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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고독과 열망
봄의 무대에 피어나다

봄의 설렘이 피어나는 이 계절, 공연과 함께 따뜻하고도 극적인 봄날의 아름다움을 만끽해보는 건 어떨까.
연극 <헤다 가블러>는 인간 내면의 복잡하고도 예측 불가능한 심리를 탐구하며 깊은 사유를 불러일으킨다. 반면, 뮤지컬 <팬텀>은 새싹처럼 생기 넘치는 젊음의 열정과 에너지를 무대 위에 활짝 피워낸다. 전혀 다른 성격의 두 작품은 봄이라는 공통된 계절의 배경 속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관객을 매혹시킨다.

총성 속에서 피어난 침묵 연극 '헤다 가블러'

헤다 가블러 주인공 이영애(1)
헤다 가블러 주인공 이혜영(1)

헤다 가블러 두 주인공 이영애(왼쪽)와 이혜영.

2025년 봄, 두 명의 배우 이영애와 이혜영이 각기 다른 해석으로 '헤다'를 연기하며 관객과 만난다. 연극 '헤다 가블러'는 이들의 열연으로 5월 공연계를 풍성하게 채운다.

세계적인 극작가 헨리크 입센(1828~1906)의 대표작인 '헤다 가블러'(1890)는 가부장적 사회 속에서 억압받는 여성의 내면적 갈등과 자유에 대한 갈망을 깊이 있게 그려낸 작품이다. 19세기 말 노르웨이 사회에서 여성은 가정에 국한된 역할만을 강요받았으며, 정치나 경제에 있어선 독립적인 권리를 누릴 수 없었다. 입센은 이러한 현실을 고발하듯, 헤다라는 인물을 통해 개인의 욕망과 사회 구조의 충돌을 날카롭게 그려냈다.

억압과 자유를 향한 갈망

입센의 이 작품은 '인형의 집'(1879)과 함께 당시 노르웨이 사회에서 여성의 자율성과 권리에 대한 논의를 촉발시켰고, 이는 1913년 여성 참정권이 인정되는 역사적 변화로 이어졌다. 그래서 헤다 가블러는 단순한 희곡을 넘어, 현대 페미니즘 논의에서도 중요한 문학적 자산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헤다 가블러 포스터(1)
헤다 가블러 주인공 이영애(2)

이영애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LG아트센터의 헤다 가블러 포스터와 컨셉 사진.

작품 속 헤다는 가블러 장군의 딸로, 안정된 미래를 위해 학자 테스만과 결혼하지만 이내 권태와 실망을 느낀다. 그러던 중 옛 연인이었던 뢰브보르그가 '볼품없다' 여겼던 테아의 도움으로 성공하는 모습을 보자, 헤다는 질투심에 사로잡혀 복수를 결심한다. 그녀는 뢰브보르그를 몰아세우고 자살을 종용하며, 자신의 권위와 통제를 되찾으려 한다. 그러나 그녀의 계략은 곧 드러나고, 결국 모든 것을 잃은 헤다는 자신에게 총을 겨눈다.

헤다 가블러는 자유와 권력을 갈망하지만 결국 좌절하는 한 인물의 내면을 통해, 인간의 복잡한 심리와 파괴적 욕망을 날카롭게 탐구한다. 무대는 단지 이야기를 전달하는 공간을 넘어, 헤다의 심리적 풍경을 그리는 캔버스가 된다. 겉으로는 우아하지만 내면엔 소용돌이치는 욕망과 불안이 흐른다.

두 배우, 서로 다른 '헤다'

32년 만에 연극 무대에 선 이영애는 섬세하고 절제된 연기로 헤다의 고요한 불안을 표현한다. 그녀가 그려낸 헤다는 크리스털처럼 아름답지만, 작은 충격에도 금이 갈 듯한 위태로운 긴장감을 지닌다.

반면, 이혜영은 2012년 국립극단 헤다 가블러에서 보여준 바와 같이, 강렬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로 파괴적 본성의 헤다를 다시 무대에 불러온다. '한국의 첫 헤다'로 불리는 그녀는 13년 만에 다시 동물적 감각으로 헤다를 연기하며, 파멸의 깊이를 실감나게 보여준다.

헤다 가블러 포스터(2)
헤다 가블러 주인공 이혜영(2)

이혜영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국립극단의 헤다 가블러 포스터와 컨셉 사진.

이영애가 출연하는 헤다 가블러는 리처드 이어의 현대적 각색본을 바탕으로 세련된 무대 연출과 함께 보다 대중적이고 감각적인 해석을 시도한다. 반면, 이혜영이 출연하는 국립극단의 무대는 초연 당시의 깊이 있는 해석을 이어가며,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는 무대를 선보일 예정이다.

따뜻한 햇살 아래 피어나는 꽃처럼, 두 헤다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관객의 감정을 사로잡는다. 헤다의 카리스마와 매력은 불꽃처럼 타오르며, 그녀의 파괴적 선택은 폭풍우처럼 몰아친다. 하지만 그 속에는 시대를 넘어 현대 관객들에게도 깊은 공감을 이끌어내는 감정의 결이 숨어 있다. 이 작품은 단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닌, 지금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삶과 자유, 인간 본성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LG아트센터의 '헤다 가블러'

  • 일정 2025년 5월 7일(수) ~ 2025년 6월 8일(일)
  • 장소 LG아트센터 서울 LG SIGNATURE 홀
  • 예매 멜론 티켓(1599-0042)

국립극단의 '헤다 가블러'

  • 일정 2025년 5월 8일(목) ~ 2025년 6월 1일(일)
  • 장소 명동예술극장
  • 예매 인터파크(1544-1555)

세상이 무너진 순간, 너의 음악이 되리라 뮤지컬 '팬텀'

팬텀 공연 장면(1)
2021 팬텀, 팬텀의 푸가 파트2.

작품성 하나로 흥행의 광풍을 일으키며 대작의 반열에 오른 뮤지컬 '팬텀'이 다시 무대로 돌아왔다. 이 작품은 1910년 출간된 가스통 르루의 소설 '오페라의 유령'을 원작으로,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동명 뮤지컬과 비슷한 시기에 제작됐지만, 이야기의 방향은 완전히 다르다. 팬텀은 주인공 팬텀(에릭)의 내면과 과거에 집중하며, 비극적 삶 속에서 꽃피는 사랑과 치유, 그리고 숭고한 희생의 서사를 감성적으로 풀어낸다.

EMK뮤지컬컴퍼니 엄홍현 대표는 "어두운 지하 오페라에서 살아가는 에릭에게 크리스틴은 음악이자 빛 같은 존재"라며 "팬텀 역시 어두운 시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음악을 통해 위로를 건네고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순간에도 음악은 우리에게 빛이 되어 다가온다. 팬텀은 바로 그런 음악적 위로이자 치유의 무대다.

은밀한 공간에서 탄생한 비극

무대의 배경인 가르니에 오페라극장은 나폴레옹 3세의 도시 재개발 계획에 따라 막대한 비용을 들여 건립된, 당시 최고의 화려함을 자랑하는 공연장이다. 소설 '오페라의 유령'의 작가 가스통 르루는 프리랜서 기자 시절, 이 오페라극장의 구석구석을 취재하며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공사 중 지하에 계속 고이는 물로 인해, 길이 50m, 폭 25m, 깊이 3m에 달하는 거대한 저수조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르루는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화려한 극장의 지하라는 은밀한 공간에 유령처럼 숨어 사는 인물을 탄생시켰고, 그것이 바로 팬텀이다.

그는 1909년부터 1년간 프랑스 일간지 '르 골루아'에 오페라의 유령을 연재했고, 이후 소설로 출간했으나 초반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이후 영화로만 다섯 차례, 그리고 두 가지 다른 버전의 뮤지컬(오페라의 유령, 팬텀)로 전 세계 무대에 오르며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뮤지컬 팬텀 메인 포스터
뮤지컬 팬텀 메인 포스터.
뮤지컬 팬텀 장면(2)
2021 팬텀, '그 어디에'를 부르는 카이.

줄거리를 살펴보면, 팬텀 에릭은 태어날 때부터 괴물 같은 외모로 인해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지하 세계에서 외롭게 살아간다. 따뜻한 가족의 사랑을 받지 못한 에릭에게 음악은 유일한 위안이자 생존의 이유다. 그는 오페라 가수 지망생 크리스틴을 우연히 만나 연민과 사랑을 느끼고, 자신의 전부를 바쳐 그녀를 키워낸다. 크리스틴은 그의 도움으로 오페라계의 샛별로 떠오르지만, 에릭의 외모에 대한 두려움은 결국 두 사람의 관계를 비극으로 몰고 간다.

에릭은 위기에 빠진 크리스틴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치며 구해내지만, 그의 참담한 외모에 놀란 크리스틴은 끝내 그를 떠나고 만다. 절망한 에릭은 복수와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다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다. 마지막 순간, 참회하듯 찾아온 아버지의 존재는 에릭의 상처를 더욱 깊게 한다.

정교한 감정과 음악, 그리고 묵직한 울림

극작가 아서 코핏은 '에릭은 왜 지하에서 살게 되었는가?', '그는 왜 크리스틴을 사랑했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해, 모든 인물의 감정선에 개연성을 부여했다. 작곡가 모리 예스톤은 캐릭터의 진정성이 담긴 멜로디를 만들기 위해, '내가 그 상황이라면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를 끝없이 자문했다고 한다. 그 결과 팬텀의 음악은 마법처럼 감정을 자극하고, 각 장면은 섬세하면서도 극적인 밀도로 관객을 압도한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이 로맨스와 미스터리가 중심이라면, 팬텀은 캐릭터 '에릭' 그 자체에 집중해 그의 인간성과 내면의 상처를 입체적으로 묘사한다. 특히 지하 세계의 묘사와 가면 디자인도 인상적이다. 무려 30여 개의 다양한 가면(기본, 눈물, 태양 등)이 등장하는데, 이는 캐릭터의 심리 상태를 시각적으로 상징하는 장치로 작용하며 극의 몰입도를 높인다.

뮤지컬 팬텀 장면(3)
2016 팬텀, '나의 빛, 어머니'를 부르는 박은태(왼쪽)와 이지혜.
뮤지컬 팬텀 장면(4)
2016 팬텀, 팬텀역을 맡은 박은태.

한국에서 팬텀은 2015년 초연 당시, 이미 오페라의 유령이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고 있는 상황에서 도전적인 무대였다. 같은 원작 소설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 우려도 있었지만, 팬텀은 단단한 작품성 하나로 흥행에 성공하며 단숨에 대작의 자리를 차지했다.

이번 시즌은 초연 1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으로, 전 시즌보다 공연 시간을 줄이고 전개에 속도감을 더해 몰입도를 끌어올릴 예정이다. 빠르게 흘러가면서도 감정의 깊이는 더 깊어진 팬텀의 귀환은, 상처받은 마음에 위로와 공감을 전하는 따뜻한 선율로 다시 한번 관객의 마음을 두드린다. 뮤지컬 팬텀은 단순한 비극의 이야기를 넘어, 인간의 고독과 상처, 그리고 사랑의 회복을 다룬 서정적인 치유의 무대다. 세상이 무너지는 순간, 우리에게 음악이 되고 희망이 되어줄 팬텀은 지금, 가장 어두운 곳에서 가장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 일정 2025년 5월 31일(토) ~ 2025년 8월 11일(월)
  • 장소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 예매 인터파크(1544-1555)
  • EDITOR: 황승경
  • 이미지 제공: LG아트센터 서울, 국립극단, ㈜EMK뮤지컬컴퍼니, 최문혁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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