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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는 병'에서 '조절하는 병'으로
아토피 치료의 기준이 바뀐다

손상욱 교수(1)

고려대 안산병원 피부과 손상욱 교수.

아토피 피부염은 더 이상 단순한 만성 피부질환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면역 불균형과 피부 장벽 손상이 맞물려 증상이 반복되는 질환으로, 조기 진단과 꾸준한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고려대 안산병원 피부과 손상욱 교수는 위생 가설부터 피부 장벽, 아토피 행진, 최신 치료제까지 폭넓게 짚으며 아토피를 '참는 병'이 아닌 '조절하는 병'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토피 피부염은 역설적으로 '부자 나라의 병'입니다. 너무 깨끗하게 자란 탓에 우리 몸의 면역 체계가 길을 잃은 셈이죠. 하지만 오늘날 의학은 연약해진 면역 체계를 공격하는 병의 원인 을 정확하게 타격하는 정밀한 무기들을 갖췄습니다. 아토피는 이제 참는 병이 아니라, 조절하는 병입니다."

손상욱 고려대 안산병원 피부과 교수는 아토피 피부염을 바라보는 시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한아토피피부염학회 회장을 역임한 그는 아토피와 건선 등 만성 면역 피부 질환 분야의 권위자다. 손 교수는 아토피 환자 증가의 배경을 설명하며 먼저 '위생 가설(Hygiene Theory)'을 꺼냈다.

과거보다 환경은 훨씬 청결해졌고 의료 기술도 발달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아토피 환자는 전 세계적으로 늘고 있다. 손 교수는 이 모순적인 현상을 우리 몸의 면역 시스템 안에서 일어나는 T1(Type 1) 면역과 T2(Type 2) 면역의 불균형으로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면역 시스템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외부 세계와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학습과 훈련의 과정을 거친다. 그는 "아기가 엄마 뱃속이라는 보호막을 나와 세상과 마주할 때, 적당한 세균 감염과 미생물 노출 등 외부 자극을 겪어야만 바이러스나 세균과 싸우는 T1 면역이 강하게 발달한다"고 설명했다. 면역 체계 역시 외부 자극을 통해 단련되는 셈이다.

하지만 선진국일수록, 주거 환경이 청결할수록 이러한 학습의 기회는 줄어든다. 손 교수는 "백신 접종이 철저하고 지나치게 위생적인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T1 면역이 실전 경험을 쌓을 기회가 사라지게 된다"고 말했다.

문제는 T1 면역이 충분히 작동하지 못할 때 생긴 공백을 알레르기 반응에 관여하는 T2 면역이 과도하게 메운다는 점이다. 그 결과 꽃가루나 먼지 같은 사소한 외부 자극에도 몸이 과민하게 반응하는 '과잉 면역' 상태가 고착될 수 있다. 학계는 이를 아토피 피부염을 비롯해 알레르기 비염, 천식 등이 현대 사회에서 급증한 배경 가운데 하나로 보고 있다.

임상 현장에서 체감하는 변화는 단순히 환자 수 증가에 그치지 않는다. 질환을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과 삶의 질에 대한 기준이 달라진 점도 영향을 미쳤다. 과거에는 '좀 있으면 낫는 병'으로 여겨지던 가벼운 습진도 이제는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한 질환으로 인식되고 있다.

손 교수는 "경제적 여유가 생기고 삶의 질에 대한 눈높이가 높아지면서 사소한 피부 병변에도 환자들이 기민하게 반응하고 의료진을 찾게 된 것"이라며 "진단 기술의 정교화와 활발한 질환 홍보 덕분에 수면 아래 숨어 있던 잠재적 아토피 환자들이 대거 의료 시스템 안으로 들어온 측면도 크다"고 분석했다. 손 교수는 아토피 환자의 피부를 '시멘트가 부서진 벽돌담'에 비유했다. 건강한 피부는 각질 세포라는 벽돌 사이를 세라마이드, 콜레스테롤, 지방산 같은 지질 성분, 즉 시멘트가 촘촘히 메워 외부 자극의 침입을 막는다.

하지만 아토피 환자에서는 이 지질 성분, 특히 세라마이드가 부족하다. 담벼락이 허술해진 만큼 미세먼지, 바이러스, 알레르기 유발 물질이 쉽게 침투하게 되고, 그 결과 피부 내부에서 염증 반응이 일어난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염증 세포가 다시 피부 장벽을 무너뜨리면서 장벽 손상과 염증이 서로를 악화시키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 때문에 손 교수가 가장 강조하는 기본 치료는 보습이다. 보습은 단순히 수분을 공급하는 차원을 넘어, 부족한 시멘트 역할의 지질을 물리적으로 보완해 장벽 기능을 지키는 데 의미가 있다. 그는 "샤워 후 수분이 증발하기 전 3분 이내에, 하루 2~3회 이상 충분한 양의 보습제를 발라야 한다"며 "모공을 막아 모낭염을 유발할 수 있는 오일보다는 제형이 적당한 크림 타입을 전신에 바르는 것이 보편적으로 효과적"이라고 조언했다.

아토피 진단의 '골든타임'은 1~2주

손상욱 교수(2)
손상욱 교수는 "조기 진단은 피부의 구조를 보존하고 전신 질환으로의 전이를 막기 위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토피는 생애 주기에 따라 양상이 달라진다. 영유아기에는 주로 얼굴과 팔다리 바깥쪽에 진물과 발진이 나타나고, 소아기를 지나면 팔꿈치 안쪽이나 무릎 뒤쪽처럼 접히는 부위로 병변이 옮겨간다. 성인이 되면 목과 얼굴, 눈 주변에 만성적인 가려움과 함께 피부가 가죽처럼 두꺼워지는 '태선화' 현상이 두드러진다.

손 교수는 특히 '아토피 행진'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기 때 아토피 피부염을 제대로 잡지 못하면 이후 알레르기 비염이나 천식으로 이어질 확률이 매우 높다"며 "피부 장벽이 뚫린 상태를 방치하는 것은 전신 알레르기 질환의 문을 열어두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진단의 골든타임은 언제일까. 손 교수는 1~2주를 중요한 기준으로 제시했다. 단순한 건조증이라면 보습제만으로도 진정될 수 있지만, 가려움이 1~2주 이상 지속되고 밤잠을 설칠 정도라면 이미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한 단계라는 것이다.

아토피 환자에게 가려움은 단순한 증상이 아니라 또 다른 질병의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참지 못하고 긁는 과정에서 피부에 미세한 상처가 생기고, 그 틈으로 황색포도상구균이나 헤르페스 바이러스가 침투해 농가진이나 포진상 습진 같은 2차 감염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손 교수는 "긁어서 생긴 상처는 염증을 증폭시키고, 증폭된 염증은 다시 가려움을 부르게 된다. 이러한 반복 행동이 이어지면 피부는 회복 불가능한 손상을 입게 된다"고 경고했다. 이어 "조기 진단은 단순히 치료 기간을 단축하는 것을 넘어, 피부의 구조를 보존하고 전신 질환으로의 전이를 막기 위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음식 가리지 말고 마음을 다스려라"

임상 현장에서는 치료법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7~8년 전 등장한 생물학적 제재 듀피젠트는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T2 면역 반응의 핵심 통로인 IL(인터루킨)-4와 IL-13을 선택적으로 차단하는 이 주사제는 생후 6개월 영아부터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안정성이 검증됐다. 최근에는 아트랄자, 엡클리스와 같은 생물학적 제재들도 등장했다.

여기에 더해 최근에는 야누스 키나제(JAK) 억제제 계열의 먹는 약들이 가려움증 개선에 탁월한 효과를 보이고 있다. 올루미언트, 린버크, 시빈코 등이 대표적이다. 손 교수는 "먹는 약은 주사제보다 가려움증을 잡는 속도가 매우 빠르다"며 "심혈관 질환 이슈가 언급되기도 하지만, 주로 고령의 류마티스 환자 데이터이며 젊은 아토피 환자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손 교수가 주목하는 차세대 치료제는 가려움증의 직접적인 원인 물질인 IL-31을 억제하는 넴루비오다. 국내 출시를 앞둔 이 약은 소양증의 핵심 분자를 직접 겨냥해 환자들의 고통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손 교수는 "이제 의사들의 고민은 약이 없어서가 아니라, 어떤 환자에게 어떤 약을 먼저 쓸 것인가로 옮겨가고 있다"며 "얼굴 염증이 심하면 JAK 억제제를, 안전성을 최우선으로 하면 듀피젠트를 고려하는 등 환자의 임상 양상에 따른 맞춤형 처방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손 교수는 끝으로 아토피 피부염과 관련해 환자들이 가장 많이 오해하는 부분도 짚었다. 특정 식품을 제한하는 방식이 아토피 치료의 핵심이라는 인식은 과장된 측면이 크다는 것이다. 그는 "아토피가 있다고 해서 음식을 일괄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권장되지 않는다. 명확한 알레르기 반응이 확인된 경우가 아니라면 음식 제한이 증상 개선으로 이어진다는 근거는 제한적이다. 오히려 성장기 환자에게는 영양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음식보다 더 중요한 요소로 전신 컨디션을 꼽았다. 피부 증상은 국소 문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면역 상태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어 생활 전반의 균형이 무너지면 쉽게 악화된다는 설명이다. 그는 "과로하거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피부염이 바로 심해지는 경우가 많다. 면역 균형이 흔들리면 피부 장벽도 같이 무너지게 된다"고 말했다.

소아 환자에서도 이런 경향은 뚜렷하다. 손 교수는 "아이들은 감기에 걸리면 아토피도 같이 악화되는 경우가 흔하다. 전신 상태가 나빠지면 피부도 영향을 받는 구조로 무리한 일정이나 과도한 활동은 오히려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상 관리에서는 기본적인 원칙을 반복적으로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도 강조했다. 땀이나 자극 물질을 빠르게 제거하고, 피부가 건조해지기 전에 보습을 유지하는 단순한 과정이 치료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손 교수는 "특별한 치료법보다 중요한 것은 기본이다. 땀이 나면 바로 씻어내고, 이후 충분히 보습을 해주는 것만으로도 증상 변화를 체감하는 환자들이 많다. 이런 관리가 꾸준히 유지돼야 치료 효과도 안정적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환자와 보호자가 정보에 과도하게 휘둘리는 상황에 대해서도 경계했다. 검증되지 않은 식이요법이나 민간요법에 의존하기보다, 개별 환자의 상태에 맞는 관리 전략을 세우는 것이 우선이라는 뜻이다. 그는 "인터넷이나 주변에서 다양한 방법이 제시되지만 모든 환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해법은 없다. 증상 양상과 악화 요인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유튜브 채널 '촉촉박사'를 통해 환자들과 꾸준히 소통해 온 손 교수는 아토피를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치료가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질환인 것은 맞지만, 관리 수준에 따라 충분히 조절 가능한 범위에 있다는 설명이다. 손 교수는 "아토피를 완전히 없애야 한다는 접근보다,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질환으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 EDITOR: 박정연
  • PHOTO: 조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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