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지붕의 도시, 황제가 머문 바다
- ARTICLE·PHOTO. 전승훈 동아일보 기자
들어가는 글
아드리아해는 이탈리아 동쪽과 발칸반도 사이에 있는 좁고 긴 내해(內海)다. 파도가 거의 없어 호수처럼 보인다. 로마제국과 비잔틴제국이 번성했고, 중세에는 베네치아 공화국의 해상 무역로가 됐던 문명의 교차로이기도 하다. 그 해안을 따라 서로 다른 시간의 결을 품은 두 도시, 두브로브니크와 스플리트가 있다.

크로아티아 남부 달마티아(Dalmatia) 지역에는 고대 로마부터 중세까지 번성했던 유서 깊은 해안 도시들이 많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101마리 달마시안'에 등장하는 점박이 개 품종인 '달마시안'의 고향이 바로 이곳이다. 파도가 낮고 해안이 부드러웠던 아드리아해는 중세 상인들에게 이상적인 무역로였다. 베네치아의 배들은 아드리아해를 횡단해 달마티아의 도시들과 무역을 하며 번성했다.
유럽의 기와지붕은 왜 붉을까
그중 두브로브니크는 '아드리아해의 진주'로 불린다. 그곳에 갔다면 성벽에 올라 올드타운을 한 바퀴, 총 2㎞ 남짓 걸어봐야 한다. 이유는 단 하나, '붉은 지붕'의 파도를 보기 위해서다.
중세 베네치아의 영향권 아래에서, 이후 오스만제국의 위협 속에서, 20세기 초 유고슬라비아의 일부로서, 그리고 1990년대 크로아티아 독립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두브로브니크는 살아남았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이 도시는 도시의 정체성이 된 붉은 지붕을 철저히 보존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케이블카를 타고 스르지산(412m)에 오르면 크리스털 블루와 에메랄드빛으로 빛나는 아드리아해가 한눈에 펼쳐진다. 케이블카가 올라가는 4분 30초 동안 올드타운의 붉은 기와지붕들이 만들어내는 기하학적 패턴도 또렷하게 드러난다.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면 아드리아해 위에 흩뿌려진 섬들이 들어온다. 그중 가장 유명한 세 곳이 엘라피티 제도(Elaphiti Islands)의 로푸드, 콜로첩, 시판 섬이다. 두브로브니크 왼편으로는 로크룸 섬을 오가는 배들이 하얀 물살을 길게 남긴다.
유럽의 테라코타, 즉 흙을 구워 만든 벽돌과 기와, 도기는 왜 붉을까. 산화철(Fe₂O₃)을 함유한 흙을 쓰기 때문이다. 가마에서 1,000도 이상의 고온으로 구우면 흙 속 철 성분이 산화되면서 오렌지색에서 적갈색까지 다양한 붉은빛이 나타난다. 철이 산소와 결합하며 붉게 녹스는 것과 같은 원리다.
반면 우리나라의 전통 기와는 검은색이다. 한국의 기와는 아궁이에서 소나무나 참나무 숯불로 구울 때 가마 안의 산소를 부족하게 만들어 불완전 연소를 유도한다. 그러면 산화철이 검은빛을 띠게 된다. 숯불의 온도를 1도 단위로 가늠하고, 언제 불길을 살리고 언제 숨을 죽여야 하는지를 몸으로 익힌 장인만이 가능한 방식이다.


'왕좌의 게임' 킹스랜딩이 눈앞에
두브로브니크 올드타운 골목을 걷다 보면 HBO 드라마 '왕좌의 게임'의 한 장면이 그대로 눈앞에 펼쳐지는 듯하다. 극 중 '킹스랜딩'의 배경이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다.
현지 가이드가 가장 먼저 데려간 곳은 성벽 서쪽 문인 필레 게이트 아래의 항구였다. 드라마 속 '블랙워터 만(Blackwater Bay)' 양쪽으로 높은 성벽과 계단이 있고, 라니스터와 스타크 가문의 사람들을 실은 배가 드나들던 장면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필레만은 중세 라구사 공화국 시절, 해상 방어와 무역의 중심이었던 전략적 요충지다. 서쪽에는 높이 37m의 거대한 절벽 위에 로브리예나츠 요새가 우뚝 솟아 있다. '왕좌의 게임'에서는 '붉은 성'으로 등장한 성채다. 동쪽에는 또 다른 요새 포트 보카르(Fort Bokar)가 있다. 두브로브니크 성벽을 한 바퀴 돌면 바로 그 요새로 올라갈 수 있다.




성 이그나시우스 교회 앞 '예수회 계단'은 드라마의 가장 충격적인 명장면이 촬영된 곳이다. 세르세이 라니스터(레나 헤디)가 머리를 깎이고, 벌거벗겨진 채 군중의 조롱 속을 걸어가던 '수치의 행진(The Walk of Shame)' 장면이다.
극 중 최고 권력자의 딸이자 왕국의 왕비였던 세르세이는 권력을 잃은 뒤 셉트 성당에서 붉은 성까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참회의 행진을 한다. 킹스랜딩 시민들은 그녀가 지나갈 때마다 "Shame!"을 외치며 손가락질하고 음식물을 던진다.

이 장면을 촬영할 당시 레나 헤디는 몸 대역을 썼다. 그는 베이지색 드레스를 입은 채 약 500명의 엑스트라 사이를 오갔고, 1,000대 1의 경쟁을 뚫고 대역으로 뽑힌 레베카 밴 클리브(Rebecca Van Cleave)가 나체로 사흘간 같은 장면을 촬영했다. 이후 특수 효과팀이 레나 헤디의 얼굴을 레베카의 신체에 디지털로 합성했다.
세르세이의 행진 장면은 1483년 6월, 에드워드 4세의 정부였던 제인 쇼(1445~1527)라는 실존 인물에게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에드워드 4세 사후 왕위에 오른 동생 리처드 3세는 형의 정부 제인을 간음죄와 마녀 혐의로 체포했고, 그녀는 공개 참회 형벌을 받았다. 반투명한 흰 튜닉만 입은 채 세인트폴 대성당에서 런던 시내까지 행진해야 했다.
두브로브니크 필레 게이트 앞 광장에는 프란체스코 수도원이 있다. 이 수도원에는 중세 수도사들이 연금술을 연구하며 불로불사의 영약인 '엘릭서(Elixir)'를 제조했던 기록이 많이 남아 있다. 수도원 입구에는 1317년에 설립된 약국이 있다. 피렌체의 산타 마리아 노벨라 약국(1221년)이 더 오래됐지만, 이곳은 지금도 운영 중인 약국 가운데 가장 오래된 곳으로 꼽힌다. 수도사들의 200년 된 레시피로 허브와 오일을 활용해 만든 장미 크림이 특히 유명하다.
황제의 은퇴 휴양지, 스플리트
대체로 로마 황제들의 말년은 비슷했다. 죽거나, 죽임을 당하거나, 추방되거나, 강제 폐위됐다. 권력을 놓지 않으려 끝까지 버티다 결국 참혹한 결말을 맞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로마제국 제43대 황제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디오클레티아누스(244~311)는 달랐다. 그는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고, 고향 인근의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해변 도시에 궁전을 짓고 채소를 기르며 은퇴 생활을 즐겼다. 절대 권력자가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 여생을 누린 사례는 로마 역사에서도 매우 드물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군인 황제 시대'로 불리던 3세기 말의 극심한 혼란 속에서 로마제국을 수습한 통치자였다. 당시 로마는 정치적 암살과 군부 쿠데타, 외부 야만족의 침입으로 거의 붕괴 직전까지 내몰려 있었다. 그는 제국을 네 개 지역으로 나눠 통치하는 사분통치제(Tetrarchia)를 만들고, 행정 개혁과 세제 정비를 통해 로마를 재건했다.


그런 그가 305년 5월 예상 밖의 선택을 한다.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난 것이다. 그는 21년 재위 기간 니코메디아를 중심으로 소아시아와 이집트 등을 다스렸는데, 은퇴지로는 발칸반도의 해안 도시 스플리트(Split)를 택했다. 이곳이 그의 고향과 가까웠기 때문이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스플리트 인근 크로아티아 솔린, 당시의 살로나 출신이었다. 노예 또는 하급 관리의 아들로 태어난 것으로 알려진 그는 누메리아누스 황제의 경호대장을 지내다 황제로 추대됐고, 이후 21년간 제국을 통치했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은퇴 전 약 10년에 걸쳐 스플리트에 궁전을 지었다. 호화로운 휴양지와 견고한 요새를 결합한 복합 건축물이었다. 규모는 약 3만8,000㎡, 축구장 다섯 개 정도의 면적이다.
궁전의 중심에는 페리스타일(Peristyle)이라 불리는 거대한 열주가 둘러싼 안뜰이 있다. 황제가 매일 아침 관리들을 만나고 예식을 치르던 권력의 중심 공간이다. 광장 기둥 아래에는 검은 화강암 스핑크스가 놓여 있다. 약 3500년 전 이집트 투트모세 3세 시대의 유물로 추정된다. 궁전에는 원래 이집트에서 가져온 스핑크스 12기가 있었지만, 현재는 세 기만 남아 있다.


스핑크스 맞은편 카페의 이름은 '룩소르(LVXOR)'다. 비엔나식 크림 커피로 유명한 이 카페에서 손님들은 페리스타일 광장의 돌기둥에 등을 기대고 스핑크스를 마주 보며 커피를 마신다. 잠시나마 로마 황제가 된 듯한 기분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페리스타일을 지나면 돔형 지붕을 얹은 연결 통로가 나온다. 황제가 손님을 맞이하던 알현실, 베스티뷸(Vestibule)이다. 높이 17m, 지름 12m의 원형 홀 천장에는 둥근 구멍인 '오큘러스(oculus)'가 뚫려 있다. 로마 판테온에서도 볼 수 있는 이 원형 개구부 사이로 푸른 하늘이 보인다. 햇빛은 시시각각 다른 각도로 스며들어 벽에 타원형의 빛 그림자를 만든다.
오큘러스는 뛰어난 음향효과도 만든다. 완전히 밀폐된 공간이었다면 동굴처럼 잔향이 너무 길어 소리가 먹먹했겠지만, 천장의 구멍이 적절한 울림을 남긴다. 사람의 목소리를 하늘과 우주로 연결해주는 듯한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클라파(Klapa)'라 불리는 크로아티아 달마티아 지역의 전통 민속음악 공연이 상설로 열린다. 남성 네 명이 반원형으로 서서 아무런 반주 없이 오직 목소리만으로 실크처럼 섬세한 화음을 만들어 내는데, 듣는 이의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황제의 무덤이 순교자의 성소로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 아래에는 높이 10m, 길이 50m가 넘는 지하공간이 있다. 궁전 전체의 약 8분의 1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다. 현지 해설 가이드는 "중세 이후 1000년 동안 주민들이 이 지하공간에 버린 쓰레기와 배설물 덕분에 아이러니하게도 로마시대 석조 구조가 완벽하게 보존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19세기 대대적인 발굴 끝에 이 지하공간에서는 로마시대 황제 궁전의 흔적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신전과 기도실, 우물과 하수도관, 황제의 식탁으로 추정되는 대리석 테이블, 와인과 올리브유를 짜던 프레스 등이 전시돼 있다.
광장 옆에는 원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무덤이었던 팔각형 돔 건물이 있다. 지금은 성 도미니우스 대성당으로 쓰인다. 3세기 살로나의 주교였던 성 도미니우스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치하의 기독교 박해 때 참수된 순교자였다. 황제의 무덤이, 그 황제가 죽인 순교자의 유해를 모신 성소로 바뀐 셈이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성 도미니우스 대성당 옆에는 높이 57m의 종탑이 서 있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페리스타일 광장에서 시작된 시야가 점점 넓어지며 아드리아해 해안까지 이어진 스플리트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어디선가 깍깍거리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렸더니, 푸른 바다와 붉은 지붕을 내려다보는 종탑 꼭대기 기둥 아래에 하얀 갈매기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궁전을 나와 바다 쪽으로 향하면 요트가 정박한 항구가 나온다. 해변에는 길이 500m, 폭 40m 남짓의 직선 산책로 '리바(Riva) 프롬나드'가 이어진다. 낮에는 관광객들로 북적이지만, 해질녘이면 스플리트 시민들이 몰려나와 이웃과 친구를 만나고 커피를 마시는 거리다. 매일 저녁, 일상의 의식처럼 반복되는 이 산책을 사람들은 '코르조(Korzo)'라고 부른다. 리바 프롬나드는 단순한 산책길을 넘어 '스플리트의 거실(Living room)' 역할을 하는 공간이다.
1700년 전 황제가 선택한 '은퇴의 방식'은 현대인에게도 깊은 울림을 준다. 나는 은퇴를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앞으로 진정으로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