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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기부 행보 이어가는 윤형선 고려대 의과대학 교우회장 "고려대 의대에서 배운 가치,
이제 후배들에게 돌려줄 때"

윤형선 고려대 의과대학 교우회장(1)

자신이 운영하는 의원에서 인터뷰에 응한 윤형선 고려대 의과대학 교우회장.

지난 7월 윤형선 고려대 의과대학 교우회장이 고려대의료원에 1억 원이 넘는 거액을 쾌척했다. 윤 회장의 이번 기부는 처음이 아니다. 그는 20년 넘게 고려대의료원에 기부 행보를 이어왔다. 의료계에서나 지역 사회에서나 다양한 활동에 참가해온 그를 만나 기부 이야기를 들어봤다.

인천 계양구에서 속편한내과를 운영하는 윤 회장은 2004년부터 장학기금, 고려대 구로병원 일반기금, 고려대의료원 기금 등 다양한 경로로 꾸준히 후원을 이어온 대표적 '기부 동문'이다. 지금까지 누적 기부액은 2억 6천만 원에 이른다. 이번 기부에 대해 윤 회장은 "고려대 의대는 제 인생의 출발점이자 뿌리"라며 "여기서 배운 가치를 이제 후배들에게 돌려줄 때가 됐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윤 회장은 2025년 1월 고려대 의과대학교우회 제37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교우회는 모교와 의료계의 든든한 버팀목"이라며 "교우회가 후배들을 지원하는 장학 사업뿐 아니라 의료원이 세계적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함께 고민하고 기여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번에 고려대의료원에 기부를 결심한 계기는?

"지금까지 장학기금, 구로병원, 의료원 일반기금 등 다양한 형태로 기부를 해왔다. 그런데 올해는 고려대 의대 교우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이제는 더 크게 보답해야 한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고려대 의대에서 받은 가치를 후배들에게 돌려주고, 의료원의 발전에 직접 이바지하고 싶었다."

고려대 의과대 교우회장으로서 가장 중점을 두는 방향은?

"교우회는 단순한 친목을 넘어 후배들이 학문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사회와 함께 호흡하는 의대 공동체로 거듭나는 데 기여하겠다."

기부를 계기로 후배 의학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의학은 단순히 기술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고 사회를 건강하게 하는 일이다. 후배들이 인술을 넘어 '인의(仁醫)'의 정신을 이어가길 바란다. 나의 기부가 그 길에 작은 힘이 되길 바란다."

그가 말하는 인의는 '어진 의술'을 뜻한다. 환자를 치료하는 의술이 공공의 이익에도 봉사해야 한다는 철학을 담고 있다. 그가 살아온 궤적도 의사로서, 사회활동가로서, 정치인으로서 언제나 '헌신'이라는 가치와 맞닿아 있었다. 그는 "언제나 '누군가를 위해 쓰임 받는 삶'을 소중히 여겼다. 의사로서 환자에게, 사회활동가로서 지역사회에, 교우회장으로서 후배와 모교에. 앞으로도 그 가치를 지키며 살아가고 싶다"고 밝혔다.

민주화 격동 속에서 의대생 목소리 대변

윤형선 고려대 의과대학 교우회장(2)
윤형선 고려대 의과대학 교우회장이 의료기기를 보여주고 있다.

윤 회장이 고려대 의대에 입학한 해는 1980년. 신군부의 집권과 광주 민주화운동으로 대한민국 전체가 격동에 휩싸였던 시기였다.

"우리가 입학했을 때는 수업을 한두 달밖에 못 했다. 그 시절은 민주화 열기가 가장 뜨겁던 때였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비롯해 사회적 격동이 이어졌고, 고려대는 그 중심에 서 있었다. 나 역시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사회 문제에 눈을 뜨게 됐다. 지금은 없어진 고려대 대운동장에서 밤을 새우며 농성하던 기억, 최루탄에 눈물 흘리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 열악했던 의대 캠퍼스 환경 역시 그에게 문제 의식을 심어줬다. 고려대 의대는 당시 고려대 캠퍼스 안에서도 '아웃 사이더' 취급을 받았고, 시설은 낙후돼 있었다. 학생들은 "의대 신축"을 줄기차게 요구했고, 윤 회장은 학생회장으로서 그 목소리를 앞장서 전달했다. 그 열망은 훗날 고려대 의대의 의술 발전과 병원 위상 제고로 실현됐다. 윤 회장은 그와 같은 열망이 자신의 가치관 형성으로 이어졌다고 회고했다.

"당시 의대 캠퍼스 환경은 열악했지만 오히려 그 속에서 학교를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꿔야 한다는 의지가 생겼다. 그 시절 사회와 역사에 대한 관심이 내 인생 전반에 큰 영향을 줬다. 인생에서 중요한 가치관이 그때 형성됐다."

1998년 3월 인천 계양에서 '속편한내과 의원'를 열었는데, IMF 외환위기로 모두가 힘들던 때였다. 지역 주민들과 함께한 경험이 남다르겠다.

"인천 계양에서 문을 열었는데, 처음에는 작은 규모였다. 환자 한 분 한 분을 정성껏 대하며 병원을 키워왔다. 특히 IMF 이후 힘든 시기를 보내던 환자들과 지역민들을 돌보면서 '의사로서 사회에 봉사한다'는 제 소명을 확실하게 다졌다."

인천광역시 의사회 회장과 의료사회봉사회 회장을 맡으며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보람 있었던 순간을 꼽는다면?

"의약분업 사태, 의료제도 개혁 논의 등 중요한 시기에 의료계의 목소리를 대변했던 일이 기억에 남는다. 의료봉사회 활동을 통해 어려운 계층에 직접 봉사한 것도 큰 보람이었다."

그동안 줄곧 인천 계양을에서 국회의원 후보로 도전한 이유는?

"의료계에서 쌓은 경험을 사회 전반으로 확장하고 싶었다. 정치에 발을 들인 건 의료제도 개선에 대한 열망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국회에 입성하진 못했지만, 노력하는 과정 속에서 얻은 교훈과 네트워크는 지금도 제 활동의 자산이다."

공익적 헌신 반영된 '낭만' 기부

2023년 자서전을 출간했다. 어떤 메시지를 담고 싶었나.

"책 제목이 '낭만닥터 윤형선, 정치꾼이 죽어야 나라가 산다'이다. 그 제목처럼 진정성을 가진 의사와 공직자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제 삶의 경험을 통해 후배들과 사회에 작은 울림을 주고자 했다."

그는 개인적 바람도 덧붙였다. "남은 인생에서 가장 큰 목표는 고려대의료원이 세계적 수준으로 성장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다. 그것이 곧 저의 자부심이자 보람이다."

그의 말대로 윤 회장의 기부는 삶을 통해 체득한 가치를 후배와 의료원에 되돌려주는 '선언'이다.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의 현장에서 키운 사회적 책임감, 지역 의료 현장에서 쌓은 경험, 정치 도전을 통해 배운 교훈이 한데 모여 '헌신'이라는 이름으로 정리된다. 그는 여전히 자신을 '낭만 닥터'라 부른다. 기부자로서 그의 낭만은 의료원의 미래와 후배들의 희망 속에서 계속 불씨를 살려낼 것이다.

  • EDITOR: 김건희
  • PHOTO: 박해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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