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이 진행하는 '침묵의 질병' 간암
간 건강 지키는 길은 '완전 금주'뿐
임선영 고려대 안암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간에는 신경세포가 없기 때문에 간암이 생겨도 통증이 발생하지 않는다"며 "간암 발생 확률이 높은 만성간염이나 간경변 환자는 증상이 없어도 정기 검사를 받아 간암을 조기에 발견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우리나라 40~50대 남성 암 사망 원인 1위는 간암. 간암은 전체 암 발생에서도 5위를 차지할 정도로 유병률이 높다. 하지만 암이 상당부분 진행해 기능이 떨어질 때까지 별다른 증상이 없어 '침묵의 암'으로 불린다. 간에는 신경 세포가 없어 환자가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탓이다. 임선영 고려대 안암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를 만나 간암을 예방하고 간 건강을 지키는 최선의 방법에 대해 들었다.
한때 "간 때문이야"라는 말이 유행했다. 실제로 간이 제 역할을 못하면 우리 몸 곳곳에 문제가 생긴다. 간은 체내에서 탄수화물과 단백질, 지방 분해에 관여하고, 담즙산을 비롯한 여러 호르몬 대사에 작용한다. 해독 또한 간의 핵심 기능 중 하나다. 문제는 이처럼 중요한 간이 망가진 현대인이 많다는 점. 특히 우리나라는 일본, 중국 등과 함께 간암이 많이 발생하는 나라로 손꼽힌다.
우리나라 남성의 암 사망 원인 중 3위가 간암이며, 40~50대로 범위를 좁히면 간암으로 세상을 떠난 암환자가 가장 많다. 임선영 고려대 안암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중년에 접어들면 특히 간암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흔히 간암이라고 하면 간세포암을 말한다. 이름 그대로 간세포에서 발생하는 암으로, 전체 간암의 85% 정도를 차지한다. 이 외에 간내담관암, 혈관육종 등도 간암에 속한다.
간암의 주요 원인은 간염 바이러스다. 우리나라 간암 환자의 85%가 B형(72.3%) 또는 C형(11.6%)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돼 있다. B형·C형 간염 보유자는 암 발생 위험이 크다는 걸 인지하고 평소 특별히 주의하는 게 좋다. 간암을 발생시키는 또 다른 주요 원인은 음주다. 술을 마시면 우리 몸에 알코올의 독성물질이 들어온다. 그 중 80%는 간에서 해독 작용을 거쳐야 한다. 간이 처리할 수 있는 용량을 넘어서면 간 손상을 넘어 간암이 발생할 수 있다. 알코올은 간암·간경변·지방간 등 각종 간 질환을 일으키는, 간 건강의 가장 큰 적이다.
만성간염, 간경변 환자는 증상 없어도 간암 검사해야
초기에는 아무 증상도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간에는 신경세포가 없기 때문에 암 발생을 자각하기가 어렵다. 또 간암 환자는 보통 기존에 간질환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체중 감소나 복부 우상부 통증 등이 나타나도 기존 질환의 영향으로 오인해 치료의 적기를 놓치곤 한다. 보통 간암 환자는 간염 또는 간경변 때문에 병원을 찾았다가 간암을 발견하는 사례가 많다. 때로는 암이 복부에서 파열돼 배 안에 피가 고여 복부 팽만감이 느껴진 뒤에야 암을 발견하기도 한다. 따라서 간암 발생 확률이 높은 만성간염 환자나 간경변 환자는 증상이 없어도 정기적인 검사를 통해 간암을 조기에 발견하고 바로 치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상당부분 진행된 간암 환자는 진단 후 6개월 이내에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 평균 생존 기간이 4개월밖에 안 된다. 반면 암종 크기가 3cm 미만인 작은 간암(소간암) 단계에서 수술을 한 경우 5년 생존율이 60%를 상회할 정도로 예후가 좋다. 평소 간 건강에 관심을 기울여 소간암 시기에 암을 발견하는 게 매우 중요한 이유다.
간암이 의심되면 일단 전산화단층촬영(CT), 자기공명촬영(MRI), 혈관조영술 등을 통해 정밀진단을 한다. 간암은 혈관이 풍부한 암이라 이러한 방사선학적 검사에 특징적인 소견을 보인다. 방사선학적 검사만으로도 간암을 확실히 판별할 수 있지만 최근에는 정확도를 높이고자 조직검사를 병행하는 사례가 늘었다. 혈액을 검사하는 알파태아단백검사도 간암 진단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최근 수년간 간암 치료법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간암을 치료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수술이다. 종양 부위를 물리적으로 제거하는 것이다. 간암 수술의 첫 단계는 간 기능 평가다. 간암 환자의 건강 상태를 살펴 간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암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 최적의 범위를 찾아 절제한다. 문제는 심한 간질환이 동반돼 있어 수술 자체가 위험한 경우, 또는 간암 크기가 너무 크거나 여러 개가 동시에 발생해 수술을 할 수 없는 경우가 적잖다는 것이다. 간암 환자 가운데 수술을 받는 사람은 20% 미만에 불과하다.
앞서 말씀드렸듯 현재 의학기술에서 간암을 완전히 치료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간 절제다. 정상 간의 경우 80%를 절제해도 6개월 안에 다시 원래대로 자라난다. 그만큼 회복력이 좋다. 환자가 간경변증이 없고, 간 기능을 충분히 유지하고 있는 상태라 암 절제가 가능한 경우 우선적으로 간절제술을 고려한다.
간암 발생의 원인을 제공한 병든 간을 완전히 제거하고 새로운 간을 이식하는 간이식은 이론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치료법이나, 1~2기 정도의 초기 간암에서 주로 적용이 가능하다.
수술 치료가 불가능할 경우, 고주파 열치료술, 극초단파 열치료술 등을 시도해 볼 수 있다. 고주파 열치료술은 초음파로 종괴를 확인한 뒤 그 부위에 전기 전극을 천자하고 매우 빠른 고주파 교류 전류를 흘려보내는 방식이다. 이로써 종양 내 분자 사이에 마찰을 발생시켜 종양에 응고성 괴사를 일으키는 치료법이다. 소간암 치료에 효과적이다.
간암이 좀 더 진행돼 이 방법을 시도하기 어려운 환자에게는 암괴로 향하는 혈관(동맥)에 항암제를 투여하고 혈관을 차단하는 치료(간동맥 화학색전술)를 시도한다. 방사성 동위원소를 간동맥에 투여하는 치료(간동맥 방사선색전술)를 사용할 수도 있다. 간암이 더욱 진행해 간동맥 화학색전술조차 시도할 수 없는 경우엔 전신적 항암요법을 시행한다. 이때 치료 효과는 15~20% 정도다.
최근에는 간 기능이 좋지 않아 수술을 하기엔 힘들지만 암의 크기가 작을 경우 간이식을 시행하는데, 이렇게 하면 간암뿐 아니라 동반된 간경변증까지도 치유할 수 있어 좋다.
간 기능이 나쁘지 않은 환자를 기준으로 했을 때 종괴 크기가 2cm 이내의 아주 초기 간암환자의 5년 생존율은 70% 가량이다. 진행성 간암 환자의 경우 4~19개월로 항암치료 반응에 따라 결과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간암의 선행 원인이 되는 바이러스 감염을 예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우리나라에 만연한 B형 간염을 예방하기 위해 백신을 접종해야 한다. 이미 만성 바이러스성 간염에 걸려 있는 사람이라면 항바이러스제를 이용한 적극적인 치료를 통해 간경변증으로 진행하는 것을 차단하는 게 중요하다. 이미 간경변증이나 만성 간염에 이른 환자는 간암 발생 유무와 관계없이 정기 검사를 해서 암을 초기에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부득이 술 마실 경우 식사부터 해서 간 보호해야
만성 바이러스성 간염환자나 간경변증 환자 같은 간암 고위험군은 국가 암검진을 활용해 6개월 간격으로 간초음파 검사와 종양표지자 검사를 받을 것을 권고한다. 만약 비만이거나 장내에 가스가 가득 차 복부 초음파 영상을 제대로 얻기 어렵다면 조영제를 사용한 복부 CT 검사가 필요할 수 있다. 전문의의 조언에 따라 최선의 방법을 찾는 게 바람직하다.
물론이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는 술을 담배와 함께 1급 발암물질로 지정했다. 하지만 2023년 3월 국립암센터가 실시한 대국민 음주·흡연 관련 인식도 조사를 보면 '한두 잔 정도의 술은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여기는 비율(18%)이 높았다. 절대 그렇지 않다. 환자들에게 '적당한 음주'는 환상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간 건강을 지키려면 철저한 금주가 필요하다.
세계보건기구는 알코올을 섭취할 경우 남성은 회당 40g(약 소주 4잔) 이내, 여성은 20g(약 소주 2잔) 이내로 제한할 것을 권고한다. 하지만 간암 예방을 원한다면, 무조건 금주해야 한다고 말씀드린다. 만약 정말 부득이하게 술을 마셔야 한다면 식사를 제대로 한 뒤 술을 마셔야 한다. 보통 술자리가 저녁에 시작되다 보니 식사를 거르거나 밥과 술을 병행 섭취하는 경우가 많은데, 배가 고플 때 술을 마시면 간이 영양분을 공급받지 못한 상태라 알코올 분해가 늦어진다. 또 허기진 배를 채우려고 술을 급하게 마시게 돼 더 빨리 취하게 된다.
간 건강을 지키려면 너무 기름진 음식을 먹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술을 마시기 전 알코올 흡수를 줄일 목적으로 삼겹살 같은 기름진 음식을 먹는 사람들이 있는데, 과도한 지방 섭취는 알코올 분해를 방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뿐 아니라 지방간의 원인이 되기도 하니 유의해야 한다.
간 기능 개선제에 보통 들어 있는 UDCA(우르소데옥시콜산)는 간에서 합성하는 담즙에 포함된 성분 중 하나로, 간 기능 개선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병원에서 처방하는 약과 비교하면 함유량이 매우 적다. 잦은 음주 습관이 있거나 간 질환자에게 일부 권장되지만, 간 질환이 없는 사람이 시판 간기능 개선제를 장기 복용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 EDITOR: 장치선
- PHOTO: 조영철, 셔터스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