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빈탄 시간이 멈춘 낙원
환상의 야생과 모험 속으로
드론으로 촬영한 빈탄 국제통합관광 리조트 전경(빈탄국제통합관광리조트 제공)
인도네시아 북부 리아우(Riau) 제도에 있는 빈탄섬은 인도네시아 1만 8,000여 개 섬 중 '숨겨진 보석'으로 불린다. 싱가포르에서 배로 1시간 거리(약 40㎞)에 있는 빈탄섬 북부 해변에는 21개의 호텔과 리조트, 풀빌라, 골프장 등이 몰려 있는 '빈탄 국제통합관광 리조트(Bintan Integrated Beach Resort)'가 있다. 빈탄리조트는 단순한 숙소가 아니라, 13개의 고급 리조트와 4개의 골프장, 워터파크, 사파리까지 다양한 시설이 어우러진 거대한 휴양 단지다. 한때 국내에서 허니문 여행지로 큰 인기를 끌었던 이 리조트는 시간이 흐르면서 새로운 매력을 더해 과거의 영광을 되찾고 있다.
빈탄섬의 전체 면적은 약 8만 8,039㎢로, 대한민국(약 10만㎢)과 비교해도 결코 작지 않다. 이 가운데 북부의 국제통합관광리조트 구역은 230㎢에 불과하지만, 빈탄섬 세수의 90%를 책임지는 핵심 관광 시설이다. 이 리조트 구역은 1996년부터 인도네시아와 싱가포르의 협력으로 개발됐다. 국토가 좁은 싱가포르 국민에게는 천혜의 휴양지로 사랑받고 있다.
빈탄섬은 인천, 부산, 제주 등에서 매일 출발하는 싱가포르행 비행기를 타거나, 제주항공(주 3회 운항)을 이용해 인도네시아 바탐을 거쳐 배편으로도 갈 수 있다. 기자는 인천에서 밤 10시 30분에 출발한 대한항공(KAL)을 타고 다음 날 오전 6시경 싱가포르 창이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차로 10분 거리인 타나메라(Tanah Merah) 페리 터미널에서 빈탄행 배가 출발했다. 배 갑판 위에서 바라본 싱가포르 항구는 바다 위에 수없이 정박한 화물선들로 가득했고, 인도양과 태평양을 잇는 좁은 해협에 자리잡은 싱가포르가 세계 물류의 중심지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했다. 배는 1시간 만에 빈탄섬에 도착했다.
빈탄섬의 럭셔리 리조트
빈탄섬은 1990년대부터 반얀트리와 클럽메드, 니르바나, 빈탄 라군 등 다양한 리조트가 해변을 따라 들어서며 동남아시아의 대표적인 휴양지로 개발됐다. 각종 수상 스포츠 시설과 골프 코스, 스파 등이 잘 갖춰진 고급 리조트 지구다.
그중 동남아시아 최고의 인공 해수 석호로 꼽히는 트레저 베이(Treasure Bay) 주변의 나트라 빈탄(Natra Bintan, a Tribute Portfolio Resort)은 빈탄섬을 대표하는 시그니처 리조트다. 트레저 베이는 총면적 6.2㏊(헥타르), 길이 1.6km, 최대 수심 6m 규모의 인공 물놀이 시설로, 바닷물로 채워져 있다. 크리스털 라군이 조성된 이곳에서는 웨이크보드, 카약 등 다양한 수상 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
나트라 빈탄은 트레저 베이의 크리스털 라군을 조망할 수 있는 약 100개의 독채 글램핑 텐트형 숙소를 갖추고 있다. 텐트에는 자체 정원과 야외 테라스, 야외 월풀 욕조가 마련돼 있다. 투숙객은 호텔이 운영하는 맹그로브 투어, 수상 스포츠, 다이빙, 카누, 하이킹 등 다양한 액티비티도 함께 즐길 수 있다.
2023년 10월, 빈탄 라고이 해변에는 '호텔 인디고 빈탄 라고이 비치(Hotel Indigo Bintan Lagoi Beach)'가 새롭게 문을 열었다. 이 호텔은 인도네시아 전통 수상가옥인 '켈롱(Kelong)'에서 영감을 받아 설계됐으며, 입구와 로비 주변에 연못이 있어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인디고 호텔의 120개 객실과 스위트룸은 모두 바다 전망을 자랑하며, 객실 곳곳에는 인도네시아 전통 낚시 그물에서 영감을 받은 소파 등 리아우 제도의 전통 문화를 반영한 소품들이 배치돼 있다. 특히 야외 발코니에 놓인 월풀 욕조는 시원하게 펼쳐진 남중국해의 풍경을 바라보며 여유로운 휴식을 즐길 수 있게 해준다.
해변 레스토랑과 바 '슈거비츠(SugarBeats)'에서는 잔잔한 음악이 연주되며, 수영장 주변에서는 해산물 요리와 열대 칵테일, 풍미 있는 사테 요리를 즐길 수 있다. '스틱스 사테 바(Stix Satay Bar)'에서는 인도네시아, 태국, 중국, 말레이시아의 다양한 꼬치 요리와 직화구이를 포함한 동남아 미식을 한자리에서 맛볼 수 있다.
타이타닉호를 닮은 호텔
1912년 4월 10일, 타이타닉호는 영국 사우샘프턴을 떠나 미국 뉴욕으로 향하는 첫 항해를 시작했다. 그러나 4월 14일 오후 11시 40분, 북대서양에서 빙산과 충돌했고, 약 2시간 40분 만에 완전히 침몰했다. 당시 타이타닉호에는 2,223명이 탑승해 있었으며, 승객 대부분은 영국과 스칸디나비아반도 등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가던 사람들이었다. 결국 이 사고로 1,514명이 사망하는 대참사가 벌어졌다. 난파된 타이타닉호의 잔해는 현재 대서양 3,800m 해저에 가라앉아 있다.
그로부터 2년 뒤인 1914년, 또 다른 여객선이 운항을 시작했다. 미국의 여객선 '둘로스(Doulos)호'는 타이타닉호와 동일한 증기 엔진을 사용했고, 크기는 작지만 내부 구조가 매우 비슷했다. 둘로스호는 1914년부터 2009년 12월까지 가장 오랫동안 운항한 원양 여객선으로, 기네스북에 공식 등재되기도 했다. 하지만 2010년, 둘로스호는 퇴역하며 인도의 한 조선소에서 해체될 위기에 처했다. 이때 중국계 싱가포르인 기업가 에릭 쏘(Eric Saw)가 이 배를 인수했다. 호텔을 짓고자 했던 그는 고철로 팔릴 운명의 배 한 척에 마음을 빼앗겼고, 배를 호텔로 개조하기로 결심했다.
"처음엔 싱가포르 정부에 선박을 개조해 호텔을 짓겠다고 제안했지만, '국토가 좁아 적합한 부지가 없다'는 답변을 들었어요. 그래서 싱가포르에서 배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인도네시아 빈탄섬 지방정부에 제안했고, 흔쾌히 허락을 받아 둘로스호를 빈탄까지 옮길 수 있었죠." (에릭 쏘) 현재 이 배는 빈탄섬 페리 터미널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닻(앵커) 모양의 섬 위에 올려져 있다.
에릭 쏘는 세심한 복원과 개조를 거쳐 2019년 부활절, 이 배를 고급 선박호텔 '둘로스 포스 더 쉽 호텔(Doulos Phos The Ship Hotel)'로 재탄생시켰다. 대서양에 가라앉은 타이타닉호는 볼 수 없지만, 같은 엔진과 유사한 구조를 갖춘 이 호텔에 묵는다면 마치 타이타닉에 탑승한 듯한 색다른 시간 여행을 경험할 수 있다.
총 104개의 객실은 20세기 초 원형 선박의 내부 구조를 최대한 살리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으로 리모델링해 럭셔리한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엔진실 등 선박의 역사적 공간은 관광 시설로 보존되며, 투숙객을 위한 전용 투어도 진행된다. 호텔 최상층 갑판에는 영화 '타이타닉' 속 명장면을 재현할 수 있는 뱃머리가 마련돼 있어, 방문객이 기념사진을 남길 수 있다. 인피니티풀과 피아노 라운지에서는 가벼운 칵테일과 식사를 즐길 수 있고, 고급 레스토랑에서는 인도네시아와 네덜란드식 파인 다이닝 메뉴도 제공된다.
빈탄의 우유니 사막과 블루레이크
빈탄은 해변의 리조트에서 물놀이를 즐기고, 야자나무 그늘 아래서 휴식만 해도 충분히 매력적인 섬이다. 하지만 한국 여행자들은 리조트 밖에서도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액티비티를 선호한다. 빈탄에는 신비로운 모래 언덕과 에메랄드빛 호수가 어우러진 '샌듄 & 블루레이크', 실물 크기의 아라한 석상이 늘어선 '500 로한 사원', 동남아시아 최대 규모의 해수 석호인 '크리스탈 라군', 그리고 맹그로브 숲과 사파리 라고이 등 '인생샷'을 남기기 좋은 여행 명소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곳은 단연 '샌듄 블루레이크(Blue Lake)'다. 남미 볼리비아의 소금사막을 연상케 한다고 해서 '빈탄의 우유니'로도 불린다. 원시림 속 리조트를 떠나 이곳에 도착하면, 마치 외계 행성에 와 있는 듯한 이색적인 풍경에 압도당하게 된다. 영화 '듄(Dune)'처럼 모래바람이 거세게 불어오는 사막은 아니지만, 단단히 굳은 모래 결정들이 형성한 굴곡진 지형이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현지에서는 이곳을 '구룬 파시르(Gurun Pasir, 모래사막)'라 부른다. 때로는 경주의 고분군처럼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다가도, 때로는 불꽃처럼 날카롭게 솟아 있는 형상도 볼 수 있다. 해 질 무렵이 되면 모래언덕은 황금빛으로 물들고, 바람이 부는 언덕 위에서 하늘하늘한 흰 드레스를 입고 서 있으면 누구나 모델이 되고, 스마트폰 하나면 누구나 사진작가가 되는 곳이다.
이 사막은 원래 모래 채취를 위한 채석장이었다. 실제로 싱가포르는 1990년부터 약 5년간 이곳에서 모래를 퍼가 마리나베이 간척 사업에 사용했다. 이후 채굴이 중단되면서 자연적으로 모래 결정이 굳어 사막 지형을 형성했고, 햇빛에 반사되는 모래의 색이 마치 소금처럼 보여 '소금사막'이라는 별칭을 얻게 됐다.
그러나 이곳의 백미는 단연 모래 언덕 사이사이에 형성된 푸른빛 호수다. 이 호수는 민물과 바닷물이 섞이면서 오묘한 터키시 블루 색감을 띤다. 마치 터키석을 갈아 넣은 듯, 하늘빛과 옥빛 사이의 미묘한 색조가 여행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호수 건너편 모래언덕 위에 외롭게 선 한 그루의 나무가 물에 비친 모습은 환상 그 자체다.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 왕자' 속, 왕자가 여우와 꽃과 함께 살았던 소행성 B612가 이런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블루레이크 앞에서는 기념사진을 찍기 위한 대기 줄이 늘어선다. 여행객들은 하늘하늘한 드레스와 챙 넓은 모자를 준비해 와 포토존을 만끽하고, 현지인들은 빈탄의 상징인 독수리를 손에 올려 사진을 찍어주는 서비스도 제공한다.
빈탄 맹그로브 숲과 사파리 투어
인도네시아의 강가나 해변에는 맹그로브 숲이 잘 발달해 있다. 빈탄 리조트에서 즐길 수 있는 맹그로브 숲 탐사는 평소 쉽게 접하기 어려운 열대 우림의 생태계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다. 넓은 강가에서 시작해, 맹그로브 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진 숲 속 깊은 곳까지 들어가는 투어로, 원숭이, 물총새, 왕도마뱀, 진흙가재, 물뱀 등 다양한 생물을 만날 수 있다. 해가 지고 어둑해지면 반딧불의 매혹적인 불빛을 감상할 수 있는 야간 투어도 진행된다.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승선한 보트는 강 위를 시원하게 달린다. 양옆으로는 30m가 넘는 맹그로브 나무들이 빽빽한 숲을 이루고 있다. 보트는 넓은 강을 지나 좁은 숲 속 수로로 들어간다. 너비 5~6m의 수로 위에는 나뭇가지들이 낮게 드리워져 있어, 가지 아래를 지날 때마다 고개를 숙여야 한다.
앞서 가던 보트에서 가이드가 손가락으로 나무 위를 가리킨다. 왕도마뱀 한 마리가 가지 위에 앉아 있다. 맹그로브 왕도마뱀은 최대 1.5m까지 자라며, 수영은 물론 나무를 타고 오를 수 있다고 한다. 또 다른 나뭇가지에는 검은색과 노란색 줄무늬가 선명한 맹그로브 스네이크가 또아리를 틀고 앉아 있다.
맹그로브는 바닷물에서도 잘 자라며, 뿌리가 거꾸로 솟아올라 공기 중으로 노출되는데, 이를 '호흡근'이라고 부른다. 이 뿌리들 사이는 물고기, 새우, 가재, 게, 조개 등 다양한 해양 생물의 서식지이자 은신처로, 생태적으로 매우 중요한 공간이다. 숲 속에는 과거 맹그로브 나무를 베어 숯을 만들던 가마터도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는 참나무로 숯을 구웠다면, 인도네시아에서는 맹그로브가 주요 땔감이었다. 리조트와 호텔 개발 과정에서 수많은 맹그로브 숲이 파괴됐지만, 그 중요성은 날로 부각되고 있다.
맹그로브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능력이 탁월해 '탄소 스펀지'로 불린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보고서에 따르면, 맹그로브는 1㏊당 연간 1.62t의 탄소를 흡수한다고 한다. 파도를 막아 해안 침식을 방지하고 간석지 발달을 유도하는 역할도 한다. 실제로 2004년 남아시아 대지진 당시 피해가 컸던 지역은 리조트 개발로 맹그로브 숲이 사라진 곳이었다는 분석도 있다.
투어를 마친 후, 가이드와 인사를 나누는데 그녀의 노란색 티셔츠에 그려진 그림이 눈길을 끌었다. 초록빛 맹그로브 나무 아래 높게 솟은 뿌리 사이로 붉은 게 두 마리가 노니는 모습이 아름답게 그려져 있었다.
리조트 구역 내에는 야생동물을 보호하는 '사파리 라고이(Safari Lagoi)'도 있다. 이곳은 인도네시아 밀림에서 구조된 동물을 보호하다가 국립공원으로 되돌려보내는 보호시설이다. 대표적인 동물은 붉은 털이 인상적인 오랑우탄이며, 수마트라 코끼리, 호랑이, 인도네시아 꿀곰(말레이곰), 악어, 타조 등 다양한 희귀 동물들도 만날 수 있다.
이곳의 인기 스타는 '기번(Gibbon)'으로 불리는 긴팔원숭이 빌리(Billy)다. 빌리는 긴팔로 나뭇가지에 매달려 그네를 타고, 사육사의 손을 잡거나 카트 운전석에 앉는 등 쉼 없이 움직이며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마치 장난꾸러기 아이의 재롱을 지켜보는 듯한 기분을 들게 한다.
이곳에는 '루왁 커피'를 만들어내는 사향고양이도 있다. 철창 밖에서 사진을 찍고 있자, 사육사가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해줬다. 동물원 우리 안에 직접 들어가보는 생소한 경험이었다. 아기 원숭이를 품에 안고 우유를 먹이는 체험도 가능하다. 이처럼 동물들과의 교감은 이 사파리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다.
골프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빈탄은 버킷 리스트에 넣을 만한 목적지다. 세계적인 골프 코스 설계자들이 디자인한 네 개의 골프장 가운데 리아 빈탄은 '골프 다이제스트'가 선정한 세계 100대 골프장 중 하나다. 바다를 넘기는 파3홀에서 절경과 스릴을 동시에 만끽하고, 그린 위에서 원숭이 가족과 마주칠 때의 이국적인 기분은 다른 어디서도 경험하기 힘든 특별함이다.
- ARTICLE&PHOTO: 전승훈 동아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