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밀의료로 여는 비뇨기암 치료 새 지평
고령 환자부터 유전자 맞춤 치료까지
고려대 구로병원 혈액종양내과 이경민 교수는 "과거에는 '암'이라는 단어 자체가 곧 사망을 의미했지만, 이제는 완치보다는 '관리'의 개념으로 접근할 수 있는 시대"라고 말했다.
고령화와 조기 진단 기술의 발전으로 비뇨기계암 환자가 꾸준히 늘고 있다. 치료 전략은 점점 더 정교해지고, 환자 개개인의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항암치료'가 중요한 시대다. 고려대 구로병원 혈액종양내과 이경민 교수는 유전체 기반 정밀 의료와 환자 중심 진료를 바탕으로, 비뇨기암 치료의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가고 있다.
최근 10년간 전립선암과 신장암, 방광암 등 비뇨기계암 환자 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고령화와 서구화된 식습관, 조기 진단 기술의 발달은 암의 양상뿐 아니라 치료 방식까지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다. 이경민 교수는 이 변화의 중심에서, 환자 한 명 한 명에게 가장 적합한 치료법을 찾기 위한 '정밀의학'을 실천하고 있다.
이 교수는 비뇨기계암을 포함한 다양한 고형암 환자의 항암치료를 담당하며, 병원 내 정밀유전체임상의학센터에서 유전자 기반 치료 전략 개발에도 참여하고 있다. 그는 "과거에는 '암'이라는 단어 자체가 곧 사망을 의미했지만, 이제는 완치보다는 '관리'의 개념으로 접근할 수 있는 시대"라며 "약제가 다양해졌고, 환자 상태에 따라 맞춤형 치료도 가능해졌다. 중요한 건 환자와 의료진이 소통하고 함께 길을 찾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비뇨기계암은 고령층에서 발병률이 높은 암이다. 특히 전립선암은 남성 암 중에서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 교수는 그 배경으로 고령화와 건강검진을 통한 조기 진단의 증가를 꼽는다. "10년 전만 해도 75세 이상이면 항암치료가 가능한지부터 고민해야 했지만, 지금은 85세 환자에게도 항암치료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기대수명이 늘어나면서 항암 기준도 자연스럽게 올라간 거죠."
늘어나는 고령 환자, 달라진 항암 기준
그렇다면 고령 환자가 항암치료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일까. 이 교수는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독립적인 일상 생활이 가능한가'를 꼽는다. 그는 "혼자서 식사하고 화장실을 다녀올 수 있을 정도면 항암치료가 가능하다"며 "쉽게 말해 나이 자체보다 환자의 체력과 생활 자립도가 더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전립선암은 치료 전략의 폭이 과거보다 훨씬 넓어졌다. 전립선암은 남성호르몬을 억제하는 호르몬 요법이 기본 치료로, 전통적으로는 남성호르몬 억제 주사를 통해 테스토스테론 생성을 저해했지만, 최근에는 안드로겐 수용체(AR) 자체를 차단하는 약물이 함께 사용되면서 더 강력한 암세포 억제가 가능해졌다.
이 교수는 "전립선암은 남성호르몬에 의존해 자라기 때문에 호르몬 억제만으로도 상당한 치료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생기는 내성이다. 이 교수는 "그래서 안드로겐 수용체 자체를 직접 차단하는 약제가 큰 역할을 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새로운 치료제들이 내성 단계를 지연시키고 생존율을 높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립선암은 유전자 기반 치료의 발전도 활발한 암종 중 하나다. 특히 BRCA1 또는 BRCA2 유전자에 변이가 있는 환자에게는 PARP 억제제인 올라파립이나 루카파립이 치료 옵션이 될 수 있다. 이들 약물은 암세포의 DNA 복구 능력을 차단해 선택적으로 암세포를 죽이고, 정상세포에는 영향을 덜 주는 장점이 있다. 기존 항암제보다 부작용이 적고,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최근 주목받는 또 다른 치료법은 전립선특이막항원(PSMA)을 표적으로 하는 방사성 치료다. 대표적으로 '루테슘-177-PSMA-617'이라는 약제가 있으며, PSMA가 발현된 전립선암 세포에 방사선을 전달해 암세포를 파괴한다. 기존 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전이성 전립선암 환자에서 생존 기간 연장 효과를 보이고 있으며, 미국과 유럽에서는 이미 승인을 받은 상태다. 국내에서도 도입이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 이 교수의 설명이다.
"전립선암은 4기라고 해도 치료를 잘 따라오면 예후가 나쁘지 않습니다. 완치를 기대하기보다는 고혈압이나 당뇨처럼 꾸준히 관리하는 질환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암에 대응할 수 있는 무기들이 계속 늘고 있기 때문에 조기에 진단받고 적극적인 치료 전략을 세우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신장암 치료의 중심은 기존 세포독성 항암제에서 면역항암제와 표적치료제로 옮겨가고 있다. 면역관문억제제인 니볼루맙, 이필리무맙과 티로신 키나제 억제제(TKI)의 병합 요법은 전이성 환자의 생존율 향상에 유의미한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
이 교수는 "신장암은 면역 환경이 복잡한 암종으로 면역 기반 치료가 효과적인 경우가 많다"며 "VHL 유전자 변이를 타깃으로 한 HIF-2a 억제제 '벨주티팡'이 미국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으며, 새로운 치료 옵션으로 주목받고 있다"고 말했다.
방광암은 재발과 전이 위험이 높은 공격적인 암종이다. 과거에는 백금 기반 세포독성 항암제가 표준 치료였지만, 최근에는 면역항암제와 항체약물접합체(ADC) 등 다양한 신약이 치료에 활용되고 있다. 이 교수는 "ADC는 항체에 항암제를 결합해 암세포 표면에 선택적으로 작용하는 치료 방식"이라며 "미사일처럼 정확히 암세포를 겨냥할 수 있어 기존보다 생존율을 2배 가까이 높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설명했다.
비뇨기암 항암치료의 또 다른 변화는 정밀의료의 확장이다. 같은 방광암이나 전립선암이라도 유전자가 다르면 전혀 다른 질환으로 간주해야 하는 시대가 된 만큼, 환자 개인의 유전적 특성에 맞춘 치료 전략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고려대 구로병원은 2023년 '정밀유전체임상의학센터'를 설립하고, 차세대염기서열분석법(NGS)을 통해 수백 개 유전자를 한 번에 분석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특정 유전자 변이 여부에 따라 적절한 신약 임상시험을 연결하거나, 승인을 받은 표적치료제를 사용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예를 들어 방광암 환자에게 FGFR3 유전자 변이가 있다면 FGFR 억제제인 '에르다피티닙'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표준 치료만 가능했지만 이제는 유전자 정보를 기반으로 훨씬 정교한 치료가 가능합니다."
과거 항암치료는 구토, 탈모, 체력 저하 등 심각한 부작용을 수반하는 치료로 여겨졌지만, 최근에는 이를 조절할 수 있는 약물과 외래 기반의 부작용 관리 시스템이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표적치료제나 면역항암제는 기존 항암제보다 부작용이 적은 경우가 많고, 구토 방지제나 식욕 촉진제 등 약제도 다양화되고 있다.
이 교수는 "요즘은 구토 방지제나 식욕 촉진제도 잘 나와 있고, 외래 진료를 통해 부작용을 조절하면서 치료 효과를 높이는 방향으로 항암치료가 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환자와 함께 결정하는 치료 여정
항암제의 선택지가 많아진 만큼 치료 전략도 다양해졌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환자 스스로의 의지다. 이 교수는 "아무리 좋은 약도 환자가 원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며 "그래서 항상 충분한 설명과 상의를 통해 치료 결정을 함께 내린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고령 환자에 대해서도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접근보다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치료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80대 중반이 넘어도 혼자 거동하고 식사하실 수 있다면 항암치료를 충분히 견디실 수 있으니, 연령보다 중요한 건 '환자의 전반적인 기능 상태'라는 것이다.
이 교수는 끝으로, 암 치료의 전략이 점점 정교해지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환자와 의료진이 함께 고민하고 소통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오늘날 암 치료의 선택지는 많아졌고, 정밀의료는 환자 개개인의 특성에 맞춘 전략을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환자와 함께 고민하고 소통하며, 가장 적합한 치료를 찾아가는 것이 의료진의 역할입니다. 암 진단을 받은 분들은 지나치게 두려워하지 말고, 일단 병원을 찾아 의료진과 함께 방향을 모색하셨으면 합니다."
- EDITOR: 박정연
- PHOTO: 지호영, 셔터스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