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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과·의대 잇달아 기부한 김운섭 전 동부아데카 대표 마음의 빚을 다시 고려대의 미래로
'장학금'으로 연 길 '기부'로 잇다

  • EDITOR. 김건희
  • PHOTO. 조영철

들어가는 글

김운섭 전 동부아데카 대표.

전쟁 직후 열악한 교실에서 공부를 시작한 김운섭 전 동부아데카 대표는 장학금의 힘으로 대학 생활을 이어갔고, 이후 한국 농약 국산화 현장을 이끈 화학산업의 주역으로 성장했다. 2024년 고려대 화학과 후배들을 위해 '운성장학금' 1억 원을 기부한 데 이어, 그런 그가 2026년에는 고려대 의과대학 의학발전기금으로 다시 1억 원을 출연했다. 받은 도움을 잊지 않은 마음이 이제 후배들의 배움과 의학 연구의 미래를 키우는 기금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김 전 대표의 삶은 경기도 양주군 와부면 덕소리에서 시작됐다. 6.25전쟁 무렵, 교실이 부족해 개천 옆에 칠판을 걸어두고 수업을 받던 시절이었다. 비가 오면 수업을 이어갈 수 없어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중학교에 진학하는 동급생도 많지 않았다. 대부분 집안일을 돕거나 농사일을 배웠다.

그러나 그는 시험을 보고 서울 성동중학교에 입학했다.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공부를 이어가는 일 자체가 큰 도전이던 시절이었다. 그는 고등학교를 거쳐 1964년 고려대 화학과에 입학했다. 가난이라는 현실을 그는 실력으로 이겨냈다.

대학 시절 그의 길을 열어 준 것은 장학금이었다. 화학과에서 학년 전체 1등에게 주어지는 '특대생 장학금'으로 등록금을 면제받았고, 복학 후에는 삼양사의 '양영장학금'을 받았다. 장학금은 단순한 명예가 아니었다. 학생 한 명이 대학 생활을 계속할 수 있게 해 준 버팀목이었다.

"제가 젊은 날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제도와 사람들이 건넨 도움 덕분이었습니다. 그러니 지금의 기부는 그저 넉넉해서 베푸는 선의가 아니라, 과거에 진 장학금의 빚을 갚는 일입니다."

1970년 졸업을 앞둔 그는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연구직 시험에 합격했다. 당시 KIST는 해외 과학자를 유치하고 국가 연구 기반을 세우던 핵심 기관이었다. 공무원 월급이 7,000원 수준이던 시절, KIST는 월 5만 원의 파격적인 대우를 내걸었다. 그만큼 국가가 과학기술 인재에 거는 기대가 컸다.

그는 그곳에서 의약품과 농약의 국산화 연구에 참여했다. 이후 주식회사 한국농약, 지금의 팜한농 전신으로 옮겨 농약 국산화 프로젝트와 연구 기반 구축을 이끌었다. 서른셋의 나이에 이사가 됐고, 한농포리머, 동부정밀화학, 동부아데카 등에서 경영자로 일했다.

'한국 농약 국산화'의 산증인

김 전 대표가 기억하는 산업 현장은 결핍과 도전의 시간이었다. 외화를 아껴야 했던 시절, 국산화는 곧 국가적 과제였다. 수입에 의존하던 원료와 제품을 국내에서 개발하면 산업 경쟁력이 커졌고, 농업 현장의 비용 부담도 줄어들었다.

그는 고추와 담배 탄저병 약제의 국산화, 벼멸구 약제 개발 등 수입 대체 효과가 큰 연구를 수행했다고 회고했다. 1980년대 그가 관여한 의약·농약 국산화 규모는 수천만 달러에 달했다. 화학자로서의 훈련은 은퇴 뒤 일상에도 남아 있다. 그는 아내의 병세를 관찰하며 병상 일지를 쓰듯 증상 변화를 기록했고, 담당 의사는 그 꼼꼼함에 놀랐다고 한다. 과학자의 삶은 실험실과 공장을 떠난 뒤에도 기록하고 살피는 습관으로 이어졌다.

김운섭 전 동부아데카 대표는 고려대 의과대학 의학발전기금 1억 원을 기부하며 "장학금으로 학업을 이어간 경험의 빚을 갚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이번 의학발전기금 기부에는 또 다른 인연도 있다. 그의 아들은 미국 로체스터대학교 의과대학에서 병리학을 연구하고 강의하는 교수다. 김 전 대표는 가까이에서 의학 연구가 얼마나 많은 시간과 자원을 필요로 하는지 지켜봐 왔다. 미국 대학과 병원에 연구기금이 풍부하게 조성되는 현실을 보며, 한국 의학 연구도 더 큰 기반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품게 됐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연구에는 사람과 장비와 시간이 필요하다. 안정적인 기금이 있어야 젊은 연구자가 긴 호흡으로 질문을 붙들 수 있고 병원과 대학도 미래 의료를 준비할 수 있다. 국내 유수 대학병원 못지않은 연구와 교육의 힘을 갖추길 바란다. '고대 의과대학이 더 잘돼야 고대가 발전한다'는 생각이 이번 기부의 밑바탕에 놓여 있다."

말투는 담담했지만 기부의 방향은 분명했다. 자식들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일만 생각하지 않고, 대학과 후배를 위해 의미 있게 쓰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2024년 조성된 운성장학금은 김 전 대표와 화학과 64학번 동기 김성길 교우의 우정에서 비롯됐다. 김 전 대표가 1억 원을 내겠다고 하자 김성길 교우가 2억 원을 보탰고, 두 사람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딴 장학금이 탄생했다.

젊은 날 같은 전공을 공부하고 같은 산업 현장을 지나온 우정이 후배들의 장학금으로 이어진 셈이다. 두 사람은 대학 시절보다 졸업 뒤 화학업계에서 더 깊이 가까워졌다. 각자의 자리에서 기업을 일구고 산업 현장을 지켜온 시간이 다시 모교를 향한 마음으로 모였다.

김 전 대표는 당시에도 "후배들이 생활비 걱정 없이 학업에 열중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이번 의학발전기금 역시 같은 마음의 다른 방향이다. 화학과 후배들에게 갚은 빚이 이제 의학 연구와 교육을 향한 응원으로 확장됐다.

그가 바라는 것은 기부의 선순환이다. 장학금을 받은 학생이 공부를 이어가고, 연구자가 된 뒤 다시 누군가를 돕는 일. 의과대학의 연구 기반이 두터워져 환자에게 더 나은 치료로 돌아가는 일. 고려대의 이름으로 배우고 일한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다음 세대를 밀어 올리는 일이다.

김 전 대표의 기부에는 전쟁 직후의 가난한 교실에서 출발해 한국 화학산업의 국산화 현장을 지나고, 다시 모교의 후배와 의학 연구를 향해 돌아온 한 사람의 긴 시간이 담겨 있다. 그 시간은 이제 고려대의 미래를 키우는 기금으로 남게 됐다. 받은 도움을 잊지 않은 마음이 다시 누군가의 출발점이 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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