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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권오섭 L&P코스메틱 회장 & 권익현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 “만남, 하나님, 기부 … 모두 운명 같아요”

고려대 78학번 동기. 친구로 지낸 지 올해로 41년째다. 한 사람은 지질학과, 한 사람은 경영학과로 과도 다르고 동아리도 달랐다. 친구의 친구로 우연히 알게 된 인연이 세상에 둘도 없는 '막역지우(莫逆之友)'가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지난 10월 고려대의료원에 의학발전기금 20억 원과 3억 원을 각각 쾌척한 권오섭 L&P코스메틱 회장과 권익현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의 이야기다.

가을비가 한여름 장맛비처럼 내리던 11월 어느 날, 서울 강서구 메디힐빌딩에서 만난 두 사람은 얼핏 봐도 친구지간 그 이상이었다. 두 사람이 얼마나 가까운 친구인지 묻자 권 회장이 대뜸 이런다.

"친구요? 아니에요. 웬수죠, 웬수. 하하!" 어지간히 가깝지 않고선 장난으로라도 앞에서 대놓고 원한(?)을 표하진 못한다. 40년 넘게 친분을 유지한 비결은 뭘까? 이번엔 권 교수가 차분한 어조로 설명에 나섰다.

"사람들은 우리가 표현하는 방법이 달라서 많이 다르다고 생각하는데, 실은 생각하는 가치관이나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비슷해요. 아마 그래서 긴 세월 친하게 지낸 게 아닌가 싶어요."

같은 서울 출신이라는 것 이외에는 교집합이 전혀 없던 두 사람이지만 만나자마자 뭔가가 통했다. 미팅도 같이 하고, 여행도 같이 다녔다. 방학 때나 휴교령으로 학교에 가지 않을 때도 거의 붙어 다녔다. 어떤 해엔 같이 잔 날만 50일이 넘을 정도였다. 주로 권 교수의 집에서 잤다. 당시 권 교수의 아버지는 두 사람이 다니던 고려대 수학과 교수로 이과대학 학과장까지 역임하고, 나중에 권 회장의 주례선생님의 인연으로 이어진다.

대학 졸업 후 한 사람은 화장품 사업가로, 한 사람은 경영학 교수로 서로 전혀 다른 길을 걸으면서도 두 사람의 관계는 더욱 깊고 끈끈해졌다. 물론 몇 날 며칠을 이야기해도 다 못 할 정도로 우여곡절이 많았다.

"한 번은 폭망, 한 번은 절반, 이제 조금 성공한 것" 권오섭 L&P코스메틱 회장 스토리

권오섭 L&P코스메틱 회장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를 일찍 여읜 권 회장은 조그마한 화장품 회사(왕생화학)를 운영하던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랐다. 권 회장이 대학에서 지질학과를 선택한 건 어머니의 뜻과 무관치 않다.

"어머니는 사업하는 것 싫어하셨어요. 제가 교수나 연구원 같은 다른 일 하기를 바라셨죠. 그런데 화장품 사업은 저에게 운명이었던 것 같아요."

권 회장은 어머니 사업을 물려받은 2세 경영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자수성가한 사업가나 다름없다. 어머니가 화장품 회사를 접은 건 1987년. 권 회장이 92년 입사한 화장품 회사가 어머니 회사의 후신이지만 이미 경영진이 바뀐 지 5년이나 지난 뒤다. 권 회장이 직접 화장품 사업에 뛰어든 것은 그로부터 다시 4년이 지난 1996년. 하지만 사업이라는 게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제가 지금 사업이 세 번째인데, 한 번은 완전히 망했고, 한 번은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였고, 삼세번 만에 이제 조금 성공한 것 같네요."

권 회장이 2009년 설립한 L&P코스메틱의 지난해 매출액은 무려 3300억 원, 대표 상품인 '메디힐'이라는 마스크팩은 2019년 상반기까지 전 세계 26개국에서 누적 판매량 16억 장을 기록했다. 또 미국 시장 분석기관인 CB인사이트가 뽑은 기업 가치 10억 달러(약 1조1140억 원) 이상인 유니콘 기업에도 이름을 올렸다.

권 회장의 겸손일 뿐 '조금 성공'한 것치고는 대단한 성과다. 권 회장은 이 성공의 절반을 권 교수의 공으로 돌렸다. 권 회장이 권 교수와의 관계를 설명할 때 가끔 이야기한다는 일화다.

"제가 사업을 시작할 때 권 교수가 자기 돈뿐만 아니라 빌려줬어요. 그런데 제가 경영을 잘못해서 3억 원이 없으면 부도날 위기에 처한 적이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또 1억 원만 빌려달라고 도움을 청했더니 얼마 후 다시 전화가 왔어요. '교수가 좋더라. 담보 없이 신용으로 2억 원이나 빌려준다니 이자는 네가 갚아라' 하면서 그 돈을 빌려줬어요. 그건 정말 불가능한 일이에요. 이런 친구가 곁에 있다는 게 저는 자랑스러워요."

권 교수의 히트상품 'BTS 마스크팩'

권 회장이 권 교수로부터 도움을 받은 건 금전뿐만이 아니다. L&P코스메틱이라는 회사 설립 당시부터 권 교수의 관심과 조언이 큰 몫을 했다. 권 회장이 마스크팩 사업을 시작하면서 그 가능성에 대해 조언을 구한 사람도 권 교수였고, 회사를 지금처럼 성장할 수 있게 한 대표 브랜드 '메디힐'을 만드는 과정에도 권 교수의 도움이 있었다.

L&P코스메틱과 글로벌 대세 아이돌 '방탄소년단(BTS)'이 공동작업(콜라보레이션)해 내놓은 메디힐 BTS 마스크팩도 권 교수의 작품이다.

동국대 교수 안식년이던 2017년 한 해 동안 매일 같이 회사로 출근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이 프로젝트를 직접 진행했다는 것. 덕분에 국내뿐 아니라 해외의 젊은층으로까지 마스크펙 시장을 확장할 수 있었고, 그것이 인연이 돼 올해 메디힐 광고모델로 BTS와 계약이 가능했다.

"사업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첫 번째가 하나님의 역사이고, 두 번째는 권 교수와 나의 노력이 아닐까…. 권 교수는 내가 어려울 때 금전적 도움뿐만 아니라 경영학과 교수로서 사업적으로도 정말 많은 도움을 줬어요."

"갑작스런 행운, 계속 행복하고 싶어 기부 시작" 권익현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 스토리

권익현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

권 교수는 정통 유학파 경영학자다.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 후 미국 유학길에 올라 일리노이주립대 경영학 석사를 거쳐 퍼듀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공은 마케팅.

귀국해 1996년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로 부임한 이후 지금까지 24년째 같은 대학에서 제자 양성에 힘쓰고 있다.

마케팅 분야에서도 소비자 심리와 커뮤니케이션 영역이 주 전공인 권 교수는 국내 유수의 기업에서 강연과 함께 산학 협력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물론 L&P코스메틱과 진행한 산학 협력 프로젝트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게 앞서 언급한 BTS와 콜라보레이션해서 성공한 마스크팩이다. 이보다 앞선 2015년 한국과 중국의 마스크팩 시장과 소비자 반응 조사를 통해 국내 시장은 물론 중국 시장 공략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전략을 수립하는 데 큰 도움을 준 것 역시 권 교수다. 미래의 마스크팩 이미지를 강조한 상품 디자인도 권 교수가 주축이 돼 만들었다. 물심양면으로 권 회장의 마스크팩 사업을 돕고 있는 권 교수는 처음부터 마스크팩 사업 성공을 예견한 걸까?

"권 회장이 처음 이 사업 아이디어를 이야기했을 때, 피부과와 마스크팩을 콜라보(레이션)하는 것도 그렇고, 제품을 고급화하는 것도 마케팅 측면에서 대단히 전략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했어요. (제품이) 생소하지 않으면서 시장 확장성도 있다고 봤죠."

그 바탕에는 친구에 대한 믿음도 있었고, 비판보다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필요하다면 마케팅 전문가로서 조언할 요량도 있었다. 결국 모든 게 권 교수의 바람대로 이뤄진 셈이다. 문득 권 회장에게 빌려준 돈은 다 돌려받았는지 궁금해졌다.

"물론 이미 다 받았죠. 원금에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이자를 받았어요. 사실 전 빌려줬다고 생각한 적 없어요. 권 회장 사업이 잘 안될 때 아내가 빌려준 돈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보면 '난 빌려준 적 없다. 투자를 했다. 망하면 같이 망하고 흥하면 같이 흥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할 만큼. 차용증도 안 썼거든요."

권 교수의 이런 소신과 친구에 대한 믿음은 예상치 못한 행운으로 다가왔다. 우연한 기회에 기존 주주로부터 회사 주식을 매입하면서 L&P코스메틱의 주요 주주가 된 것. 회사가 지금처럼 성공하기 전이었으니 상장을 앞둔 지금은 적지 않은 자산이 생겼을 터.

"권 회장이 사업 도중에 자기 회사에 투자를 좀 하겠느냐고 물어온 적이 있어요. 저와 채무적인 게 다 해결되지 않은 상태였는데, 아내에게 물어보니까 일단 빌려준 것 다 받은 다음에 할 수 있는 이야기 아니냐고 하더라고요. 제 생각은 달랐어요. (친구가 돈을) 잘 갚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투자를 꺼리는 건 앞뒤가 맞지 않거든요. 그래서 제가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면서 주식을 샀어요. 그 주식이 회사가 자리를 잡으면서 제겐 쉽게 접할 수 없는, 기대 이상의 부로 다가온 거죠."

이런 행운은 권 교수 부부를 고민에 빠뜨렸다. 삶의 잣대를 기존의 기준대로면 살면 계속 행복할 것 같은데, 그게 바뀌면 또 부족하다고 느낄지 모를 것 같았기 때문이다. 권 교수 부부가 고민 끝에 찾은 해법이 바로 기부다. 요즘 권 교수는 교회나 선교재단 등 도움이 필요한 곳에 적지 않은 기부를 하면서 새로운 행복을 찾는다.

어머니·누나 위해 의학발전기금 쾌척

권 교수보다 기부를 먼저 시작한 건 권 회장이다. 2010년 어느 날 꿈속에서 '너는 얼마가 더 있어야 만족하겠느냐'는 질문을 받고 자성한 게 계기였다. 회사가 위치한 강서구의 구청 사회복지과와 자신이 다니던 교회에 각각 200만 원씩 기부한 것을 시작으로, 고려대 각종 발전기금과 메디힐장학재단 장학기금 등 지금까지 160억 원에 달하는 큰돈을 기부했다. 고려대 '메디힐 지구환경과학관' 건축기금으로만 120억 원을 쾌척했다.

서로 다른 계기로 기부를 시작한 두 사람은 최근 고려대의료원에 의학발전기금을 기부하는 데 의기투합했다.

권 회장은 20억 원, 권 교수는 3억 원을 각각 약속한 것. 권 회장은 어머니, 권 교수는 고려대의료원 재직 중인 누나인 권희규 재활의학과 교수를 위해서다.

40년 지기인 권오섭 회장(왼쪽)과 권익현 교수는 각자의 어머니와 누나를 위해 고려대의료원에 기부를 결심했다.

"화장품 사업을 하시면서 저를 포함해 자녀들을 가르쳤던 어머니가 치매로 돌아가셨어요. 교육자이기도 하셨는데, 그런 어머니를 위해 뭘 할까 고민하던 차에 친구인 이기형 고려대의료원 의무부총장이 고려대의료원 재도약을 위한 발전위원회를 만들었다고 해서 참여하게 됐죠."(권 회장)

"저희 누나는 집안의 주치의나 다름없을 정도로 가족들을 헌신적으로 챙겨주셨죠. 내년 2월이면 정년을 하시는데, 5년 전부터 누나의 이름으로 재활의학과에 기부해야겠다고 맘먹고 있었거든요. 권 회장으로부터 발전위원회 소식을 듣고 흔쾌히 기부를 결정했습니다."(권 교수)

운명처럼 만났다는 두 사람은 종교도, 기부도 마치 운명처럼 비슷한 시기에 시작했다. 두 사람에게 기부는 어떤 의미일까.

권 회장은 "한두 번 하는 건 자기 과시일 뿐, 죽을 때까지 해야 하는 하나님이 주신 소명"이라고, 권 교수는 "나를 돌아보고 주변에 나눔의 방식을 생각해보는 또 다른 형태의 자기성찰"이라고 답했다.

  • EDITOR: 엄상현
  • PHOTO: 조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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