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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작은 생명을 위한 가장 큰 협력"
고위험 태아 다학제 진료의 최전선

안기훈 교수(1)

고려대 안암병원 산부인과 안기훈 교수(오른쪽 가운데)가 다른 과 의료진들과 함께 한 임산부와 남편에게 태아 상태를 설명하고 있다.

한 생명이 세상에 오기까지의 여정에는 예기치 못한 변수들이 동반되곤 한다. 특히 태아의 발달 과정에서 이상이 발견되면, 그 작은 생명을 지켜내기 위한 의료진의 본격적인 노력이 시작된다. 고려대 안암병원 산부인과 안기훈 교수는 바로 그 최전선에서 고위험 태아의 생명을 지키고 있다. 그는 산부인과 전문의로서 태아의 질환과 기형을 진단하고, 필요 시 산전 수술까지 수행하는 '모체태아의학(Maternal-Fetal Medicine)' 분야를 이끌고 있다.

안기훈 교수는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이 분야의 중요성을 먼저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임신 중 발견되는 다양한 고위험 요인을 진단하고 치료한다"며 "조산, 임신중독증, 임신성 당뇨부터 태아 기형, 반복 유산, 태아 사망까지 다양한 문제가 있지만, 특히 일반 산모보다는 고위험 산모, 그중에서도 태아 자체의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산부인과 진료는 임산부뿐 아니라 자궁 안 태아까지, 두 생명을 동시에 지켜야 하는 만큼 책임이 크다. 산모의 산소와 영양분은 탯줄을 통해 태아에게 공급되며, 태아가 만들어낸 이산화탄소와 노폐물은 다시 탯줄을 통해 산모에게 전달된다. 태아 역시 성인과 유사한 대사와 순환 과정을 거치며 생명을 유지하는 존재인 것이다. 따라서 양수검사나 탯줄 혈액검사를 통해 태아의 상태를 직접 확인하고, 필요에 따라 태아 수혈 등 적극적인 치료도 가능하다.

안 교수는 "임신 주수에 비해 성장이 현저히 지연된 태아, 장기 기형, 유전자 이상, 심장 기형이나 척추이분증 등 다양한 유형이 포함된다"며 "일부는 자궁 내에서 수술이나 시술로 치료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고령 임신이 늘어나는 가운데, 고위험 태아에 대한 정밀한 진단과 다학제적 접근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태아기형, 다양한 장기에서 종류도 천차만별

임신 중에 발견되는 태아의 이상은 그 종류와 범위가 매우 다양하다. 심장의 구조에 구멍이 있는 경우부터 폐나 위장이 제자리에 있지 않거나, 뇌나 척추가 완전히 형성되지 않은 경우까지 광범위하다. 장기가 아예 형성되지 않았거나, 형성되었더라도 정상적인 위치를 벗어난 사례도 있다. 전체 임신의 약 3~5%에서 이러한 태아 기형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종류와 심각성은 천차만별이다.

예를 들어 심장 기형, 척추이분증, 폐나 위장의 위치 이상, 신경관 결손 등은 모두 태아의 생명에 직접적인 위협이 될 수 있는 중대한 문제다. 이런 기형은 출산 후 치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산전 시점에서부터 다각적인 접근과 조치가 필요하다.

안기훈 교수는 "태아와 산모의 건강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어떤 세부적인 변화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고위험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고려대 안암병원에서는 산부인과를 중심으로 소아심장, 소아신경, 소아정형, 소아흉부, 신생아, 영상의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의가 참여하는 다학제 진료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이 진료 체계의 목표는 단순히 진단에서 그치지 않고, 치료 전략 수립과 예후 개선까지 아우르는 것이다. 특히 고위험 태아의 경우 진단 직후부터 출산 이후의 처치까지 전 과정을 계획해야 하므로, 각 분야의 긴밀한 연계와 협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태아 그림(1)

안 교수는 실제 사례 가운데 대표적인 경우로 '쌍태아 수혈 증후군(Twin-to-Twin Transfusion Syndrome, TTTS)'을 소개했다. 이 질환은 쌍둥이가 하나의 태반을 공유하는 경우 발생하는데, 두 태아 사이에 혈류가 고르지 않게 전달되면서 문제가 생긴다. 한쪽 태아는 과도한 혈류를 받아 심장에 무리가 가고, 다른 한쪽은 혈액 공급이 부족해 성장이 멈추는 현상이 나타난다. 결국 둘 다 생명에 위협을 받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는 두 아이 모두 위험에 처하기 때문에, 가능한 한 빠른 개입이 필요하다. 안 교수는 "복부를 통해 내시경을 삽입한 뒤 태아를 직접 관찰하면서, 두 태아 사이의 혈관 연결을 차단하는 레이저 시술을 시행한다"고 설명했다.

이 시술에 사용되는 내시경은 지름이 2~3mm에 불과한 매우 가는 기구로, 자궁 내부를 직접 들여다보며 치료가 이루어진다. 자궁 안에서 직접 혈관을 식별하고 불필요한 연결을 차단하는 과정은 고도의 정밀성과 숙련도를 요한다. 하지만 시술이 성공하면 두 태아 모두 생존 가능성이 획기적으로 높아진다.

태아 기형은 출생 후 치료가 가능한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산전 개입이 더 효과적이거나, 유일한 치료 수단이 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양막밴드 증후군이다. 이 질환은 양막의 일부가 실처럼 변해 태아의 팔다리나 몸통을 감싸며, 성장을 방해하거나 심할 경우 괴사로 이어지기도 한다. 안 교수는 "양막 밴드가 태아의 팔다리를 졸라 성장을 막고, 심한 경우에는 조직이 괴사하거나 절단된 것처럼 변형될 수 있다"며 "이런 경우에는 내시경으로 밴드를 절단해주는 수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예는 태아 횡격막 탈장이다. 횡격막이 완전히 닫히지 않아 복부 장기가 흉부로 올라가면서 폐의 정상적인 발달을 방해하는 질환이다. 안 교수는 "이 질환이 있는 태아는 폐가 충분히 자라지 못해 출생 후 자발 호흡이 어렵다”며 “기도에 풍선을 삽입해 폐 내 압력을 높여 성장하도록 유도하는 시술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시술은 태아가 삼키는 양수와 폐에서 나오는 분비물이 기도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막아, 폐 안에 압력을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미성숙한 폐 조직이 팽창하면서 성장을 촉진하게 된다. 안 교수는 "이런 시술은 임신 26~28주 이전에 시행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이후에는 분만 준비에 들어가기 때문에 산전 개입의 효과가 줄어들 수 있다"며 "어떤 경우든 부모와 충분히 상의해 맞춤형 치료 계획을 세우는 것이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산전 수술이 효과적인 또 다른 사례는 신경관 결손증, 그중에서도 척추이분증이다. 척추 뼈가 완전히 닫히지 않아 신경이 외부로 노출된 상태로, 그대로 출산하게 되면 하반신 마비를 포함한 심각한 후유증을 남길 수 있다. "척수가 외부에 노출된 태아는 신경 손상이 진행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자궁 내에서 수술로 척수를 덮어주는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라는 게 안 교수의 설명이다.

이처럼 태아 수술은 '출생 후'가 아닌 '자궁 안'에서 생명을 살리기 위한 고도의 개입이다. 의료진의 숙련도와 협진 체계, 정밀한 장비가 뒷받침돼야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다학제 협진,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

고위험 태아 진료에서 다학제 협진은 필수적이다. 고난도의 치료가 필요한 태아 질환은 단일 진료과의 진단과 처치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치료의 시기와 방식이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안 교수는 "예를 들어 척추이분증 같은 경우만 해도 소아신경외과, 영상의학과, 신생아과, 산부인과, 유전학과 등 최소 5개 이상의 과가 협력해야 한다"며 "진단부터 치료 방향 설정, 분만 방식까지 모든 논의를 한 자리에서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산부인과에서 진단을 받은 후 각 관련 진료과로 환자를 차례로 보내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태아 상태가 급격히 악화될 수 있는 고위험 임신에서는 이런 방식이 치료 지연으로 이어질 수 있고, 부모의 불안도 더 커질 수 있다.

안기훈 교수(2)
고려대 안암병원 산부인과 안기훈 교수가 고위험 태아의 다학제 협진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제는 각 전문과가 한 공간에 모여 의견을 교환하고, 가족에게 명확하고 일관된 정보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진료가 이루어집니다. 부모는 혼란과 불안을 덜고, 의료진은 함께 치료 방향을 모색할 수 있는 구조죠."

실제 사례로는 태아의 '목 부위에 종양(종괴)'이 생긴 경우가 있다. 이때 산부인과에서는 MRI와 유전학적 검사를 통해 정확한 진단을 내리고, 신생아과와 이비인후과는 분만 직후 기도 확보를 위한 전략을 수립한다. 경우에 따라 엑시트(EX utero Intrapartum Treatment) 시술이 시행되기도 한다. 이는 태아가 탯줄로 산소를 공급받고 있는 상태에서 기도를 먼저 확보한 후 분만을 완료하는 고난도 수술이다.

이러한 치료는 한두 과가 아닌, 여섯 과 이상이 협력해야 가능하다. 안 교수는 "그래서 지금은 다학제 진료팀이 한 번에 모여 각자의 시각에서 의견을 나누고, 가족에게 치료 방향을 명확히 설명해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고위험 태아 진료는 단순한 시술에 그치지 않는다. 질환의 종류와 태아의 상태에 따라 치료 방식이 매우 섬세하고 복잡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의료진은 지속적인 교육과 훈련을 통해 기술을 연마하고 경험을 축적해야 한다. 단기간의 교육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영역이며, 장기적인 수련과 반복 학습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고위험 태아 수술은 연간 시술 건수가 극히 적은 경우가 많아 실제 임상 경험을 통한 교육에는 한계가 있다. 안 교수는 "저희 병원에서도 1년에 한두 건 나올까 말까 한 시술이 있다"며 "이런 상황에선 젊은 의사들이 경험을 쌓기도 어렵고, 교육 기회도 제한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최근에는 시뮬레이터와 모형을 활용한 실습 교육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 병원에서는 이미 모형 기반의 교육 시스템이 정착돼 있으며, 안 교수 역시 현재 해당 시스템을 활용한 연수를 받고 있다. 해외 선진국은 태아 치료를 위한 다학제 시스템을 제도화하고 있다. 미국에는 'Fetal Therapy Board(태아치료위원회)'라는 협의체가 운영되고 있는데, 약물·수술·유전자 치료를 포함한 포괄적 의학적 개입을 다룬다. 이사회에는 각 진료과 전문가들이 고정적으로 참여하며, 단순 치료 가능성을 넘어 윤리 문제, 가족 상담, 사회적 지원까지 논의하는 체계를 갖췄다.

안 교수는 의료적 개입을 넘어 사회·윤리적 논의가 병행되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생명의 연장뿐 아니라, 태어난 이후의 삶의 질, 가족의 선택권, 사회의 지원 체계까지 함께 고려하는 것이 선진 시스템의 방향이라는 것이다.

고위험 태아 진료와 저출산 시대의 책임

안 교수는 고위험 태아 진료가 안정적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전문 인력의 지속적인 양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분야는 단순한 수기 기술만으로 감당할 수 없으며, 생명을 다루는 정서적 감수성과 임상적 통찰이 함께 요구되는 고도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임산부 검진 사진(1)
우리나라도 생명의 연장뿐 아니라, 태어난 이후의 삶의 질, 가족의 선택권, 사회의 지원 체계까지 함께 고려하는 선진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

그는 전공의 교육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고위험 태아 진료에 특화된 고급 훈련(Advanced Training) 과정의 도입 필요성을 제안했다. 이를 실현하려면 정부 차원의 예산 지원과 제도적 기반 마련이 필수적이다. 안 교수는 "지금처럼 몇몇 대학병원에만 집중된 시스템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며 "최소한 각 권역마다 한 곳 이상은 이 진료가 가능한 센터가 있어야 하고, 그만큼의 인력도 육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이 분야가 단지 의학의 범주에만 머물지 않고, 저출산이라는 사회적 문제와도 깊이 연결돼 있다는 점을 짚었다. "태아가 살아남는다는 건 한 가족이 온전히 생명을 품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 자체로 저출산 해결의 시작점이 될 수 있어요. 이 분야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정책적 투자가 함께 이뤄져야 합니다."

안 교수는 모체태아의학이 더 많은 가족에게 희망이 되길 바란다. 그가 바라보는 고위험 태아를 위한 다학제 진료는 가장 작은 생명을 위한 가장 큰 협력이다. 생명의 무게를 함께 짊어지려는 의료진의 약속이자, 미래를 향한 우리 사회의 책임이기도 하다. 안 교수는 "태아 진료는 아직 많은 사람들에게 낯선 분야일 수 있지만 그 안에 담긴 기술과 협력, 생명을 향한 절실한 마음은 결코 작지 않다"며 "우리가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진다면, 더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고 더 많은 가족이 희망을 품을 수 있다"고 말했다

  • EDITOR: 박정연
  • PHOTO: 고려대의료원,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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