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미경 너머 암의 경계를 추적하다
정밀 진단·모즈 수술·협진 시스템 구축
고려대 안산병원 피부과 김일환 교수.
피부암 치료는 눈에 보이는 병변만 제거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표면 아래 숨어 있는 암의 경계를 끝까지 확인하고, 완전히 제거됐다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증명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고려대 안산병원 피부과 김일환 교수는 국내에 모즈 수술의 도입, 정착을 이끈 전문가다. 김 교수는 정밀 수술과 다학제 협진, 조기 진단, 한국인 피부암 연구를 통해 재발은 낮추고 삶의 질은 지키는 치료 기준을 만들어 가고 있다.
"피부암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표면의 작은 점 아래, 현미경적 수준에서 퍼져 있는 암의 경계를 끝까지 확인하고 제거하는 것. 그리고 '완전히 제거됐다'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증명하는 것이 피부외과 의사의 역할입니다."
김 교수는 "재발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육안을 넘어 현미경적 경계까지 확인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피부암의 '재발 없는 치료'를 위해서는 병의 가장 깊은 자리까지 추적하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대한민국 '피부외과'의 태동
김 교수는 국내 피부암 수술, 특히 모즈 미세도식수술(Mohs micrographic surgery)의 도입과 정착을 이끈 초기 세대로 평가된다. 모즈 수술은 암 조직을 단계적으로 절제하면서 동시에 현미경으로 절단면 전체를 확인해 잔존 암세포를 제거하는 정밀 수술법이다. 그는 기저세포암, 편평세포암뿐 아니라 한국인에서 임상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악성 흑색종 치료에서도 손꼽히는 전문가다.
오늘날 의료 현장에서 피부암은 더 이상 낯선 질환이 아니다. 하지만 30여 년 전만 해도 상황은 달랐다. 당시 피부과는 주로 약물치료 중심의 내과적 영역에 머물러 있었고, 피부에 생기는 암을 전문적으로 수술하는 피부외과의 개념도 뚜렷하지 않았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국내에서 피부암 수술은 주로 외과 계열의 영역으로 인식됐다.
그러나 김 교수는 "피부 구조와 종양의 미세한 변화를 가장 잘 이해하는 피부과 의사가 직접 병리 판독까지 수행해야 한다"는 원칙을 현장에서 구현하고자 했다. 그는 "암의 경계를 육안으로 짐작해 넓게 도려내는 방식은 정상 조직의 손실이 크고 재발 위험도 높다"며 "수술실에서 병리 조직을 직접 확인하며 암세포의 마지막 뿌리까지 실시간으로 쫓는 시스템이야말로 피부암 치료의 새로운 기준이 돼야 한다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그는 보다 정교한 피부암 수술법을 배우기 위해 해외 연수를 결심했다. 1990년대 후반 미국 루이빌대학 부속 모즈 펠로우 수련병원과 브라운 암센터(Brown Cancer Center)에서 당시 피부암 수술의 세계적 권위자인 마이클 맥콜(Michael McCall) 박사 밑에서 수련했다.
김 교수는 "맥콜 박사는 모즈 수술법의 창시자인 프레드릭 모즈(Fredric Mohs) 박사가 배출한 첫 번째 제자 중 한 명이었다"고 회상했다. 모즈 수술의 발상지에서 창시자의 직계 제자에게 정통 모즈 수술을 직접 배운 셈이다. 그는 "한국인 의사로서는 극히 드문 기회였으며 국내 피부외과 술기에도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가 배운 것은 단순한 수술법만이 아니었다. 환자의 두려움을 읽는 태도와 수술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시스템까지 함께 익혔다. 이 시기의 경험은 이후 '환자 곁에서 끝까지 피부암을 책임지는 진료 철학'으로 이어졌다.
현재 고려대 안산병원 피부암센터는 피부과와 병리과, 성형외과, 혈액종양내과, 방사선종양학과, 핵의학과 등이 협력하는 다학제 진료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이 체계 안에서 피부과 의사는 단순 진단을 넘어 암의 완전 제거 여부를 최종 판단하는 역할을 맡는다.
다학제 진료에서는 각 진료과의 관점이 다를 수밖에 없다. 특히 암의 완전한 제거를 우선하는 피부과와 결손 부위를 기능적·미용적으로 복원해야 하는 성형외과의 시각은 때로 긴장 관계를 만든다. 그러나 피부암센터는 '재발을 허용하지 않는 완전한 제거'와 '환자의 일상을 지키는 기능적 유지'라는 공통 목표 아래 접점을 찾아간다.
실제 협진 과정은 매우 정밀하게 이뤄진다. 김 교수가 수술 중 절제한 조직을 특수 염색한 뒤 360도 전 방향에서 현미경으로 확인하고, 만약 가장자리 경계면에 0.1mm라도 암세포가 남아 있으면 즉시 추가 절제를 시행한다. 현미경으로 암의 완전 제거를 확인하기 전까지 성형외과의 재건 수술은 시작되지 않는다. 김 교수는 "피부과-병리과 협진 의료진의 'Clear'라는 판단은 환자의 예후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다학제 진료에서의 'Clear' 선언
피부과의 검증이 끝나면 성형외과가 결손 부위를 정교하게 복원한다. 발뒤꿈치나 손바닥 등에 발생한 흑색종처럼 치료가 까다로운 경우에도, 암 제거와 재건이 유기적으로 이어지며 치료의 완성도를 높인다. 모즈 수술로 정상 조직을 최대한 보존한 뒤 재건술을 시행하는 이러한 협진 구조는 재발률을 낮추고 환자의 기능 손실을 줄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김 교수는 "여러 진료과가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협력하는 시스템은 환자가 수술 후 극심한 장애 없이 빠르게 일상으로 복귀하게 돕는다"며 "결국 협진은 환자의 삶의 질을 온전하게 유지하기 위한 가장 강력하고 입체적인 안전장치"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의 진료실에는 국내에 단 두 대뿐이라는 특수 성능의 더모스코피(Dermoscopy) 장비가 있다. 이 장비는 단순 확대경을 넘어 피부 표면 아래 구조를 정밀하게 관찰할 수 있도록 돕는다.
더모스코피는 피부 표면에서 산란되는 반사광을 차단하고, 피부 깊숙한 진피층의 구조를 보여준다. 특히 자외선(UV) 모드와 편광 모드를 교차 활용하면 일반 광원으로는 확인하기 어려운 멜라닌 세포의 미세한 변화와 불규칙한 색소 구조, 혈관 구조 등을 보다 선명하게 포착할 수 있다.
과거 피부암 진단은 의료진의 숙련된 육안에 의존하거나, 의심 부위를 절개해 조직을 떼어내는 침습적 방식 중심이었다. 환자 입장에서는 암 여부를 확인하기도 전에 흉터와 통증을 감수해야 했고, 의료진 역시 병변이 충분히 커지거나 색이 짙어지는 등 육안적 변화가 뚜렷해질 때까지 경과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비침습 정밀 진단 장비의 도입으로 상황은 달라졌다. 조직 검사에 앞서 피부 표면 아래 숨어 있는 이상 징후를 포착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이는 불필요한 절개를 줄이고, 암이 진행되기 전 치료 전략을 세우는 데 도움을 준다.
김 교수는 "육안만으로는 양성과 악성을 구분하는 데 분명한 한계가 있다"며 "더모스코피 검사를 통해 피부 표면 아래 구조를 관찰하면 초기 단계의 이상 소견을 보다 정확히 포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예전에는 병변의 크기가 최소 6mm 이상 커져야 비로소 조직검사를 고려했지만, 이제는 2~3mm 정도의 아주 작은 점에서도 흑색종의 씨앗을 찾아낸다"며 "마취나 절개 없이 비침습적으로 암을 감별해 내는 이 기술 덕분에, 예전 같으면 발견이 늦어 손가락이나 발가락 전체를 절단해야 했을 환자들이 이제는 기능을 온전히 보존하며 암세포만 정밀하게 도려내는 '기능적 수술'의 혜택을 누리게 됐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진단뿐 아니라 수술 기법의 발전에도 기여했다. 미국 연수 당시 익힌 영구조직절편(Rush permanent section) 방법을 활용한 악성 흑자성 흑색종(Lentigo Maligna Melanoma)의 모즈 수술법, 이른바 '슬로우 모즈(Slow Mohs)'를 국내에 소개했다.
일반적인 모즈 수술이 현장에서 조직 절편을 만들어 빠르게 결과를 확인하는 방식이라면, 슬로우 모즈는 병리과와 협진해 영구절편으로 보다 정밀한 병리 평가를 진행한다. 현미경 400배율에서 미세한 잔존 병변까지 재확인하는 방식이다. 김 교수는 "기존의 방식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만 미세한 잔존 병변까지 확인할 수 있어, 특히 재발 위험이 높은 종양에서 유용하다"고 설명했다.
광역 절제술의 경우 재발률이 20~40% 정도에 이를 수 있지만, 슬로우 모즈 기법을 적용하면 재발률을 2% 미만으로 낮출 수 있다는 것이 김 교수의 설명이다. 특히 피부 섬유 육종(DFSP)이나 유방외파젯병(EMPD)처럼 국소 재발이 잦은 피부암 환자에게는 반복 수술의 부담을 줄이는 중요한 치료 옵션이 되고 있다.
김 교수는 한국인의 피부암 특징을 규명하는 연구에도 힘쓰고 있다. 피부암은 흔히 서양인에게 많은 질환으로 인식되지만, 국내 환자 수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1999년 연간 1,300명 수준이던 국내 피부암 환자 수는 2023년 9,000여 명으로 집계됐다. 연간 1만 명 시대를 앞두고 있는 셈이다.
김 교수는 이러한 변화의 배경으로 고령화, 야외 활동 증가, 건강에 대한 관심 증대를 꼽는다. 동시에 서양의 교과서적 사례와는 다른 '한국형 흑색종'의 특성을 밝히는 데 주목하고 있다.
그는 "백인들은 주로 강한 자외선 노출 부위인 얼굴이나 등, 팔다리에 흑색종이 집중되지만, 한국인을 포함한 아시아인에서는 손바닥, 발바닥, 손발톱 부위에 발생하는 말단 흑색종(acral melanoma)의 비율이 높다. 이는 자외선 노출 부위에 주로 발생하는 서양인과는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며 "이러한 차이는 단순한 환경 요인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워서 종양의 특성, 유전적 요인, 기계적 자극 등 복합적 기전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데이터로 증명하는 피부암 치료
현재 그는 고려대학교의료원 내 다기관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국인 피부암의 임상적·병리학적 특성을 분석하고 있다. 김 교수는 "정확하게 축적된 임상 데이터는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근거"라며 "이를 통해 한국인에게 최적화된 진단과 치료 전략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임상 경험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환자의 병리 조직과 현미경 판독 결과를 수치화해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이다. 김 교수는 이 데이터를 토대로 한국형 피부암의 표준 모델이 정립되면, 향후 한국인 피부암 진단과 치료의 정밀도를 한층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30년 넘게 한 병원에서 진료를 이어온 그는 지금도 수술실을 지키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찾아오는 피부암 환자들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풍부한 임상 경험과 숙련된 술기를 바탕으로 오랜 시간 환자 곁을 지켜온 그는 피부암 수술에 대해 분명한 기준을 갖고 있다.
김 교수는 "수술 후 환자에게 '암이 남아 있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이 가장 큰 보람"이라며 "완전히 제거했다는 확신을 환자와 함께 나눌 수 있을 때 비로소 수술이 끝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EDITOR: 박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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