 삼척을 지나 흥해(경북 포항시)로 이어졌다.

붉은 태양과 솔바람

강릉은 예로부터 동해안에서 가장 부유했다. 당연히 주민도 많았다. 그 배경은 대간의 동편을 타고 흘러내린 강인데 무려 일곱 개에 이른다. 강이 많으면 농사짓기에 좋고 바다와 만나는 하구엔 널찍한 하상지와 더불어 천혜의 포구가 형성되고 어종도 다양해 잡을 고기도 많다.

강릉의 금빛 모래사장은 또 어떻고. 놀라지 마시라. 그 출처는 중국과 러시아 사이로 흘러 오호츠크 해로 유입된 아무르 강(흑룡강)이라 한다. 강물이 바다로 실어온 고운 모래는 조류에 밀려 동해안에 안착한다. 강릉의 명소 경포호도 그렇게 태어났다. 해변에 형성된 사주(沙柱)가 웃자라 육지를 에워싼 것이다. 동해안(북한지역 포함)엔 이런 '석호'(潟湖 Lagoon 라군)가 셀 수도 없이 많다. 화진포, 영랑호도 모두 석호다.

경포호 설경
강릉시 주요 관광지 중 하나인 경포호 설경.
송림
송정 해변 인근의 송림.

그런 멋진 송림은 경포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허난설헌 생가(추정) 옆에도 있다. 더불어 안목해변에서 커피 한 잔은 참새 방앗간 격. 해변 카페가 이제는 카페빌딩으로 진화해 큰 거리를 이룬다.

강릉 안목 해변
강릉시 안목 해변에서 부서지는 동해의 파도.
안목 해변 커피거리
안목 해변의 커피거리.

시내와 해변에서 맛보는 커피

한겨울 동해안 진미를 맛보기에 강릉만한 곳이 없다. 강원 동해안에서 가장 큰 '주문진'항을 품어서다. 한겨울 진미는 다양하다. 복어와 곰치, 양미리와 도루묵 등등. 지금 가면 이런 생선이 주문진항 선어시장의 수조와 좌판에 넘쳐난다. 물론 월별로 어종이 바뀌기는 하지만. 그중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것은 양미리. 갓 잡은 것을 통째로 구우면 자르르 흐르는 기름과 더불어 고소한 냄새가 코와 혀를 자극한다. 게다가 맛은 또 어떤가. 보드라운 속살을 베어 물 때 느껴지는 고소함은 다른 어떤 생선도 능가한다. 주문진항의 생선구이 전문식당에서 맛볼 수 있는데 선어 좌판도 최근 새 건물에 차려져 깔끔하다.

주문진항구 태양
강릉 주문진항구를 비추는 태양.
양미리 수집 장면
주문진항 양미리 수집 장면.

강릉은 영동(백두대간 동편)지방을 아우르는 중심지로 역사의 현장을 간직하고 있다. 신라 때도 9주5소 경의 한 주(명주, 溟州)였고 고려, 조선에 이르러도 마찬가지였다. 조선시대엔 읍성까지 축조됐는데 시내엔 그 흔적이 여전하다. 그 이름이 답습된 명주동이 그 현장.

강릉 대도호부의 관아를 재건하면서 성벽 터와 동네를 문화마을로 꾸며 보존하고 있는데 최근 강릉의 핫플레스로 각광받고 있다. 1970년대 전후에 지은 낮은 지붕 주택들로 골목 풍경은 고즈넉하다. 행인 왕래도 많지 않아 산책하기 그만인데 골목 곳곳에 자리 잡은 작고 소박한 상점과 카페가 골목 분위기를 레트로(Retro)로 이끈다.

강릉시내 읍성 성벽터
강릉시내 읍성 성벽터.
명주동 카페 내부
강릉시 명주동 카페 내부.

나는 거기서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자리'를 찾아냈다. '카페 명주동'이라는 곳의 창가인데 40년 역사의 세탁소 자리다. 통유리 창밖엔 까치 감 몇 개만 매달린 겨울나목 감나무가 그림처럼 서있고 그 창으로는 따사로운 햇볕이 홍수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거기서 따뜻한 드립커피의 향을 즐기며 느끼는 행복감이란…. 안목해변에서 바다를 응시하며 즐기는 커피와는 또 다른 감흥이라 좋았다. 강릉은 이렇듯 여유와 감상을 선사하는 여행지다.

강릉이 커피문화 발상지가 된 것도 다르지 않다. 풍부한 감성을 지닌 이들 중에 많은 사람이 문인의 삶을 살아서인가. 문인과 예술인만큼 커피를 사랑한 사람들도 없다보니 그리 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런 문학의 뿌리는 예서 태어난 조선의 여류작가 허난설헌과 그의 동생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이다.

Travel Information

◇ 한옥마을

여행의 흥취를 돋우자면 역시 하룻밤 정도는 묵으면서 즐겨야 하지 않을까. 그러자면 한옥만한 게 없다. 강릉에도 한옥마을이 있는데 장소는 신사임당이 율곡 이이를 낳고 키운 오죽헌 옆에 조성됐다. ‘2층 한옥’의 독특한 구조가 특징이다.

◇ 맛집
  • 강릉항 회센터: 안목어촌계 소속 어업인들이 매일 새벽과 아침, 두 번 출어해 잡아온 선어만 판다. 그래서 100% 강릉 앞바다 자연산. 1층 선어 좌판에서 생선을 골라 2층 장만식당에서 장만비(1인 4,000원)만 내고 맛볼 수 있다. 위치는 안목해변 옆 강릉항 주차장.
  • 구이본부25시: 주문진시장의 도로변 식당가에 있다. 한겨울 양미리 철에는 메뉴에 없는 '양미리구이'도 나온다. 생선구이는 2인분(기본)부터 내고 가격은 1인분에 1만 2,000원. 기본(2인분)은 고등어, 꽁치, 임연수, 열기 한 마리씩, 3인분은 가자미, 4인분은 가자미와 갈치가 추가된다. 가마솥 누룽지 제공. 갈치와 가자미조림, 도루묵찌개 같은 별도 메뉴도 있다.
  • 차현희 순두부 청국장(본점): 초당순두부마을 안. 전복순두부전골에 황태구이와 명태찜, 생선구이를 추가하면 멋진 한상차림이 된다. 강릉 초당순두부길 98
  • 산나물천국(점봉산산채): 서른 가지 반찬의 상차림 가운데 열네 종의 산나물 모둠 접시가 놓인다. 그걸 명이나물로 싸서 먹는 나물쌈이 별미. 강릉시 난설헌로 168(허균생가 옆)
강릉항 회센터
강릉항 회센터.
구이본부25시
구이본부25시.
  • WRITER: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 PHOTO: 강릉시청, 게티이미지, 조성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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