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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LING TRAVEL

미국 샌디에이고 천혜의 자연과 미식 품은
'탑건'의 도시

라호야 코브 해변 풍경

바닷새, 바다사자, 물개 등이 어우러져 있는 라호야 코브 해변 풍경.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는 우리에겐 김하성 선수가 뛰고 있는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MLB) 구단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로 친숙한 도시다. 연중 온화한 날씨에 야자수가 우거져 있고 해변엔 물개와 바다사자가 뛰노는 남국(南國)의 정취가 가득하다. 멕시코 국경과 맞닿아 있는 국경도시이자, 톰 크루즈 주연 영화 '탑건(Top Gun)' 1, 2편의 배경이 된 도시이기도 하다. 미식과 문화예술 도시로 미국인에게 손꼽히는 휴양지로 떠나 봤다.

라호야 코브 바다사자

항구도시 샌디에이고는 미국에서 여덟 번째, 캘리포니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다. 로스앤젤레스(LA)에서 차를 타고 약 2시간이면 도착한다. 렌터카를 빌려 서부 해안선을 따라 시원스럽게 뻗은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니 노을이 지고 있었다. 샌디에이고 도심까지 가려면 약 30분 남았지만, 태평양으로 지는 일몰을 보기 위해 라호야 코브(La Jolla Cove·라호야곶)로 차를 몰았다.

일몰 예정시간은 오후 7시 반. 15분 정도 남았다. 차창 밖으로 붉은 해가 바다 위 구름 근처에 커다랗게 걸린 게 보인다. 마음이 급해졌다. 다행히 주차장 한 칸이 비어 있다. 차를 세우고 나오니 맞은편 해안가 절벽 위 야자수 실루엣 사이에 붉은 태양이 있다. 티셔츠에서만 보던 그림 같은 풍경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망원렌즈가 달린 일명 '대포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많았다. 보통 관광객들은 노을을 휴대폰으로 찍는데 뭘까, 이상하게 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보니 해변 바위 위에 수천 개의 검은 점이 보인다. 바닷새들이었다. 절벽 틈새 곳곳에 둥지를 튼 어미 새들은 솜털이 보송보송한 새끼들에게 먹이를 주느라 분주했다.

바다사자들
라호야 코브 해변 바위 위에서 고양이처럼 뒹굴며 자고 있는 바다사자들.

새만이 아니었다. 컹컹 우는 소리를 따라가 렌즈를 확대해 보니 해안가 바위 위에는 바다사자와 물개도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황갈색 바다사자들은 파도가 부딪히는 차가운 바위가 따뜻한 양철지붕이라도 되는 양 고양이처럼 세상 편한 얼굴로 뒹굴며 자고 있다. 반면 검은빛 물개들은 강아지처럼 컹컹거리며 왔다 갔다 하기 바쁘다. 물개 한 마리가 컹컹 짖으며 해안가 동굴에서 잠자고 있는 친구에게 함께 놀자는 듯 떼를 쓴다. 친구 물개는 귀찮은 표정으로 이빨과 수염을 드러낸 채 힘겨루기를 하며 해질녘을 보낸다.

여기는 캘리포니아주가 해양생태 보호구역으로 지정한 곳. '낚시, 수영, 선박운행 절대 금지' 경고문이 적혀 있다. 해안가에 사는 동·식물에 가까이 다가거나 수렵·채취를 하는 것도 엄격히 금지한다.

또 다른 안내문에는 '물개와 바다사자가 왜 여기 있을까' 같은 궁금증에 대한 해설도 있다. 수중에서 먹이 활동을 하다 하루에 7~8시간은 바닷가 바위에서 몸을 말리며 체온 조절을 해야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샌디에이고는 세계 최대 규모 동물원과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영화 '쥬라기 공원'에 영감을 준 사파리, 범고래와 벨루가를 볼 수 있는 '씨월드' 같은 동물원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동물원이 아닌, 자동차 도로 아래 해안가에서도 물개와 바닷새를 볼 수 있다니…. 일몰을 찍으러 갔다가 자연 다큐멘터리 한 편을 찍은 기분이랄까.

김하성 선수 현수막
샌디에이고 도심에 걸려 있는 김하성 선수 현수막.
김 선수는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단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주전 선수다.
 래디 셸 콘서트홀 전경
샌디에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운영하는 래디 셸 콘서트홀 전경.

샌디에이고만(灣)을 끼고 있는 올드타운에 짐을 풀고 본격적인 도시 여행에 나섰다. 항구 주변 마리나 구역은 대규모 컨벤션 센터와 고층 빌딩이 가득해 해운대와 비슷한 풍경이다. 시포트빌리지, 리틀 이탈리아, 가스램프쿼터 같은 맛집이 몰려 있는 핫플레이스다.

도심 곳곳에는 김하성 선수 얼굴이 들어간 현수막이 걸려 있다.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 매니 마차도 등과 함께 파드리스를 대표하는 얼굴이 된 것이다. 샌디에이고 사람들은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모두 "아이 러브 하성 킴! 하성 킴!"을 외쳐댔다.

마리나 공원 산책로를 걷다 보면 커다란 소라 모양 건축물이 눈에 띈다. 샌디에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운영하는 '래디 셸(Rady Shell)' 콘서트홀이다.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처럼 샌디에이고 밤 풍경을 붉고 푸른 조명으로 물들인다.

옆에서 보면 동굴처럼 깊어지는 모양이 영락없이 소라인데, 앞에서 보면 입을 벌리고 먹이를 먹으려는 고래상어 같이 보인다. 이곳에서는 클래식부터 팝 음악까지 다양한 콘서트가 열린다. 잔디밭에 객석을 최대 2만 석까지 놓을 수 있다고 한다.

탑건 하우스
톰 크루즈 주연 영화 '탑건'에 등장한 탑건 하우스.
건물 앞에는 영화에서 톰 크루즈가 타던 기종의 오토바이가 놓여 있다.
USS 미드웨이 박물관
퇴역 항공모함을 개조해 만든 USS 미드웨이 박물관.
갑판을 거닐며 전투기, 폭격기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시포트빌리지의 또 다른 명소는 'USS 미드웨이 박물관'. 2022년 영화 '탑건 2: 매버릭'이 개봉할 당시 주연배우 톰 크루즈는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시사회에 헬기를 타고 등장했다. 그가 퇴역 항공모함 미드웨이호 갑판에 착륙하는 모습은 영화의 한 장면 그 자체였다.

미드웨이호는 1945년부터 1992년까지 제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전, 걸프전에서 활약한 항공모함. 2004년 개조해 미 해군 박물관으로 활용한다. 관광객들은 갑판을 거닐며 위풍당당하게 도열한 전투기와 헬기, 폭격기 등을 볼 수 있다.

미 해군기지가 몰려 있는 샌디에이고는 탑건 1, 2편의 주요 촬영지다. 톰 크루즈가 전투기 조종사 교관으로 나오는 미 해군 비행장 '파이터 타운'이 샌디에이고에 있다. 미션퍼시픽호텔에는 영화 속 '탑건 하우스'도 복원돼 있다. 1887년 건축된 고전적 스타일의 이 건물은 해변 별장으로 쓰인 방갈로였는데 탑건 1편에서 여주인공 켈리 맥길리스(찰리 역)가 살던 집으로 나왔다.

영화에서 톰 크루즈가 오토바이를 타고 이 집에 가서 훈련 프로그램에 대한 격한 토론을 벌이면서 러브스토리 서막이 열린다. 탑건 하우스 앞에는 톰 크루즈가 타던 기종의 오토바이를 놓아둬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게 했다.

캘리포니아 박람회가 열렸던 발보아 파크

샌디에이고의 미술관이 집결해 있는 발보아 파크는 뉴욕 센트럴파크보다 큰 490ha(약 490만㎡) 규모의 공원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마치 유럽에 온 듯 고풍스러운 건축물과 분수대가 관람객을 맞는다. 노을에 비쳐 황금색으로 빛나는 발보아 파크의 건축물은 둥근 돔과 탑, 화려한 조각상과 문양으로 장식돼 있다.

발보아 파크 전경
샌디에이고의 미술관이 집결해 있는 발보아 파크 전경. 20세기 초 열린 만국박람회 당시 전시장으로 쓰인 역사적 장소다.

연못에 비친 스페인풍 건축물과 야자수와 어우러져 독특한 풍경은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공원 안에는 미술관 17개, 공연장 7개, 정원 18개와 과학관, 음악홀, 동물원까지 있어 하루에 다 둘러보기 힘들 정도다.

발보아 파크의 예술가들
발보아 파크의 예술가들.

발보아 파크 건축물은 1915년 중앙아메리카를 관통하는 파나마운하 개통 기념 캘리포니아 박람회 당시 전시장으로 쓰였던 역사적 유물이다. 프랑스 파리가 에펠탑, 그랑팔레, 프티팔레 등 20세기 초 열렸던 만국박람회 당시 지은 건축물을 아직도 도시의 상징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 연상된다. 박람회 건물을 일회용 가건물이 아니라 작품으로 만들어 대대손손 문화유산으로 보전하는 지혜가 부럽기만 하다.

샌디에이고는 당시 박람회에서 대규모 미술전시를 통해 해양도시, 산업도시가 아닌 문화도시라는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박람회 이후 1926년 처음 문을 연 것이 '샌디에이고 미술관(SDMA)'이다. 화려한 외관의 건물에 들어가면 엘 그레코와 고야의 르네상스 시대를 거쳐 바로크 미술, 인상주의, 근현대미술 작품과 사진까지 약 2만 점의 소장품이 있다. 지하에는 한국 도자기와 불상, 소반 등을 선보이는 전시실도 있다.

건축물 사이에는 미로처럼 이어지는 골목이 정원으로 꾸며져 있어 산책의 즐거움을 준다. 그중 영화 '아바타'에 나올 법한 거대한 반얀트리의 실타래 같은 가지와 뿌리는 장엄한 느낌을 준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홈구장 펫코파크

샌디에이고 올드타운에서 불과 50km 떨어진 곳에는 미국과 멕시코의 경계를 가르는 국경이 있다. 원래 샌디에이고를 비롯해 캘리포니아 자체가 멕시코 땅이었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는 멕시코 영향을 받은 문화와 음식이 다양하게 발전했다. 샌디에이고라는 이름부터 15세기 스페인 예수회 신부였던 성 디다코(Didacus)에서 따온 것이다. 멕시코는 국민 다수가 가톨릭을 믿는 나라로, 스페인어를 공용어로 사용한다.

김하성 선수가 뛰고 있는 샌디에이고 파드레스의 이름에서도 멕시코의 흔적이 엿보인다. 파드레스(Padres)는 스페인어로 아버지(father)란 뜻으로, 가톨릭에서는 신부(神父)를 뜻한다. 결국 '샌디에이고 파드레스'는 '성(聖) 디에고 신부님'이라는 뜻인 셈이다. 이 야구팀 응원 캐릭터가 가톨릭 수도승인 것도 이 때문이다. 파드레스 구단 기념품 매장에서는 수도승복을 입고 야구 하는 신부 캐릭터 상품이 인기가 높다.

펫코파크
샌디에이고 파드레스 홈구장인 펫코파크.

샌디에이고 파드레스 홈구장인 '펫코파크(Petco Park)'는 올드타운 한복판에 있다. 도심에서 가까워 메이저리그 야구장 중 접근성과 시설 면에서 1위로 뽑힌 바 있다. 경기가 없는 낮에도 구장을 둘러보는 사람들로 붐빌 정도다.

이 구장 투어는 경기장 외야에 자리 잡은 유서 깊은 빨간 벽돌 건물에서 시작된다. 외벽에 '웨스턴 메탈 서플라이 컴퍼니(Western Metal Supply Co)'라고 쓰여 있는 이 건물은 1909년 지어진 철강 회사 공장이었는데 펫코파크를 지을 때 헐지 않고 경기장 일부로 삼았다. 최신식 야구장 한편에 오래된 빨간 벽돌 건물을 그대로 둠으로써 샌디에이고가 전통 있는 팀이라는 사실을 알린다. 이 건물 한쪽 벽 모서리는 노란색으로 칠해져 있어 홈런과 파울을 가르는 좌측 펜스 기둥으로 쓰인다.

이 건물에는 관람객이 맥주를 마실 수 있는 바가 있고 연간 회원권(1만 5,000~5만 달러)을 구입한 VIP 관람객용 클럽하우스도 있다. VIP 클럽하우스에서는 선팅한 유리창 너머로 불펜투수들이 연습하는 모습이 보이는데, 바로 코 앞이라 느껴질 만큼 가깝다. 지불한 돈의 규모에 따라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미국식 자본주의를 보여주는 현장이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디렉터인 첼시 딜 씨는 필자를 만난 자리에서 "김하성은 공격과 수비를 다 잘하고, 열정적이라 내가 가장 사랑하는 선수"라며 김하성의 캐릭터가 새겨진 배지를 기념품으로 선물하기도 했다.

타코부터 삼겹살까지, 샌디에이고 맛집

클록 앤드 페탈 레스토랑
오리엔탈 퓨전 레스토랑 '클록 앤드 페탈'에서 미식을 즐기는 사람들.

샌디에이고에서는 멕시코 요리부터 한식, 일식 같은 아시아 음식까지 다양한 메뉴를 즐길 수 있다. '푸에스토 앳 더 헤드쿼터(Puesto at The Headquarters)'는 오렌지색 파라솔 아래서 정통 멕시코 음식을 즐길 수 있는 식당이다.

치킨과 랍스터, 새우, 생선(바하) 등이 들어간 타코가 눈길을 끈다. 패션프루트와 망고, 새우가 들어간 샐러드도 일품이다. 음료로는 멕시코에서 탄생한 칵테일인 '팔로마(Paloma)'가 대표 메뉴다. 데킬라를 베이스로 하고, 자몽을 곁들인 롱 드링크 칵테일이다. 술을 즐기지 않는 사람은 알코올 성분을 뺀 '목테일(Mocktail)'을 시키면 된다.

'클록 앤드 페탈(Cloak & Petal)'은 일식과 한식 요리를 내놓는 동양 퓨전 레스토랑이다. 화려한 벚꽃과 복숭아꽃으로 장식된 실내에는 젊은 힙스터가 넘쳐난다. 미국식 초밥인 캘리포니아롤 외에 갈비, 삼겹살, 한국식 치킨 메뉴도 있다. 셰프 로버트 카씨디 씨는 어머니가 한국인이고, 아버지는 주한미군으로 근무했다고 한다. 그는 "샌디에이고는 다양한 음식 문화에 열려 있어 요리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얻을 수 있는 도시"라고 말했다.

  • ARTICLE: 전승훈 동아일보 기자
  • PHOTO: 전승훈 동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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