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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LING TRAVEL

문명과 자연의 완벽한 조화, 호주 멜버른 초대형 풍선을 타고 마천루 위를 날다

호주 멜버른 열기구

호주 멜버른 서쪽 항구 위를 날고 있는 열기구.

호주에 가보기 전, 호주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은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정도밖에 없었다. 2월 말 호주 제2의 도시 멜버른에 가보고 나니 비로소 호주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온다.
멜버른은 호주가 독립하기 전, 영국 식민지였던 시절의 수도. 1850년대 금광이 발견돼 세계 각지에서 이민자가 찾아오며 일약 금융 중심지가 된 도시다. 영국 빅토리아 시대풍 유서 깊은 건물이 시내 곳곳에 남아 있고, 고풍스러운 아케이드에서 세계 각국 미식(美食) 맛집을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런가 하면 도심 외곽으로 1~2시간만 나가면 호주에서만 살고 있는 희귀한 동물을 길거리에서 만날 수 있다. 문화도시 멜버른의 미술관과 광장, 시장에서는 즐거운 이벤트가 끊임없이 펼쳐진다.

최첨단 도시에서 즐기는 아날로그 여행

멜버른 시내를 관통하는 야라강 주변에는 유리창이 햇빛을 받아 번쩍이는 마천루가 늘어서 있다. 그중 남반구 최고인 89층 높이 '유레카 타워'에 올라가면 멜버른 도심과 바다까지 360도 전망으로 볼 수 있다. 노천카페가 즐비한 야라강가에는 이른 새벽부터 젊은이들이 붐빈다. 이들이 노를 저어 움직이는 날렵한 조정 경기정은 멋진 볼거리다. 밤이 되면 크라운 카지노 앞에서 불꽃쇼가 펼쳐지는 등 아름다운 야경으로도 유명하다.

이런 최첨단 마천루 빌딩에서 살짝 벗어나면 영국 빅토리아 양식의 중후한 건물들을 배경으로 낡은 트램 열차(무료)가 천천히 다니는 시티 지역이 나온다. 마치 중세 런던을 지구 반대편에 옮겨놓은 듯한 분위기. 그래서 비와 구름, 햇빛이 오락가락하는 날씨마저 변화무쌍한 멜버른은 '남반구의 런던'이라고 불린다.

그래피티로 유명한 '호시어 레인' 골목길에는 '미사 거리'라는 애칭이 붙어 있다. 소지섭, 임수정이 출연한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 촬영 장소이기 때문이다. 한류 드라마의 인기를 타고 외국인들도 인증샷을 남기느라 이 골목길은 늘 북적인다.

호시어 레인 골목길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 촬영지 호시어 레인 골목길.
퀸빅토리아 마켓 상인
퀸빅토리아 마켓에서 반찬가게를 하는 상인.

엘리자베스 스트리트와 빅토리아 스트리트의 모퉁이에 있는 퀸 빅토리아 마켓은 가장 활기찬 멜버른의 속살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매일 새벽 문을 여는데, 과일과 식료품 뿐 아니라 의류와 잡화까지 다 판다. 심지어 캥거루 고기, 악어 고기, 타조 알도 구할 수 있다. 이탈리아, 그리스, 인도네시아, 태국 등 세계 각지에서 온 이민자들이 상인으로 일하는 퀸 빅토리아 마켓은 그야말로 다문화의 용광로다. 여름철 매주 수요일 열리는 야시장에서는 지구촌 먹거리의 향연이 펼쳐진다. 야시장에 가보니 한국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만날 수 있는 '회오리 감자' 코너에 긴 줄이 서 있었다.

이러한 멜버른 도심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더욱 특별한 방법이 있다. 바로 열기구를 타고 도심의 하늘을 나는 것이다. 터키 카파도키아, 이집트 룩소르처럼 한적한 초원이나 사막 위에서 풍선을 타고 나는 것이 아니라, 도심 최첨단 마천루 빌딩 위를 날면서 일출을 감상하는 체험이다. 드론 비행도 통제하는 서울 하늘에서는 상상도 못할!

새벽 5시 50분. 멜버른 시내 중심가에 있는 호텔 앞으로 '글로벌 벌루닝(Global Ballooning)'이란 이름이 새겨진 승합차가 왔다. 트레일러에 대형 풍선이 실려 있었다. 차량은 멜버른 서쪽 야라강 하구 뉴포트 파크에 멈췄다. 이내 함께 떠오를 대형 풍선 5개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풍선 입구를 붙잡은 뒤 바람을 밀어 넣고, 가스 불꽃을 만들어내니 풍선이 똑바로 서기 시작한다. 차량에 연결된 밧줄을 풀자 바구니는 그야말로 사뿐하게 떠오른다. 점차 시야에 들어오는 항구의 컨테이너들, 정박돼 있는 배들, 그리고 바다와 수평선….

열기구
멜버른 도심 위를 날고 있는 대형 풍선. 가스 불을 켜면 공기가 데워져 풍선이 상승한다.

남서풍을 탄 풍선은 바다 위 요트와 비슷했다. 어떤 기계적 동력장치가 아니라 순수하게 바람에 온몸을 맡기는 체험이다. 요트를 타고 갈 때 엔진소리 없이 조용하게 산들산들 전진하는 것처럼, 풍선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바람에 실려간다. 그러면서도 드론 촬영 화면에서나 볼 수 있는 광활한 뷰가 눈앞에 펼쳐졌다.

저 멀리 멜버른 도심 빌딩 너머로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두꺼운 구름 사이로 내리비치는 붉은 햇살이 마치 '지구 종말의 날'을 그린 영화의 한 장면처럼 신비롭다. 열기구는 유레카 타워를 비롯해 70~80층 건물이 즐비한 멜버른 도심을 관통하며 야라강 상공을 날아간다. 야라강 주변, 내가 묵고 있던 호텔 간판까지 확인하니 더 반가웠다.

열기구를 운전하는 호주의 베테랑 조종사는 주택가 수영장이 다 보일 정도로 낮게 날다가도, 빌딩이 가까워지면 가스불을 켜서 열기구를 상승시켰다. 풍선 천장에 있는 구멍을 열어 열기를 빼내면 풍선은 내려앉았고, 한쪽 줄을 당기면 풍선이 제자리에서 회전하기도 했다. 약 1시간의 비행을 마친 풍선은 멜버른 시내 동북쪽 외곽 크리켓 경기장 잔디밭 위로 착륙했다. 조종사는 승객이 탑승한 바구니 앞부분을 살짝 들어 올려 뒷부분부터 소프트랜딩(연착륙)에 성공했다. 반면 다음에 내린 또 다른 풍선은 속도를 제어하지 못하고 바구니가 몇 미터나 끌려가는 경착륙으로 잔디밭에 심하게 긁힌 자국을 남겼다. 하차한 뒤 모든 탑승객이 힘을 합쳐 풍선 바람을 빼고, 접어서 차에 싣는 것을 도왔다.

증기기관차
멜버른 외곽 단데농 국립공원에서 100년 넘은 목재 다리 위를 달리는 증기기관차.
노천 온천
모닝턴 페닌슐라에 있는 노천 온천.

21세기 인공지능(AI) 기술 시대에 즐기는 아날로그 체험은 멜버른 외곽 단데농 국립공원 퍼핑빌리에서도 할 수 있다. 애니메이션 '토마스 기차'와 똑같이 생긴 증기기관차가 우거진 원시림 사이를 구불구불 달려간다. 기관실에서 화부가 석탄을 삽으로 퍼붓고, 굴뚝에서는 연기가 뿜어져 나온다. 계곡이 나오면 100여 년 된 목재 다리 위로 기차가 지나간다. 승객들이 창틀에 앉아 다리를 내놓고 있는 모습은 시간이 거꾸로 흘러간 듯한 느낌을 준다.

야라밸리의 몬탈토 와이너리에서 시라즈, 피노누아 와인을 맛보고, 모닝턴 페닌슐라 온천에서 천연 미네랄 성분 노천탕에 몸을 담그면 멜버른의 초록색 자연이 온 몸으로 들어온다.

필립섬에서 만난 희귀 동물

멜버른에서 남동쪽으로 1시간 40분 거리에 있는 필립섬은 자연이 잘 보전된 섬이다. 이곳에서는 펭귄과 캥거루, 코알라, 왈라비, 흑조, 가시두더지 등 호주에서만 볼 수 있는 희귀동물을 야생에서 만날 수 있다.

필립섬의 펭귄
해질녘 바다에서 나와 집을 찾아가고 있는 필립섬의 펭귄들.

필립섬을 대표하는 명물은 바로 '리틀 펭귄'. 지구에서 가장 작은 펭귄 종으로, 별칭은 '페어리(요정) 펭귄'이다. 키 30㎝, 몸무게 약 1㎏. 2박3일 간 바다에서 사냥을 마친 후 해가 지면 집이 있는 육지로 돌아온다. 일몰 시간대에 찾아가면 매일 평균 펭귄 2,000여 마리가일과를 마치고 '퇴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바닷물 속에서 리더 펭귄이 고개를 쑥 내밀고 안전하다는 신호를 보내면 그를 따르는 수십~수백 마리의 펭귄이 뭍으로 올라와 털을 말린다. 이후 적게는 5마리, 많게는 20여 마리가 넘어질 듯 뒤뚱뒤뚱거리며 자기 집을 찾아가는 모습이 정말 귀엽다.

바닷가 근처에 굴을 파놓은 펭귄은 금세 집을 찾아가지만, 산비탈을 넘고 풀밭을 건너 멀게는 2km나 걸어서 집으로 찾아가는 펭귄도 있다. 집에 있는 어린 자식을 먹이려 했는지, 뱃속에 물고기를 가득 채운 배 나온 펭귄 2마리가 고갯길을 걷다가 힘겨웠는지 배를 깔고 엎드려서 쉬어간다. 직장인 엄마, 아빠의 고단한 퇴근길이 떠올라 눈물이 날 뻔한 장면이다. 사람이나 펭귄이나, 산동네 사는 사람은 고생이다. 밤늦은 시간까지 돌아오지 않는 펭귄을 서로 부르는 소리에 고요하던 필립섬은 펭귄 울음소리로 가득 찬다.

이날 펭귄을 만나러 필립섬에 도착했을 때 아직 해가 지지 않아 시간이 남았다. 현지 가이드 대니얼 서 씨는 "호주 현지인만 아는 힐링 장소인 '백조의 호수(Swan lake)'를 소개해드리겠다"고 말했다.

유칼립투스 나무가 우거진 숲 속을 지나자 한적한 호수가 나타났다. 호숫가 풀밭에서는 왈라비가 조용히 풀을 뜯고 있다가, 사람이 다가서니 깡충깡충 뛰어 달아났다. 왈라비는 캥거루와 비슷하게 생긴 유대류로, 몸집이 좀 작고 털색깔이 짙다. 또 등에 뾰족한 바늘이 촘촘히 박힌 생물체도 보였다. 얼굴로 땅을 파는 듯 보였다. 처음엔 고슴도치인 줄 알았는데, 얼굴을 들고 어기적거리며 걷는 것을 보니 주둥이가 길쭉했다. 가시두더지라는 생소한 동물이었다. 바늘두더지라고도 불리는 이놈은 오리너구리처럼 포유류인데도 알을 낳는다고 한다.

필립섬 흑조
필립섬 호수에 사는 흑조(Black Swan).
필립섬 왈라비
덤불 속에 숨어 있는 왈라비.

호수 위에는 수많은 새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우아한 모습의 커다란 새가 눈에 들어왔다. S자로 굽은 긴 목을 물에 담갔다가 빼는 모습이 영락없는 백조였다. 그런데 몸이 검은색이 아닌가. 말로만 듣던 '블랙 스완(Black Swan)', 흑조였다. 세상에 흑조가 진짜 있다니! 놀라웠다. 흑조는 깃털이 온통 검은색인데 부리만 빨간색이었다.

차이콥스키 발레 '백조의 호수' 3막에서 백조 오데트로 변장한 흑조 오딜이 지그프리트 왕자를 유혹하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 '블랙 스완'에서 나탈리 포트만이 완벽하게 연기하고 싶어했던 1인 2역 변신 장면이다. 블랙 스완은 동화나 영화에서 흑화한 주인공에 대한 상징적 은유인줄 알았는데, 멜버른의 호숫가에서 우아하게 헤엄치는 진짜 흑조가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경제 용어로 '블랙 스완'은 '도저히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을 이른다. 세계 경제가 예상하지 못한 사건으로 위기를 맞을 때 사용하는 말이다. 흑조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특산종이라고 한다. 서구 유럽인이 호주에서 백조와 똑같은 흑조를 처음 봤을 때 얼마나 놀랐을지 이해가 가는 용어다.

스완 레이크에 있는 조그만 통나무집에 들어가면 완벽하게 숨어서 새를 구경할 수 있다. 새들이 너무 가까이 다가오기 때문에 망원경도 필요 없다. 조그만 창문을 통해 스마트폰으로 새들을 촬영했다. 하루 종일이라도 머물고 싶은 힐링의 호숫가였다.

거대한 전쟁기념관, 그레이트 오션 로드

호주 멜버른에서 자동차로 약 2시간 거리에 있는 '그레이트 오션 로드'는 총 241km에 이르는 아름다운 해안도로다. 해안도로 주변에는 도보 트레일 코스인 '그레이트 오션 워크'도 있다. 빅토리아주 어촌인 아폴로 베이에서 시작되는 100km 구간으로, 해안절벽과 숲, 바위를 통과하며 바닷가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트레일 코스의 마지막 목적지는 '12사도 바위'다.

구불구불한 해안 절벽을 따라 서있는 12사도 바위는 '죽기 전에 가봐야 할 세계 50곳'에 늘 거론되는 곳이다. 석회암 바위가 파도의 침식과 태풍 등 변화무쌍한 날씨 때문에 하나둘 무너져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12사도 바위
헬리콥터 안에서 바라본 그레이트 오션 로드 12사도 바위.

실제로 포트 캠벨 국립공원에 있는 '런던 브릿지' 바위에 가보니 파도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런던 브릿지는 원래 바다 쪽으로 길게 뻗은 곶이었는데, 아랫부분이 파도에 침식돼 두개의 아치가 뚫리게 됐다. 그런데 1990년 1월 오후 7시 45분쯤 굉음과 함께 육지와 연결된 아치 한쪽이 갑자기 무너져 내렸다. 졸지에 섬이 된 바위에 고립된 관광객 2명은 3시간 뒤에 경찰 헬기에 의해 구조됐다. 이곳 표지판에는 "언젠가 두 번째 아치도 무너져 두 개의 새로운 사도 바위가 탄생할 것이다. 그러나 결국엔 모두 바다 속으로 사라질 것"이라고 적혀 있다.

로크 아드 협곡은 1878년 50여 명의 사상자를 내고 좌초한 선박 이름을 딴 협곡이다. 바다 양쪽을 둘러싼 절벽 사이로 거센 파도가 들이치는 모습이 가공할 만했다. 계단을 타고 해변으로 내려가면, 기이한 형태의 석순과 종유석이 자란 침식 동굴도 구경할 수 있다.

전쟁기념관
1, 2차 세계대전과 6·25전쟁 등에 참전한 호주 용사를 기리는 전쟁기념관.

그레이트 오션 로드를 감상하는 특별한 방법은 헬리콥터를 타는 것이다. 12사도 바위 방문자센터에서 출발하는 헬리콥터를 타면 약 16분 동안 45km를 날아서 12사도 바위와 로크 아드 협곡, 런던 브릿지, 코끼리바위 등을 돌아볼 수 있다. 헬기에 탑승하면 유리창 때문에 생각보다 좋은 사진을 찍기는 어렵지만, 스펙터클한 해안 절벽과 파도를 가슴으로 담아올 수 있다.

1919년 시작된 그레이트 오션 로드 건설은 1차 세계대전 참전 후 귀향한 군인들에게 일자리를 주기 위한 사업이었다. 공사기간 중 3,000여 명의 참전 군인이 삽과 곡괭이를 들고 일했다. 이 도로 이스턴 뷰에는 1차 대전 참전 군인을 위한 기념비와 동상이 서 있다. 멜버른 지역 전문 여행가이드 대니얼 서 씨는 "기념비뿐 아니라 '그레이트 오션 로드' 전 구간이 세계에서 가장 큰 전쟁기념물인 셈"이라고 말했다.

Travel Information

한국에서 멜버른으로 가는 직항은 없다. 홍콩을 경유하는 게 합리적이다. 캐세이퍼시픽 항공을 이용하면 인천~홍콩 3시간, 홍콩~멜버른 8시간이 걸린다. 호주가 한국보다 2시간 빠르므로 인천공항에서 오후 3시 비행기를 타면 다음 날 오전 7시 멜버른 툴라마린 공항에 도착해 일정을 바로 시작할 수 있다. 캐세이퍼시픽 항공은 인천~홍콩 노선을 주 24회 운항한다. 홍콩에는 호주 3개 도시(시드니, 멜버른, 퍼스) 직항 노선이 있다. 16분 동안 진행되는 12사도 바위 헬기투어는 165호주 달러(약 14만 원), 열기구 체험은 495호주 달러(약 43만 원), 퍼핑 빌리 증기기관차는 왕복 61호주 달러(5만 원). 기타 여행 정보는 빅토리아 주관광청 한국어 홈페이지나 공식 블로그 참조.

  • ARTICLE & PHOTO: 전승훈 동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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