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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스케치 여행

박물관 같은 성곽도시
우즈베키스탄 '히바(Khiva)'

히바 수채화 사진 1 히바 수채화 사진 1

지난해 6월 우즈베키스탄(이하 우즈벡)에서 고려대의료원과 우즈벡 국립타슈켄트의대가 협력해 만든 '협력연구센터' 개원식이 열려 그 행사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건축가로서 해외 출장을 종종 가지만 우즈벡은 처음이었고, 그곳에서 신선한 느낌을 받고 돌아왔다.
중앙아시아의 터줏대감 격인 우즈벡은 신()실크로드의 중심이자 우리나라 신북방정책의 주요 파트너로서 국내 기업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나라다. 이 나라의 경제 여건과 정책 변화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에는 농업, 자동차, 에너지 인프라, 의료 등이 진출 유망 분야로 꼽힌다.

임진우 정림건축 대표 사진
임진우 정림건축 대표
(고려대 첨단융합복합센터 설계)

역사가 깊은 타슈켄트 시내의 궁전이나 사원 같은 오래된 건물들은 건축적 완성도가 높다. 하지만 일반적인 현대 건축물 수준은 과장된 건축 어휘와 디테일 처리의 미숙으로 기대에는 못 미친다.

우즈벡에는 사마르칸트와 부하라, 히바 등 3대 유적 도시가 있다. 우즈벡까지 날아온 이상, 한 곳은 보고 가야 하겠기에 아침부터 서둘렀다. 우르겐치공항에 내려 40분 정도 차량으로 이동하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히바의 유적지 이찬칼라를 답사할 수 있다. 투박한 황토벽 성곽은 방어가 목적일 텐데도 오히려 둥글고 완만한 곡면의 여유로움은 방문객을 환영하며 맞이해주는 듯하다.

성안을 수호하는 '미나레트' 첨탑

이곳은 아무다리야강 하류에 위치한 호라즘주(州)의 도시로 기원은 2000년 전쯤으로 추정된다. 페르시안, 몽골, 이란, 러시아 등 여러 나라로부터 수난을 겪어 폐허와 재건을 거듭해온 이유로 현재의 건물들은 대부분 18~19세기의 것이지만 중앙아시아 중세도시의 형태를 잘 유지하고 있다. 내성에는 궁전과 마스지드(사원), 마드라사(신학교), 묘당들이 있고, 외성에는 상인과 수공업자들이 직종별로 구역을 형성해 거주했다고 한다. 눈에 보이는 건물들은 호라즘제국의 전통적 건축기법과 아랍·이슬람식 건축이 융합돼 있었다.

히바 수채화 사진 2 히바 수채화 사진 3 히바 수채화 사진 2 히바 수채화 사진 3

이 성곽도시에는 전체가 박물관이라는 평을 받을 정도로 많은 유적들이 분포돼 있다. 특히 아랍어로 '빛을 두는 곳, 등대'를 의미하는 '미나레트' 몇 개가 마치 성안을 수호하는 장승처럼 높은 첨탑의 형상으로 성곽 마을의 스카이라인을 지배한다.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은 아랍의 전통 문양은 건물의 곳곳에 아로새겨져 있고, 신비스러울 정도로 고색창연한 푸른 색상은 거친 황토색 벽돌 벽과 묘하게 대조되며 조화를 이룬다. 늦은 오후의 강렬한 햇빛은 방문객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려 자코메티의 작품처럼 성벽과 보도에 중첩시킨다.

바닥에 거친 벽돌 문양이 새겨진 성곽의 광장에서는 얼마나 많은 사건이 일어났을까. 오랜 세월 동안 이 자리를 지키며 그 사건들을 모두 목도해왔을 주변의 건축물들은 망각한 듯 무표정하게 서서 무심하게 침묵한다.

아직은 잘 알려지지 않아서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뜸한 만큼 유적 보존이 잘된 곳이지만 언젠가 관광지로 유명해지면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하게 될 것이다. 그런 때가 와도 오랜 세월을 담은 이 성곽도시가 고즈넉한 분위기를 지켜낼 수 있을까. 우려와 기대가 교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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