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장기에 전이된 말기 대장암,
완치 가능성 포기 않는 병원
고려대 안산병원 대장항문외과 엄준원 교수가 말기 대장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말기암은 죽음과 직결되는 질환이며, 인간의 힘으로는 고칠 수 없는 병으로 인식되기 쉽다. 대장암 말기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말기 직장암도 고칠 수 없는 병이 아니라, 치료를 포기하지 않으면 완치할 수 있다고 말하는 전문가가 있다. 고려대 안산병원 대장항문외과 엄준원 교수가 그렇다. 엄 교수는 수술적 치료 없는 선행항암화학요법과 방사선치료만으로 대장암 말기 환자를 치료하며 희망을 안겨주고 있다. 그에게 대장암 치료법에 대해 들어봤다.
대장암은 '한국인 사망 원인 3위'로 지목된 질병이다. 대장은 항문에서 15cm 이내 곧게 뻗은 부위인 직장과 소장 이후 나머지 부분인 결장으로 구분된다. 암이 발생하는 부위에 따라 직장암과 결장암으로 나뉜다. 통계청이 올해 9월 발표한 '2022년 사망 원인 통계 결과'에 따르면 대장암은 폐암, 간암에 이어 국내에서 세 번째로 많이 발생하는 암이고, 암 사망 원인 3위에 올라있다. 조기에 발견하면 고칠 수 있다고는 하지만 말기 암이라면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인식이 강하다.
그래서일까. 경기 서남부 지역의 상급종합병원인 고려대 안산병원에 찾아오는 환자들 중에는 치료를 통해 병을 완치하겠다는 생각을 내려놓은 이가 적잖다. 그런데 이 병원 엄준원 교수의 생각은 다르다.
"대장암은 무서운 암이지만, 치료가 잘 되는 암이 더러 있다. 드물기는 하나 선행적 항암화학요법이나 완화적 항암화학요법, 방사선 치료만으로 모든 암세포가 사라지기도 한다. 재발된 암, 말기 암이라도 약물에 대한 반응을 보인다면 완치를 향해 수술적 치료를 시행할 수 있다."
2022년 발표된 중앙암등록본부 자료에 따르면 2016~2020년 결장암을 포함한 대장암의 5년 상대생존율은 남녀 전체 74.3%로, 1996~2000년 58.9%에 비해 약 15%포인트 상승했다. 엄 교수가 치료한 환자 일부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호전된 상태가 된 뒤에 감사 인사를 전하고 있다. 그들을 볼 때마다 엄 교수는 "말기암이라도 수술 가능성이 남아 있고 완치 가능성이 있으니,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치료하자"는 각오를 되새긴다고 한다.
말기 대장암도 완치 가능성 남아 있어
"통상적으로 항문연에서 5cm 미만으로 있는 종양을 하부 직장암으로 본다. 종양이 항문과 인접해 있는 하부 직장암 크기와 위치에 따라 항문을 보존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어느 날 하부 직장암 환자가 찾아왔는데 검사를 해보니 암세포가 간 주위에까지 퍼져 있었다. 암 크기가 큰 경우 수술이 바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암세포 크기를 줄이고 외과적 수술을 시도하기 위한 목적으로 항암화학요법을 시행했다."
이 환자는 그 후 꾸준히 선행항암화학요법으로 치료를 받았다. 그렇게 치료를 진행하던 어느 날 엄 교수는 환자 상태를 검사하며 스스로 놀랄 만한 광경을 목격했다. 엄 교수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하부 직장과 간 등 모든 부위에 병변이 다 사라졌다. 지금은 경과 관찰을 통해 추가적인 방사선 치료 등을 시행하고 있다. 통상 암 치료 후 5년이 지나면 완치 판정을 받는다. 이 환자는 4기 암 진단을 받았지만 수술적 치료 없는 항암요법과 방사선치료로 완치 판정 등록을 목전에 둔 상황이다."
선행항암화학요법만으로 효과를 본 결과였다. 엄 교수가 말기암 환자라도 포기하지 말고 고쳐보겠다는 확신을 더욱 굳히게 된 계기가 됐다. 그 이후에도 엄 교수는 다양한 말기암 환자를 치료할 기회가 있었고, 그때마다 호전되거나 치유되는 환자들을 보며 말기암 치료에 대한 희망을 불어넣고 있다.
대장암은 병기에 따라 치료법이 달라진다. 결장암 1~3기까지의 치료는 근치적 절제술이 원칙이다. 다만 1기 결장암에서 점막하 침윤이 1mm 이하이고 다른 병리학적 지표가 양호한 경우엔 내시경적 절제 치료가 가능하다. 최종 병기 고위험군 2기 또는 3기 환자는 수술 후 재발 방지를 위해 보조 항암화학치료를 한다.
직장암 1기 또한 점막하 침윤이 1mm 이하이고 다른 병리학적 지표가 양호할 땐 내시경적 절제만으로 치료가 가능하다. 다만 림프절 전이 위험성 등이 있는 경우엔 근치적 직장절제술을 권한다. 임상병기 2기 또는 3기 직장암 치료도 근치적 직장절제술이 원칙이다. 상황에 따라 수술 전후 항암화학요법과 방사선치료를 권고한다.
4기 대장암은 이미 간이나 폐 등으로 원격 전이가 진행됐기에 수술적 치료만으로는 완치되기 어렵다. 하지만 전이된 병변이 제한적인 경우 대장암 부분과 전이 병변 모두 근치적 절제 수술을 받을 수 있고, 수술 전 또는 수술 후 항암치료를 병행하며 대장암 완치를 기대할 수 있다.
진료 이외 시간에도 협진 시스템 가동
고려대 안산병원 대장암 다학제팀은 환자 맞춤 치료를 위한 협진 시스템을 유기적으로 가동하고 있다. 진료시간 이외 일과 후에도 협진 시스템이 유지된다.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환자의 안전과 대장암 진단 및 치료가 적절한 시기에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진료시간 이외에도 협진 시스템이 가동되도록 하고 있다. 적기에 치료를 하면 충분히 고칠 수 있는데 그 시간을 놓쳐 상태가 나빠지는 상황만은 막아야 한다." 대장암이 발병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엄 교수의 답은 이렇다.
"발병 원인의 20%는 유전적 요인, 80%는 환경적 요인에 의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장암의 위험 인자로 지목되는 것은 가공육과 붉은 육류의 과도한 섭취, 흡연, 과음, 과도한 스트레스 등이다. 간편화된 식습관과 불규칙한 생활 습관으로 인해 젊은 층까지 대장암 발병률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2022년 미국 콜로라도대학 메디컬센터 연구팀이 국제 의학저널 '란셋(Lancet)'에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은 20~49세 대장암 발생률이 가장 높은 나라로 나타났다. 인구 10만 명당 12.9명으로 조사 대상 42개국 중 1위를 기록한 것이다. 대한대장항문학회 이사장을 역임한 엄 교수는 이런 결과를 보면서 '대장내시경 또는 대장암 검진의 습관화'를 더욱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사람들이 병원 검진을 꺼리면서 대장내시경 검사 건수가 줄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제공하는 보건의료 빅데이터 개방시스템 자료에 따르면 2019년 233만 건 시행됐던 대장내시경 검사가 2020년엔 221만 건으로 약 12만 건이 감소했다. 엄 교수는 "대장암 조기 진단을 놓친 이들이 상당수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고 우려했다.
젊어도 대장암 검진은 필수
엄 교수는 관심을 가져야 할 대장암 초기 증상으로 '복통과 배변 습관'을 꼽는다. "원인 모를 복통이나 잦은 설사, 변비 등이 지속되고, 체중이 감소하면 대장 건강이 나쁘다는 신호다. 대장암 가족력이 있거나 검붉은 혈변, 점액이 많이 섞인 변이 배출되고 배변 습관이 바뀌었다면 정밀 검진을 받아보는 게 좋다. 초기에는 뚜렷한 증상이 나타나지 않기에 전문의의 진료를 받고, 신체검사 및 대장내시경 등의 검사를 병행해야 한다. 40대부터는 무증상이어도 정기적으로 검진받기를 권한다. 훌륭한 치료보다 예방이 훨씬 더 중요하다."
- EDITOR: 김건희
- PHOTO: 고려대의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