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하면 위험한 노년기 우울증,
조기 치료하면 70% 이상 개선된다
노년기 우울증에 걸리면 만사가 귀찮아지고 대인관계가 단절된다.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초기 대응에 실패하면 심각한 문제를 남기는
뇌와 마음의 병이다.
고려대 안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신철민 교수를 만나 노년기
우울증에 대해 들어봤다.
신철민 교수는 "과거에는 당연시하던 신체 능력과 사회적 관계를 하나둘씩 잃어가면서 우울증을 느끼는 노인이 많다"며 "노년기 우울증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 심각한 사회 문제"라고 말했다. 은퇴, 가까운 사람의 죽음, 자식과의 불화, 대인관계 단절, 빈곤 등 사회·경제적 요인이 우울증을 유발하고, 치료 받지 못하면 극단적인 후유증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신 교수는 이어 "OECD 평균보다 2.6배 많은 우리나라 노인 자살의 직접적인 원인은 노년기 우울증으로 어느 나라보다도 정도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상실감에 신체 이상 동반되는 노년기 우울증
일반적인 우울증의 증상은 피로감과 무기력, 그리고 여기서 더 진행되면 심한 우울과 불안이 나타난다. 우울증에 걸리면 매사에 집중이 되지 않아 일상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일시적으로 나타났다가 금방 회복되는 단순 우울감과는 달리 병적인 우울증은 최소 2주 이상 지속되며, 불면증이나 과수면과 함께 자살을 떠올리는 등의 증상도 동반된다.
노년기 우울증에 걸리면 초기에는 특별한 감정의 변화 없이 잠이 오지 않고, 입맛이 없어 밥도 먹기 싫고, 특히 만사가 귀찮아진다. 몸 이곳저곳이 아픈데 막상 병원에 가서 검사하면 아무 이상이 없다. 집중력 감퇴와 함께 기억도 흐릿해지면서 치매가 아닌가 의심하기도 한다. 신 교수는 "노인들이 우울감 자체보다는 '피로하다', '만사가 재미없다', '기분이 예전 같지 않다'라고 말하며, 의욕 및 활력 저하와 함께 기억력과 집중력, 그리고 판단력 등 인지기능 저하가 빈번한 경우 '가성치매 증상'이라고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억력이 떨어진다며 진료실에 오는 노인 환자분들 가운데는 치매보다는 우울증인 경우가 많은데, 치매와 우울증은 그 경과와 치료 방향이 다르기 때문에 조기 발견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노년기 우울증은 두통, 복통, 소화불량 등의 신체적 증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아 내과 질환으로 오인되기도 한다. 때로는 주위의 이목을 끌기 위해 꾀병을 부린다는 가족들의 오해를 사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에는 '가면성 우울증'을 의심할 수 있다. 신 교수는 "가면성 우울증은 스스로 우울하지 않다고 말할 뿐만 아니라 표정에서도 우울한 느낌을 파악하기 어렵다"며 "멀쩡한 겉모습과는 달리 식욕부진, 소화불량, 두통, 근육통, 불면증 등의 신체적 증상을 호소하는 것이 '가면성 우울증'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노년기 우울증 치료하면 치매 예방 효과
"사람과 관계를 맺고 활동하는 자체가 인지 자극이 되고, 뇌 건강을 유지하는 힘인데, 그렇지 않게 되면 치매에 잘 걸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그리고 우울증을 앓는다는 것 자체가 뇌가 신경생물학적으로 이미 취약하다고 본다. 특히 노년기 초기에 발병하는 우울증은 치매와 상당히 연관이 있다. 역으로 말하면 우울증을 초기에 발견해 꾸준히 관리하면 치매 예방에도 상당히 효과가 있다고 풀이할 수 있다."
의료계에서는 우울증의 원인을 신경 전달 물질의 불균형이나 다른 질병에서 찾는 연구도 활발하다. 우리 기분을 조절하는 세로토닌, 흔히 아드레날린이라고 부르는 노르에피네프린, 행복 호르몬으로 통하는 도파민과 같은 신경 전달 물질에 불균형이 올 때 우울증이 발생한다. 나이가 들면 신경 전달 물질의 조절 능력과 저항력이 떨어져 깨진 균형을 잡는 '자기 회복력'이 떨어진다. 이와 달리 심뇌혈관질환이나 당뇨병, 암 등으로 인해 우울증이 오기도 한다.
또 다른 노년기 우울증의 주요 원인은 노년기의 경제력과 신체적 능력의 상실, 사별, 자식과의 불화, 외로움과 같은 노년기의 상실감이다. 신 교수는 "젊은 나이에는 상실을 경험해도 회복할 힘이 남아 있지만, 노인의 경우 '경제력도, 건강도 회복할 수 없다'라는 절망감으로 이어진다"라고 설명했다.
조기 치료하면 예전 기능 회복된다
노년기 우울증은 다른 질환에 비해 치료 효과가 크다. 일반적으로 우울증은 급성기 치료로 70~80%가 개선될 수 있다. 신 교수는 "노년기 우울증은 제대로 치료만 받으면 우울 상태를 개선하고, 예전의 기능을 회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우울증 치료로는 약물치료, 인지행동치료 등이 효과적이며, 약물의 부작용이 예전에 비하여 많이 감소했기 때문에 경도의 우울증부터 약물치료를 권하는 추세다. 신 교수는 "평생 약을 먹을까봐 우려하는 분이 계신데, 꾸준한 치료 후에는 더 이상 약을 먹지 않아도 좋은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악물 치료에는 항콜린성 부작용에 취약한 노인의 특성상 삼환계 항우울제보다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를 많이 사용한다. 이외에도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억제제는 통증에도 효과가 있어 통증을 동반한 노인에게 처방한다.
신 교수는 "치료 초반에 불안과 불면을 조절하기 위해 벤조디아제핀 계열의 약물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이 계열의 약물은 과도한 진정효과를 유발해 낙상을 유발할 수 있어 장기간 복용은 피하는 것이 좋다"라고 조언했다.
약물 치료의 경우 급성기 치료가 끝나도 재발 방지를 위해 6~12개월은 예방을 목적으로 지속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인지행동 치료는 우울증을 일으키는 왜곡된 생각이 감정과 행동, 대인관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이를 파악해 다양한 기법으로 인지의 변화를 유도하는 치료법이다. 이를 통해 부정적인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을 키울 뿐 아니라 자살과 같은 극단적 후유증을 예방할 수 있다.
약물에 대한 거부감을 나타내거나 치료 효과가 미진한 환자의 경우에는 경두개자기자극치료(TMS: Transcranial Magnetic Stimulator)나 경두개직류자극치료(tDCS: Transcranial direct current stimulation)를 활용한다.
TMS는 약물이나 수술 없이 신경세포를 자극하는 것으로 머리 가까이에 전도 전자기 코일로 자기장을 발생시킨 뒤 뇌의 특정 부위의 신경세포를 활성화하는 치료법이다. tDCS는 두피 위에 전극을 위치시킨 뒤 뇌 표면으로 미약한 직류 전기자극을 전달해 신경세포가 활성화하도록 자극하고 뇌 기능을 정상화하는 치료법이다.
그 외에도 머리에 부착된 전극을 통해 전류를 흘려 약 1분 동안 인위적인 경련을 일으키는 전기경련요법과 정신치료(지지적 정신치료, 단기 역동적 정신치료) 등이 노년기 우울증 치료에 사용된다.
감정 억제하는 노인들, 가족의 관심도 필수
모든 질환과 마찬가지로 노년기 우울증도 예방이 가장 중요하다. 예방의 첫걸음은 규칙적인 생활과 균형 잡힌 식습관을 유지하고, 운동을 통해 정서적 저항력을 기르는 것이다. 부정적인 생각은 없애고 즐거운 생각을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신 교수는 "술이나 검증되지 않은 약물은 우울증을 악화시킬 수 있으므로 피해야 하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증상이 악화되기 전에 치료받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환자 가족들의 세심한 관심도 필요하다. 만약 환자가 자살에 관해 이야기를 한다면 반드시 의사에게 알려야 한다. 신 교수는 "우리나라 노인들은 감정을 억제하는 시대를 살았기에 우울감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며 "가족들이 평소 환자의 어려움에 충분히 공감하고 격려하는 태도를 가지고, 환자를 대화에 참여시켜 환자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우울증 치료 중에는 처방받은 약을 잘 복용할 수 있도록 돕고 환자의 증상이 호전되었다고 임의로 치료를 중단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EDITOR: 김은식
- PHOTO: 지호영, 셔터스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