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teful Patient Program' 변재연 기부자 환자로 시작된 20년 인연,
"의학 발전 위해 써 달라" 1억 원 쾌척
고려대 안암병원에 의학발전기금 1억 원 기부를 약정한 변재연 기부자.
2월 중순, 고려대 안암병원에서 특별한 기부금 약정식이 열렸다. 고려대 동문이나 교직원이 아닌 환자가 기부자로 나선 것. 그 주인공은 20년 동안 고려대 안암병원과 인연을 맺어온 변재연 여사다. "오랜 기간 환자로 지내면서 본 의료진의 정성스러운 진료에 감사를 표하고, 의학 발전을 염원하는 마음으로 기부를 결심했다"고 말하는 변 여사를 만났다.
"믿음이 깊은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꼭 드리는 기도가 있어요. 언젠가는 고려대의료원에 기부하겠다는 기도죠. 경제적으로 크게 여유가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차고 넘치는 풍족한 시기를 기다리기에는 나이도 있고, 더 미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부를 결심한 계기를 묻자 변재연 여사가 한 답이다. 변 여사는 환자로서 20년째 고려대 안암병원을 다니고 있다. 특별히 아픈 곳이 있거나 큰 사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한 번 인연을 맺은 뒤 불편한 곳이 있을 때마다 안암병원을 찾았고, 자연스레 산부인과 김탁 교수, 안과 유정권 교수, 내분비내과 김신곤 교수, 순환기내과 주형준 교수를 비롯한 여러 의료진 및 교직원과 오랜 친분을 쌓았다. 변 여사는 고려대 안암병원 의료진의 헌신적인 진료로 건강을 되찾은 친지를 보면서 "질병으로 인한 환자와 가족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더는 방법은 의학 발전"이라고 믿고 기부의 뜻을 세웠다고 한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겠다!
변 여사가 고려대 안암병원을 처음 찾은 것은 2000년대 초반이다. 당시 원무과 교직원과 우연히 알게 됐고, 그의 소개로 병원 갈 일이 있을 때면 고려대 안암병원을 향했다. 살다 보면 이래저래 아픈 곳이 생기기 마련이라, 이과 저과 다니면서 고려대 안암병원 곳곳의 많은 사람들과 친해졌다. 정작 변 여사는 문제가 없었는데, 어느 날 부산 사는 넷째 언니네 집에 사달이 났다.
"형부가 암 진단을 받았는데, 근처 병원에서 '생존 확률이 정말 운이 좋으면 50%, 아니면 20% 정도밖에 안 된다'고 했다는 거예요. 언니가 받을 충격을 생각하니 가만히 있을 수 없었어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고 변 여사는 당장 부산 병원에서 의무기록을 CD로 받아 고려대 안암병원 원무과 교직원에게 전했다. 그는 즉시 고려대 안암병원 신경외과 교수에게 진료를 의뢰했다. 수술 날짜가 잡혔고, 변 여사 형부는 오래지 않아 고려대 안암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뒤 밝은 모습으로 퇴원했다. 건강해진 형부를 보면서 누구보다 기뻤던 것은 바로 변 여사 자신이었다.
"당시 고려대 안암병원 의료진이 보여준 헌신적인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 없어요. 살 확률이 절반도 안 된다는 진단에 절망하게 된 형부와 가족에게 끊임없이 위로와 용기를 줬죠. 지금 생각해도 참 감동적인 모습이었어요. 신경외과 선생님, 수간호사님 등 모든 분께 감사할 따름이죠."
바로 이 경험으로 변 여사는 "의학이 발전하면 병으로 죽어가는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걸 체감했다고 한다. "나 스스로 사람을 살리지는 못하지만, 고려대 안암병원은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지"라는 생각도 했다. 바로 이때부터 그는 기부를 기도 제목으로 삼았을 것이다.
Grateful Patient Program(GPP)
고려대의료원이 교우나 교직원의 기부에서 더 나아가 환자 기부금을 유치하고자 구축하고 있는 기부 프로세스. 프로그램 이름의 'Grateful'은 '감사하는'이라는 뜻으로, 첨단 의학의 혜택을 받은 환자가 의학기술 발전을 위해 기부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선한 영향력, 민들레 홀씨 되어 세상에 퍼질 것
변 여사는 2월 14일, 자신의 오랜 기도를 실천으로 옮겼다. 고려대 안암병원에 의학발전기금 1억 원 기부를 약정하고, 먼저 5,000만 원을 기부한 것. 나머지 5,000만 원도 4월까지 기부할 예정이다.
"구체적 결심을 한 건 작년 9월이에요. 그때 '이제는 나를 위해 살겠다'고 마음 먹었거든요. 잘 생각해보니 그동안 저는 온전히 저를 위해 살지 못했더라고요. '나를 위해 사는 것'의 첫 걸음으로 기부도 빨리 실행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먼저 일부만 기부했는데, 나머지도 빨리 마무리해야 마음을 놓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자신을 위해 살겠다면서 가장 먼저 실천한 일이 남을 위한 기부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 소중한 이타심이야말로 자신의 삶을 밝히는 따뜻한 빛이라는 것을 기부자들은 알고 있다.
변 여사에게는 의학발전기금 기부만큼이나 소중한 기도 제목이 또 하나 있다. 어려운 상황에서 학업을 이어가는 학생들을 위해 장학금을 마련하는 것이다.
"과거 고생 안 해본 사람이 없겠지만, 저희 집은 유독 가난했어요. 학창 시절, 점심 도시락을 싸가기는커녕 아침밥부터 굶는 게 일상다반사였죠. 중학교까지 나오고 검정고시로 학업을 마친 게 제게는 평생의 한이 됐습니다. 그 응어리가 얼마나 깊은지 알기에,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변 여사가 장학금으로 출연하고자 하는 금액 역시 1억 원. 변 여사는 이 기부 결심 또한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처음 고려대 안암병원 기부 소식을 듣고 인터뷰를 권유했을 때 변 여사는 한사코 마다했다. 하지만 "여사님이 보여주신 선한 영향력을 사회에 알리고 싶다"는 거듭된 요청에 허락을 받았다. 변 여사가 보여준 소중한 기부의 마음이 고려대 안암병원에만 머물지 않고 민들레 홀씨처럼 세상에 퍼져 아름다운 기부문화를 꽃피울 것이라고 확신한다.
- EDITOR: 김은식
- PHOTO: 김도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