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메뉴 바로가기본문 내용 바로가기

약물 쓰지 않는 디지털치료제로
불면증과 우울증 예측까지 한다

이헌정 교수(1)

고려대 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헌정 교수가 디지털치료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디지털치료제(DTx)는 입으로 먹는 의약품이나 주사제로 사용되는 약품이 아님에도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치료제로 인정받았다.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치료법이다. 고려대 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헌정 교수를 만나 디지털치료제에 대해 들어봤다.

60대 박모 씨는 최근 며칠간 밤잠을 설쳤다. 피곤한 상태임에도 새벽 3시에야 간신히 잠이 들어 오전 9시가 넘어 일어나기 일쑤였다. 박씨는 병원에서 웨어러블 기기와 연동된 CRM(Circadian Rhythm for Mood)이라는 디지털치료제(DTx:Digital Therapeutics)를 사용하고 있다. 박 씨는 최근 CRM으로부터 생활이 불규칙한 것을 알리는 경고 메시지를 받았다. 그는 불면증을 치료하기 위해 생활습관을 고치고 있다. 박 씨가 사용하는 CRM은 이헌정 교수가 바이오벤처 (주)휴서카디안에서 개발한 일주기 리듬 디지털치료제다.

이 교수는 "일주기 리듬을 측정하고 이를 데이터로 활용해 불면증이나 우울증, 조울증 등 기분장애 환자의 일상을 정상적으로 관리하는 것을 목표로 디지털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면담과 설문 등의 방식으로 병을 찾아내야 했던 정신건강의학과 영역에서 디지털치료제의 등장은 새로운 치료 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지금까지 측정하기 어려웠던 마음의 영역이 디지털 장치의 힘으로 객관적 측정 데이터로 축적되고 의료진은 데이터를 토대로 진단과 처방을 내릴 수 있다. 디지털치료제의 의학적 효과도 해외와 국내 허가 과정에서 입증됐다.

불면증 표현 사진
불면증은 디지털치료제로 정확하게 진단·관리할 수 있다.
일주기 리듬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측정하나.

일주기 리듬은 모든 생명체가 갖고 있는 24시간 주기의 생리 및 행동적 변화이다. 일주기 리듬을 정확하게 측정하기 위해서는 심부체온 변동과 호르몬 변동을 반복적으로 측정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를 모두 측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스마트폰과 웨어러블 기기로부터 얻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지표를 이용한다. 첫 번째는 수면에 관한 데이터다. 언제 자고 언제 일어났는지, 잠은 몇 시에 잤는지를 측정한다. 두 번째 지표는 빛에 대한 노출이다.

아침에 잠에서 깨서 언제 처음 빛에 노출됐는지가 중요하다. 세 번째는 활동에 관한 데이터다. 낮에는 활동을 얼마나 하는지 밤에는 활동이 적어지는지 등을 측정한다. 넷째는 심박수다. 안정적으로 잠을 잘 때 심박수는 분당 60회 정도다. 격렬한 운동을 할 때는 120회까지 오르기도 한다. 만약 오전 내내 심박수가 낮은 상태로 유지된다면 아직 활동을 시작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즉 늦잠을 자고 있다는 것이고 일주기 리듬이 밀려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지금 개발하고 있는 디지털치료제도 이런 지표를 반영하고 있나.

그렇다. 수면의 질과 양, 심박수, 활동량, 빛에 노출되는 패턴 등 다양한 데이터를 기록하고 분석한다. 이런 데이터를 토대로 일주기 리듬이 잘 지켜지는지 등을 점검한다.

우울증 환자 상태를 정확하게 진단하는 도구

정신건강의학 분야에서 디지털치료제가 각광을 받는 이유는?

우울증 환자가 병원을 찾았을 때 의사들은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고, 설문을 작성한다. 문제는 환자가 스스로 우울하다는 얘기를 해야 최종적으로 진단을 내릴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우울증 환자가 스스로 우울하지 않다고 말할 수도 있다. 가끔은 환자와 가족이 함께 찾아왔는데 생각이 다른 경우도 있다. 환자는 스스로를 우울하지 않다고 얘기하고, 가족은 우울해 보인다고 하는 상황이다. 이럴 때 환자의 상태를 정확히 진단할 수 있는 도구로 디지털치료제가 유용하다. 또한 적절한 치료 중재가 실시간으로 이뤄진다는 점도 각광 받는 이유이다.

현재 개발 중인 디지털치료제는 어떤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나.

우선 불면증을 관리할 수 있게 하고, 우울증이나 조울증 같은 기분장애, 더 나아가서 당뇨병이나 비만 같은 대사성 질환도 관리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헌정 교수(2)
고려대 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헌정 교수.
국내에서 처음 인가받은 불면증 디지털치료제인 'Somzz' 개발에도 참여했다고 들었는데, 이 디지털치료제가 불면증을 치료하는 원리는?

불면증을 수면제로 해결하려고 하면 안 된다. 수면제를 한달 넘게 장기간 사용하면 약물 의존성과 내성의 문제를 일으킨다. 수면의학계가 추천하는 불면증 치료법은 인지행동 치료다. 이는 불면증을 일으키는 행동, 사고, 감정을 수정하는 치료 방법이며, 수면제한요법, 자극조절요법, 이완훈련, 인지전략, 수면위생 등으로 구성된다. (주)에임메드와 함께 개발한 Somzz는 이러한 인지행동 치료를 스마트폰 앱으로 구현한 것이다. 침대에 누워있는 시간을 제한하는 것이 불면증 인지행동치료의 핵심이다. (주)휴서카디안과 함께 개발하는 불면증 디지털 치료기기인 CRS(Circadian Rhythm for Sleep)는 인지행동 치료적 기법보다는 일주기 리듬을 건강하게 관리하는데 중점을 둔다는 점에서 세계에서 처음 시도되는 치료 방식이다. 불면증의 중요 원인이 일주기 생체리듬의 비정상적인 뒤처짐이므로 생체리듬을 앞당기는 생활습관은 불면증을 완화시키고 예방하는 효과를 가진다.

수면을 방해하는 요소는 무엇인가.

대표적으로 수면무호흡증이 있다. 수면무호흡증은 산소포화도로도 알 수 있다. 일반적인 산소포화도가 90% 이상인데, 수면무호흡증 환자는 일시적으로 산소포화도가 85%, 심하면 60% 이하까지 떨어지기도 한다. 그럴 경우 잠에서 계속 깨게 되는데 이게 수면의 질에 큰 영향을 준다. 갤럭시워치나 애플워치 같은 디지털 웰빙 제품으로도 무호흡증 가능성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

미래의 우울증 발생 가능성도 예측하는 기술

우울증을 확인할 때 어떤 데이터를 활용하나.

심장박동수, 표정, 말투, 활동량, 통화패턴, 수면패턴 등 다양하다. 더 나아가서 이메일을 얼마나 자주 확인하는지도 우울증을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된다. 예전에는 이메일을 자주 확인하던 사람이 어느 순간 거의 확인을 안하고 있으면 어떤 문제가 있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다. 또 위성항법장치(GPS)를 써서 환자의 활동 범위가 어떻게 변하냐도 중요한 지표가 된다. 우울증이 심해지면 사회생활이 어려워지고, 활동반경도 점점 줄어든다. 평소와 비교해서 특정 시기에 활동 반경이 크게 줄어든다면 우울증의 위험성이 높아진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팀이 개발한 기술은 단순히 현재의 우울증 발생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아니다. 미래의 우울증 발생을 예측하는 것이 차별점이며, 이는 일주기 생체리듬 측정에 의하여 가능해진다.

디지털치료제가 우울증이나 조울증 예방과 관리에도 사용될 수 있나.

그렇다. 재발성 우울증과 조울증 환자의 스마트밴드와 스마트폰을 통해 수집되는 생체신호 데이터로부터 일주기 생체리듬 데이터를 산출하여 인공지능(AI)으로 분석하면, 환자 스스로 증상을 인식하기 전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우울증, 조증의 재발을 사전에 예측할 수 있다. 전국 8개 병원에서 주요 기분장애 환자(주요우울장애, 1형 양극성장애, 2형 양극성장애) 총 495명을 대상으로 활동량, 수면 양상, 심박수 변화, 빛 노출 정도를 스마트밴드와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수집하고 재발 양상을 수개월에서 5년간 추적 관찰한 결과 향후 3일 후 재발 예측 성능(AUC:Area Under Curve)이 우울증 0.937, 조증 0.957 경조증 0.963으로 높게 나왔다.

우울증 표현 사진
디지털치료제를 사용하면 우울증 발생을 미리 예측할 수 있다.
해외의 디지털치료제는 어떤 방식으로 환자에게 적용되고 있나.

해외에서는 디지털치료제의 승인과 처방과정이 우리나라보다 간소하다. 독일의 경우 디가(DiGA)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건강관리 앱이 치료로 연결되고 있다. 일정 수준의 검증을 거친 디지털치료제는 일단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고 1년간 처방이 가능하다. 이후에 처방에 따른 효과 검증 여부에 따라 계속적인 건강보험적용 여부가 결정된다. 우리나라는 식약처 승인 이후에도 이보다 훨씬 복잡하고 긴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 팀이 CRM을 국내에서 먼저 출시한다면, 의사 처방 없이도 다운로드 받아서 사용할 수 있는 디지털 웰빙 제품으로 출시할 것 같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 등 외국에 출시할 제품은 치료자 관리 앱을 추가해 의사 처방이 필요한 디지털 치료기기로 허가를 신청할 계획이다.

우울증, 조울증 관리용 CRM은 언제쯤 상용화할 수 있나. 의사의 처방이 필요한가.

현재 개발 중인 CRM 디지털치료제는 의사의 처방 없이도 사용할 수 있는 건강앱으로 최종 임상시험을 마무리하는 단계에 있다. 출시 일정은 미정이지만 내년 중반기에는 출시될 수 있을 거라고 보고 있다. 출시 이후 호환이 되는 웨어러블 기기를 갖고 있는 경우에는 앱스토어에서 다운로드 받아서 월구독료를 내는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될 것 같다.

CRM의 치료 효과는 어느 정도로 기대하고 있나.

임상시험 결과는 조금 더 기다려야 하지만, CRM의 초기 버전인 예비 연구 결과를 2020년 국제학술지(JMIR Mental Health)에 게재한 바 있다. 우울증과 조울증의 재발을 현저히 낮추는 효과를 확인했다. 현재는 이보다 진전된 버전의 어플로 임상시험을 시행 중에 있다. 올해 말에는 임상시험이 완료되니 보다 업데이트된 치료 결과를 공개할 예정이다.

미래에는 디지털치료제를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나.

불면증과 우울증뿐만 아니라 ADHD, 니코틴 중독, 알코올 중독, 이명증, 비만치료 등의 다양한 질환에 이용되는 디지털 치료기기가 나와 있다. 정신과에서는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한다. 약을 처방하기도 하고, 심리상담을 하기도 한다. 인지행동 치료를 하는 경우도 있다. 인지행동 치료는 교육을 통해서 환자의 생각과 행동을 교정하는 방법이다. 문제는 인지행동 치료를 하려면 의사와 환자가 직접 만나야 하고 오랜 시간을 써야 한다. 그런데 만약 이 과정을 디지털로 만들면 단점들을 보완할 수 있다.

휴서카디안이란 회사에 대해 소개해달라.

고려대의료원장을 역임한 김린 교수님과 함께 창업한 회사다. 우울과 불안, 불면뿐 아니라 당뇨, 비만도 일주기 생체리듬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우리 회사는 현대인이 스스로 깨닫기 어려운 생체리듬이 불안정해지는 현상을 스스로 관리하도록 하는 각종 디지털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 EDITOR: 장치선
  • PHOTO: 조영철, 셔터스톡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