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보고 미래를 사색하다고즈넉한 정취 발산하는 국립서울현충원
현충원 묘역 사이의 통로.
매섭고 스산한 찬바람에 옷깃을 여미며 언 손을 녹이다가 포근한 곳을 걷고 싶다는 생각이 스친다. 지난 가을은 유독 극단적이고 변덕스런 날씨 변화가 많았다. 종잡을 수 없는 계절을 거치면서 서울의 겨울 정취를 눈과 귀에 담으며 새로 맞이할 봄을 향해 사색하면 어떨까. 4대문 안 고궁 부근을 제외하면 포근하면서 고즈넉한 정취를 느끼기에는 국립서울현충원(이하 현충원)이 적격이다.
모처럼 현충원에 가기 위해 지하철 9호선을 탔다. 주소지는 '서울특별시 동작구 현충로 210'으로 돼 있다. 지하철 9호선 동작역에서 내려 8번 출구로 나가면 정문에 도착한다. 정문 우측의 종합민원실에서 지도를 받아 산책하는 것을 추천한다. 42만 평이 넘는 언덕길이라 자칫 머릿속 그리는 지도로 걷다보면 낭패를 당할 수 있다.
종합민원실에서 다시 정문을 지나 좌측 만남의 집 쪽으로 올라가면 현충천을 건너는 구름다리가 보인다. 현충천은 서달산에서 발원해 현충원 관내를 흘러 반포천으로 합류하는 하천으로, 사시사철 형형색색의 분위기를 자아내 많은 이들이 선호하는 가벼운 산책코스이기도 하다.
현충천 상류로 올라가면 정국교, 정난교, 수충교 등의 다리도 있다. 구름다리를 건너면 현충지와 충혼승천상에 다다른다. 만약 지하철 4호선을 이용해 동작역 4번 출구로 나와 동문 입구로 들어서면 바로 충혼승천상이 눈에 띤다. 1985년 준공된 현충지는 원래 있던 웅덩이를 확장해 조성한 인공 연못이다.
연못 가운데에 섬을 만들고 가장자리를 자연석으로 장식해 자연미를 최대한 살렸다. 현충지 둘레에는 잔디와 화수목이 식재한 둘레길이 있어 담소를 나누며 걷기 안성맞춤이다. 그래서인지 현충지는 현충원 내 가장 수려하고 안락한 휴식처로 손꼽힌다.
현충원을 걷노라면 철저하게 관리한 자연경관이 시야에 들어온다. 도심이지만 현충원은 생태환경이 상당히 잘 보존되어 있어 천연기념물 243호인 붉은배새매를 비롯한 조류와 청설모, 다람쥐 등의 포유류 총 26종이 관찰된다. 뿐만 아니라 현충원 내에는 교목 73종과 관목 43종이 식재돼 봄과 여름에는 푸릇푸릇한 싱그러움을, 가을에는 알록달록한 운치의 장관을 이룬다.
현충원 주변에는 특히 겨울에 내방객이 늘어난다고 한다. 드넓은 공간에 자연이 잘 보존돼 있다. 눈이 오면 하얀 눈길이 드넓게 펼쳐진다. 자연 보존은 현충원이 50여 년간 관내 산림지역의 일반인 접근을 통제하고 인위적인 훼손을 금지했던 덕분이다. 현충원의 유려한 자연경관은 안정된 참배 환경을 제공하고, 무심결에 들린 내방객들에게도 나라 사랑과 우리 자연의 자긍심을 고취시킨다.
공작의 날개가 감싼 듯한 현충원
현충원의 이곳저곳을 거닐다 보면 이승만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력 묘역 사이에 창빈 안씨의 묘소가 눈에 띈다. 이곳은 1578년에 조성됐다고 한다. 원래 이 묘소는 1549년 양주시 장흥리에 조성됐다. 창빈 사후 태어난 손자인 하성군이 명종의 뒤를 이어 조선 14대 임금 선조가 된다.
조선왕조 최초로 후궁의 손자가 왕위에 오르다보니 선조는 적통성에 시달려야 했다. 선조는 조선에서 제일 좋은 명당을 수소문해 즉위 11년이 지난 1578년 지금의 자리로 할머니인 창빈 안씨를 이장한다. 낮고 순한 높이 179m의 서달산 능선에 포근하게 안겨 있는 형세인 현충원은 풍수지리상 명당 중의 명당으로 알려졌다.
서울 남서쪽은 해발 200m 이하의 낮은 산지가 공작이 날개를 펴고 있는 모습을 취하고 있는데, 서달산이 이 중심 공작의 머리에 해당된다. 서달산은 공작봉, 동작봉으로도 불린다. 공작의 날개가 병풍을 친 듯 현충원을 감싸고 있어 그 덕에 현충원은 사시사철 자연의 정수를 누릴 수 있는 셈이다. 역사서는 서달산을 '산수의 기본이 유정(有情)하고 산세가 전후좌우에 펼쳐져 흐르는 듯하여 하나의 산봉우리, 한 방울의 물도 서로 조화를 이루지 않은 곳이 없으며 마치 목마른 코끼리가 물을 마시는 형상'으로 기록한다.
대통령 묘역을 지나면 호국 영령의 명복을 비는 사찰이 눈에 띈다. 전통사찰 제92호로 지정된 호국지장사는 통일신라시대 도선스님이 창건했던 갈궁사를 모태로 한다. 고려 공민왕 때 보인스님이 폐허처럼 버려진 갈궁사 절터에 화강암을 지었다.
이후 화강암은 이장된 창빈 안씨 묘의 조포사찰(造泡寺刹) 화강사로 지정되었고 이후 1983년 국립묘지에 안치된 호국영령들이 지장보살의 원력으로 극락왕생하도록 기원하는 뜻에서 절 이름을 호국지장사(護國地藏寺)로 바뀌었다. 호국지장사에 오르면 저 멀리 한강까지 경치를 음미할 수 있다.
호국지장사에서 상도통문으로 나갈 수 있는데 출입문에서는 현충원 내부길과 외부 담장길이 나누어져 있으며, 이용자는 원하는 길을 선택하여 이용할 수 있다. 이 출입문에서부터 서달산 둘레길인 충효길 2코스(현충원 상도출입문 → 학수약수터 갈림길 → 현충원 사당출입문 → 극동아파트 갈림길 → 정금마을 갈림길 → 이수갈림길 → 동작역)로 동작역까지 내려갈 수 있다. 충효길 2코스는 2.6km로 약 50분정도 소요된다. 의미 있는 희생과 헌신의 공간을 자연과 어우러져 반나절 걸으며 많은 생각이 오간다.
일반인 접근을 50년간 통제한 자연환경
원래 현충원은 국군묘지로 조성됐었다. 해방 후 국군은 국지적 도발과 공비토벌 작전으로 사망한 전사자들을 서울 장충사에 임시로 안치했다. 서울 근교에 후보지를 물색하던 중 발발한 6·25전쟁으로 국군묘지 조성 논의는 무기한 연기됐다. 전몰 장병들이 늘어만 가자 묘지를 조성해야 한다는 여론이 다시 확산됐다.
묘지 후보지로는 경북 경주시 천북면이 유력하게 떠올랐지만 동해로 흐르는 가장 긴 강인 형산강의 범람 위험 때문에 경주 조성 계획은 전면 백지화됐다. 전국 10개 지역이 다시 검토 테이블에 올랐고 1953년 9월 최종적으로 지금 위치가 선정됐다.
처음엔 국군묘지로 출발했지만 1965년 국립묘지로 승격되어 애국지사, 경찰관, 향토예비군까지 국가를 위해 희생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국민의 이름으로 모시게 됐다. 2005년 '동작동 국립묘지'에서 '국립서울현충원'으로 명칭이 변경됐고 안장 대상자에는 소방공무원과 의사상자도 포함하도록 했다. 1954년 처음 시공할 때는 7만 2,000여 평 규모였다가 점차 광장 3만여 평, 임야 27만 6,000여 평, 공원행정지역 5만 4,000여 평 등을 마련해 지금의 모습으로 정돈됐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현충원을 모처럼 방문하니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문구가 떠올랐다. 이는 고대 로마 시대부터 자주 언급되던 문구로 국민들을 향한 말이 아니라 위정자들에게 날리는 일종의 경고장 역할을 해왔다. 돌고 도는 역사의 수레바퀴에서 과거 선대의 과오를 되풀이 하지 말고 미래를 준비해야한다는 의미다. 우리나라에서는 단재 신채호 선생이 일갈한 말로 알려져 있다.
필자는 유학생활 도중 제2차 세계대전의 격전지였던 이탈리아 안치오(Anzio)의 미군 전사자 묘지에서 이 문구를 접했다. 외국에서 싸우다가 숨진 7,800여 명의 전사자를 추모하며 이들의 희생이 반복되지 않도록 잊지 말라는 의미였다. 머나먼 미국에서 인구 6만의 작은 도시로 찾아와서 눈물을 머금으며 소중한 이를 추모하는 미국 노인들도 종종 만날 수 있었다.
추위를 피하려 묘지 휴게실을 찾은 어느 날, 그곳에 묻힌 동생을 찾아왔다는 노부부를 만났다. 그들은 '역사를 잊은 나라에게 미래는 없다' 벽에 걸린 문구를 가리키며 "과거는 잊지 말아야 하지만 미래를 위해 기억하는 것이고 내 동생도 그걸 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 날부터 호국영령이 잠든 묘지에서는 미래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 EDITOR: 황승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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