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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고려대 의과대학 100년 역사 민족과 박애 정신으로
대한민국 의료인 양성 선도

조선여자의학강습소 교수진

1930년 조선여자의학강습소 교수진

인류의 건강한 삶을 실현하기 위해 연구하고 진료하는 참의사를 양성하는 일은 모든 의과대학의 사명이다. 고려대 의과대학은 빠르게 변화하는 의료 환경과 의학교육의 흐름 속에서 '민족'과 '박애'라는 건학 이념 아래 의학교육의 본질을 개척해 왔다. 전문가로서의 자질과 윤리 의식, 사회적 책임, 소통 능력, 탁월한 연구 성과를 고루 갖춘 참의사를 길러낸 요람이자, 기초의학부터 첨단 미래 의학에 이르기까지 우리 의학사에 기념비적인 성과를 남긴 교육기관으로 자리매김한 고려대 의대는 2028년 개교 100주년을 맞는다. 그 숭고한 100년의 시간을 돌아본다.

고려대 의대의 시작은 여성과 모성 보호에 있었다. 유교적 관습으로 인해 남성 의사의 진료를 받기 어려웠던 조선 여성들은 오랫동안 의료의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었다. 이러한 현실을 인식한 서양 의료선교사들은 본국에 여의사 파견을 요청했고, 이 과정에서 미국인 여성 선교사이자 의사인 로제타 셔우드 홀(Rosetta Sherwood Hall) 여사가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1928년 9월 4일, 서울 종로 창신동 루이스기념관을 교사(校舍)로 사용하며 '조선여자의학강습소'가 개소식을 가졌다. 초대 소장에는 로제타 홀 여사가, 부소장에는 길정희 선생이 추대됐다. 이는 한국 최초의 여의사 양성 기관으로, 의료 소외계층인 여성의 치료를 위한 획기적인 출발이었다.

교수진과 학생
1928년 조선여자의학강습소 교수진과 학생.
창신동 교사
1928년 조선여자의학강습소 창신동 교사.

강습소는 정식 전문학교가 아니었기에 매년 조선총독부 학무국에 설립인가를 신청해야 했으며, 졸업생은 조선의사시험을 통해 자격을 취득해야 했다. 첫해 입학생은 17명이었고, 매년 평균 15명가량이 입학했으나 도중 하차하는 경우도 많아 1933년 당시 재학생은 35명이었다. 교육 내용은 윤리, 영어, 생물 등 교양과목과 해부학, 병리학, 위생학 등 기초의학, 그리고 내과, 외과, 산부인과 등 임상과목까지 아우르며, 강의는 각 전문학교의 한국인 의사들이 무료로 맡았다.

재정난 속 피어난 결실과 도약

1933년, 로제타 홀 여사가 퇴임하면서 강습소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는다. 김탁원·길정희 부부가 운영을 맡았지만, 재정난에 직면했다. 그해 7월에는 일제의 압력으로 명칭이 '경성여자의학강습소'로 바뀌었다. 그러나 김탁원·길정희 부부는 사재를 털어 종로구 관철동에 새 교사와 부속의원을 마련하고 확장 이전했다.

그해 11월, 임용화, 박순정 선생이 조선의사시험에 합격하며 첫 결실을 맺었다. 특히 박순정 선생은 차석으로 합격하는 쾌거를 이뤘다. 이듬해까지 포함해 총 1회 졸업생 5명이 배출됐고, 이후 총 18명의 여의사가 강습소를 통해 배출됐다. 하지만 재정난은 계속됐다. 김탁원·길정희 부부는 교우회를 창립하고 각계 유지들을 모아 여자의학전문학교 기성회를 조직했다. 박영효 위원장을 비롯한 72명의 인사가 참여했고, 특히 인촌 김성수 선생은 교육사업에 뜻을 둔 우석 김종익 선생을 소개했다.

1936년 기성회 이사로 참여했던 김종익은 이듬해 유명을 달리하며 유언으로 무려 65만 원을 기부했다. 이는 현재 가치로 수천억 원에 달하는 큰 금액이었다. 신규환 고려대 여성의학사연구소장(고려대 의대 의인문학교실 교수)은 이를 "암울했던 일제강점기에 우리 민족에게 자부심을 심어준 장거"라고 평가했다.

길정희 선생, 로제타 홀 여사, 김탁원 선생
왼쪽부터 길정희 선생, 로제타 홀 여사, 김탁원 선생.
조선여자의학강습소 재학생
1930년대 초 조선여자의학강습소 재학생.

김종익 선생의 유언과 뜻에 따라 1938년 5월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가 설립됨으로써 한국 여성 의학교육제도가 완성됐다. 1941년 9월 1일, 종로구 혜화동에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 부속병원이 완공돼 개원했다. 해방 이전까지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는 157명의 여의사를 배출하며 한국 여성 의료환경를 바꿔내는 주춧돌이 됐다. 해방 이후 젊은 교수들이 조국의 광복의 기쁨을 안고 여의학도들의 교육에 열의를 다했고, 어렵게 선발돼 입학한 여학생들도 높은 자부심을 가지고 공부하는 분위기로 교육은 날로 충실해졌다. 1948년 5월 22일, 서울여자의과대학으로 승격되며 6년제 의과대학 체제로 변화했다.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일어나자 남북 간의 접전 중에 납북되거나 자진해서 월북한 학생과 교수들이 적지 않았다. 부산으로 피난을 떠난 서울여자의과대학은 다른 의과대학들과 함께 전시연합대학 체제로 운영돼 전시 상황에도 학생들이 수업을 듣고 졸업을 하도록 대학의 본령에 충실한 모습을 보였다. 서울여자의과대학은 역사 속에서 끊임없는 발전을 이뤘다.

유교적 풍습이 바뀌어 나감에 따라 더는 여성 환자가 남성 의사에게 몸을 보이기 어려운 시대가 아니게 됐다. 이러한 사회상의 변화로 여의사의 양성만을 의대의 목적에 둘 필요가 없었다. 시대적 변화와 사회적 요구에 발 빠르게 남녀공학으로 전환을 추진했다. 1957년 1월 25일 문교부로부터 남녀공학인 수도의과대학으로 인가돼 그해 3월 22일 15회 졸업부터 수도의과대학의 졸업장을 받게 됐다. 대학과 부속병원도 새로운 명패를 고쳐 달고 캠퍼스에 남학생이 활보하는 시대를 맞았다. 이때부터 남녀공학으로서 박애의 정신을 가슴에 품은 남녀 의사를 양성하기 시작했다. 이후 수도의과대학은 1967년 우석대학교 의과대학으로 계승됐다.

고려대 '민족' 정신과 의대 '박애' 정신 결합

1970년대 들어 가장 큰 변화는 고려대학교가 우석학원을 합병해 명실상부한 종합대학 체제를 확립한 것이다. 이 과정에 고려대 의과대학이 탄생했다. 1980년에는 조치원 분교(지금의 세종캠퍼스)를 인가받아 제2 캠퍼스 시대를 열었다. 이는 고려대의 '민족' 정신과 의과대학의 '박애' 정신이 결합해 만든 상징적 전환점이었다. 이로써 명실상부한 고려대 의과대학의 시대가 펼쳐졌다.

서울 종로구 명륜동 의대캠퍼스는 고려대 의과대학이라는 이름의 명패로 바뀌었다. 병원 또한 고려대 의과대학 부속 우석병원으로 명칭이 변경됐다. 고려대 의과대학과 부속병원은 빠르게 발전의 궤도에 올랐다. 1972년 새 병원 건립 청사진 발표를 시작으로, 1974년 우석병원 신관 병동이 건설되어 개원식을 거행했다. 지하 1층, 지상 7층의 신관 병동은 총 300병상 규모로 대학 부속병원의 면모를 갖추며 화제를 모았다. 특히 신관 외관은 알루미늄 플레이트로 마감돼 멀리서도 은빛으로 번쩍이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1976년에는 병원 이름이 고려대 의과대학 부속병원으로 최종 확정됐다. 이는 기존 병원 명칭이 고려대 부속병원의 이미지와 부합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반영한 조치였다. 이로써 수차례 바뀌었던 병원 명칭은 30년 만에 마침내 정체성을 확립하게 됐다.

우석학원의 합병 약정서 조인식
1971년 고려중앙학원과 우석학원의 합병 약정서 조인식.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탄생의 순간이다.
안암동 시대 개막
1991년 의과대학과 부속병원의 서울 성북구 안암동 시대 개막.

이후 고려대 의과대학은 의학 연구 분야에서도 탁월한 성과를 거뒀다. 1976년, 미생물학교실의 이호왕 교수가 신증후성 출혈열을 유발하는 한타바이러스(Hantavirus)를 세계 최초로 발견하고, 백신 '한타박스'를 개발해 국내 신약 1호로 등록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질환은 6·25전쟁 당시 UN군 3,000여 명이 사망했을 만큼 치명적이었고, 백신 개발은 사회적으로도 커다란 의미를 지녔다. 이외에도 국내 최초 법의학연구소 개소, 신종인플루엔자 백신 국산화 등 의미 있는 연구 성과가 이어졌다.

1980년대 들어서는 서독 재건은행으로부터 차관을 유치해 병원 건립을 추진했다. 10년 거치 20년 상환, 연 2% 조건의 유리한 계약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1983년 9월 1일, 지하 1층, 지상 9층, 300병상 규모의 고려대 구로병원이 문을 열었다. 의료계에서는 병원이 자립하려면 3년 이상 소요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구로병원은 1년 만에 자립 기반을 다지며 주목받았다. 이는 구로지역이 의료 사각지대였고, 병원의 시설과 의료진 수준이 시대를 앞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1984년에는 안산 반월지구에 100병상 규모의 병원(현 고려대 안산병원)을 설립하고, 1991년에는 명륜동 병원을 안암동으로 이전하며 안암시대를 열었다. 이후 두 병원은 지속적인 발전을 거쳐 2024년과 2025년에 각각 40주년을 맞이하며, 지역 대표 병원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고려대 의과대학과 부속병원은 의학교육 인프라 구축에도 앞장섰다. 2012년 본관, 2014년 문숙의학관 준공을 비롯해, 2020년에는 의학교육평가인증 최고 등급인 6년 인증을 획득해 교육의 질을 공인받았다. 2021년에는 청담 고영캠퍼스와 정릉 메디사이언스파크를 개소하며, 글로벌 의사과학자 양성의 거점으로 도약했다.

개교 100주년 기념 역사 재조명 프로젝트

현재 고려대 의과대학은 안암, 구로, 안산병원 외에도 청담 고영캠퍼스와 정릉 메디사이언스파크에서 교육과 연구를 수행하는 '5 캠퍼스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국책사업인 BK21 대학원 사업을 최장기 수주하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기초의과학연구센터(MRC) 선정 등 각종 성과로 연구중심 의과대학의 입지를 굳히고 있다.

신규환 고려대 여성의학사연구소장(1)
개교 100주년 기념 역사 재조명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하는 신규환 고려대 여성의학사연구소장(고려대 의대 의인문학교실 교수).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의료원 산하 병원들도 첨단 의료와 연구 혁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09년 안암병원이 국내 두 번째로 국제의료기관평가위원회(JCI) 인증을 획득하며 글로벌 수준의 안전병원으로 인정받았다. JCI 인증은 병원의 의료 프로세스를 환자의 안전에 가장 큰 가치를 두는 평가로, 의료 행위의 모든 단계를 글로벌 의료 기준에 맞춰 환자가 가장 안전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됨을 의미한다.

또한 국내 최초로 산하 3개 병원 모두가 상급종합병원으로 지정되고 2025년에는 안암병원과 구로병원, 안산병원이 동시에 연구중심병원 인증을 획득하며 국내 의료계 유일 3개 연구중심병원을 보유한 단일 의료기관으로 우뚝섰다. 2028년 개교 100주년을 앞두고 고려대 의과대학은 역사 재조명 프로젝트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24년 3월에는 '고려대 의과대학 100주년 기념사업 준비위원회'를 출범시켜, 로제타 홀 여사의 인류애와 김탁원·길정희 부부의 헌신 그리고 김종익 선생의 나눔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특히 최근 개관한 의학박물관 자료실에는 조선여자의학강습소 1회 입학생이자 졸업생인 박순정 선생의 졸업증서를 비롯한 졸업앨범과 의료기기 등이 전시돼, 구성원들에게 자부심과 애교심을 고취하고 있다.

앞으로 고려대 의과대학은 국내 1위를 넘어 세계 30위권 연구중심 의과대학으로 도약하기 위해 연구 인프라를 더욱 강화할 계획이다. 학문과 연구 성과를 넘어 인류의 건강과 복지 향상에 기여하며, 세계적 수준의 의료인 리더를 양성하는 최고 교육기관으로 나아갈 비전을 그리고 있다.

신규환 교수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조선여자의학강습소의 창립 정신은 지금도 고려대 의과대학에 살아 숨 쉬며, 앞으로도 시대정신을 실천하고 사회공헌을 선도하는 의학교육기관으로 역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 EDITOR: 김건희
  • PHOTO: 이상윤, 고려대의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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