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발전기금 100만 달러 기부한 문황호·최경자 교우 부부 "고려대는 우리 인생의 럭키,
기부로 우리 인생은 해피"
고려대 의대 동문이자 부부 의사로 모교에 의학발전기금 100만 달러 이상을 기부한 문황호, 최경자 교우.
고려대 의대 동문이자 부부 의사인 문황호(의대 24회), 최경자(의대 28회) 교우는 1972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낯선 땅에서 의사로 살아남고자 고군분투하면서도 모교에 대한 사랑만은 잊지 않았다. 2016년부터 지금까지 고려대에 기부한 의학발전기금이 미화 100만 달러, 한화로 13억 원이 넘는다. 고려대의료원은 그 뜻을 기리고자 의과대학 제1의학관 6층 대강의실을 '문황호, 최경자 강의실'로 명명했다. 이들 부부를 만나 남다른 기부 스토리를 들었다.
"우리가 의사라는 직업을 갖고 지금까지 아쉬움 없이 살 수 있었던 건 전부 고려대 의대 덕분 아니겠어요? 이게 얼마나 럭키한 거예요? 우리를 이렇게 키워준 모교에 기부를 통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어서 얼마나 해피한지 몰라요."
문황호(의대 24회), 최경자(의대 28회) 부부가 유쾌하게 말했다. 두 사람은 1972년 결혼 후 함께 미국으로 떠나 50년 넘게 의사로 일했다. 한국에서 의대 졸업생에게 보장되는 안정된 삶을 뒤로 하고 미국행을 선택한 건 '더 좋은 의사'가 되고 싶은 최 교우의 꿈 때문이었다고 한다.
메디컬 드림을 찾아 떠난 미국
"1960년대 한국의 의학 수준은 지금 같지 않았어요. 실험실이나 카데바(연구 목적을 위해 기증된 해부용 시신)도 부족했죠. 저는 더 높은 수준의 의학을 배우고 싶었어요."
최 교우의 말이다. 문 교우는 이런 아내의 뜻을 존중했다. 결혼 당시 문 교우는 군 제대 후 소아과 레지던트를 1년 반 정도 하고 있었다. 미국으로 가면 그간의 수련을 모두 포기해야 했다. 하지만 함께 의학의 길을 걸어갈 아내의 든든한 동반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가 미국행에 동의하면서 두 사람의 길고 고된 여정이 시작됐다. 미국에서 그들은 인턴부터 시작했다. 최 교우는 마취과, 문 교우는 방사선종양학과를 각각 택했다.
"남편은 남을 돕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그 무렵 미국에 방사선종양학과가 처음 생긴 걸 보고, 암 환자에게 희망을 주는 의사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그래서 한국에서 했던 소아과 대신, 새로운 전공에 도전한 거죠."
미국에서의 삶이 쉽지는 않았다. 첫 번째 난관은 언어였다. 공부는 얼마든지 따라갈 수 있는데, 영어가 기대만큼 빠르게 늘지 않았다고 한다. 의사는 아픈 환자와 소통하며 병을 치료해야 하는 직업이다 보니, 매우 높은 수준의 영어 실력이 요구됐던 것이다. 언어의 한계를 극복해가며 의사 면허까지 따려니 이들에게는 휴일도, 방학도 없었다. 그 어렵다는 미국의사면허시험(USMLE)을 통과하고 의사가 된 뒤에도 어려움은 이어졌다.
"미국에서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낳았어요. 병원에 가려고 준비를 시작하면 아이들이 떨어지지 않으려고 우는 거예요. 엄마로서 마음이 약해질 수밖에 없었죠. 그러면 남편이 와서 아이를 홱 빼앗아 베이비시터에게 맡겼어요. 그때는 얼마나 야속하던지 '어떻게 사람이 이러나' 하는 생각까지 했죠. 지금 돌아보면 남편에게 정말 고마워요."
최 교우는 "아이들 걱정에 의사고 뭐고 다 포기하려 한 적이 여러 번이었다. 그때마다 남편이 나를 붙들어 여기까지 올 수 있게 해줬다"며 "그렇게 서로를 의지하며 버텨온 미국 생활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시울이 붉어진다"고 했다.
고국과 모교에 대한 사랑, 감사
"공부하랴, 환자 돌보랴, 아이들 키우랴, 어떻게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어요. 정신없이 살다 조금이나마 여유가 생겨 한국에 온 게 1988년이에요. 미국 간 지 17년 만이죠. 우리가 떠날 때만 해도 그렇게 가난한 나라였는데, 돌아와 보니 정말 좋더군요. '아, 내가 살던 나라가 이런 곳이었구나' 싶고, '내 나라, 그리고 나를 키워준 모교를 위해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문 교우의 얘기다. 알고 보니 최 교우 또한 당시 똑같은 생각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두 사람 중 누구도 먼저 그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았다. 고향과 모교에 대한 사랑을 확인한 채 미국으로 돌아간 두 사람은 다시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았다. 그리고 20여년 뒤 은퇴를 준비하기 시작한 무렵, 최 교우가 남편에게 넌지시 기부 이야기를 꺼냈다고 한다.
"우리가 미국에서 이렇게 잘 살 수 있었던 건 다 모교 덕분인데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 기왕이면 어려운 학생들이 편하게 공부할 수 있도록 장학금을 마련해보는 게 어떨까요?"
이미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문 교우는 자신의 마음을 족집게처럼 알아준 아내가 고마웠다고 한다. 두 사람은 곧장 학교에 기부 의사를 전했다. 그렇게 시작된 이들의 기부는 계속 이어져 미화 100만 달러, 한화로 13억 원이 넘는 수준으로 커졌다. 고려대의료원은 그 뜻을 기리고자 의과대학 제1의학관 6층 대강의실을 '문황호, 최경자 강의실'로 명명했다.
"얼마 전 고려대 의대에서 저희 이름이 붙어 있는 교실을 봤어요. '이렇게까지 할 건 아닌데' 싶고, 쑥스럽기도 했어요. 그래도 우리 학생들이 마음 편히 공부하는 데, 또 모교가 발전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다면 기쁜 일입니다."
두 사람은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한국 의료 시스템에 대한 자부심도 털어놓았다. "미국에서는 건강검진 한번 하려면 몇 달씩 걸려요. 한국에서는 두세 시간이면 끝나잖아요. 이런 엄청난 시스템을 가진 나라에 기부한다는 것 자체가 자랑스럽고 해피한 일 아니겠습니까. 또 한국 의료의 중심 고려대 의대가 우리 모교라는 것 역시 저희에게는 엄청나게 럭키한 일이고요."
부부가 입을 모아 한 이야기다. 고려대 의대가 있어 늘 감사하다는 문황호, 최경자 부부, 앞으로도 이들의 럭키하고 해피한 인생이 아름답게 이어지기를 기원한다.
- EDITOR: 김은식
- PHOTO: 홍태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