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와 의료원 발전의 뿌리 인촌과 우석의 헌신(獻身)을 되새긴다
인촌 김성수 선생(왼쪽). 우석 김종익 선생(오른쪽).
일제 강점기 열악한 환경에서도 교육 구국을 향한 신념과 의학발전의 염원을 몸소 실천한 인촌 김성수 선생(1891~1955)과 우석 김종익 선생(1886~1937)의 활동이 고려대 의대 역사에서 다시 조명 받고 있다. 민족교육에 헌신한 인촌과 의사 양성의 뜻을 실천한 우석의 노력으로 오늘날 고려대 의대까지 발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민족의 미래는 우수한 젊은이들의 교육에 달려있다." 인촌과 우석은 일제강점기 시절 일찍이 민족 교육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식민지 조국의 독립은 진정한 교육에서 출발한다는 신념에 따른 것이다. 특히 인촌은 조국 광복을 위해 민족교육에 힘쓰고, 산업을 일으키며, 언론을 육성하는 데 헌신했다. 그는 중앙학교와 고려대학교를 경영해 민족의 자존과 독립에 필요한 인재를 키운 한국 근대교육의 선구자로 꼽힌다. 경성방직을 최고의 산업체로 키워 민족경제의 기틀을 다지고, 민족혼을 일깨우기 위해 동아일보를 창간한 선각자이기도 하다.
2025년 개교 120주년을 맞는 고려대는 하루 아침에 세워지지 않았다. 인촌은 고등교육에 앞서 중등교육부터 시작했다. 1914년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지 1년 만인 1915년 4월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던 중앙학교를 인수하고 근대적인 경영방식을 도입했다. 이곳에서 직접 영어와 경제를 가르쳤으며 1917년엔 교장으로 취임했다. 중앙학교는 한국어 교습과 민족주의 교육에 힘쓰며 명문 사학이자 민족 교육의 요람으로 자리잡았다.
민족교육에 헌신한 인촌, 의학발전을 염원한 우석
인촌은 엄혹한 시기였던 1930년대 고려대의 전신인 보성전문학교 경영에 뛰어들었다. 식민지라는 여건 때문에 유능한 젊은이들이 고등교육을 포기하거나 외국으로 나가야 하는 게 민족의 손실이라는 판단 아래 1932년 3월 재정난을 겪고 있던 보성전문학교를 인수했다. 이곳에 유럽과 미국의 선진적인 제도를 도입하는 등 광복 때까지 보성전문학교에 깊은 애정과 관심을 쏟았다. 1946년 보성전문학교는 종합대학 고려대학교로 발전해 수많은 인재들을 배출하는 등 한국의 민족대학으로서의 명성을 드날리고 있다.
인촌이 고려대를 성장시켰다면 우석은 오늘날의 고려대 의대를 있게 한 기념비적 인물이다. 우석은 미두 투자와 조선제사주식회사 경영으로 널리 이름을 알린 당대의 대표적 자산가였다.
우석은 고통 받는 민족을 위해 사회 사업에도 적극 참여해 적십자 활동 및 나병환자 구호 활동에 거액을 기부했다. 민족의 앞날은 우수한 젊은이의 교육에 달려있다는 신념으로 전남육영회를 설립해 장학사업에 나서는 한편 순천농업학교(현 순천대)를 설립하며 육영사업에도 적극 참여했다.
우석의 헌신, 의대 탄생의 뿌리
인촌과 우석의 인연은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로제타 홀 여사와 함께 고려대 의대 전신인 조선여자의학강습소를 설립한 김탁원 선생은 1933년 로제타 홀 여사 귀국 이후에 여자의학강습소를 의학전문학교로 승격하기 위한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이때 인촌이 김탁원에게 우석을 소개해준 결과 우석이 1936년 여자의학전문학교 설립기성회의 이사로 참여하게 됐다. 우석은 인촌 선생과 교우하며 고려대 개교 30주년 기념 사업인 도서관 건립기금으로 거액을 기부했다.
고려대 의대 역사에서 반드시 기억되어야 하는 날이 있다. 우석은 장녀를 결핵으로 잃고 조선의 낙후된 의료를 애석하게 여겨 경성여자의학강습소를 전문학교로 승격시키기 위한 기성회 활동을 이어가던 중 병을 얻는다. 1937년 5월 6일, 임종을 앞두고 우석은 거액의 전 재산(당시 175만 원)을 사회에 희사했고 이 중 65만 원을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 설립기금으로 기부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51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우석의 유언에 따라 1938년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는 정식 의학전문학교로 개교했다. 이후 경성여의전은 광복 후 서울여자의과대학을 거쳐 1957년 남녀공학인 수도의과대학으로 발전하게 됐다. 1966년 종합대학으로 전환된 후 김종익 선생의 호를 따라 우석대 의과대학으로 명명됐다. 1971년 12월에는 민족 교육구국의 전통의 뿌리를 같이 하는 고려대학교와 합쳐지면서 김종익 선생의 큰 뜻은 오늘까지 살아있다. 또한 우석 선생의 유지로 1938년 순천고등학교가, 1940년에는 순천공립여학교(현 순천여자고등학교)가 연이어 개교하게 된다.
우석의 숭고한 뜻 기린 '65캠페인'
고려대의료원은 우석 선생의 헌신과 그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한 캠페인을 실시했다. 2021년 6월 5일 시작한 고려대의료원의 'Again, 65만 원의 기적' 캠페인(65캠페인)은 조선여자의학강습소가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로 승격되는데 큰 기여를 한 우석 선생의 기부를 기리는 의미를 담고 있다. 캠페인 명칭의 '65' 우석이 기부한 65만 원의 가치를 되살린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 캠페인에는 고대의료원 발전위원장인 문규영 아주그룹 회장의 기부를 시작으로 국내부터 해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지역의 기부자들이 참여했다. 코로나19 성금을 지원했던 고대경제인회(회장 승명호), 반평생을 안암동에 거주하며 그저 고대가 좋아서 기부했다는 한종섭 여사, 의료진의 노력으로 코로나 감염에서 회복 후 기부한 환자, 임종한 환자를 대신해 기부한 보호자, 그리고 백신혁신센터에 100억 원을 기부한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캠페인에 동참했다. 덕분에 100일 만에 기부금이 200억 원에 이르는 등 국내 의료기관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놀라운 선례를 남겼다.
- EDITOR: 박정연
- 자료사진: 고려대의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