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협력 모델' 만드는 정성관 우리아이들의료재단 이사장 기부는 미래를 위한 투자
"건강한 아이가 사회를 바꿉니다"
- EDITOR. 이종철
- PHOTO. 이상윤
들어가는 글

서울 성북구와 구로구에서 각각 '우리아이들병원'을 운영하는 우리아이들의료재단이 최근 고려대학교의료원과 교류 협력 협약을 맺고 소아·청소년 의료의 새로운 협력 모델을 만들어 가고 있다. 정성관 재단 이사장(고려대 의과대학 의학과 98학번)은 소아청소년과 의사이자 병원 경영자이며, 나눔을 실천하는 기부자이기도 하다.
우리아이들병원은 밤이 깊어 갈수록 오히려 더 분주해진다. 잠든 아이를 품에 안고 달려온 부모들과 야간 진료실과 병동을 오가는 의료진들로 밤새 북적인다. 정 이사장은 지난 10년 가까이 24시간 소아 진료 현장을 지켜 왔다.
병원 간 협력의 가치는 아이의 생명이 위급한 순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최근 우리아이들병원에서는 장의 한 부분이 안쪽으로 말려 들어가는 응급 질환인 장중첩증 증상을 보인 아이를 진단했다. 아이는 곧바로 고려대 구로병원으로 이송됐고, 영상의학과와 소아외과 의료진이 즉시 협진에 나서 무사히 치료를 마쳤다.
"치료가 필요한 순간 협력체계가 즉시 가동돼 아이를 살릴 수 있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결국 병원 간 협력의 종착점은 체면도, 실적도 아닌 아이 한 명의 생명인 것이죠."
'소아 진료 협력체계' 전국으로 확대
우리아이들의료재단과 고려대학교의료원은 최근 새로운 교류 협력 협약을 맺었다. 협약의 이름을 흔히 사용하는 '교육 협력'이 아닌 '교류 협력'으로 정한 데에도 정 이사장의 생각이 반영됐다.
"교육은 본래 지식을 한 방향으로 전달하는 개념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이번 협력은 한쪽이 가르치고 다른 한쪽이 배우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주고받는 상호적 관계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것이 진정한 교류라고 생각합니다."
병원과 대학병원, 진료와 연구, 사람과 사람을 단방향이 아닌 쌍방향으로 잇겠다는 뜻이다. 이러한 협력은 협약서 속 문구에만 머물지 않았다. 정 이사장이 특히 강조하는 것은 의료현장에서 직접 축적한 협력 경험이 실제 정책 모델로 발전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소아 진료 지역 협력체계 구축 시범사업'이다. 이 사업은 지역 내 소아 의료 공백을 줄이기 위해 아동병원 등 2차 의료기관을 중심기관으로 지정하고, 지역 소아청소년과 의원과 상급종합병원을 긴밀히 연결해 아이들이 신속하고 연속적인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체계다.
성북 우리아이들병원과 고려대 안암병원 소아청소년과가 현장에서 구축해 온 협력 경험도 이 사업의 구체적인 모델을 마련하는 데 기여했다. 이후 보건복지부가 이를 검토해 정책으로 발전시켰고, 현재는 전국 20여 개 권역으로 확대돼 운영되고 있다.

"기부, 어떤 방식으로든 사회에 환원돼"
정 이사장의 진료 철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표현은 '전문가적 친절함'이다. 의료진은 환자와 보호자에게 웃으며 "걱정하지 마세요. 잘 치료해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그는 따뜻한 말만으로 진정한 친절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환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어떤 선택이 아이에게 최선인지 충분히 고민하고 판단하는 데서 진짜 친절이 시작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예를 들어 입원이 필요한 아이의 보호자가 '지금은 사정상 입원이 어려운데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이때 단순히 '그러면 약을 처방해 드리겠습니다'라고 답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약으로 호전될 가능성이 충분하다면 약 처방과 함께 다른 방법을 고려할 수 있겠지만, 상태가 악화될 위험이 더 크다면 입원이 가장 안전하고 효과적인 선택이라고 분명히 설명해야 합니다. 근거를 들어 설명하고 책임 있게 결정하는 태도야말로 전문가로서의 진정한 친절입니다."
그렇다면 정 이사장은 왜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됐을까. 그는 아이가 건강한 성인으로 성장해 공동체의 성실한 구성원이 되는 과정을 돕는 일이 "그 자체로 숭고하다"고 말한다. 아이가 유명 정치인이나 기업가가 되는 것보다 주변 사람들에게 따뜻하고 긍정적인 영향력을 전하는 존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건강의 기틀을 마련하고 돕는 사람이 바로 소아청소년과 의사라고 믿는다.
그의 관심은 병원 밖 아이들의 삶으로도 향했고, 자연스럽게 기부와 나눔으로 이어졌다.
"저희 재단도 처음부터 큰 금액을 기부한 것은 아닙니다. 구청 아동복지관에 연락해 '정말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이 있느냐'고 묻는 데서 시작했습니다. 북한이탈주민 아이들에게 무엇이 가장 필요한지 물었더니, 장난감이나 태블릿이 아니라 과일을 실컷 먹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과일을 한가득 사다 주었습니다. 저는 이런 과정이 바로 기부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기부는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다시 사회에 환원된다고 믿습니다."
거창한 명분을 앞세우기보다 먼저 무엇이 필요한지 묻는 일. 그것이 그의 기부를 설명하는 가장 정확한 표현이다. 모교에 대한 기부도 같은 맥락에서 이뤄졌다. 재단 내부에서는 병원 운영에 자금을 우선 사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는 양질의 의학교육이 결국 소아청소년과 전공의와 전문인력 확대로 이어지고, 그 혜택이 다시 아이들과 지역사회에 돌아간다고 봤다. 정 이사장의 생각은 분명하다.
지금 당장의 손익만 놓고 보면 기부처럼 보일 수 있지만, 더 넓게 보면 지역 의료의 미래를 위한 투자라는 것이다. 그가 마지막까지 놓지 않는 목표도 명확하다. 두 병원에서 24시간 진료체계를 유지하는 일은 수익보다 비용 부담이 더 큰 일이다. 그럼에도 24시간 진료를 시작한 지난 1년간 약 11만 명이 이 진료체계의 혜택을 받았다. 정 이사장은 "아이가 아플 때 부모가 언제든 안심하고 찾을 수 있는 병원을 만드는 것"이 자신의 목표라고 말한다. 그의 철학은 분명하다.
"건강한 아이가 밝은 사회를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