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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코로나 시기 사경 헤매던 산모
'어벤져스'처럼 치료한 병원에 기부로 보답

이미진씨와 아기

고려대 구로병원을 찾아간 장동환(왼쪽), 가윤선 씨 부부가 기부를 결심한 사연을 이야기하며 웃고 있다.

"죽다 살아났다." 보통 출산의 고통을 산모들은 이렇게 표현한다. 출산 경험이 있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법한 표현인데, 얼마 전 득남한 가윤선(31·여) 씨는 실제로 그랬다. 그리고 그녀의 남편인 장동환(37) 씨는 아내를 살려 준 고려대 구로병원에 감사의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 기부를 결심했다. 어떤 사연인지 그 부부를 고려대 구로병원에서 만나 그날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고려대 구로병원 흉부외과에 환자와 가족이 찾아왔다. 지난해 12월 8일 고려대 구로병원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았던 가윤선 씨와 그녀 곁을 지켰던 장동환 씨는 생후 3개월이 된 아들 장이담 군도 데리고 왔다. 장 씨는 "우리 아내를 살려준 선생님께 아이를 보여드리고 싶어 함께 왔다"고 말했다. 이 병원 흉부외과 김인섭 교수는 몰라보게 건강해진 가윤선 씨와 아이를 보고 "아이는 잘 크죠?"라고 말하며 반가운 인사를 건넸다. 부부는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던 탓이었을까. 김 교수를 보자 금방 눈시울이 불거졌다. 장 씨는 "우리 아내를 살려 준 고마운 의사 선생님"이라고 거듭 말했다.

"건강했던 아내, 사경을 헤맬 때 두려웠죠"

가 씨는 평소 건강했고 산전 검사에서도 특별한 문제가 없어 예정대로 집 근처 산부인과 의원에서 출산을 준비했다. 부부는 결혼 후 첫 아이를 맞이할 생각에 설레였다.

하지만 출산 후 상황이 급변했다. 가씨의 수축기 혈압이 180mmHg을 넘어섰고, 산소포화도는 70%까지 떨어졌다. 상태는 점점 악화됐다. 그래서 119를 불렀다.

하지만 날벼락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동네 의원 근처에 있는 3차 병원에서 코로나로 인해 환자를 받을 수 없다고 한 것. 장 씨는 그때를 생각하며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첫 번째 병원, 두 번째 병원 계속 거부당했죠. 절망적이었어요." 응급 상황에 갈 수 있는 상급병원을 찾지 못하자 장 씨는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바로 그때 고려대 구로병원 응급실에서 "곧바로 오라"고 알려 주었다. 장 씨의 아내는 앰뷸런스에 실리는 순간에도 의식이 없었다. 그날 밤 11시 30분경 가 씨는 고려대 구로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사경을 헤매던 가 씨는 응급실에서 바로 응급 처치를 받았다. 가 씨를 응급실에서 진료했던 응급의학과 허광렬 교수는 "당시 의식이 전혀 없는 상태였다. 산소포화도가 떨어져서 산소를 최대치로 공급하던 상태였다"라며 기억을 되살렸다.

허 교수는 그날 밤 11시 32분경 기도삽관을 했고, 초음파 검사를 시행했다. 폐부종이 심했고, 곧바로 기계호흡 치료를 했다. 그렇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양수색전증이 의심되어 판별 검사를 하려면 CT를 찍어야 했는데 가 씨는 기계호흡 장치를 떼고 추가 검사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 장 씨는 그때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말까지 들었다. 장 씨의 유일한 희망은 의료진이었다.

에크모 진료 팀, 새벽 공기 가르고 달려가

고려대 구로병원 응급실에선 가 씨를 살리기 위해 의료진이 백방으로 뛰었다. 허광렬 교수는 에크모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곧바로 흉부외과 김인섭 교수를 불렀다. 그때가 12월 9일 새벽 4시. 김인섭 교수는 에크모 치료에 필요한 의료진에게 연락을 했다. 흉부외과 협진이 시작된 것. 의료진 각자의 집에서 새벽의 찬바람을 뚫고 에크모 팀이 모인 시각은 새벽 4시 30분. 콜을 받고 에크로 치료를 위해 모일 때까지 걸린 시간은 단 30분. 치료를 했다. 그렇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아이를 낳고 응급치료를 받은 가윤선 씨(가운데)가 남편 장동환 씨(오른쪽)와 함께 고려대 구로병원 의료진을 다시 만나 아이를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드디어 가 씨에 대해 에크모 치료가 시작됐다. 그 후 폐동맥 혈전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CT를 찍었고 가 씨는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코로나가 확산되던 시기인데다 모두가 잠든 시간인 새벽녘, 의료진은 어떤 생각으로 병원으로 달려갔을까. 김인섭 교수는 "나이가 젊은 분이고, 아이를 낳은 분이라고 들었다"며 "이런 분은 반드시 살려야 하거든요. 빨리 살려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가 씨는 음압병상에서 희미하게 의식을 되찾았고, 김인섭 교수의 얼굴도 어렴풋이 보였다고 당시 기억을 떠올렸다. 지구를 구하기 위해 출동한 어벤져스처럼 이 병원 의료팀이 환자를 살리기 위해 새벽잠을 설치고 지체 없이 치료한 덕분이었다. 치료를 했다. 그렇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 후 1~2시간 흘러 김 교수가 가씨를 진료할 때 가씨의 의식은 기적적으로 돌아왔다. 김 교수는"가씨의 회복은 축복"이라고 표현했다. 치료를 했다. 그렇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기적적으로 다시 생명을 되찾은 가씨와 장 씨 부부는 의료진들에게 받은 감사함을 다시 누군가에게 되돌려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부부는 회사에서 받은 출산 축하금을 고려대 구로병원에 기부했다. 가 씨는 "제가 겪은 상황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잘 알고 있어 더더욱 감사의 마음이 컸어요"라고 말했다. 치료를 했다. 그렇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장 씨는 "고려대 구로병원에 오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아찔하다. 어쩌면 아이의 엄마, 그리고 아내를 잃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며 "이런 병원과 의료진들이 있어 감사하다"고 말했다. 가 씨는 "중환자실에서도 간호사 선생님들과 베드와 기저귀를 갈아 주시는 보조원분들도 진심을 다해 주시는 마음이 느껴져 힘들고 아팠지만 위로가 됐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 EDITOR: 장치선
  • PHOTO: 홍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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