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르월드컵 한국팀 주치의,
상비군 70명 건강도 체크한다
'그라운드의 건강 조율사'. 스포츠팀 주치의의 별칭이다. 올해에는 축구 월드컵이 열리는데 여기서도 팀닥터의 역할이 선수들 못지않게 주목받고 있다. 선수단과 지원팀의 건강을 챙기지 못하면 모든 일정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카타르월드컵 출전을 앞둔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치의로 활약하고 있는 고려대 안암병원 정형외과 장기모 교수를 만나 팀닥터의 역할에 대해 알아봤다.
고려대 안암병원 스포츠의학센터에서 만난 장기모 교수는 "대표팀 주치의는 선수들 뿐 아니라 코칭스태프와 행정 직원의 건강부터 선수 개개인 소속팀과의 '커뮤니케이션'까지 전천후 역할을 맡는 등 역할이 바뀌고 있다"며 "예전처럼 명목상 필요하니 의자에 앉아 있다가 구색만 맞추고 가는 주치의 시대는 끝났다"고 설명했다.
장 교수는 무릎 관절과 하지 스포츠 외상, 인대재건술 관련 전문가다. 2019년 대한축구협회 의무분과위원과 프로야구단 LG트윈스 팀닥터 등을 역임하고 지금은 축구 국가대표팀 전담 주치의다. 카타르월드컵까지 주치의로 대표팀을 지원하게 된다.
대표팀 주치의는 흔히 '팀닥터'라고 불리기도 한다. 스포츠팀에서 운동선수의 건강과 관련된 모든 것을 담당한다. 부상을 예방할 수 있도록 관리하고 부상이 발생하면 치료한다. 치료 후에는 정상적인 운동능력을 회복할 수 있도록 관리하는 일을 맡는다. 팀닥터는 경기력에 영향을 주는 건강 상태를 총체적으로 관리한다. 대다수 선수의 부상이 관절 쪽과 관련이 많아 보통 정형외과 전문의가 주치의를 맡는다.
2002년 월드컵 이후 '전천후 팀닥터' 역할 부각
스포츠 팀에 전문 주치의를 두는 제도는 스포츠의학이 발달한 유럽에서부터 1990년대 도입됐다. 의학 지식을 바탕으로 인체와 운동의 관계를 연구해 선수가 건강하게 운동할 수 있게 돕는 한편 최고의 경기력을 내도록 돕는 것이다. 이런 움직임은 유럽에서 인기가 많은 스포츠인 축구로 자연히 접목됐다.
장 교수는 "한국의 경우 2002년 월드컵이 굉장히 큰 변화의 기점이었다"며 "이전에 의무적으로 주치의들이 경기장 벤치에 앉아 있었다면 2002년 월드컵 이후 적극적으로 주치의 개념이 도입됐다"고 설명했다. 장 교수는 "현재는 국내에도 스포츠의학 분야가 활발히 연구되고 있으며 이 분야 학문을 희망하는 학생들도 많다"고 덧붙였다. FIFA는 2019년 각 구단이 최소한 1명의 의사와 1명의 물리치료사를 채용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장 교수는 선수들의 건강과 최고의 경기력 유지를 최우선 목표로 하고 있다. 그는 "경기 전 선수들은 매우 민감한 상태이기 때문에 병원에서 회진 돌 듯 선수들의 상태를 파악하는 건 피해야 한다"며 "선수들 개개인의 컨디션을 바로바로 확인할 수 있도록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바로바로 해결 할 수 있는 그런 대처 방법들을 미리 생각해 놔야 한다"며 "예를 들어 훈련 중 부상을 입게 되면 어느 병원을 가서 자기공명영상(MRI) 촬영할지 시나리오를 짜놓고 어떤 치료방법을 적용할지도 미리 준비해둬야 한다"고 말했다. 경기력에 지장을 줄 수 있는 치주 질환과 감기와 같은 사소한 질병도 주치의가 처리해야 한다.
코로나19 유행으로 선수감염 경계업무 가중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세계에서 유행하면서 경기는 줄었지만 대표팀 주치의가 해야 할 일은 훨씬 많아졌다. 국가 간 이동이 잦은 대표팀 선수의 코로나19 감염 여부를 수시로 확인해 각국 방역당국에 제출하고 현지에서 팀내 방역 상황도 신경써야 한다.
선수들의 식단관리도 주치의 몫이다. 장 교수는 "감독마다 식단 관리를 하는 방식과 정도가 다른데 파울루 벤투 감독은 식단관리를 매우 철저히 하는 스타일"이라며 "체지방이 낮아야 효율적으로 게임을 뛸 수 있어 돼지고기는 피하고 소고기와 양고기로 에너지를 공급하고, 탄수화물과 다양한 비타민 공급을 위한 채식 중심의 식단을 구성한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주치의는 경기가 진행될 때 관객과는 다른 눈으로 바라본다고 말했다. 관객은 축구 경기가 진행되면 공을 따라 눈이 움직이지만 주치의는 공이 아니라 선수들의 걸음걸이나 뛰는 자세를 살핀다. 장 교수는 "코너킥 상황에서 관객들은 대부분 공이 날아가는 방향을 보지만 주치의는 미리 문전을 보고 있다"며 "문전 앞의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는 동안 선수들의 몸싸움을 보고 이상 반응이 감지될 경우, 이를 코칭스태프에 알리고 더 큰 부상으로 이어지지 않게 빠르게 조치하도록 한다"고 말했다.
주치의 역할은 경기가 끝나면 더 바빠진다. 언제든 대표팀에 이름을 올릴 상비군이 80~90명에 이르는 데 이들의 부상과 건강 상태들을 모두 파악해야 한다. 장 교수는 "해외에 있는 선수들의 정보도 받아야 하는데 소속팀에서 제때 시간을 맞춰 주지 않는 경우도 많다"며 "사정사정해야 데이터를 주는 일이 빈번해서 해당 선수들의 소속팀과 좋은 관계를 쌓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국가대표팀 전임 주치의 필요한 시점"
이런 많은 일을 총괄하는 대표팀 주치의는 아직까지 명예직에 가깝다. 장 교수는 "보수와 대우가 부족하다고 생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대표팀 주치의는 스포츠 의학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는 너무 명예롭고 영광스러운 자리라고 생각한다"며 "국가를 위해 뛰는 선수들의 부상을 방지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국가대표팀 전임 주치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대표팀 업무를 하면서도 전공인 스포츠 의학 연구들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장 교수는 "선수들이 겪는 각종 슬관절 손상과 만성 질환 같은 외상을 연구한 결과를 보면 일반인도 조기 축구 같은 스포츠를 즐길 때 부상을 극히 조심해야 한다"며 "매번 밤에 운동하다가 갑자기 아침에 운동을 하는 등 바이오 리듬을 깨는 행동은 가급적 삼가고 다가올 여름에 운동할 때는 물보다는 스포츠 음료를 마시길 권장한다"고 말했다.
국가 스포츠팀 주치의는 국내에선 보수가 거의 없어 '명예직'이라고도 불린다. 당연히 스포츠 그 자체를 사랑하는 마음 없이는 할 수 없다. 올해 열리는 카타르 월드컵 대표팀 주치의로 활약하는 장기모 교수는 순발력 있는 의술을 토대로 다양한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있다. 대한스포츠의학회 정회원인 장 교수는 "그냥 좋아서 한다"고 했다.
장기모 교수와의 일문일답
정형외과를 전공으로 삼은 이유는.
좋아하는 걸 하자고 생각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즐겼고 대학생 때는 농구동아리 '새턴', 힙합댄스동아리 '갈채'에서 활동했습니다. 운동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자연스럽게 스포츠의학을 공부하는 정형외과를 택했죠.
팀닥터는 무보수 명예직이다.
주변 사람들은 "왜 하냐"고 이야기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는 기쁨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죠. 여느 스포츠 팬들의 마음과 다르지 않아요. 응원하는 팀이 이기면 좋으니까 응원하는 거죠.
국가대표 팀닥터를 어떻게 맡게 됐고 주요 역할은 무엇인가.
제가 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해보고 싶다는 생각만 했는데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영광스러운 자리라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70명에서 100명 정도의 선수를 관리하고 있어요. 100% 기량을 발휘해 임박한 대회에서 좋은 성과를 가져다줄 선수가 누구일지, 감독과 코치진에 의견을 제시합니다. 메디컬 체크 후에 불편한 부분이 있으면 치료하고 코치진에게 설명합니다. 경기 중에는 부상이 발생할만한 상황을 예측하고 주시해요. 가령 코너킥 상황에 관중들은 공을 차는 선수를 보지만, 저는 골대 앞에서 몸싸움하는 과정에 주목합니다. 선수들과의 심리적 유대감도 중요합니다. 선수들의 컨디션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불쑥불쑥 찾아가 몸 상태를 물을 수 없습니다. 곁에서 예의주시하다 불편한 부분을 알아채는 게 중요하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선수들과 친밀해져야 합니다. 저는 선수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면서 친해지려고 노력해요.
대표팀의 승리를 위해 스태프들은 어떤 일을 하나.
코칭 스태프, 트레이너, 행정 직원들이 합심해 대표팀이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유니폼과 신발의 공식 스폰서 업체 담당자들도 경기 현장에 동행합니다. 선수들이 경기를 뛰면서 신발이나 옷이 불편하지는 않은지 계속해서 확인하는 거죠. 제 경우엔 선수들과 친밀한 트레이너들을 통해 선수들의 상태를 전해 듣기도 하고, 조리팀과 같이 영양 식단을 짜기도 합니다. 이처럼 수많은 사람이 열린 눈과 귀로 협력하고 있습니다.
"종목마다 주치의 생겨야"
장 교수는 스포츠의학에서 수술만큼이나 재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치료의 시작은 수술이지만 환자가 하루빨리 원래의 운동 수준을 되찾게 하는 건 재활이다.
스포츠의학에서 재활은 왜 중요한가.
외과 의사지만 수술은 부작용이 많아서 꼭 필요할 때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매년 수술하는 케이스를 줄여나가고 있어요. 안암병원 스포츠의학센터 물리치료사들과 재활 방법, 장비들에 대해 논의하고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우리의 중요한 업무죠.
의사로서 가장 뿌듯한 순간은 언제 있었나.
어촌에서 배를 타시는 분인데, 교통사고로 개방 골절이 돼서 수술하신 분이 계세요. 대여섯 번 수술을 해서 여러 차례 위기를 넘기고 지금은 다행히 잘 걸어 다니십니다. 안정기에 접어들어 요즘은 1년마다 한두 번씩 뵙는데 볼 때마다 문어, 전복 같은 직접 잡은 해산물을 가지고 오세요. 서너 시간 걸리는 거리인데도 오실 때마다 행복해하시는 게 느껴져요. 의사인 저로서는 그 힘든 치료를 견디시고 지장 없이 잘 지내는 모습만 봐도 감사하죠.
스포츠의학 발전 위해 개선돼야 할 점은.
우리나라는 팀 주치의가 스포츠 일만 전담하는 경우가 없습니다. 연구나 진료 등 다른 업무와 겸업해야 하는 거죠. 또, 여러 종목의 선수들이 저를 찾아오는 건 감사한 일이지만 종목마다 전문의가 생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EDITOR: 홍은심
- PHOTO: 김도균, 셔터스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