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 어려운 다발성경화증,
조기 치료로 삶의 질 개선한다
고려대 안산병원 신경과 백설희 교수.
다발성경화증은 한때 '매우 드문 병'으로 여겨졌고, 한 번쯤은 들어봤지만 여전히 낯선 이름의 병이다. 최근 환자가 계속 늘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다발성경화증을 '남의 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한번 진단받으면 평생 약을 먹어야 할 정도로 만성질환인데,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충분히 일상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다. 고려대 안산병원 신경과 백설희 교수를 만나 이 질환에 대해 물어봤다.
#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는 30대 김 모 씨는 어느 날 출근길에서 시야가 뿌옇게 흐려지고, 눈을 움직일 수 없는 통증이 느껴졌다. 피로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며칠을 버텼지만, 증상은 점점 심해졌다. 병원을 찾아 검사와 진단 결과를 보니 단순한 시신경염이 아닌 다발성경화증이었다. 병 이름도 생소했는데,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다발성경화증은 뇌와 척수 등 중추신경계에 염증이 생겨 시신경, 운동, 감각 기능에 장애를 일으키는 질환이다. 백 교수는 "다발성경화증은 한 번 발병하면 완치가 쉽지 않아 만성질환으로 분류되지만, 조기 진단과 꾸준한 치료를 통해 재발을 막고 정상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요즘은 새로운 치료제가 많이 개발되어 환자들이 예전보다 훨씬 좋은 예후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백 교수는 또 "다발성경화증이 신경계 질환이기 때문에 약물 치료뿐만 아니라 꾸준한 자기 관리와 정기적인 검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0~40대 여성에서 유병률 높은 질환
대표적인 중추신경계의 만성 자가면역질환 중 하나다. 다발성경화증은 뇌, 척수, 시신경과 같은 중추신경계를 주로 침범하는 질환으로 염증, 탈수초, 축삭의 변성을 통해 신경 손상을 일으켜 장애를 유발한다. 모든 연령층에서 발생할 수 있지만, 주로 20~40대 사이에 가장 많이 발생하고,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더 많이 발생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 원인은 아직 불분명하지만, 환경과 유전 요인의 복잡한 상호작용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 질환은 인종에 따라 발병률의 차이를 보인다. 북미나 유럽에 사는 백인에서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며, 아시아인이나 아프리카인의 유병률은 낮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과거 연구에서는 인구 10만 명당 3~4명 정도로 보고되었다. 환경적인 요인을 살펴보면 위도 45~60도 지역에서 발병률이 높은 경향을 보이는데, 적은 일조량과 낮은 비타민D 수치가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유전적으로 취약한 요인이 있는 사람에서 여러 환경적인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이 질환을 유발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병변의 위치에 따라 다양한 임상 증상을 보인다. 가장 흔한 증상은 팔·다리 위약, 감각저하 혹은 이상감각, 실조증, 시야장애 등이 있다. 침범한 부위에 따라 시신경염, 척수염, 실조증이나 떨림과 같은 소뇌 증상, 복시, 안진, 안면근육 마비, 감각저하와 같은 뇌간 증상을 보일 수 있다. 대뇌 증상으로 운동 증상, 감각 증상, 실어증 등을 보이기도 한다. 환자들은 피로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으며, 인지기능 저하, 우울증, 수면장애 등을 보이기도 한다.
다발성경화증은 크게 재발완화형, 이차진행형, 일차진행형, 그리고 양성형으로 분류한다. 가장 일반적인 형태는 재발과 회복을 반복하는 재발완화형 다발성경화증이다. 하지만 재발과 회복을 반복하면서 신경학적 기능이 이전과 같이 100% 회복되지 않고 장애가 축적될 수 있다. 신경학적 장애가 축적되면, 이후에는 뚜렷한 재발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악화하는 양상을 보이는 이차진행형 다발성경화증으로 전환된다.
일반적으로 재발완화형 환자 중 약 50%가 10년 이내에, 90%가 25년 이후 이차진행형으로 진행된다고 알려져 있다. 다발성경화증 중 약 10~15% 환자들은 뚜렷한 재발 없이 처음부터 점진적으로 신경계 이상이 진행하는데 이것을 일차진행형 다발성경화증이라고 한다. 양성형 다발성경화증은 전체 환자의 약 10%에서 나타난다. 이 경우 1~2차례 재발이 있더라도 이후 큰 악화 없이 회복되어, 아주 경미한 장애만 남거나 전혀 장애가 없는 상태로 지내는 유형이다.
다른 질병과 유사한 증상, 다양한 검사 통해 감별
다발성경화증에 대해 확진할 수 있는 단일 검사법은 아직까지 없다. 다양한 질환이 다발성경화증과 유사한 임상 증상과 영상 소견을 보일 수 있으므로, 이를 감별 진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병력 청취와 신경학적 검진을 포함해 종합적인 검사가 필요하다. 특히 자기공명영상(MRI)은 다발성경화증 병변을 가장 잘 확인할 수 있는 검사다.
그 외에도 뇌척수액 검사, 유발전위 검사, 그리고 다발성경화증과 유사한 임상 증상을 보일 수 있는 여러 질환을 감별하기 위한 혈액검사를 시행할 수 있다. 증상이 다양한 질환인 만큼 하나의 검사 결과만으로는 정확한 진단이 불가능하며, 여러 검사 결과를 종합적으로 분석해 판단해야 정확히 진단할 수 있다.
시신경척수염은 중추신경계 자가면역질환 중 하나로 다발성경화증과 유사한 임상 양상을 보일 수 있는 질환이다. 시신경척수염은 초기 다발성경화증의 아형(Subtype)으로 간주되었으나 시신경척수염 질환의 특이항체인 항 아쿠아포린-4(AQP4) 항체가 발견되면서 새로운 범주의 질환으로 분류되었다.
다발성경화증이 북미나 유럽의 백인에서 흔히 발병한다면, 시신경척수염은 아시아인과 흑인에서 상대적으로 발병률이 높은 경향을 보인다. 다발성경화증과 시신경척수염의 임상 증상은 유사하게 보일 수 있지만 발병 기전이나 치료는 차이를 보인다. 두 질환을 잘 구별해 정확하게 진단하고 적절한 치료를 시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조기 발견과 치료로 삶의 질 개선 가능
이 질환에 대한 치료는 크게 급성기 치료와 질병조절 치료(Disease Modifying Therapy)로 나눌 수 있다. 급성기 치료는 다발성경화증의 급성 악화 및 재발 단계에서 시행한다. 이 단계에서는 단기간 고용량 스테로이드 치료를 시행할 수 있다. 스테로이드 치료에 반응이 없는 경우에는 혈장교환술을 시행하기도 한다. 질병조절 치료는 재발의 빈도를 줄이고, 신경학적 장애의 진행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다양한 질병조절 치료제가 있으며, 국내에서 사용 가능한 치료제는 인터페론 베타, 글라티라머 아세테이트, 테리플루노마이드, 디메틸푸마레이트, 핀골리모드, 클라드리빈, 나탈리주맙, 오크렐리주맙 등이 있다. 다발성경화증은 아직까지 완치는 어려운 질환이지만, 조기에 적절한 치료를 시행하면 조절이 가능한 질환이다.
질병조절 치료제 중에 인터페론 베타와 글라티라머 아세테이트는 주사제로 독감과 유사한 증상이나 주사 부위 발적이 생길 수 있다. 이런 증상은 시간이 지나면 점차 호전된다. 테리플루노마이드는 경구 약제로 간 기능 이상이나 탈모, 또는 기형의 위험성이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핀골리모드, 디메틸푸마레이트, 클라드리빈, 나탈리주맙, 오크렐리주맙 등 치료제는 중등도 이상의 치료 효과를 보이는 약제지만, 림프구감소증 및 감염의 위험이 커질 수 있다.
안타깝게도 다발성경화증을 완전히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하지만 위험 요인을 줄이고 조기에 병을 발견해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활 습관 측면에서 보면 흡연은 다발성경화증의 발생과 재발 위험을 모두 높이는 요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따라서 금연은 필수다. 또한 햇볕을 충분히 쬐어 비타민D를 보충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비타민D는 면역 조절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일조량이 적거나 실내 생활이 많은 사람은 결핍되기 쉽다.
음식이나 보충제를 통해 꾸준히 관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무엇보다 조기에 진단하고 적절한 치료를 빨리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조기 치료의 핵심은 '의심 증상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갑작스럽게 한쪽 눈의 시력이 저하되거나, 팔·다리가 저리고 힘이 빠지는 증상, 몸의 한쪽이 마비되는 증상 등이 나타나면 이를 단순히 피로나 스트레스로 넘기지 말고 의심을 해 봐야 한다. 이런 신경학적 이상이 나타난다면 바로 신경과를 방문해 MRI 검사를 받는 것이 좋다. 진단이 빠르면 빠를수록 신경 손상을 최소화하고 재발을 억제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 다발성경화증은 시간이 곧 신경 손상과 직결되는 병이다. 증상을 관찰하고 조기에 치료를 시작함으로써 환자의 미래를 개선할 수 있다.
환자들에게 제시하는 아주 제한적인 수칙은 없다. 다만, 과도한 피로와 스트레스는 피하는 것이 좋으며, 충분한 수면과 휴식 역시 중요하다.
균형 잡힌 식사와 적절한 운동도 병행해야 한다. 체력 유지를 위해 가벼운 유산소 운동이나 스트레칭을 꾸준히 하면 좋다. 다만 피로가 누적될 정도로 과한 운동은 피한다. 식사는 일반적인 수준에 맞춰 고르게 영양소를 섭취한다. 감염 예방도 철저히 하는 것이 좋다. 손 씻기, 예방접종 등 기본적인 위생 수칙을 지켜야 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약물 복용을 절대 중단하지 않는 것이다. 증상이 좋아졌다고 임의로 약을 끊으면 질환이 재활성화될 수 있다. 이 질환 환자에게는 꾸준함이 가장 큰 치료제다. 약을 잘 복용하고, 정기적으로 진료받고, 몸의 변화를 세심히 관찰하는 것이 건강을 지키는 핵심이다.
다발성경화증은 비록 완치가 쉽지 않은 질환이지만 절대 불치병은 아니다. 조기에 정확한 진단을 받고 꾸준히 치료와 관리에 임한다면 충분히 조절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최근 치료제가 빠르게 발전하고 있으며, 새로운 연구들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어 더 나은 치료 환경을 기대할 수 있다.
병이 삶의 전부가 아니듯 다발성경화증과 함께 살아가면서 자신만의 리듬으로 건강한 일상을 만들어가는 분들도 많다. 희망을 잃지 말고 의료진과 함께 적극적으로 치료에 임하시길 바란다. 다발성경화증은 여전히 희귀질환으로 분류되지만,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젊은 나이에 발병해 삶의 궤도를 흔들어 놓을 수 있지만, 조기 진단과 꾸준한 관리로 충분히 통제 가능한 질환으로 바꿀 수 있다. 그래서 스스로 몸의 변화를 민감하게 인지하고, 제때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 EDITOR: 김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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