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불러오는 가을날의 운치 대도시의 허파 서울숲
서울숲에서 가장 높은 바람의 정원. 물결치는 억새밭에서 한강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느낄 수 있다.
서늘한 바람이 밀려오는 어느 가을 날, 푸르고 높은 하늘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그동안 바쁜 일상에 쫓기듯 살다가 정작 나를 챙기지 못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는다. 다층적이고 다면적인 가을의 모습 때문에 감정 변화는 드세지고 세상 사는 흥미는 점점 사라진다. 가을을 타는 김에 도시의 숲길을 걸으며 오롯이 자신의 감정에 귀 기울여 볼 기회가 있다. 울긋불긋 물든 가을날의 운치가 바닥을 친 감성 지수를 북돋아 줄 것이다.
갈수록 진가를 발휘하는 환경의 가치
숲이 내뿜는 피톤치드를 마시면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심폐기능이 좋아진다. 미국의 환경 심리학자 로저 울리치(Roger Ulrich)는 "자연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자연친화적으로 변화시켜 원만한 대인 관계와 조직에 대한 강한 소속감을 가지게 한다"고 했다.
상대적으로 자연을 직접적으로 느끼기 힘든 도시민은 계획적으로 조성된 도시공원에서 건강, 휴양 및 정서를 향상시킨다. 특히 나무숲은 허약해진 도시인의 기력을 회복시키며 스트레스를 억제시켜준다.
서울 성동구 뚝섬로 273번지에 있는 서울숲은 면적이 43만 2,394㎡로, 청계천, 중랑천, 한강을 연결하는 요충지에 조성된 방대한 가족생태공원이다. 현재 서울숲은 삭막한 빌딩 숲 사이에 위치한 서울의 대표적 '녹지 랜드마크'지만 도시공원조성 이전에는 상대적으로 낙후된 준공업지역이었다.
뚝섬경마장과 골프장이 다른 곳으로 이전하자 서울숲 일대는 아무런 용도가 없는 인적 드문 유휴지로 남게 되었다. 특히 이 지역은 하천과 강변북로로 완전히 둘러싸인 단절된 공간으로 유동인구가 적을 수밖에 없었다. 강변북로에서 뿜어나는 교통소음과 매연, 주변지역 제화공장들로 인해 환경 여건은 상당히 열악했다.
원래 이 일대는 대규모 문화관광단지 조성사업이 계획되어 실행에 옮기기 직전이었다. 그런데 2003년 1월 서울시는 기존 개발계획을 전면 백지화하고 대규모 생태공원조성을 위한 도시계획을 발표했다. 런던의 하이드파크(Hyde Park)나 뉴욕의 센트럴파크(Central Park)처럼 도시인이 숨 쉬고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는 웰빙공간을 세우겠다는 목표로 그해 12월 조성공사의 첫 삽을 들었다.
2005년 6월18일, 드디어 나무가 우거지고 새들이 지저귀는 울창한 호수정원 '서울숲'이 개원했다. 현재 서울숲은 서울 도심을 가로지르는 '서울의 허파'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시민들에겐 없어선 안 될 공간이 됐다. 착공 당시 경제적인 이익만 계산기로 두드렸다면 최소 5조 원의 상업용지 매각이익을 얻었을 테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눈에 보이는 경제적 가치보다는 보이지 않는 환경적 가치가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가을향기 물씬한 단풍의 정취
지하철 분당선 서울숲역 4번 출구에선 대략 2분정도, 2호선 뚝섬역 8번 출구에선 10분정도 걸어가면 서울숲 입구에 도착한다. 또한 한강둔치와 중랑천둔치를 이용해 도보(보행가교)나 자전거(연결 터널)로도 서울숲에 도달할 수 있다.
서울숲은 총 5개의 테마(문화예술, 자연생태, 자연체험, 습지생태, 한강수변)로 조성되었지만 굳이 순서에 얽매이기보다는 발걸음 닫는 대로 동서남북 어디로든 움직여도 자연과 함께 숨 쉴 수 있는 힐링 공간이다.
서울숲 어디든 자연의 품으로 돌아간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서울숲 정문으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스타트(START)'라 명명된 군마상 조형물이 눈에 들어온다. 1954년 뚝섬은 제주도 조랑말을 들여와 30년 넘게 경마장을 운영했는데 수많은 청춘들의 데이트장소로도 많이 애용되었다.
뚝섬하면 '경마장'으로 기억하는 서울시민이 꽤 되어서일까. 군마상 앞에 한참 서서 예전 경마장에 얽힌 향수를 회상하는 중장년층이 많다. 이렇듯 예전의 기억과 추억을 공존하는 포근한 안식처다.
서울숲이 위치한 뚝섬은 '동교(東郊)', '독도(纛島)', '둑도', '전관평(箭串坪)', '살곶이벌'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조선 태조 때부터 왕실의 사냥터로 국왕의 행차를 표시하는 깃발인 독기(纛旗)를 세웠다는 유래가 유력하며, 중랑천과 한강이 만나는 뚝섬의 지형이 섬 모양과 비슷해 '독섬', 화살이 기둥에 꽂힌 벌판이라는 뜻에서 '살곶이벌'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후 1908년 서울 최초의 상수원 수원지로 활용되기도 했다.
거울처럼 주변의 경관을 데칼코마니처럼 담아내서 이름 붙여진 '거울연못'도 서울숲 초입에선 빠질 수 없는 명소다. 수심 3cm 작은 연못이지만 물에 투영된 아름다운 메타세쿼이아가 한 폭의 그림 같아 인상적이다. 워낙 사진으로 추억을 남기는 시민들이 많다보니 카메라를 켜고 QR코드를 대면 인생샷 구도를 친절하게 알려주는 포토 스팟도 있다. 계속 메타세쿼이아 길을 걸으며 거울연못의 잔상을 함께 감상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단풍 길에 비친 자연의 힘
중앙으로 나오면 큰 은행나무가 서있는 '가족광장'이 있다. 근처 벤치에 앉아 보니, 탁 트인 잔디밭에 나 홀로 서있는 은행나무가 외로워 보인다. 헌데 자세히 보니, 산책하며 담소 나누는 시민들을 벗 삼아 은행나무가 어우러진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천살이 넘은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서울숲 은행나무도 그에 못 지 않는 사랑을 받고 있다.
가족마당의 드넓은 잔디밭에서는 공연, 페스티벌 등 다양한 문화행사가 자주 열린다. 그래서 서울숲은 사랑하는 이들과 멋진 나들이를 즐기려는 시민들에게 더욱 인기가 높다. 울긋불긋 이어진 단풍 길에서 비친 시민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밝고 맑고 친절하다. 이게 바로 자연의 힘이던가.
공원에서 자라는 수목들
이어 걸어가면 본격적인 은행나무 숲이 펼쳐진다. 촘촘하게 자란 은행나무들이 줄 지어서서 계절별로 각양각색의 오묘한 풍광을 보여준다. 이곳은 모두에게 인기 있는 장소로 늦가을 노란 은행잎 사이의 오솔길은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은행나무 숲에서 영화의 주인공처럼 멋진 사진을 남기길 추천한다.
서울숲은 도시계획의 관점에서 조성된 숲이지만 풍수지리학의 '풍수 비보' 역할과 기능을 한다는 연구도 있다. 풍수비보는 허결한 땅의 기를 보완하거나 포악한 땅의 기운을 눌러서 풍수의 조화와 균형을 도모하는 역할을 하는 구조물이다. 예로부터 풍수비보는 적은 비용으로 심리적 효과를 거둘 수 있었고, 자연 훼손도 적었다. 그래서 왕궁, 능, 집터엔 풍수지리를 위해 사찰, 탑, 연못, 숲, 조산(造山) 등이 조성됐다. 도시계획으로 건설된 서울숲을 풍수지리학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다소 비약이지만 서울숲이 수해 방지, 공해 감소, 조산, 수구막이뿐 아니라 야생 동식물 서식지 제공, 도시환경 미화 등에까지 다양한 기능을 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서울숲에는 꽃사슴 방사장과 곤충식물원, 생태학습장이 있다. 서울숲의 상징이기도 한 꽃사슴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은 보는 이들을 뭉클하게 만든다. 곤충식물원은 예전 정수장의 급속여과지 건물을 활용해 만든 온실이다.
평소에는 보기 어려운 100여 종의 열대식물과 곤충, 파충류, 양서류 등을 관람할 수 있다. 생태학습장은 성동구 생활하수가 모이는 유수지가 생태원으로 재탄생된 습지다. 다양한 수생식물을 만날 수 있는 습지생태원은 온 가족이 자연과 함께 정서와 건강을 증진할 수 있는 체험 공간이다.
- EDITOR: 황승경
- PHOTO: 황승경, 임정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