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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고려대가 나를 키웠으니
이제 내가 모교를 키울 차례

이미진씨와 아기

돈에 대한 현대인들의 집착은 무서울 정도다. 손에 쥔 돈을 한 푼이라도 잃지 않으려고 더 움켜쥐고, 더 큰 돈을 얻으려는 이들도 있다. 이 혹독한 현실 속에서 놀랍도록 따뜻한 소식이 들려왔다. 한 자수성가 사업가가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의학발전기금으로 써달라며 고려대학교에 10억 원을 기부한 것이다. 돈 열풍 시대에 거금을 쾌척한 유휘성 교우(상학과 58학번)가 그 주인공이다.

기부(寄附), 어려운 이웃이나 공공사업을 돕기 위해 돈이나 물건을 대가 없이 내놓는 일이다. 이 기부자는 이번이 고려대학교에만 8번째 기부라고 했다. 2011년부터 그가 기부한 총액은 약 62억 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3번째였던 2017년엔 22억 원 상당의 아파트를 기부했는데, 이 대단한 기부자는 누구일까. 왜 이렇게 큰돈을 고려대학교에 기부했을까?

수의에 넣어 갈 수 없는 돈, 온기 돌 때 나눠야

11월 어느 오후, 고려대안암병원에 진료차 방문한 유휘성(82) 씨를 별실에서 만났다. 수수한 옷차림을 한 그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차분히 입을 열었다.

"죽을 때 돈을 가지고 갈 수 있다면 모를까. 사람이 죽으면 모았던 돈이고 물건이고 모두 놓고 가야 하잖아요. 꼭 필요한 사람에게 주는 것이야말로 정말 보람 있고 좋은 일이지요."

아무리 나이 들어 노인이 되어도 생애 훗날을 생각하는 건 쉽지 않은데, 그는 이미 10년 전부터 이생에서 가졌던 것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래도 자식들 입장에선 서운하진 않을까.

"돈이란 건 바닷물과 같아요. 바닷물을 아무리 많이 마셔도 갈증이 해소되지 않듯, 가지고 있으면 더 욕심나는 게 돈이지요. 자식들에게 아무리 나눠줘도 만족하지 않아요. 제가 남겨두고 떠나면 다툼이 일어날 수도 있고요. 2남1녀에게 나눠줄 만큼 나눠줬으니 나머지는 상관하지 말라고 얘기해뒀지요.

제가 베풀 수 있을 때 베풀어야 나중에 죽을 때 갈증 없이 떠날 수 있습니다. 기부는 내가 이 세상에서 가졌던 것을 처분하는 방법의 하나지, 다른 의미가 없어요."

유휘성 씨가 고려대 본관에서 열린 발전기금 전달식에서 정진택 총장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전쟁과 가난으로 장사를 시작한 소년

유휘성 씨는 지독하게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6.25전쟁으로 아버지를 잃었고 할머니와 어머니, 4살 아래 남동생과 넷이 살았으니 모든 게 엉망진창이었다. 먹을 것이 없어 피난 떠난 남의 빈집을 뒤지기도 했다.

"내가 13살, 동생이 9살 때 6.25전쟁 와중이었는데, 우리 둘이 장돌뱅이가 되어 담배와 성냥 등을 팔았지요."

작고 어린 형제가 그 옛날 충북 진천 읍내 회나무 아래에 서서 "오케이 성냥! 조양 성냥! 백두산 담배! 공작 담배!"하고 소리치는 모습이 그려졌다. 억센 어른들 사이에서 살아남으려면 더 큰소리로 외쳐 손님을 끌어야 했다.

"어느 날 피난민 수용소에 우유 사러 갔다 왔는데 동생이 막 울고 있었어요. 우리가 종이상자에 '또뽑기'를 써서 넣어놓고 사람들이 돈을 내고 참가해 꽝이 아닌, 또뽑기가 나오면 젤리를 줬죠. 그런데 내가 없는 사이, 어떤 나이 많은 형이 오더니 또뽑기 종이에 표시를 해두고 젤리를 몽땅 다 뽑아 먹은 거예요. 동생 얼굴이 먼지로 까맸는데 얼마나 울었던지 꼭 안경 쓴 것 같더라고요."

생활비 벌고 남은 시간에 공부해

형제는 학교에도 못 가고 이리저리 장사를 다녔다. 그런데 어느 날, 집에 국민학교(초등학교) 다니는 애가 있으면 모포를 다섯 장씩 배급해준다는 소문이 돌았다. 모포를 받아오라는 어머니의 특명을 받고 형제는 각각 다른 학교로 급히 입학했으나 아무리 매달려도 둘 다 모포를 받지 못했다. 그해 겨울, 이들 네 식구가 덮고 잘 이불이 없었다. 오히려 학교에 다니느라 장사를 쉬어 더 춥고 배고픈 날만 길어졌다.

중학생이 되어서는 숯불 다리미로 군인들 바지를 다려주는 일 등 온갖 잔심부름으로 돈을 벌었다. 다행히 어머니가 운 좋게 진천면 서기로 취직했고, 그가 장학금을 받게 되면서 공부를 조금씩 할 수 있게 됐다. 고등학교는 작은아버지 집 신세를 지며 서울의 경동고등학교를 다녔다. 해외 입양된 고아들의 영문편지를 번역하는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고, 남는 시간에 공부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학비가 없어 대학을 못 가나 했는데 외삼촌이 첫 등록금을 마련해준 덕분에 고려대 상과대학 상학과 즉, 지금의 경영학과 58학번이 됐다. 그는 머리가 좋았다. 특히 어린 시절 장사 경험으로 돈 계산이 빨랐다. 대학 졸업 후 원양어업을 하던 고려수산이란 회사에 입사해 경리 업무를 맡으면서 돈 흐름을 단번에 파악했다.

"당시에는 사채를 안 쓰는 사람이 없었어요. 은행 이자는 없는데 사채 이자는 4부 5리에서 5부쯤 되었거든. 은행에서 적금 붓고 대출받은 돈으로 사채업자한테 월 4~5%짜리 어음을 끊어줬지요. 다시 이자에 월급을 더해 사채업자한테 맡기면서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어요. 그렇게 목돈을 만져본 거지요."

그러나 집안 사정이 채 나아지기도 전에 아끼던 동생이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유 씨는 "서울대 공대 건축학과를 나와서 대기업에 취직한 지 얼마 안 되어 그렇게 됐다"며 어릴 때부터 힘들게 고생만 하다 떠난 동생 생각에 마음 아파했다. 3년 뒤에는 할머니도 돌아가셨다. 네 식구 중 둘만 남게 된 것이다.

"이렇게 있다간 어머니도 작은 집에만 살다 돌아가실 것 같아 집 장사를 시작했어요. 1970년, 조흥건설이란 회사를 세웠죠. 내가 지어 판매한 집에 유명배우도 살고, 정부 고위직들도 살았어요. 건물도 짓고 공장도 짓고 그랬지요."

유휘성 씨가 기부한 금액은 인성장학금이란 이름으로 학생들을 돕고 있다. 어머니와 할머니 이름의 '' 자와 본인 이름의 '' 자에서 따왔다. 고려대는 고액기부자에 감사하는 뜻에서 '유휘성 강의실'과 '인성 그룹스터디룸'을 운영 중이다.

크고 좋은 집 기부하고 소박한 삶을 실천하다

오랜 가난을 극복하고 성공한 사업가가 되어 자신도 집을 샀다. 고려대학교에 기부한 그 집이다. 인생에서 가장 화려했던 시절, 아이들과 27년을 살았던 잠원동 아파트를 모교에 기부한 것이다. 자녀들을 분가시킨 뒤, 유 씨와 아내는 서울 하월곡동의 20평대 작은 아파트에서 단출하게 살고 있다. 크고 좋은 집을 기부하고 작고 소박한 삶을 선택한 것이다.

옥토에 떨어져 평탄한 삶이 거저 주어진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아직 생활비와 등록금 걱정이 끊이지 않는 고학생도 있다. 모든 것이 풍족한 이 시대에 내 삶은 왜 이럴까 원망스러울 때도 있을 것이다.

"야심성유휘(夜深星逾輝). 밤이 깊어지면 별이 더욱 빛나듯이 지금의 환경이 비록 힘들더라도 여러분의 본질은 더욱 단련될 것입니다.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다른 이들에게는 없는 슬기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저도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 보니 그 차이를 알겠더라고요."

유 씨가 모교에 꾸준히 기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내 마음의 고향이 바로 고려대학교"라고 말한다.

"고려대 교우회가 조금은 남달라요. 서로 매우 끈끈하고 도움을 많이 줍니다. 졸업 후 사회에 나가보면 고려대의 혜택을 많이 받게 되지요. 그러한 선순환이 중요합니다. 반포지효(反哺之孝)란 말이 있어요. 까마귀가 어릴 때는 어미가 새끼를 먹인다고 열심히 먹이를 구해다 나르고 나중에 새끼가 자라면 새끼가 먹이를 물어다 어미에게 줍니다. 고려대가 우리의 모교(母校), 어미와 같아요. 고려대가 우리를 이렇게 길러놨으니 이제 우리가 어미를 먹일 차례죠."

돈이 효용성 있게 잘 쓰여 기쁘고 보람돼

유 씨의 기부금은 고려대 학생들을 직·간접적으로 돕는데 쓰이고 있다. 경영대학 신경영관 건립과 인성장학금, 경영대학 발전기금, 인성연구진흥기금 등이다. 유 씨는 "소중하지 않은 돈이 어디 있겠냐"며 "받는 사람이 이 돈을 효용성 있게 사용해서 결과를 내게 얘기해주면 보람을 느끼고 좋은 것"이라고 말한다. 고려대학교 전신인 보성전문학교를 세운 인촌 김성수 선생에 대한 사학 연구 결과를 비롯해, 인성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이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 등을 듣고 싶다고 했다. 기부한 돈이 어떻게 잘 쓰이고 있는지 보고 싶은 것이다. 유 씨는 후배들을 위한 좋은 일에 함께 하자고 권했다.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이란 말이 있어요. 좋은 일을 많이 하면 그 집에 반드시 경사가 있다는 뜻으로, 후손들에게까지 복이 미친다는 것이지요. 금액이 크든 작든, 형편대로 선행을 쌓으세요."

그는 진심으로 나눔의 행복을 만끽하고 있었다.

"고려대가 돈을 제대로 못 썼으면 기부한 걸 후회했을 텐데 꼭 필요한 곳에 잘 쓰이고 있는 걸 보여주니 더 보람된다. 이번 기부금은 의대에서 잘 활용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그다. 돈이 주인을 참 잘 찾아갔단 생각이 들었다.

"신이 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다면, 신이 돈을 어떤 사람에게 주는지 살펴보라" (If you want to know what God thinks of money, just look at the people he gave it to) - 도로시 파커, 미국 작가
  • EDITOR: 이주연
  • PHOTO: 홍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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