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친 적 없는데 아이가 안 걸어요"
놓치기 쉬운 소아정형 응급질환

  • EDITOR. 박정연
  • PHOTO. 지호영, 셔터스톡

들어가는 글

고려대 안암병원 정형외과 장우영 교수.

소아 응급질환이라고 하면 흔히 골절이나 외상부터 떠올린다. 그러나 아이들은 다친 적이 없어도 갑자기 다리를 절거나 걷기를 거부하고, 목을 한쪽으로 돌리지 못한 채 응급실을 찾기도 한다. 성장기 아이들의 뼈와 관절은 초기 대응이 늦으면 성장장애나 관절 손상, 보행 이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고려대 안암병원 정형외과 장우영 교수와 함께 비외상성 소아정형 응급질환에 대해 알아봤다.

성장기 아이들의 발달 관련 질환과 소아 골절·응급질환을 주로 진료해 온 장 교수는 아이의 뼈와 관절이 어른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가장 먼저 강조한다. 핵심은 성장판이다. 성장판은 팔다리가 자라도록 하는 중요한 부위인 동시에, 외상이나 감염, 혈류 장애에 매우 취약한 부위이기도 하다. 어른은 감염이 생겨도 치료로 끝나는 경우가 많지만, 아이는 성장판이 손상되면 다리 길이 차이, 각변형 같은 문제가 오래 남을 수 있다.

흔히 "아이들은 뼈가 말랑말랑하다"고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장 교수는 "아이의 뼈에는 단단한 골조직보다 연골이 많이 포함돼 있다"며 "뼈를 감싸는 막도 어른보다 훨씬 두껍다. 그만큼 탄성이 좋아 충격을 받아도 쉽게 부러지지 않지만, 동시에 성인에게서는 드문 특이한 골절이 생기거나 진단 과정에서 놓치기 쉬운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진료 방식도 다르다. 어른은 골절 수술 후 회복이 잘 되면 1년 안팎에서 진료를 마무리하지만, 소아는 성장이 끝날 때까지 지켜봐야 한다. 장 교수는 "성장판 손상 위험이 있거나 변형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는 성장이 끝날 때까지, 필요하면 13세 전후까지 정기적으로 추적 관찰한다"고 말했다.

아이가 걷지 못하고 고열이 나면 의심해야

대표적인 비외상성 응급질환이 화농성 관절염이다. 관절 안으로 세균이 침투해 염증을 일으키는 질환으로, 주로 고관절이나 무릎관절에 발생한다. 세균이 혈액을 타고 관절 내부로 들어가 염증을 일으키는 것이다. 발병 경로는 일상과 가깝다. 상처가 나거나 골절로 피부를 통해 균이 들어가는 경우뿐 아니라, 단순한 감기나 피부염 이후에도 세균이 관절로 침투할 수 있다. 아이들은 성장판과 골간단 주변의 혈관 구조가 성인과 달라 세균이 정착하기 쉽고, 감염이 관절이나 성장판으로 번지면 후유증도 클 수 있다.

증상은 비교적 분명하다. 아이가 갑자기 심한 통증을 호소하며 다리를 움직이지 않으려 하고, 걷지 못하거나 안아달라고만 하는 경우가 많다. 고열이 동반되기도 한다. 이 질환이 응급인 이유는 진행 속도와 후유증의 크기 때문이다. 감염이 빠르게 진행되면 관절 연골과 성장판이 손상되는데, 특히 아이는 연골이 두껍게 발달해 있어 세균이 연골을 녹이면 후유증이 매우 크게 남을 수 있다. 치료 시기를 놓치면 영구적인 관절 기능 저하나 성장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

여기서 반드시 구분해야 할 질환이 있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증상으로 나타나는 일과성 고관절 활액막염이다. 장 교수는 "이 둘을 감별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하나는 누워서 안정을 취하고 소염진통제를 쓰면 호전되지만, 다른 하나는 반드시 수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고관절이 깊은 곳에 있어 붓거나 빨개지는 변화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장 교수가 일러주는 간단한 가늠법도 있다. 먼저 아이를 세워 걸어보게 하는 것이다. 체중을 싣고 걸을 수 있다면 세균성 관절염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 다리를 조심스럽게 움직였을 때 아이가 어느 정도 견딜 만한 반응을 보이는 경우와 극심한 통증으로 비명을 지르는 경우는 차이가 크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위험 신호를 알아채기 위한 참고일 뿐, 조금이라도 의심되면 병원을 찾아야 한다.

응급실에서는 혈액검사와 초음파, MRI 같은 영상 검사로 염증 여부를 확인한다. 필요하면 관절 안에 고인 고름을 빼내는 응급수술과 항생제 치료를 시행한다. 장 교수는 "세균성 관절염이 강하게 의심되면 확진을 기다리기보다 관절 천자나 응급 배농·세척술을 시행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진단이 늦어졌을 때 생길 수 있는 합병증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진단이 늦으면 어떻게 될까. 연골 손상과 다리 길이 차이는 물론, 사춘기에 체육 활동을 전혀 하지 못하거나 20대에 인공관절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까지 생길 수 있다. 다만 장 교수는 암과 달리 이 질환은 증상이 나타났을 때 빨리 병원을 찾으면 대부분 무리 없이 치료된다는 점도 함께 강조했다. 그는 "핵심은 시간이다. 출혈처럼 5분, 10분을 다투는 것은 아니지만, 하루 이틀 안에는 반드시 진료를 받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또 다른 대표적 비외상성 응급질환으로는 대퇴골두골단분리증(SCFE)이 있다. 성장판 부위가 약해지면서 고관절 뼈의 끝부분이 어긋나는 질환이다. 키가 빠르게 자라는 사춘기 청소년에게 주로 나타나며, 비만한 남자아이에게 비교적 흔하다.

장 교수는 이 질환의 발생 원리를 모자에 빗대 설명했다. 대퇴골두는 모자를 씌운 것 같은 구조인데, 사춘기에 키가 급격히 자라는 시기에 체중 부담이 커지면 성장판이 그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모자가 벗겨지듯 서서히 또는 갑자기 미끄러진다는 것이다. 비만한 아이일수록 고관절에 실리는 부하가 커 잘 발생한다. 한쪽 다리로 설 때 고관절에 걸리는 하중은 체중의 3배, 뛸 때는 10배에 이르기 때문에 체중이 늘수록 위험도 함께 커진다.

초기 대응 놓치면 평생 고생할 수 있어

증상은 갑자기 절뚝거리거나 허벅지, 사타구니, 무릎 통증을 호소하는 것이다. 화농성 관절염과 마찬가지로 체중을 싣고 제대로 걷지 못한다. 다만 발병 연령대는 다르다. 화농성 관절염이 비교적 어린아이에게 나타난다면, 대퇴골두골단분리증은 주로 사춘기에 생긴다.

장 교수는 아이가 고관절이 아니라 무릎 통증만 호소할 때도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런 경우 단순 성장통이나 근육통으로 오인돼 진단이 늦어지는 일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다친 적 없이 절뚝거리거나 걷기를 힘들어한다면 반드시 정형외과 진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대퇴골두 골단분리증은 수술로 치료할 수 있다. 그는 "최대한 빨리 발견해 고정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모자가 조금만 벗겨진 상태라면 제자리에서 고정하면 되지만, 전위가 심해 골두 위치가 많이 어긋난 경우에는 모자를 다시 머리 위에 올려놓기 위해 큰 움직임이 필요한 것처럼 개방 정복술 같은 큰 수술이 필요할 수 있다.

이 경우 대퇴골두로 가는 혈류가 차단돼 대퇴골두 무혈성 괴사 같은 심각한 합병증이 생길 위험이 크게 높아진다. 괴사가 진행되면 아이는 지속적인 통증에 시달리다가 20대에 인공관절 수술을 받아야 할 수도 있다. 스포츠 활동은 물론 일상생활도 어려워질 수 있다. 소아기에 뼈를 잘못 다루면 평생을 좌우할 수 있다는 의미다.

장 교수는 성장호르몬 치료와의 연관성도 짚었다. 키 성장을 위해 쓰는 성장호르몬의 합병증 가운데 하나로 대퇴골두 골단분리증과 척추측만증이 논문으로 보고돼 있다는 것이다. 급격한 성장 자체가 성장판에 부담을 주기 때문이다. 그는 "성장호르몬 치료를 받는 아이라면 합병증 가능성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급성 사경도 아이가 겪을 수 있는 비외상성 응급질환이다. 사경은 목이 한쪽으로 기울고 움직임이 제한되는 상태를 말한다. 아이가 갑자기 고개를 돌리지 못하고 한 방향으로 굳은 채 통증을 호소하면, 보호자들은 대개 "잠을 잘못 잔 것 같다"며 자세 탓으로 넘기기 쉽다. 급성 사경의 원인은 단순한 근육 경직부터 감염, 경추 이상까지 다양하다. 그중 감기나 인후염 이후 나타나는 '환축추 회전성 아탈구'는 반드시 감별해야 할 중요한 원인이다.

장 교수가 특히 주의를 당부한 것은 감기를 앓고 난 뒤 갑자기 목이 기우는 경우다. 상기도 감염 후 염증이 경추 주변 인대와 관절낭에 영향을 주면서 첫 번째와 두 번째 경추 사이가 불안정해질 수 있다. 그 결과 첫 번째와 두 번째 경추 사이가 어긋난 채 고정되는데, 이것이 환축추 회전성 아탈구다. 장 교수는 "감기를 앓고 2주쯤 뒤 아이가 갑자기 목을 똑바로 하지 못하는 식으로 나타난다. 혼을 내도, 본인이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목이 펴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다행히 이 질환은 조기에 발견되면 비교적 간단히 회복된다. 제때 견인 치료(트랙션)를 하면 회복을 기대할 수 있지만, 이 시기를 놓치면 견인만으로는 교정되지 않아 결국 수술이 필요해진다. 치료가 늦으면 신경이 눌리는 등 더 큰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위험 신호도 분명하다. 단순히 목이 기운 정도를 넘어 침을 흘리거나 토하고, 팔다리에 힘이 빠지는 증상이 동반된다면 신경이 눌리고 있다는 의미일 수 있어 즉시 응급실을 찾아야 한다. 장 교수는 "아이가 목을 똑바로 하지 못하는 상태가 보이면 빠르게 병원을 찾는 것이 좋고, 증상이 오래됐거나 교정이 잘 되지 않으면 입원 치료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세 질환에서 공통적으로 중요한 것은 보호자의 관찰과 초기 판단이다. 아이들은 통증 부위를 정확히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평소와 다른 행동 변화 자체가 중요한 신호가 된다. 장 교수는 "아이들은 통증을 정확한 위치나 양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평소와 다른 보행이나 움직임 거부는 중요한 신호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갑자기 걷지 않으려 하거나 절뚝거리거나, 특정 부위를 움직이지 않으려 한다면 단순 통증으로 넘기지 말아야 한다.

특히 발열과 함께 관절 통증이 나타나거나, 체중을 전혀 싣지 못하거나, 심한 목 통증과 움직임 제한이 동반되는 경우에는 응급실 방문이 필요하다.

진단부터 재활까지 "성장 끝날 때까지 봐야"

장 교수가 진료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수술 그 자체보다 그 이후다. 소아정형 응급질환은 수술이 끝났다고 치료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 아이는 계속 자라기 때문에 치료 후에도 성장판이 정상적으로 기능하는지, 관절 변형은 없는지, 보행에 문제는 없는지, 근력은 잘 회복되는지를 성장이 끝날 때까지 지켜봐야 한다. 수치로 드러나는 문제뿐 아니라 일상생활과 학업에 지장은 없는지까지 함께 살펴야 한다.

장우영 교수는 "핵심은 시간이다. 출혈처럼 5분, 10분을 다투는 것은 아니지만, 하루 이틀 안에는 반드시 진료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교수는 "소아정형의 핵심은 성장이 끝날 때까지 안전하게 지켜봤는가, 미래의 기능과 성장까지 생각하며 장기적으로 관리했는가에 있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통합적 관리가 가능한 배경으로 장 교수는 과별 협진 체계를 들었다.

소아정형 환자를 제대로 보려면 정형외과 혼자만으로는 부족하고, 영상의학과와 소아청소년과, 마취통증의학과, 재활의학과 등 여러 진료과의 협업이 필수다. 장 교수는 "고려대 안암병원은 이런 협진이 긴밀하게 이뤄져 필요할 때 다른 과 교수에게 직접 연락해 아이를 곧바로 볼 수 있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덕분에 아이와 보호자 입장에서는 여러 곳을 옮겨 다니지 않고 진단부터 치료, 장기 관리까지 한 병원에서 통합적으로 받을 수 있다.

진료 영역도 응급질환에만 머물지 않는다. 장 교수는 성장 관련 프로그램과 연구를 폭넓게 진행하고 있으며, 뇌성마비 아이들의 보행 문제를 보기 위해 로봇 재활도 도입하고 있다.

여기에 향후 성장판 손상이나 변형 가능성, 키가 다 자란 뒤의 기능까지 종합적으로 보며 재활 프로그램으로 연결하겠다는 구상이다.

아이의 뼈는 어른의 뼈가 아니다. 다친 적이 없어도 응급일 수 있고, 무릎이 아프다는 말 뒤에 고관절 문제가 숨어 있을 수 있다. 장 교수가 인터뷰 내내 강조한 메시지는 빠른 판단이 아이의 평생을 지킨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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