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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의과대학 66)·홍기문(의과대학 66) 교우 기부자 "고려대 의대, 감염병 치료의 전진기지가 되길"

김혜경, 홍기문 부부

김혜경(왼쪽), 홍기문 교우 부부.

지난해 여름, 미국에서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의과대학 66학번 동기이자 부부인 김혜경·홍기문 교우가 우리 의과대학 발전을 위해 각각 4만 달러씩 총 8만 달러(약 1억 400만 원)를 기부한 것. 미국 클리블랜드로 건너간 지 40년 가까이 됐지만 한국 의료를 이끄는 모교에 대한 이들의 애정은 여전했다. 이국 땅에서 전해온 김혜경 교우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2005년 모교에 의학발전기금을 내신 것으로 압니다. 이번에 다시 기부를 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저는 학생 시절 본과 1학년부터 4학년까지 교우회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은사이신 나복영 교수님은 제가 이 장학금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셨을 뿐 아니라, 때때로 자택에 초대해 주시는 등 많은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지금도 교수님을 생각하면 무척 감사하고 생전에 자주 연락 드리지 못한 것이 아쉽기만 합니다. 또 저의 고교 선배이자 의대 1년 선배인 최창희 언니는 친동기처럼 저의 학업을 도와주고 사랑으로 돌봐주셨습니다. 저는 의대생 시절 장학금을 받을 때마다 참 감사했고, 선배님들이 내게 그러했듯 나도 후배들에게 반드시 보답하리라 다짐하곤 했습니다. 2005년 모교 방문 시 첫 번째 기부를 했고 비록 적은 금액이지만 저 자신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어 뿌듯했습니다. 이후 다시 기부할 돈을 조금씩 저금하기 시작했고, 2022년 윤흥노 선배님이 도와주셔서 그간 모은 금액을 기부할 수 있게 됐습니다.

1970년대 미국으로 떠나 현지에서 자리를 잡은 지 꽤 오래 되신 걸로 압니다. 외국에서 바라본 고려대 의대의 모습은 어떤가요.

지난해 10월, 김영훈 고려대 의무부총장님이 워싱턴 D.C.를 방문하신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제가 사는 클리블랜드에서 꽤 먼 곳이지만 모교가 그립고 그간의 소식도 궁금해 다소 무리해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모교가 놀랄 만큼 발전한 모습을 확인하고 남편과 함께 큰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특히 감명 받은 부분은 바이오 메디컬 분야를 선도할 연구기지 '메디사이언스파크'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불치병을 치료할 신약이 많이 개발돼, 우리 모교가 감염병 예방 및 치료를 위한 전진기지로서 역할을 다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기부자 두 분은 교우이자 반려자로서, 고려대 의대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저희 부부는 의대 바이블 스터디 모임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당시 제가 선생, 남편이 학생인 관계였지요. 남편은 제가 성경을 잘 가르쳐줘서 호감이 생겼다고 합니다. 그것을 계기로 함께하는 시간이 점차 늘어났어요. 우리 부부에게 의대 시절은 힘들었지만 즐거운 추억도 참 많습니다. 초창기 미국에 정착하며 힘든 때도 많았는데, 후학을 위해 매번 열띤 강의를 해 주시던 교수님들, 밤낮으로 학업에 정진하던 급우들의 모습을 기억하며 견딜 수 있었습니다.

이들 부부는 1970년대 초반 미국행을 결심했다. 당시 외국인 의사 고용이 거의 끝난 시기라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김혜경 교우는 처음에는 외과에서 일을 하며 현지 언어와 문화를 배웠다. 이후 곧 미국 최고의 병원 중 하나인 '클리블랜드 클리닉'에서 방사선 종양치료를 전공하고 종양의사의 꿈을 이루게 됐다. 당시 말기암 환자를 볼 때마다 의사로서 한계를 느꼈다는 그는 의학 발전의 중요성을 마음 깊이 느꼈다고 한다. 2019년 세계를 덮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은 의학 발전과 후학 양성의 중요성을 되새기는 계기가 됐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고려대 의대의 역량을 새삼 느꼈다고 하셨습니다.

네. 2019년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고 세계의 많은 사람이 속수무책으로 쓰러져갈 때, 누군가는 사람들에게 이 낯선 병에 대해 설명해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의사인 둘째 아들이 제게 전화를 했더군요. 코로나19와 관련해 많은 감염병 의사의 강의를 들어봤는데, 가장 간단명료하게 설명해준 최고의 의사가 고려대 의대 김우주 교수라고요. 이렇게 훌륭한 후배들이 세상을 이끌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고려대 의대 교우는 모두 의사로서 남다른 사명감과 전문성을 지닌 것 같습니다.

제가 레지던트 훈련을 받은 클리블랜드 클리닉 메인 컴퍼스에는 작은 분수대가 있고, 그 곁에 청동 조각상이 하나 서 있습니다. 한 사람이 두 팔을 뻗어 축 늘어진 환자 한 명을 안고 있는 모양이죠. 그 앞에는 "People helping people"이라고 적힌 작은 팻말이 붙어 있습니다. 그 조각상을 볼 때마다 한국에서부터 배운 의사의 사명을 깨우치곤 했습니다. 저희 부부는 모두 의사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남편의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는 세브란스(현 연세대의대) 교우로 한국에서 서양의학을 배운 최초의 양의사들이시고, 졸업 후 각자 고향에 돌아가 많은 환자를 진료하셨습니다. 남편의 아버지와 외삼촌도 세브란스 교우이며 외과 의사로 전북 군산과 익산지역에서 큰 활약을 하셨습니다. 저희 부부 세대를 이어 후대에도 수없이 많은 의사가 배출됐지요. 제 동생, 고려대 의대 35회 졸업생인 김애경은 의술을 채 꽃피우기도 전인 1983년 대한항공 격추 사건으로 가족이 희생당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가족은 굳세게 살고 있습니다. 큰아들 홍인철은 하버드대에서 알레르기 면역학 훈련을 받고 현재 하버드대 의대 조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둘째 홍민철은 듀크 메디컬센터에서 정신건강의학과를 전공하고 현재 그 지역 환자를 위해 의술을 펼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의학 분야에 종사하는 자녀들은 한국과 미국의 의학 교류 교두보 역할을 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김혜경, 홍기문 교우 가족사진
왼쪽부터 큰아들 홍인철(David) 씨, 홍기문 교우, 김혜경 교우, 작은아들 홍민철(Harold) 씨.
고려대 의대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두 아들이 진로에 대해 고민할 때, 저는 그들에게 어떠한 강요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아이들이 적성에 맞고 고귀한 사명을 띤 의사의 길을 택하도록 조용히 기도했지요. 스스로 의대에 가겠다고 했을 때는 무척 기뻤습니다. 아마도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늘 사람들을 위해 살아온 우리 가족의 사고와 행동이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의사라는 직업은 어느 나라에서나 선망의 대상입니다. 중요한 것은 술기와 지식만이 아닌, 진정 사람을 위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후배들이 실력을 기르며 동시에, 부와 명예보다 환자를 먼저 생각하는 의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 EDITOR: 박정연
  • PHOTO: 김혜경·홍기문 부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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