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소질환 극복한 프로골퍼 박민지 선수 4연패 신기록 상금,
모교인 고려대의료원에 쾌척
프로골퍼 박민지 선수가 6월 9일 강원도 양양 설해원에서 열린 KLPGA 2024 셀트리온 퀸즈 마스터즈 파이널 라운드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트로피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민지는 이날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최초로 동일 대회 4연패에 성공했다.
"내가 건강하게 골프를 할 수 있게 하늘이 도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승 상금 전액을 기부하려고 한다."
프로골퍼 박민지 선수가 6월 9일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역사상 처음으로 '단일 대회 4연패'에 성공한 뒤 깜짝 발표한 내용이다. 박 선수는 닷새 뒤 고려대의료원에 자선기금 1억 원을 기부하며 이 약속을 지켰다. 고려대 국제스포츠학부 재학생이기도 한 박 선수에게 남다른 우승 뒷얘기와 기부를 결심한 이유에 대해 들었다.
"아플 땐 정말 막막했어요. 다시 안 아픈 날이 올까.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죠. 그때 한 글귀가 마음에 와 닿았어요. '버텨라. 젊은이들아. 버티면 지나간다. 지나가면 좋은 날이 온다.' 환자분들도 포기하지 않고 꼭 힘을 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날은 반드시 옵니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역사상 처음으로 '단일대회 4연패'에 성공한 프로골프 박민지(26, NH투자증권 프로골프단) 선수가 6월 14일 고려대 안암병원 기부식에서 한 말이다. 고려대 국제스포츠학부 17학번인 박 선수는 6월 9일, 강원 양양군 설해원에서 열린 KLPGA 투어 2024 셀트리온 퀸즈 마스터즈 파이널 라운드에서 사흘 내내 단 한 번도 선두를 놓치지 않는 완벽한 우승을 차지한 인물. 이로써 같은 대회에서 4년 연속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기염을 토해내며 골프계에 새 역사를 썼다.
'3차 신경통' 시달리며 어려운 시기 보내
같은 대회에서 4년 연속 우승하는 건 골프계에서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한 번 우승도 힘든데 쟁쟁한 경쟁자들을 상대로 연거푸 타이틀을 지키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전문가들은 KLPGA 투어에서 동일 대회 4연패 기록은 당분간 다시 나오기 힘들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번 대회가 시작되기 전, 박 선수의 신기록 수립을 예상한 이도 전무했다. 경쟁자들의 기세가 거셌던데다, 박 선수가 지난해부터 안면 3차 신경통이라는 희소 질환에 시달려 경기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우려도 있었기 때문이다.
박 선수는 병을 극복하며 운동을 병행하는 외로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이번 시즌도 완전히 빠지는 병가를 낼까 고민하다 잠시 통증이 수그러드는가 싶어 대회 출전을 재개했고, US여자오픈(6월)에 참가 신청을 올렸다가 다시 증세가 올라와 철회해야 했던 힘든 시기도 겪었다.
3차 신경통은 얼굴 왼쪽과 오른쪽에 각각 한 개씩 있는 3차 신경이 손상돼 얼굴에 발생하는 통증성 질환이다. 이 신경은 접촉·온도·통증·압력 등을 느끼는 역할을 한다. 신경 손상으로 인한 통증은 입 안을 비롯해 턱과 이마 사이 얼굴 모든 곳에서 발생할 수 있다. 식사나 세수, 양치질, 면도 등을 할 때도 증상이 생기는데 찌르는 듯 격렬히 아픈 게 특징이다. 환자들은 이 병의 특징을 보통 '죽을 만큼 아픈 고통'이라고 설명한다.
프로골퍼 생활을 하는 박 선수에게 3차 신경통은 더욱 가혹한 병이었다. 골프는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멘탈 스포츠다. 그런데 박 선수는 필드에서 수시로 통증에 시달려야 했다. 그는 "신경통이 머리로 와서 전기가 통하는 것처럼 아팠다. 한번은 바람이 많이 부는 겨울날 밖에 나갔는데 바람이 머리에 스치니 통증이 미칠 듯이 몰려 왔다"고 회고한 바 있다. 박 선수는 "골프는 둘째 치고, (앞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했다"고 한 적도 있다. 이번 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쥔 뒤 흘린 그의 눈물이 남달리 보이는 이유다.
"좋은 날은 반드시 온다"
이처럼 박 선수가 큰 고통을 겪을 때 고려대의료원은 그의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고려대 출신인 박 선수는 2년 전 허리 통증이 생겼을 때 모교 선배들 추천으로 고려대 안암병원을 찾은 바 있다. 그 인연으로 3차 신경통 치료도 고려대 안암병원에서 진행했다. 그가 건강히 복귀해 우승까치 차지하자, 안암병원 의료진들도 함께 기뻐했다.
박 선수의 기부금 증정식에는 손호성 고려대의료원 의무기획처장, 한창수 고려대의료원 대외협력실장이 참석했다. 또 그의 3차 신경통 치료에 참여한 고려대 안암병원 신경과 김병조 교수와 신경외과 장진우 교수도 참석해 의미를 더했다.
두 주치의는 3차 신경통을 극복하고 골프의 새 역사를 쓴 박 선수에게 박수와 격려를 보냈고, 박 선수는 "매일 아침마다 오늘도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내용의 감사 기도를 한다"며 주치의들을 오히려 안심시켰다.
고려대의료원에 우승 상금을 기부한 건 대회 시작 전부터 박 선수 마음속에 새겨둔 다짐이었다고 한다. 박 선수는 "원래는 20승을 하면 기부를 하려고 했는데 좋은 일을 더 빨리 하고 싶어서 참지 않기로 했다"며 "경기 시작 전부터 우승하면 기부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사흘 동안 플레이를 했다"고 말했다. 이어 "내 경기가 곧 타인을 돕는 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져 더욱 플레이에 집중할 수 있었다"는 기부 소감을 전했다. 박 선수의 기부금은 희귀난치성 환자 치료비로 쓰일 예정이다.
박 선수는 "제가 아파보니 아픈데 돈이 없어서 치료를 못 받는 분이 많은 걸 알게 됐다. 희귀난치성 환자들이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고 질병을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손호성 의무기획처장은 "아픔을 딛고 KLPGA 새 역사를 쓰고 있는 박민지 선수의 4연패를 축하하며, 상금 전액을 기부한다는 결심에 큰 감명을 받았다"며 "박민지 선수의 뜨거운 열정과 따뜻한 마음을 잊지 않고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을 위해 소중하게 사용하겠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한편 박 선수는 고려대의료원 마스코트 호의랑 인형에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친필로 남겼다. "안 좋은 일들은 다 지나가게 되어 있어요. 같이 버텨봐요." 강한 정신력과 승부욕을 바탕으로 새 기록을 써내려 가는 박민지 선수가 환우들에게 보내는 응원의 메시지이자 자신에게 보내는 다짐이다.
- EDITOR: 장치선
- PHOTO: KLPGA & 고려대의료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