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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LING TRAVEL

하늘 아래 첫 산사(山寺)
땅의 울림이 하늘에 스미는 곳

월정사를 둘러싸고 있는 오대산의 신비로운 눈보라.
오대산은 우리나라에서 눈 많기로 이름난 대표적인 설산이다.

이즈음이면 오대산에는 지붕이 분간되지 않을 정도로 눈이 쌓인다. 이 겨울, 월정사 일주문에서 천년 전나무 숲길을 지나 상원사로 이어지는 눈길을 걷는다. 오대산의 눈은 언제나 늘 나를 미소 짓게 하는 최고의 아름다운 추억이자 경험이다.

나의 눈 밝힘은 내가 생각해도 병적이다. 그걸 여실히 보여줄 증거가 있다. 동아일보에서 여행전문기자로 일했던 25년(1995~2019년)간 취재차 찾은 171개 스키장이 그것이다. 미국, 캐나다는 물론 유럽의 알프스산맥(이탈리아·프랑스·독일·스위스·오스트리아·슬로베니아)과 일본, 중국 그리고 북한(배개봉)을 망라한다.

이 증상은 1980년대 초반에 이미 시작된 듯하다. 당시는 정월 초하루부터 사흘간의 연휴가 주어졌다. 그때 나는 우리 가족을 이끌고 늘 한 곳만 찾았다. 오대산 월정사의 절 밑 마을이었다. 이유는 단 하나. 동네가 온통 덮일 만큼 겨우내 쌓인 엄청난 눈이다. 월정사와 상원사는 더했다. 그 설경은 지상의 풍경이 아니라 할 만치 선경이었다. 상원사로 향하는 산등성에 올라 비료 포대를 엉덩이에 깔고 썰매를 탔다. 결혼 전 우리 가족을 따라나섰던 미래의 아내가 그러다가 엉덩이뼈를 다쳐 오래도록 고생을 시키기도 했지만 말이다.

눈 내린 산사, 삶의 순간에 만난 인연

삼국유사에 창건설화가 기록된 불교성지 상원사.

한겨울 날씨는 지난 30년간 몰라보게 변했다. 한동안은 이상기후로 추위 없는 겨울이 지속되더니, 최근 10년 들어서는 수은주가 영하 20℃까지 곤두박질하는 강추위도 심심찮게 들이닥쳤다. 하지만 눈은 그런 들쑥날쑥한 변화와 달리 보기 힘들어지는 추세다. 그래서 몇 해 전 큰 결심을 했다. 서울에 눈 내리기를 기다릴 게 아니라 눈 고장을 찾아 떠나기로 한 것이다.

목적지는 당연히 오대산. 나는 대설주의보만 내리기를 기다렸다가 그게 발령되자 이튿날 밤 한 시에 폭설이 쏟아붇는 오대산을 향해 질주했다. 그리고 깜깜한 밤 헤드랜턴에만 의지한 채 월정사부터 상원사로 8.3km를 걸었다. 이때 여기서 내 평생 절대로 잊지 못할 설경을 만났다. 그것은 단순히 눈 내린 풍경이 아니었다. 나는 처음 그 광경을 이해하지 못했다. 눈 덮인 상원사 마당 한가운데 새벽부터 한 노스님이 양팔을 벌린 채 미동도 않고 줄곧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너무도 아름다운 이 광경을 카메라에 담느라 정신없이 셔터를 눌렀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비로소 의문을 제기했다. '스님은 왜 저 자세로 서 계신 걸까.' 나는 궁금증을 풀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스님께로 다가갔다. 그 순간, 세상이 눈보다 더 희고 아름답게 변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묻기도 전에 그 해답을 얻었다. 목구멍으로 뜨거운 무언가가 가슴까지 흐르고 감동의 물결이 일었다. 왜 그랬을까, 놀라지 마시라. 바로 스님이 편 손 위에 새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새는 양손바닥에 놓인 쌀을 먹고 있었다. 눈에 덮여 먹을 게 없는 이 겨울, 새에겐 이 하루하루가 생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도전의 연속. 그런데 여기가 어딘가. 눈이 많이 내리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오대산. 겨울잠에 들지 못한 뭇 생명에게 이 쌀 한 톨이 우주와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생명의 양식임은 당연하다. 스님은 그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 매서운 추위도 마다않고 신 새벽부터 한 그루 나무가 되어 이렇게 새들을 먹이고 계셨던 것이다.

개울 얼음장 아래서는 졸졸졸 냇물 소리가 들려온다.
상원사 초입을 알리는 거대한 표지돌.

채움의 그늘과 덜어냄의 행복

백두대간의 중심인 비로봉(1,563m) 정상에서 바라본 산하.

그 아침 상원사에서 조우한 이 광경은 이후 14년간 내 인생에 큰 가르침이 되어 나를 변화시켰다. 사람을 한순간에 바꿀 수 있다면 그건 기적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나는 그날 기적을 당했다. 그래서 이런 생각까지도 들었다. 그 스님, 혹시 자장율사에게 여기 이 절을 세우게 한 문수보살(文殊菩薩 완전한 지혜의 보살)은 아니었을지.

상원사에서 개과천선한 이가 어디 나 뿐일까. 조선 제7대 임금인 세조(재위 1455~1468)도 그랬다. 열한 살 어린 나이에 즉위한 단종(재위 1452~1455)에게 사약을 내려 죽이고 왕위에 오른 이 잔혹한 인물. 그런 악행 탓일까. 엄청난 시련을 겪어야 했다. 아들 의경세자의 죽음, 낫지 않고 고통스런 피부병이다. 그는 그걸 꿈에 나타난 단종 생모(현덕왕후)의 저주라고 여겼다.

그런 세조에게 누군가 오대천 맑은 물을 처방하며 상원사 행을 권했다. 조선의 왕이 이 산골짝에 발을 들인 계기는 그랬다. 부처님 원력으로 치병을 기구하고 근방 '우통수(于筒水)' 샘물로 병을 다스리는 것이었다. 우통수는 검룡소(劍龍沼, 강원도 태백시 창죽동)가 한강 발원지로 확정되기 전까지 한강 시원으로 여겨졌던 조선 3대 명수 중 하나다. 전해 내려오기로는 혼자 목욕을 하던 세조의 뒤를 지나던 동승이 그의 부탁으로 등을 밀어주었고, 그 즉시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워졌다고 한다. 세조는 동승에게 '어디 가서 임금 옥체를 씻어주었다'고 말하지 말라고 했고 동승도 미소를 지으며 '대왕께서도 어디 가시든 문수보살을 친견했다고 하지 마십시오'라고 답했다.

세조는 오대산에 머무는 문수보살의 가피로 완쾌됐다고 믿었다. 그래서 여러 화공을 불러 그 동자 모습을 그리게 했지만 번번이 퇴짜였다. 그러던 어느 날 누더기 차림 노스님이 자청했고 그는 세조의 설명도 듣지 않고 완벽히 그려냈다. 그 연유를 묻는 세조에게 노스님은 '영산회상에서 왔습니다'고 말한 뒤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영산회상은 '법화경'을 설명할 때 모임을 지칭한다). 이렇게 해서 세조는 상원사에서 치병 중에 문수보살을 두 번이나 친견했다고 한다.

비구니 노스님의 손바닥에 앉아 놓인 쌀을 먹고 있는 산새.
아침공양을 마친 스님들이 범종각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상원사 동종(국보 제36호)은 현존하는 종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우며 그 소리가 청아하다.

1,300년 발자취가 담긴 상원사

상원사는 오대산 월정사(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의 말사 중 하나(724년 창건)다. 그럼에도 본사 이상의 무게를 지닌다. 부처님의 정골 사리를 봉안한 적멸보궁을 가까이에 두어서다. '문수보살의 성산(聖山)' 월정사는 불교 성지다. 그뿐일까.

산 전체가 불교 성지인 곳, 남한에선 여기가 유일하다. 일만 분의 문수보살이 이 산에 늘 계셔서 그리된 것이라고 한다. 신라시대 자장율사(590~658)는 당나라 유학 중 문수보살이 머무는 오대산에서 수학했다. 하루는 꿈속에서 한 노스님으로 게송(偈頌, 부처의 공덕을 찬미하는 노래)을 받았다. 그런데 그게 모두 범어(梵語, 인도고대어)여서 내용을 알 수 없었다. 그걸 한 스님이 해석해 주었는데 그는 가사(袈裟, 스님이 장삼 위에 입는 장방형의 포)와 발우(鉢盂, 절에서 쓰는 스님의 공양 그릇) 한 벌, 부처님 정골사리(頂骨舍利)를 건네며 이렇게 말했다. '당신 나라의 명주 땅에도 오대산이 있는데 거기에 일만의 문수보살이 늘 거주하니 가서 뵙도록 하시오.' 자장율사는 귀국해 이것을 영취산(통도사) 등 전국의 다섯 곳에 나누어 모셨다. 그중 상원사 근방의 초막에 모신 게 현재의 적멸보궁(寂滅寶宮)이다. 상원사에 부처상이 없는 건 적멸보궁의 정골사리가 곧 부처여서다.

월정사의 대웅전 격인 적광전. 그 앞으로 월정사팔각구층석탑(국보 제48호)이 서 있다.
눈 그친 월정사의 기와벽담. 간밤에 내린 눈이 소복이 쌓여 있다.

삶의 지름길, 오대산 선재길

'월정대가람'이란 현판이 붙은 월정사 일주문. 부처님 세상인 법계로 들어서는 문이다.

이 겨울 오대산 설경을 즐길 참이라면 '오대산 선재길'을 추천한다. 월정사 주차장에서 상원사까지 오대천을 끼고 걷는 오솔길(10km)이다. 주차장에서 일주문에 이르는 이름난 '천년 전나무 숲길'(1km)은 그 초입. 그 숲엔 수령 80년 이상 전나무가 1,800여 그루나 된다. 길은 그 한가운데를 관통한다. 우통수에서 발원한 오대천은 선재길을 동무삼아 동행하는데 그 물가로 흙길(8.4km) '오대산로'가 지난다. 이 길은 한때 인제와 홍천을 잇는 지방도 446호선의 일부였다. 그게 2009년 오대산국립공원 자연탐방로에 편입됐고 이후 차량통행이 금지됐다. 하지만 시내버스(상원사~월정사~진부시외버스터미널 한 시간 간격 운행)는 예외. 이 길 오대산로는 굉장하다. 월정사 상원사 적멸보궁은 물론이고 오대의 다섯 암자에 오대산 사고(史庫)까지 주소가 모두 '오대산로'다.

사고는 조선왕조실록을 편찬 보관하던 곳. 조선은 전국의 명산 네 곳(태백산 마니산 묘향산)에 각각 한 개씩 외()사고를 두었다. 월정사가 역사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도 오대산에 사고가 설치된 1606년 이후. 그런데 전주사고를 제외한 나머지 사고가 임진왜란 중 모두 소실됐다, 그래서 전주사고의 실록 804권 재출판에 착수했고 곧 실록 5부를 완성했다. 그리고 다섯 곳 사고에 한 부씩 봉안했다.

오대산에 봉안된 건 실록의 교정본. 하지만 이 서책은 1911년 약탈당해 일본 도쿄의 동경제국대학에 보관 중 1923년 관동대지진 때 소실됐다. 타다 남은 파본 27책, 대출돼 피해를 면했던 47책은 광복 후 정부에 의해 환수해 서울대 규장각에 보관중이다. 오대산 사고(건물)도 한국전쟁 중 월정사 당우와 더불어 불에 타 주춧돌만 남게 됐다. 현재 사고 건물은 1963년 복원한 것이다.

1,800여 그루의 이 전나무 숲길은 일주문부터 금강교까지 1km나 이어진다
상원사로 이어지는 선재길에서 만나는 돌다리. 오대천을 가로지른다.

Travel Information

찾아가기
  • 진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월정사 상원사행 시내버스 탑승.
    ◎진부~월정사: 20분 소요
    ◎월정사~상원사: 15분 소요
  • 철도
    ◎원주역(중앙선 일반열차) 하차: 진부까지는 시외버스로 이동
    ◎진부역(경강선 KTX) 하차: 월정사 상원사 행 시내버스 탑승.
  • 진부행 고속버스(서울 출발)
    ◎남부터미널: 하루 4회 운행, 2시간 35분 소요
    ◎동서울터미널: 30~40분 간격 운행, 2시간 15분 소요.
  • WRITER: 여행컨설턴트그룹 '여인숙' 대표
  • PHOTO: 조성하,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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