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한 살인자' 간경변증과 간암,
증상 없어도 간 건강 확인해야
고려대 안산병원 간담췌외과 김상진 교수.
간은 탄수화물, 지방, 호르몬, 비타민과 무기질 대사에 관여하고 쓸개즙을 생산하는 등 수백 가지 이상의 일을 하는 장기다. 그런데 간 기능이 저하돼도 뚜렷한 증상을 느끼지 못할 때가 흔하다. 간은 이상이 생기더라도 피로감, 소화불량, 체중 변화와 같은 작은 신호만 보낸다. 침묵의 장기인 간의 건강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고려대 안산병원 간담췌외과 김상진 교수를 통해 들었다.
간암은 여전히 국내 암 사망률 2위를 유지하고 있으며, 간경변증 또한 주요 만성질환으로 꼽히고 있다. 간질환으로 인한 국내 사망률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 국가 중에서도 매우 높은 수준이다. 사망률이 높은 이유 중의 하나가 분명하지 않은 증상 때문이다.
간은 통증 민감도가 낮고 기본적인 재생능력이 있어 기능의 손상이 상당 부분 진행돼도 증상이 뚜렷이 나타나지 않을 때가 많다. 간암이 있다 하더라도 많은 환자들이 증상을 느끼지 못해, 많이 진행된 상태에서 진단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간질환을 막연한 '두려움의 대상'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김 교수는 말한다.
"간질환과 관련한 치료 성적은 한국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특히 고려대 안산병원에서는 최신 기술을 도입한 치료를 하고 있으며, 대다수가 좋은 수술 결과를 보이며 퇴원 후에도 건강하게 살고 있다. 간질환의 성패는 관심이 좌우한다."
단어 그대로 간이 딱딱해진다는 개념이다. 간에 만성적인 염증 또는 손상이 지속되어 섬유화가 발생하게 되며, 섬유화가 진행된 간은 형태가 울퉁불퉁해진다. 문제는 자각증상이 없어 치료 시기를 놓치기 쉽다는 것이다. 결국 간이 단단해지면서 간문맥 고혈압이 생기고, 간의 기능이 회복할 수 있는 한계에 다다라서 갑자기 합병증이 나타나다가 간부전에 이르는데, 이 단계에서는 치료가 쉽지 않아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다.
생명을 위협하는 간경변증과 합병증
황달, 복수, 위식도 정맥류와 출혈, 간성 뇌증 등 합병증이 문제가 되는데, 가장 심각한 합병증 중 하나가 위식도 정맥류다. 간으로 흘러가야 할 혈류가 제대로 간을 통과하지 못하고 간문맥 혈관의 압력이 높아져 비장이 붓고, 위와 식도의 정맥들이 팽창하는 것을 말한다. 이로 인해 혈관이 파열되어 대량의 피를 토하거나 혈변을 보는 것을 위식도 정맥류 출혈이라고 하는데, 이 자체로 생명을 위협하는 응급질환이다.
복수는 간이 단백질을 제대로 합성하지 못하고 문맥압이 상승하면서 복강 내에 체액이 고이는 현상이다. 배가 점점 부어오르다가 이상하다고 여겨서 이때 처음 진료를 보는 분들이 많다. 간성 뇌증은 간이 해독 기능을 잃으면서 독성 물질이 뇌로 들어가 발생하는데, 심한 경우 의식 저하나 혼수 상태에 이를 수 있다.
한국인의 만성 간질환 원인 중 40~60%가 B형 간염이다. 다음으로는 장기간 과도한 음주로 만성 음주자는 알코올 지방간에서 알코올 간염, 그리고 간경변증으로 경로가 이어진다. C형 간염도 주요 원인 중 하나다.
이 외에도 면역 체계의 이상으로 자가 항체가 간세포를 공격하는 자가면역 간질환, 그리고 최근에는 비알코올성 지방간도 주요 원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초기에는 증상이 거의 없거나 비특이적으로 피로감, 식욕 저하, 소화불량, 오른쪽 상복부 불편감 등이 있을 수 있다. 말기로 진행하면 간부전 증상이 동반되어 사망 위험도가 높아진다.
간경변증으로 인해 한 번 굳어진 간은 원래대로 완벽하게 되돌릴 수는 없다. 보통 간은 재생이 가능하지만, 능력의 한계를 한번 벗어나면 점점 더 나빠지는 방향으로 간다. 그래서 간경변증의 치료 목표는 섬유화의 진행과 간 기능 저하를 최대한 막고, 합병증을 예방하거나 관리하는 것에 있다. 무엇보다 원인 질환을 치유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대표적인 원인 질환은 B형 간염이기 때문에 약으로 어느 정도 조절이 가능하고, 때에 따라서는 간이 나빠지는 것을 멈출 수 있다.
C형 간염 역시 직접 작용 항바이러스제(DAA)로 바이러스를 제거하면 일부 환자에서 섬유화 진행을 억제할 수 있다. 하지만 합병증이 심해 생명을 위협할 단계에 이르면 사실상 간이식 외에는 방법이 없다. 간에 악성 종양이나 전암성 병변들이 생기면 수술을 결정하는데, 간경변증이 너무 심하면 이것도 힘들다. 간경변증은 완치의 개념이 없는 만성질환이고, 장기적으로는 간암 발생의 위험도를 현저히 높이기 때문에 예방과 조기진단이 필수다.
건강검진에서 B형·C형 간염으로 진단이 되면 꾸준히 진료를 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B형·C형 간염 바이러스 보유자는 국립암센터에서 6개월마다 피검사 및 간 초음파를 시행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공식 권고안에 포함되지는 않지만 직장인 건강검진 등에서 간 수치가 정상이라고 해서 무조건 안심하지 말고, 본인이 술을 즐겨 마시거나 비만하다면 간 초음파를 받아 보는 것을 개인적으로 권유드린다. 그다음으로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위험 인자가 술이다. 특히 본인의 주량을 과신하는 분들은 실제 과음을 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더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간암 치료의 핵심, 수술적 절제와 간이식
간암도 어느 정도 자라는 동안 증상이 거의 없는 '은밀한 암'이기 때문에 발견했을 때는 이미 진행된 경우가 많다. 간암의 가장 큰 주요 원인은 B형 간염 바이러스로 간암 환자의 50~70%를 차지한다. 그 외에 C형 간염이 8% 정도다. 그리고 과도한 음주, 간경변증, 그리고 지방간, 특히 비알코올성 지방간 질환이 중요한 원인으로 꼽힌다. 최근에는 B형·C형 간염 예방접종과 항바이러스제 치료가 보편화되면서 감염성 원인이 줄어드는 반면, 비알코올성 지방간이 위험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간 기능, 종양의 크기와 위치, 전이 여부에 따라 달라지지만 크게는 수술적 절제를 비롯해 고주파 열 치료나 에탄올 주입술과 같은 국소 치료, 경동맥 화학 색전술, 전신 항암 치료로 나눌 수 있다.
이 중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수술적 절제술이지만 간암의 크기, 간 기능의 상태, 전이 유무, 환자의 전신 상태 등을 고려해서 조건이 맞을 때 간절제술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 간이식은 간절제술이 불가능한 간암이나 중증 간경변증 환자에게 근본적인 치료법이 될 수 있으며 크게 뇌사자 간이식과 생체 간이식으로 나눌 수 있다.
뇌사자 간이식은 뇌사 상태의 기증자로부터 간을 이식받는 방법인데, 기증자가 충분하지 않다. 생체 간이식은 건강한 성인으로부터 간 일부를 절제해 환자에게 이식한다. 다만 간세포암이 크거나 발생 개수가 많으면 이식 후 재발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간이식은 선별적으로 시도할 수 있다.
최소침습으로 시행되는 간암 절제술
무조건 개복수술을 했던 것과 다르게 최근에는 복강경 및 로봇 수술이 매우 발달했다. 현재는 간암이 매우 크거나 하는 특수 상황이 아니면 기본적으로 최소침습적 수술(Minimally Invasive Surgery)을 진행하며, 환자의 수술 후 상처, 통증 및 합병증도 줄이고 있다.
특히 로봇 수술의 경우 자유롭게 구부러지는 로봇 팔과 고화질의 카메라를 이용하여 매우 정밀한 간절제술을 할 수 있게 됐다. 간 기능이 괜찮다는 전제하에 수술을 받으면 대다수의 환자가 수술 후 일주일 안에 퇴원하고 2주 이내에 정상 생활을 하게 된다.
수술적 절제라도 간 자체가 생리적으로 복잡하고, 환자가 심한 간경변증을 동반하고 있는 경우 수술 후 합병증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이에 간절제술을 위해서는 간을 자른 후 남은 간의 용적이 충분해야 하며, 수술 전 간 기능이 일정 정도 이상 유지되어야 수술 후 간부전에 빠지는 것을 피할 수 있다.
대표적인 합병증은 출혈 및 담즙 누출로 수술 부위 혈관이나 담관에서 출혈·담즙이 새는 복막염이고, 그 다음은 간부전이다. 수술 후 간 기능이 제대로 회복하지 못하면 혈중 빌리루빈 상승, 복수, 황달, 의식 저하가 나타날 수 있고, 특히 간 기능이 이미 떨어진 환자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다.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정기적인 추적 검사다. 재발은 대부분 5년 이내에 일어나므로 이 시기의 관리가 중요하다. 두 번째는 생활 습관 관리다. 금주는 기본이고, 비만과 당뇨는 재발 위험을 높이므로 운동과 혈당 조절도 중요하다. 추가로 간이식을 한 경우에는 지속적으로 면역억제제를 복용하며 거부반응을 예방해야 한다.
고려대 안산병원 간담췌외과 의료진은 다양한 학회 활동을 통해 최신 정밀 수술 기법을 꾸준히 익히고 있다. 병원에서도 로봇 수술기를 비롯한 첨단 수술 장비를 적극적으로 지원하여 의료진이 습득한 기술과 역량을 100%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고 있다. 또한 간담췌외과를 비롯한 소화기내과, 외과, 방사선종양학과, 영상의학과 등 여러 진료과 교수들이 함께 참여하는 다학제 진료를 통해 최적의 치료 방안을 모색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체계가 치료 성과를 뒷받침한다고 본다.
- EDITOR: 김은식
- PHOTO: 조영철, 셔터스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