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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LING TRAVEL

'외계 행성' 같은 사우디아라비아 5억 년 세월 담은 기암괴석 고요한 사막,
시간이 멈췄다

삼척시 갈남항

이슬람 창시자인 무함마드가 묻혀 있는 메디나 '예언자의 모스크'.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지난해 처음으로 비무슬림 외국인 관광객에게도 개방했다.

사우디아라비아에는 뜨거운 모래사막과 낙타밖에 없을까?
1970~80년대 '중동 붐' 당시 한국의 건설 근로자들이 구슬땀을 흘려가며 일하고 외화를 벌어들이던 곳. 세계 최대의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관광대국을 꿈꾸며 본격적으로 글로벌 관광객들을 손님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사우디 왕세자 무함마드 빈살만(MBS)이 추진하는 사우디 국가 개조 프로젝트인 '비전 2030'의 핵심도 관광산업이다. 수도 리야드 공항에 내리는 순간부터 사우디에 대한 오래된 편견이 깨지는 충격의 연속이었다.

사우디는 요즘 겨울

해발 700m의 도시 리야드. 날씨가 제법 쌀쌀했다. 영상 12℃. 모래사막을 예상하고 반팔만 가져왔는데, 추웠다. 자세히 보니 리야드 남성들은 패딩점퍼를 입고, 여성들은 양털로 짠 두꺼운 아바야(외출할 때 입는 로브 드레스 같은 겉옷)를 입고 다니는 것이 아닌가. 사우디는 남한 면적의 약 20배 정도로 큰 나라다. 홍해 해변이나 사막도 있지만, 알아흐사 같은 오아시스 도시에는 대추야자 숲이 정글처럼 펼쳐져 있다. 북쪽의 요르단·이라크와 가까운 타북 지방과 남쪽 예멘과 가까운 아시르 고원지대에는 겨울에 0℃ 가까이 떨어져 눈이 내리기도 한다. 사우디는 타북주 네옴시티 인근 트로제나 스키장에서 2029년 동계아시안게임을 유치하기도 했다.

알울라 공항의 직원
알울라 공항의 직원이 아라비아커피와 대추야자를 무료로 서비스하며 방문객을 환대하고 있다.

두 번째로 놀란 것은 거리에 히잡을 쓰지 않고 화려한 화장을 하고 걸어다니는 수많은 여성들이었다. 이란에서 히잡 반대시위로 사회가 혼란스럽고 시위 여성들이 마구잡이로 체포되고 있는데, 이슬람 최대 성지인 메카를 수호하는 보수적인 국가인 사우디인데도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2019년 여성들에게 운전면허가 허용된 이후로 여성들은 남편이나 아버지 같은 후견인의 허락 없이도 자유롭게 외출하고, 취업을 하고 있다. 이러한 모든 변화는 2016년 빈살만 왕세자가 발표한 '비전 2030'에서 시작됐다.

빈살만 왕세자의 네옴 프로젝트 발표 이후 사우디에는 유럽발 관광 열풍이 불고 있다. 좀처럼 관광 비자를 발급하지 않던 사우디 정부가 2019년 온라인으로도 전자 비자를 발급해 관광의 문호를 활짝 열었기 때문. 사우디는 그동안 이슬람 신자들에게만 허용됐던 성지 메디나 방문을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도 개방했다. 지난해 9월부터는 인천~리야드~제다 직항 항공노선도 뚫려 한국인들도 쉽게 갈 수 있는 새로운 여행지가 됐다.

사막의 고대도시 알울라

사우디 여행 중에 만난 가장 놀라운 풍경은 북서부에 있는 고대문명 도시 알울라(AlUla)다. 리야드에서 1100km 떨어진 알울라는 카라반 무역이 융성하던 고대왕국 다단왕국(BC 6~1세기)의 수도로, 마치 화성과 같은 외계의 행성에 와 있는 듯한 풍광에 감탄사만 연발하게 된다. 5억 년 전에 형성된 거대한 사암(砂巖) 산맥이 계곡을 이루고, 바람에 의한 풍화와 침식을 통해 기암괴석을 이룬다. 미국의 그랜드캐년 대협곡, 버섯 모양의 신기한 바위들이 펼쳐져 있는 터키의 카파도키아, 영화 '아바타'의 모티브가 된 중국의 장자제(張家界, 장가계)를 화성에 펼쳐놓은 듯한 풍광이다. 카메라 셔터를 누를 때마다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본 듯한 사진이 찍힌다.

그동안 사우디아라비아는 7세기 이슬람 문명 이후의 문화유산만을 국가적으로 인정했기 때문에 다른 종교와 문명이 얽혀 있는 문화유산은 외부인들에게 공개해오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사우디 관광의 중심축으로 떠올랐다.

알울라에 있는 코끼리 바위
사우디 북서부 고대도시 알울라에 있는 '코끼리 바위'. 모래사막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노을빛에 시시각각 변해가는 코끼리 바위를 감상할 수 있다.

알울라에서 가장 유명한 바위는 코끼리 바위(Elephant Rock)다. 프랑스 북부 에트르타 해변에 있는 코끼리가 사막으로 걸어 온 듯한 풍광이다. 알울라 코끼리 바위는 해 질 녘 노을빛에 황금색으로 물들어간다. 코끼리 바위 앞에 있는 모래사막에는 구덩이를 파고 차를 마실 수 있는 야외 공간이 있는데, 해가 지고 횃불이 들어오면 분위기가 환상적이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바위의 색을 감상하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화하다 보면 사막의 고요함 속에 빠져든다. 이대로 시간이 멈출 것 같은.

알울라 지역을 차를 타고 가다 보면 전혀 예상치 못한 풍경도 만난다. 사막 한가운데 만들어져 있는 '마라야 콘서트홀'이 그 중 하나다. 2019년 12월 알울라 개막축제가 이 콘서트홀에서 열렸다. 500석 규모의 좌석과 음향시설을 갖춘 콘서트홀에서는 일디보, 야니, 라이오넬 리치 등 세계적인 음악가들이 찾아와 공연을 했다. 마라야(Maraya)는 아랍어로 '거울'이라는 뜻. 2020년 '세계에서 가장 큰 거울로 덮인 건물'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콘서트홀은 마치 신기루처럼 보는 각도에 따라 사라졌다가 나타난다. 주변 계곡과 바위, 모래사막을 거울로 반사해 마치 건물 자체가 없어지는 듯한 착시 현상 때문. 사막에 펼쳐진 수영장 또한 뜻밖의 풍경이다.

마라야 콘서트홀
거울로 덮인 세상에서 가장 큰 건물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마라야 콘서트홀'.
대통령 전용 승용차
알울라 사막의 웅장한 협곡에 수영장을 만들어놓은 해비타스 리조트.
샤덴 리조트
아침이면 새소리가 들리는 알울라의 기암괴석으로 둘러싸인 샤덴 리조트.

명상 수련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해비타스 알울라 리조트는 기암괴석의 협곡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중앙의 커다란 바위 위에 파란색 히잡의 여인이 참선하고 있는 예술품이 놓여 있다. 그런데 그 옆으로 코발트 블루색으로 빛나는 수영장이 펼쳐져 있고, 빨간색, 초록색 비키니를 입은 여인들이 수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사막 한가운데 인피니티 풀장이라니!

도대체 이 물을 어디서 구했을까. 해비타스 리조트 관계자에게 물었더니 "이곳은 오아시스 지역이라 땅을 파면 지하수가 나온다"고 했다. 사우디의 공공해변에서는 얼굴과 몸통을 완전히 가리는 '부르키니' 수영복을 입어야 하지만, 프라이빗 수영장이나 해변에서는 비키니도 가능하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사막의 오아시스에는 대추야자를 비롯한 많은 나무들이 자라고 있고, 그 안에는 수많은 종류의 새들이 살고 있다. 이것도 미처 몰랐던 사실 중 하나다.

사막의 고대문명의 건축물

역사문명 지구인 헤그라에는 바위 전면부(파사드)를 깎아서 부조처럼 건물의 입구를 표현해놓은 110개의 건축물이 있다. '카스르 알파리드(Qasr AlFarid)'라고 불리는 건물이 가장 유명한데, 기둥이 4개나 되는 것으로 보아 상당히 중요한 인물이 묻혀 있던 곳으로 추정된다. 지붕 위에 있는 계단은 무덤 주인의 영혼이 하늘로 올라가는 통로를 상징한다고 한다.

헤그라 바위 협곡에 있는 바위 중에는 우리나라 '반구대 암각화'처럼 수천 년 전부터 새겨놓은 다양한 문자와 소, 염소, 새 그림이 있다. 사막을 건너는 대상(隊商, 카라반)들이나 여행자, 순례자들이 신에게 안전한 여행을 비는 제례의식 도중 남겨놓은 메시지다. 아랍어로 '자발(Jabal)'은 산을 뜻하는데, '자발 이크마(이크마 산)'는 신성한 명상의 장소로도 유명하다. 이곳 계곡 바위에는 아람어, 타무드어, 다단어, 나바테아어, 그리스어, 라틴어, 아랍어 등 온갖 고대 언어로 쓰인 명문과 암각화로 가득하다. 그래서 이곳을 '오픈 뮤지엄' 또는 '고대의 트위터'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 다른 사암 산맥인 '자발 이틀립'에는 바위 틈새 사이로 시원한 천연 에어컨 바람이 불어오는 좁은 협곡이 있다. 이곳에는 2000여 년 전에 인공적으로 바위굴을 파놓은 '알디완(Al-Diwan)'이라고 불리는 사각형 홀이 있는데 왕궁의 회의나 연회, 콘서트가 열리던 곳이라고 한다. 홀 안에는 돌로 만든 널찍한 벤치가 3개의 벽면에 놓여 있는데 로마시대 사람들처럼 비스듬히 누워서 음식을 먹으며 연회를 즐기던 곳이라고 한다. 이곳에서도 바위에 새겨진 수많은 글씨는 오래된 시간 속으로 여행을 떠나게 해준다.

제다와 메디나

모히토
홍해가 바라보이는 제다의 레스토랑에서 주문한 모히토.

홍해 연안에 있는 제다는 사우디 최대의 항구도시다. 사우디아라비아로 들어오는 수입품 중 70%가 제다 항구로 들어온다. 또한 홍해의 푸른 바다를 바라보면서 해양스포츠를 즐기고, 각국의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레스토랑과 중동 최대 규모의 쇼핑센터도 자리 잡고 있다.

제다는 7세기 이후부터 이슬람 최대의 성지인 메카와 메디나로 가는 순례자들이 들어오는 항구였다. 중동과 유럽,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아프리카까지 넓게 퍼져 있는 전 세계 이슬람 신자들은 평생에 한 번은 메카를 순례해야 하는 의무를 갖고 있다. 이 때문에 다양한 국적의 성지 순례객들이 몰려드는 제다 항구는 글로벌 무역과 경제활동의 중심지였다.

제다로 들어온 성지 순례객들은 여행비를 마련하기 위해 고국에서 특산품을 가져와 팔았다. 항구 인근에는 순례객들이 가져온 향신료, 보석, 약재, 포목, 장신구 등을 물물교환하는 커다란 시장이 형성됐다. 주변에 형성된 알 발라드 주거지역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알 발라드에는 제다 특유의 하지즈 양식으로 지어진 집들이 밀집돼 있다. 창문에 나무로 정교한 무늬의 장식을 한 베란다인 '로샨'으로 꾸며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로샨에 쓰인 나무들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성지 순례객들이 타고 온 배에 함께 실려 온 원목으로, 제다에서만 가능한 사치였던 셈이다. 알 발라드 구역은 오후 시간대에 천천히 걸어 다니면 좋다.

제다에서는 해가 기울어 뜨거운 햇볕이 사라질 시간이 되면 가게들이 하나둘씩 문을 열고 사람들이 몰려든다. 모래흙으로 빚은 무채색의 도시가 신밧드의 모험에 나오는 아라비아의 화려한 불빛 도시로 변모한다.

알타이바트 국제 이슬람박물관
제다 특유의 '히자즈 양식' 로샨(정교한 조각이 새겨진 나무 베란다)으로 꾸며진 알타이바트 국제 이슬람박물관.
올드타운 알 발라드 구역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제다 올드타운 알 발라드 구역.

사우디 정부는 올해 처음으로 메디나를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개방했다. 메카에서 태어나 이슬람교를 창시한 무함마드는 서기 622년 귀족들로부터 박해를 받자 북쪽 상업도시 메디나로 피신했다. 이슬람교는 이 사건을 '헤지라(성스러운 도망)'라고 하여 이슬람력 원년으로 삼을 정도로 메디나는 중요한 도시다. 메디나 최대의 이슬람 성전인 '예언자의 모스크'에는 무함마드의 무덤이 있다. 모스크 안에서는 메카의 아브라함의 '잠잠(Zam Zam) 우물'에서 가져온 성수(聖水)를 마실 수 있다.

 메디나 '예언자의 모스크' 무함마드의 무덤
메디나 '예언자의 모스크' 그린돔 아래에 있는 이슬람 창시자 무함마드의 무덤.

사우디에서는 술은 마실 수 없다. 이 때문에 밤 11시에도 남자들끼리 카페에서 커피와 케이크를 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술을 마시는 사람이 없기에 치안은 오히려 안전한 편이다. 수도 리야드와 제다 등 대도시에서는 새벽 2시에도 시내 공원과 레스토랑에서 여성들과 아이들이 함께 늦은 밤을 즐기는 장면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 WRITER & PHOTO 전승훈 동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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