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고위험 임산부
건강한 출산은 준비에서 시작
여성들의 결혼과 출산이 늦어지면서 고위험 임산부의 증가가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인구 절벽이라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한 정부는 임신과 다자녀 출산을 적극 장려하며 다양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어렵게 얻은 아이가 병에 걸리거나, 심지어 생명을 잃는다면 그 어떤 정책도 무의미해질 수밖에 없다. 특히 결혼과 출산이 늦어지면서 '고위험 임산부'가 늘고 있고, 이로 인해 태아에게 문제가 생길 가능성 또한 높아지고 있다. 고려대 안암병원 산부인과 홍순철 교수와 함께 고위험 임산부가 유의해야 할 사항에 대해 알아봤다.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결혼 적령기는 20대 초·중반으로 여겨졌고, 20대 후반만 돼도 '노총각', '노처녀'라는 말이 따라붙었다. 30세 이전에 결혼하는 것이 당연한 흐름처럼 여겨졌던 시대였다. 그러나 지금은 30대는 물론이고, 40대 이후에 결혼하는 경우도 더 이상 드물지 않다. 이른바 '결혼 적령기'라는 말은 이제 의미가 퇴색했다.
결혼이 늦어졌다고 해서 반드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출산이 늦어지면서 동반되는 위험 요소들, 즉 고위험 임산부의 증가가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만 35세 이상의 임산부는 태아 염색체 이상과 임신성 고혈압, 심혈관 질환, 임신 합병증으로 인한 유산, 조산, 기형아 출산 등 다양한 문제를 겪을 가능성이 20대 여성보다 2~4배 이상 높다. 통계청의 2023년 인구 동향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출산 여성 중 만 35세 이상 고령 산모 비율은 36.3%로, 2018년보다 4.5%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홍순철 교수는 "현재 전체 임산부의 3분의 1 이상이 고위험 임산부에 해당하며, 질환을 조기에 발견하고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태아 기형이나 사망, 산모의 후유증 등 중대한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면서 "고위험 임산부가 건강한 아이를 출산하려면, 산모뿐 아니라 배우자도 함께 계획 임신에 동참하고, 의사의 지시에 따라 충실히 진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만 35세 이상, 만성질환 발생 빈도 증가
고위험 임산부는 산모나 태아에게 건강상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은 임신 상태를 뜻한다. 주요 위험 요인으로는 전자간증(임신중독증)과 임신성 당뇨병, 고혈압, 자궁 질환, 신장 질환, 심부전, 다태임신, 분만 전 출혈, 조기 진통, 전치태반, 자궁경부 무력증, 임신 중 복강 수술 등이 있다.
나이 역시 중요한 변수로, 만 35세 이상이 되면 당뇨, 고혈압, 만성질환의 발생 빈도가 증가해 고위험군으로 분류된다. 남편에게 유전질환의 가족력이 있거나 선천성 기형 등의 병력이 있는 경우도 고위험 임신에 해당한다.
임신 20주 이전에 고혈압이 있으면 만성 고혈압, 이후 발생하면 임신성 고혈압으로 구분된다. 이 중 전자간증은 고혈압과 단백뇨, 혈소판 감소, 간 기능 저하, 신기능 악화, 폐부종, 두통 등의 증상을 동반하며, 태아의 성장 부전이나 심할 경우 사망의 원인이 된다.
임신성 당뇨는 혈당 조절이 어렵게 되면 태아에게 과도한 당이 전달되어 거대아, 양수과다증, 태아 기형, 유산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고령 임산부나 흡연자의 경우 전치태반 발생률이 높아지며, 태아 발육장애 가능성도 커진다. 조산기를 동반하는 다양한 질환도 조기 진통과 함께 분만 과정에 위험을 더한다.
산전 검사는 모든 임산부를 대상으로 동일하게 시행된다. 고위험 임산부라고 해서 특별히 다른 검사를 받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본적인 산전 검사에서 이상 소견이 발견돼 고위험 임신으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다.
과거에는 위험도가 높다고 판단되면 양수검사나 융모막 검사처럼 태아의 유전 정보를 침습적으로 확인하는 검사가 시행됐다. 하지만 최근에는 35세 이상의 산모들을 중심으로 산모 혈액 속 태아 DNA를 분석해 다운증후군, 에드워드증후군, 파타우증후군 등을 확인하는 비침습적 기형아 검사(NIPT)가 선호되고 있다.
고위험 임산부에게 중요한 것은 '더 많은 검사'보다 '더 철저한 건강 관리'다. 당뇨가 있다면 혈당을, 고혈압이 있다면 혈압을, 조산기가 있다면 조기 진통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 관리가 필요하다. 갑상선 질환이 있다면 호르몬 치료를 통해 수치를 유지해야 한다.
고위험군이 아니더라도 산전 진찰은 표준화된 과정을 따른다. 산모는 임신 기간 동안 약 10회에 걸쳐 초음파 검사를 받게 되며, 이 과정을 통해 태아의 기형 여부, 발육 상태, 양수의 양 등도 세밀하게 확인할 수 있다.
임산부가 가장 주의해야 할 물질 중 하나는 알코올이다. 많은 이들이 임산부가 술을 마시지 않겠거니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임신 사실을 모르고 음주하는 경우가 많다. 통계에 따르면 임신 중 음주 경험이 있는 산모가 35%에 이른다.
일상에서 접하는 염색약이나 소화제, 감기약, 항생제 등은 비교적 안전한 편이지만, 술 한 잔은 태아에게 강력한 독성 물질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 우리 사회는 음주에 관대한 문화가 있어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탈모약의 경우 피나스트라이드 성분이 포함된 약은 태아에게 위험할 수 있으나, 모든 탈모약이 해당되는 것은 아니므로 약 복용 전 의사의 상담이 중요하다.
임산부에게 금기되는 약물 중 대표적인 것이 앤지오텐신전환효소 억제제(ACEi) 계열의 고혈압약이다. 이 약은 태아의 콩팥에 영향을 주어 양수 감소증을 유발할 수 있다. 다만 대부분의 산모는 임신 6~7주에 임신 사실을 인지하고 약 복용을 중단하므로, 태아의 콩팥이 형성되기 전이라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심혈관질환자에게 자주 처방되는 항응고제 와파린도 태반을 통과해 기형이나 유산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이 경우에는 헤파린으로 대체 치료가 가능하다.
또한, 임신성 당뇨병을 진단 받고도 약물 복용에 대한 걱정으로 처방된 약을 피하는 경우가 있는데, 조절되지 않은 혈당이 오히려 태아에게 더 큰 위험이 될 수 있다. 인슐린은 태아에게 안전한 약물로 분류되므로 필요 시 적극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또한 갑상선저하증이 있는 경우 태아의 뇌 발달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갑상선 호르몬 치료를 통해 정상 수치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계획 임신은 단순히 임신 시기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임신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모든 위험 요소를 사전에 점검하고 제거하는 준비 과정이다. 보통 임신 3개월 전부터 금주·금연을 실천하며, 엽산과 종합비타민 섭취가 권장된다. 임신 가능성이 있는 여성이라면 미리 임신 전 검진을 통해 갑상선 기능, 자궁근종, 난소 질환 등을 확인하고, 풍진이나 수두, B형 간염 항체가 없을 경우 예방 접종도 마쳐야 한다.
남편도 함께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자 형성에 약 두 달 반이 걸리는 만큼, 이 시기에 술과 담배, 약물 등 독성 물질을 피해야 건강한 임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 부부는 식습관과 생활 리듬이 비슷하기 때문에 공동의 건강 관리가 필수다.
예상 못한 임신이라면 지금부터가 중요
계획 임신을 하지 못했더라도, 임신이 확인된 이후부터는 반드시 생활 습관을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 찜질방, 사우나, 반신욕 등은 체온을 상승시켜 태아 단백질 변성과 중추신경계 이상, 식도폐쇄증, 배꼽탈장 등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삼가는 것이 좋다.
또한, 변비 완화 목적으로 복부에 뜨거운 찜질을 하는 행위도 피해야 하며, 민물고기와 육회, 덜 익은 고기는 톡소플라즈마 감염의 위험이 있으므로 반드시 익혀 먹어야 한다. 톡소플라즈마는 성인에게는 큰 문제가 없지만 태아에게는 치명적이어서 임신 중 감염 시 유산이나 사산, 선천성 기형을 초래할 수 있다. 엽산은 임신 전부터 복용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늦었더라도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이후부터 즉시 복용을 시작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임신은 여성이라면 누구나 가능한 일이지만, 건강한 출산을 위해선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특히 고위험 요인을 가진 경우에는 반드시 계획 임신을 통해 위험을 최소화해야 한다. 임신 3개월 전부터 엽산을 복용하는 것만으로도 절반은 준비를 마친 셈이며, 나머지 절반은 생활 습관과 배우자의 협조에서 완성된다. 건강한 아이를 만나기 위해서는 부부가 함께 책임지고 준비해야 하는 공동의 여정이라는 점을 잊지 않아야 한다.
고려대 안암병원, 권역모자의료센터 지정 고위험 산모·신생아 치료의 거점 병원으로 거듭나다
고려대 안암병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권역모자의료센터로 지정되면서, 서울 동북권역의 고위험 산모와 중증 신생아 치료에 있어 핵심 거점 병원으로서의 책임을 맡게 됐다. 이번 지정은 기존 고위험산모·신생아통합치료센터의 기능을 더욱 강화하고, 보다 체계적이고 신속한 주산기 진료체계를 갖추기 위한 정책적 조치다.
권역모자의료센터는 고위험 임산부와 신생아를 위한 최종 치료기관으로서, 서울 내에서는 고려대 안암병원을 비롯해 고대 구로병원, 서울대병원, 삼성서울병원이 각각의 권역을 담당하고 있다. 그중 고려대 안암병원은 서울 동북부 지역을 책임지는 기관으로, 강북·노원·성북·도봉 등 인구 밀집 지역 내 응급 산과 진료의 중심축이 된다.
이 센터의 주요 역할은 고위험 산모와 중증 신생아의 집중 치료뿐 아니라 인근 병원과의 응급 이송체계 및 진료 연계망 구축을 통해 지역 의료기관 간 협력을 촉진하고, 진료의 표준화와 질 향상을 도모하는 데 있다. 단순한 병상 제공을 넘어, 환자 중심의 빠르고 안전한 처치를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 중심의 의료 플랫폼이라 할 수 있다.
홍순철 교수(고려대 안암병원 권역모자의료센터장)는 "이번 지정은 단순히 간판을 바꾼 것이 아니라 전국 어디서든 동일한 수준의 안전한 분만과 신생아 치료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국가 의료 기반 강화의 일환"이라며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고위험 산모들에게 더욱 빠르고 전문적인 치료를 제공할 수 있게 된 점에서 매우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실제로 고려대 안암병원은 지난 1년간 총 621명의 고위험 임산부를 외부 병원에서 전원받아 치료했으며, 고위험산모중환자실(MFICU)과 신생아중환자실(NICU)을 효율적으로 운영해 '응급실 뺑뺑이' 문제 해소에 기여해 왔다. MFICU는 조산, 임신중독증, 조기 양막파열 등 고위험 임신 상황에서 산모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중요한 공간이며, NICU는 조산아, 저체중아, 선천성 질환을 가진 신생아의 생존율을 높이는 데 필수적인 시설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아기를 낳을 병원을 찾아 구급차를 타고 서울 시내 병원을 전전하는 '응급실 뺑뺑이', 병원 도착 전 구급차에서 분만이 이루어지는 '구급차 분만' 같은 안타까운 현실을 겪어 왔다. 이번 권역모자의료센터 지정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현실적이고도 결정적인 대책으로, 향후 임산부와 태아의 생명 안전을 위한 지역 거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것으로 기대된다.
앞으로 고려대 안암병원은 고위험 산모와 신생아를 위한 예방부터 응급, 회복까지 전 단계를 아우르는 통합적 진료 시스템을 더욱 촘촘히 구축하고, 의료기관 간 협업을 통해 보다 신속하고 효과적인 치료를 제공할 계획이다. 모든 생명이 안전하게 태어날 수 있도록, 그리고 산모가 안심하고 출산할 수 있도록, 안암병원은 계속해서 노력해 나갈 것이다.
- EDITOR: 김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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