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강한 생명 '이른둥이',
"그냥 살리는 게 아니라 잘 살려야죠"
이른둥이는 병이 있는 아이가 아니라, 세상에 먼저 나온 아이들이다.
작고 연약한 생명, 이른둥이. 아직 세상에 나올 준비가 끝나지 않은 채 태어났지만, 누구보다 강한 생명력을 품고 있다. 고려대 안암병원 신생아집중치료실(NICU) 이주영 교수는 이 작은 생명을 단지 '살리는 것'이 아니라, '잘 살리는 것'을 위한 길을 찾고 있다. 가족과 함께하는 회복, 정서와 뇌 발달을 함께 품는 치료, '가족 중심 케어'라는 따뜻한 의학을 20년째 실천해 온 이 교수에게 그 길의 의미를 들어봤다.
서울 성북구 고려대 안암병원 신생아집중치료실(NICU) 한켠. 작은 인큐베이터 안에서 고른 호흡을 내뱉는 아이들이 있다. 재태기간 37주 미만에 태어난 고위험 신생아, 이른바 '이른둥이'들이다.
이주영 교수는 이 작은 생명들을 20년 넘게 곁에서 지켜봐 왔다. 그에게 이른둥이 진료는 단지 생존율을 높이는 일이 아니다. 어떻게든 '살리는 것'을 넘어, '잘 살리는 것'이 무엇인지 묻고 실천해 온 시간이기도 했다. 이 교수는 "이른둥이는 병이 있는 아이가 아니라, 세상에 먼저 나온 아이들"이라며 "조금 더 보살핌이 필요한 생명"이라고 말한다.
이른둥이는 아직 폐와 장기, 면역체계가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상태로 태어난다. 출생 직후부터 인공호흡기와 중심정맥관, 각종 센서에 의존하며 치료를 시작한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 바로 태어나는 순간부터 부모와 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인큐베이터 안에서 인공호흡기와 중심정맥관, 각종 센서에 둘러싸인 아이들은 태교는커녕 차가운 기계 소음과 반복되는 시술로 인해 정서적 자극을 거의 받지 못한 채 치료에 들어가는 셈이다. 이 교수는 "이 시기는 정서 발달과 뇌 발달이 결정되는 시기인데 외부 자극이 아이의 정서에 큰 영향을 준다"고 지적한다.
최근 고령 산모의 증가와 난임 시술 확대 등의 영향으로 이른둥이 출산은 꾸준히 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조산율은 2011년 6.0%에서 2021년 9.2%까지 증가했지만, 이들을 위한 치료 인프라와 돌봄 체계는 여전히 미흡한 실정이다.
'가족중심케어'로 아이 정서 관리해야
이 교수는 이 문제의 해답을 '기술'이 아니라 '가족'에서 찾았다. NICU에서 진짜 회복을 위해 필요한 것은 생명을 살리는 장비와 처치만이 아니라, 부모와 아이 사이의 교감이라는 것이 그의 믿음이었다. 그는 국내 최초로 대학병원 신생아중환자실에 '가족실'을 도입하고, 단순한 면회를 넘어 부모가 직접 아이를 안고 돌보는 '캥거루케어'의 확대를 시도했다.
"하루 30분 면회로는 부족합니다. 부모가 아기를 품고, 감각을 느끼고, 목소리를 들려주는 그 시간이야말로 회복의 시간이에요. 북유럽에선 이미 20년 전부터 보편화돼 있죠."
핀란드 연수를 통해 '제로 세퍼레이션(Zero Separation)' 개념을 익힌 그는 귀국 후 곧바로 가족중심케어 개념을 현장에 적용했고, 의료진 교육 프로그램까지 자체 개발했다. 이 교수는 "그냥 살리는 게 아니라 잘 살려야 하는 시대"라며 "정서와 뇌의 최적 발달은 부모의 사랑과 참여가 함께할 때 가능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국내에는 아직 낯선 개념이다. 가족중심케어를 실행하기 위한 제도적·물리적 기반은 여전히 미흡하다. 이 교수는 "아직 대부분 병원은 부모 면회를 매우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가족실의 개념도 잘 모르며, 프라이빗한 공간에서 캥거루케어를 하는 것 조차 어렵다"면서 "이른둥이 치료를 단순한 의료 기술의 문제로 보지 않고 생애 첫 여정을 가족과 함께 치료하는 과정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고려대 안암병원 NICU는 아직 공간의 제약과 의료진 훈련의 한계로 인해 가족중심케어를 전면적으로 도입하지는 못한 상태다. 현재는 캥거루케어만 제한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이 교수는 가족중심케어의 필요성과 효과를 과학적으로 입증하기 위한 코호트 연구를 이미 시작했다.
연구는 부모와 아이의 접촉 빈도, 정서 발달, 입원 기간 등 다양한 요소를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방식으로 진행 중이다. 그에 따르면, 가족중심케어는 뇌신경 발달과 정서 안정, 면역력 향상, 수유 능력 개선 등에서 효과가 입증되고 있다. 이 교수는 "피부 접촉은 도파민과 세로토닌 같은 호르몬을 분비시켜 아이의 뇌 발달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가족과의 진솔한 소통도 중요하다. 이 교수의 설명이다. "저는 부모에게 모든 과정을 오픈합니다. 솔직한 소통은 오히려 신뢰를 쌓고, 치료 과정의 파트너가 되는 계기가 되죠. 부모가 아이 이름을 불러주고, 손을 잡아주는 것만으로도 치료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이른둥이는 면역체계와 각 장기가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상태로 태어나기 때문에, 출생 직후부터 집중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호흡곤란증후군, 기관지폐이형성증, 뇌실내출혈, 괴사성 장염, 미숙아 망막병증, 청각 손실 등 다양한 건강 문제가 동반된다. 특히 출생 체중이 1000g 이하이거나 임신 주수가 28주 미만인 초극소 저체중 미숙아는 생존 자체가 도전이 된다.
하지만 의료 기술의 발전으로 생존률은 크게 향상됐다. 이 교수는 "80년대에는 1000g 미만의 아이 중 단 10%만 생존했지만 지금은 기술적으로 80% 이상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고려대 안암병원은 정부 지정 '권역모자의료센터'로 NICU 전문 인력과 설비를 꾸준히 확충하고 있다. 이 교수에 따르면, 현재 안암병원 NICU에는 신생아 전문의 8명이 상주하며, 교수와 펠로우, 입원전담전문의가 24시간 근무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전국에서도 손에 꼽힐 만큼 충실한 인력 구성이다.
이 교수의 목표는 단순한 의료 인프라 확충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가족중심케어를 가능케 하기 위한 NICU 구조 개선도 장기적 과제로 삼고 있다.
신생아집중치료실은 미숙아 등 고위험 신생아를 집중적으로 치료하는 공간이다. 이른둥이는 체온 유지, 호흡, 영양 섭취 능력이 미숙하기 때문에 24시간 밀착 관리가 필요하다. 생체 활력 징후를 모니터링하고, 주사나 튜브로 영양과 약물을 공급하며, 인큐베이터와 호흡 치료를 통해 안정된 환경을 제공한다. 또한 혈액검사, 영상검사 등을 통해 건강 상태를 지속적으로 평가하고, 필요 시 각 소아 전문 진료과와 협진하게 된다. 이 교수는 이 공간에 가족이 함께 머물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싶어 한다.
"부모가 24시간 머무를 수 있는 가족실이 갖춰진다면, 부모가 자유롭게 아기 옆에 있을 수 있고 아기 케어에 참여하고 치료 결정에 동참하면서 아기의 회복에 큰 도움이 됩니다. 뿐만 아니라 부모 자신도 부모됨을 경험하며 아기와의 분리로 인한 우울감은 감소하고 퇴원 이후의 아기 케어 자신감은 상승할 겁니다."
이른둥이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 중요
이 교수는 의료진 교육에도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핀란드에서 도입한 '가족중심케어 의료진 교육 프로그램'을 국내에 번역하고, 전국 의료진을 대상으로 한 교육 체계 확립에 나서고 있다.
최근에는 이 분야 석학인 리사 레토넨 핀란드 투르쿠대학교 교수를 고려대 안암병원에 초청해 국내 의료진과의 교류 자리도 마련했다. 이 교수는 "가족중심케어는 보호자에게만 좋은 게 아니라 의사와 간호사에게도 큰 힘이 된다"면서 "부모와 라포가 생기고, 같은 목표를 공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른둥이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이른둥이는 사회가 함께 키워야 할 아이들"이라며 "작고 연약하게 태어났지만, 씩씩하게 어려운 과정을 견뎌내고 회복하고 성장하는 아이들이다. 건강하게 자라 사회 구성원이 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냥 살리는 것이 아니라 잘 살리는 게 중요하다. 이른둥이를 위한 의료의 방향은 분명하다. 이제는 가족중심케어가 새로운 표준이 돼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대한신생아학회는 10여 년 전 시민 공모를 통해 '이른둥이'라는 명칭을 공식화했다. '미숙아'나 '조산아'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벗고, 작지만 성장 가능성이 큰 존재로서 새 이름을 부여한 것이다. 이 교수는 진료 현장에서 느낀 감동의 순간을 이렇게 회고했다.
"분만장에서 공포와 두려움에 떠는 산모 손을 잡고 '아기를 살리기 위해 제가 최선을 다할게요'라고 말하고 나서, 그 아기가 잘 살아낼 수 있도록 수 주 또는 수 개월을 매일매일 진찰하고 고민하는 동안 어느새 아기가 포동포동해져서 집으로 갈 준비를 하게 되면 그간의 피로가 싹 풀립니다. 그만한 보람이 또 있을까요."
- EDITOR: 박정연
- PHOTO: 홍태식, 셔터스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