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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치성 신경질환의 새 희망,
정위기능 신경외과

뇌 사진

통증, 진전증, 경직, 중증 우울증, 강박증, 뇌전증, 치매 등 치료가 어려운 '난치성 신경계 질환'에서 치료법이 급진전하고 있다. 신경 해부 지식과 수술 경험이 풍부한 신경외과 전문의를 중심으로 뇌 공학자와 신경과학자 등이 결합해 최첨단 임상의학 분야를 열고 있다. '정위기능 신경외과(Stereotactic & Functional Neurosurgery)'가 그런 분야로, 난치성 신경질환 환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되고 있다. 고려대 안암병원 뇌신경센터 박정율 교수(고려대 최첨단융복합의학센터 추진본부장)를 만나 뇌질환에 대한 첨단 치료법을 알아봤다.

A씨는 교통사고로 척추가 골절된 뒤 다치지 않은 부위에서도 극심한 통증을 느꼈다. 결국 오래 준비한 전문직을 그만둬야 했다. 여러 병의원을 전전하며 수차례 수술을 받는 등 다양한 시도를 했지만 참을 수 없는 통증은 계속됐다. 그러다 고려대 안암병원 신경외과 박정율 교수를 만났고, 뇌로 통증이 전달되는 비정상적인 신호에 변화를 주는 수술을 받았다. 문제 부위를 찾아, 미세전극을 심는 신경자극술이었다. 이후 A씨는 대부분의 통증이 사라졌고, 그토록 원하던 일을 다시 시작했다.

박 교수는 "예전의 파괴적 치료법은 부작용이나 합병증이 동반될 가능성이 많았던 점에 비해, 최근 최첨단 장비와 함께 개발되는 치료법들은 최소침습적 수술이거나, 비파괴적 치료로 뇌와 신경에 손상을 주지않고 합병증이나 후유증에 대한 큰 걱정 없이 시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난치성 만성 통증도 잡아낸다

박 교수의 진료실에는 매일 많은 '만성 통증' 환자가 전국에서 찾아온다. 박 교수는 "급성 통증 환자의 약 10%가 만성 통증으로 계속되는데, 이 중 약 10%가 진행·악화돼 난치성 신경병성 통증을 겪는다"면서도 "너무 늦기 전에 여러 검사를 통해 정확히 진단하고 적절한 치료를 꾸준히 받으면 80~90% 이상에서 좋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뇌질환에 대한 최첨단 치료법을 설명하고 있는 고려대 안암병원 뇌신경센터 박정율 교수.

통증이란 인체 조직이 손상됐을 때 나타나는 '불쾌한 경험'을 말한다. 뜨거운 것을 만지면 아픔을 느껴 손을 떼게 되는 것처럼 인체를 방어하는 신호가 되기도 하지만, 과하게 감지되거나 반복되면 만성 통증이 되어 일상생활을 방해할 정도로 아프다. 이런 상태가 진행되면 '신경병증성 통증'이 될 수 있다. 신경병성 통증 환자는 옷깃만 스치는 가벼운 접촉에도 심한 통증, 타들어가는 느낌, 저림 등을 느끼기 때문에 정상적인 삶을 이어가기 어렵게 된다.

오랫동안 약을 먹는 것만으로 통제가 어려운 경우, 통증을 유발하는 신경경로를 찾아 직접 제어한다. 신경이 분포한 척추, 어깨, 몸통, 팔, 다리 등에서 차단할 신경을 정확히 확인하고 바늘로 약물을 주입해 통증을 줄이는 신경차단술과 같은 신경중재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반복적인 신경차단술에도 재발하거나 효과가 적은 경우, 혹은 더 심해지는 경우는 다음 단계로 고주파신경중재술, 척수자극술, 심부뇌자극술, 약물주입기삽입술, 감마나이프 등을 환자 상태 및 치료 목표에 맞게 적용한다.

과거에는 진단이나 치료가 어려웠던 통증도 정위기능 신경외과에서 치료한다.

B씨는 갑자기 발생한 허리디스크로 수술을 받고 좋아졌다. 그러나 6개월 뒤 재발해 2차 수술을 받았다. 허리 통증은 다시 완화됐지만 다리로 이어지는 방사통과 화끈거리는 증상들로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였다. 3차 수술과 재활치료 등을 받았지만 통증은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는 박 교수를 찾아왔고 척추수술후증후군을 진단 받았다. 신경차단술과 박동성 고주파신경중재술을 각 2회씩 시도한 결과, 6개월 뒤에는 통증의 약 80%가 완화돼 직장으로 복귀했다. 치료 효과가 적을 경우 받으려 했던 추가 수술도 피할 수 있었다. 2년이 지난 현재도 간헐적으로 진통제만 복용하며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내비게이터처럼 정확하게 목표점 찾아내

정위기능 신경외과는 일종의 내비게이터를 활용한다. 지도에서 지름길을 찾아주면 자동차 운전이 수월하듯, CT(컴퓨터단층촬영)나 MRI(자기공명영상촬영) 등 영상 검사로 환자의 뇌 속 목표점을 X-Y-Z축의 3차원 좌표로 구한 뒤 신경 장치 등으로 정확히 접근해 문제가 되는 타깃을 치료한다. 약물 투여로는 원하는 부위만 국소적으로 치료하기가 어려운데, 이 정위적 방법으로는 오차 범위가 1㎜ 이내로 적어 수술에 따른 합병증 위험이 거의 없다.

정위기능 신경외과는 신경계에 기능 이상이 나타난 질환들을 광범위하게 치료하고 있다. CT나 MRI에서는 종양처럼 눈에 보이는 이상은 없었는데, 원하지 않는 증상들이 나타나는 경우다. 몸이 마구 흔들리거나 떨리는 파킨슨병, 목이 굳어서 고개를 돌릴 수 없는 '사경', 아무리 검사해도 구조적인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지만 몸이 아픈 '만성 신경병증성 통증', 여러 이유로 뇌가 손상돼 기억력과 인지기능이 크게 떨어진 '치매' 등 다양하다.

고려대 안암병원 뇌신경센터 박정율 교수.

뇌와 신경에 문제가 생기면 그 부분에 해당하는 운동기능이나 감각에 이상이 생긴다. 얼굴로 연결되는 신경가지가 뇌혈관에 의해 압박되면 혈류 박동에 따라 '안면경련증'이 나타난다. 경미한 경우, 약물 복용으로도 좋아질 수 있다. 사회 생활이 힘들 정도로 심한 경우, 미세혈관감압술을 주로 한다. 귀 뒤쪽을 엄지손톱 크기로 작게 절개한 뒤 안면신경을 담당하는 뇌 신경과 맞닿아 있는 혈관 사이에 '테플론'이라는 의료용 스펀지를 끼워 닿지 않게 하면 떨림이 대부분 즉시 사라진다.

우리 몸은 수축근과 이완근의 적절한 조절로 움직인다. 그러나 뇌 기저핵이나 중뇌에서 도파민을 생성하는 신경세포의 이상으로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이 발생하면 부자연스러운 움직임과 근경직이 나타난다. 걸음걸이가 느려지고 표정이 잘 굳는 식이다. 이 같은 운동이상질환 중에 가장 알려진 것이 ‘파킨슨병’이다. 이외 본태성 진전증, 수전증, 사경 등이 있다.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울 정도로 양손이 떨렸던 C씨는 고작 40대 후반에 본태성 진전증을 진단 받았다. 파킨슨병처럼 손 떨림이 나타나지만 파킨슨병에 보이는 경직이나 보행장애 등은 동반되지 않는 질환이다. 환자들은 수년간 약물 치료를 받다가 효과가 떨어지면 용량을 늘리고, 약효가 더 이상 없거나 부작용이 심해지면 수술을 고려한다. 이런 경우, 뇌심부자극술을 받기도 하지만 C씨는 뇌 안에 미세 전극을 삽입하고 몸에 배터리를 지닌 채 생활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의료진과 상의해 최소침습적 미세수술을 선택했다. 진전증을 일으킨 뇌의 특정 부위만 국소적으로 고주파열응고술로 치료한 것이다. 이후 손 떨림이 사라져 자신감을 되찾았다.

증상 조절되는지 수술 중 바로 확인

최근에는 정밀 뇌 영상기법과 뇌 항법장치 등이 획기적으로 발달해, 운동 이상을 일으킨 부위를 정확히 찾아낼 수 있다. 이 부분을 제어하거나 자극해 이상운동 기능을 조절하는데, 뇌심부자극술이 대표적이다. 먼저, 환자 머리에 프레임을 씌워 뇌 영상과 실제 위치에 오차가 없도록 고정하고 정확한 좌표를 계산한다. 이후 위험한 부위를 피해 목표점에 도달하면 해당 부위가 환자의 운동이상을 일으키는지 여부를 신경생리학적 검사를 통해 재확인한다. 이때 환자는 전신마취를 하지 않은 깨어있는 상태로, 의사와 대화하며 실제 수술 효과를 미리 확인하고 전기 자극 장치를 삽입한다. 이 전극과 전선을 연결하고 가슴 부위에 배터리를 삽입하면 수술은 끝난다.

최첨단 의술이 가시적인 효과를 보이면서 방사선을 칼처럼 이용하는 감마나이프 수술도 인기가 많다. 돋보기로 햇빛을 한곳에 모아 종이를 태우듯, 높은 에너지의 감마선 빛을 모아 활용하는 방식이다. 이 방사선 수술은 두피나 두개골을 절개하지 않고 머릿 속 깊은 곳의 병변을 치료하며, 부작용이나 합병증도 적다. 이러한 장점으로 운동이상질환, 파킨슨병, 뇌전증, 삼차신경통, 강직, 강박증, 불안증, 우울증, 뇌혈관기형, 뇌종양 등 많은 치료에 쓰이고 있다.

절개·출혈·통증·주변손상 없는 뇌수술

학원에서 갑자기 몸이 굳고 다리가 떨리다가 의식을 잃었던 D씨도 감마나이프 수술을 받았다. 이 환자는 응급실에서 MRI 검사를 받았고 흔히 간질이라 부르는 뇌전증 발작으로 확인됐다. 뇌 신경세포가 과도하게 흥분해 뇌 기능이 일시적으로 과민해지면서 비정상적인 신호가 방출된 것이다. 뇌전증은 대부분 약물 복용으로 호전된다. 그러나 이 환자의 경우 추가 검사에서 수술로 접근이 어려운 뇌 깊은 곳의 혈관기형도 발견됐다. 환자가 젊고 뇌출혈 위험이 높아 감마나이프 방사선 수술이 결정됐다. D씨는 치료를 받고 난 이후 합병증 없이 점차 혈관기형이 거의 사라졌으며 뇌전증 발작도 없어졌다.

이처럼 최신 정위기능신경외과적 치료는 놀랍도록 정교해지고, 안전해졌으며, 종류도 다양해졌다. 박 교수는 "치료가 어렵던 난치성 뇌질환도 여러 선택지 중에서 각 환자에게 가장 적합한 치료를 선택할 수 있게 됐다"며 "예전에는 뇌 일부를 잘라 내거나, 파괴하던 수술도 요즘은 손상을 최소화 하는 방법으로 망가진 신경계 기능을 회복시킨다"고 설명했다.

다면적 치료로 망가진 신경계 기능 회복

정위기능 신경외과의 가장 큰 목표는 치유되기 힘든 신경계의 기능을 정상적으로 회복시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 각광 받는 한 분야가 줄기세포 치료다.

줄기세포는 여러 종류의 신체 조직으로 분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미분화세포'로, 적절한 조건을 맞춰주면 다양한 만능 조직세포로 분화할 수 있다. 정위기능 신경외과에서는 기능이 퇴화한 뇌 부분에 줄기세포를 생착시켜 분화를 유도하고, 뇌신경 기능이 회복되도록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박 교수는 "과거 치료가 안 되던 뇌질환 분야에서 최근 정위기능 신경외과가 다면적 접근을 통해 희망적인 결과를 내고 있다"며 "오랫동안 고생한 환자들이 치료를 포기하거나 극한 선택을 하지 않고, 의료진을 믿으며 좋은 결과를 위해 꾸준히 노력하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 EDITOR: 이종철
  • PHOTO: 지호영,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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