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메뉴 바로가기본문 내용 바로가기
PEOPLE

'팔순 노익장' 주갑순 서초요양병원 진료원장 "환자 마음, 젊었을 땐 모르다가 이제 보이네요"

주갑순 서초요양병원 진료원장 주갑순 서초요양병원 진료원장

제34회 고대 의대 교우회장배 친선골프대회가 지난 6월 경기 파주시 파주컨트리클럽에서 교우회 회원 7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성황리에 열렸다. 이날 특별상을 받은 사람은 다름 아닌 올해 86세의 주갑순 서초요양병원 진료원장(전 고대구로병원 산부인과 교수). 고령의 나이에도 젊은 후배들보다 더 열정적으로 라운드를 돌아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 열정의 비결은 뭘까.

"어휴~ 더운데 와주셔서 감사해요! 그런데 무슨 얘길 해야 할지…."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8월 5일,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서초요양병원에서 주 원장을 만났다. 환한 미소로 취재진을 반기면서도 오랜만에 하는 인터뷰라며 긴장한 듯했다.

고대구로병원 산부인과의 초석을 다졌던 주 원장은 지금도 의료 현장을 떠나지 않고 있다.

"이 요양병원에서 진료원장으로 일한 지 6개월 정도 됐어요. 그 전에도 일손이 필요하다는 병원이 있으면 강원도든 전라북도든 가서 봐드렸지요. 일할 수 있어서 얼마나 즐겁고 감사한지 몰라요."

요즘도 새벽 5시면 일어나 책을 읽고 기도를 한다는 주 원장은 일주일에 서너 번은 골프연습장에서 공을 친다. 출퇴근은 체력을 다지기 위해 가급적 버스와 지하철 등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한다. 체력과 열정이 여전하다.

주 원장은 우리나라 산부인과 발전에 크게 기여한 명의로 꼽힌다. 특히 유전의학에 대한 이해가 초보 수준이던 1975년, 주 원장은 산전 유전 진단을 위한 양수검사를 국내 최초로 성공적으로 시행했다.

여러 시행착오를 거친 연구 끝에 양수 세포의 배양과 검사에 대한 지표도 만들었다. 혈액을 이용한 염색체 분석 검사조차 매우 까다롭고 손이 많이 가던 때였다.

"양수 세포 검사는 제가 처음이었죠. 출산 전 기형아 검사를 위한 건데 성별도 나오니 세상이 발칵 뒤집혔죠. 딸만 넷 있는 집에서 태어난 데다 저도 딸만 셋 낳아서 그런지, 우리나라에 남아 선호가 그렇게 심한지 몰랐어요."

국내 임산부에게 마이코플라즈마균 검사를 처음 실시한 것도 그다. 기회는 기적처럼 찾아왔다. 1974년 주 원장은 미국 존스홉킨스의과대 부속병원 산부인과 불임 및 세포유전학 연구원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의 지도교수는 미국에서 시험관 아기 시술을 처음 성공한 하워드 존스 박사였다. 산부인과 내분비학으로 유명한 아내와 함께 과배란 유도법을 개발해 시험관 아기 시술 기술을 한층 발전시킨 공로로 노벨상 후보까지 오른 세계적인 명의였다.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제 평생의 은인이지요. 한국에 돌아올 때는 시술에 필요한 약과 기구 등을 사다가 다 챙겨주셨지요. 나중에 들은 얘기인데 경희대 총장까지 만나서 제 취직 부탁까지 하셨더라고요."

놀랍고 감사한 인연은 귀국 후에도 계속됐다.

존스 박사 부부가 수십 년간 진료했던 불임환자의 차트를 정리해 논문을 쓰도록 도와준 것. 덕분에 존스홉킨스의과대에서 학술상도 받았다.

"엄마로서 죄인입니다"

서초요양병원에서 환자를 진료 중인 주갑순 진료원장.

주 원장은 1952년 서울여자의과대학 의예과에 입학했다. 이 대학은 1957년 수도의과대학으로 개칭했다가 1967년 우석대로, 다시 1971년 고려중앙학원과 합병하면서 지금의 고려대 의과대학으로 바뀌었다. 주 원장은 고대 의대의 소중한 역사와 함께했다. 고대 의대가 1983년 고대구로병원을 개원할 때 초대 산부인과 과장으로 부름을 받았다. 그가 처음 한 일이 매년 여성 산부인과 전공의를 2명씩 선발하는 것.

"전에는 여자 전공의를 안 뽑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여자가 더 도망 안 가고 열심히 일한다고 설득했죠."

그 덕분인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산부인과에 여의사가 더 많다. 주 원장은 이후 국립의료원 산부인과 의무기좌, 주산부인과의원 원장, 경희대의대 산부인과 교수, 고대의대 산부인과 주임교수, 미즈모아산부인과 원장 등을 거치며 의료인으로서 많은 이들의 삶을 도왔다.

"의사로 살았던 세월에 보람을 느끼죠. 하지만 애들을 제대로 못 키워서 엄마로서 죄인입니다. 너무 바빠서 식구들과 밥을 같이 먹는 것조차 힘들었어요."

자녀들 이야기가 나오자 주 원장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 당시 전문직 여성의 삶이 안팎으로 얼마나 고단했을까. 아이들은 엄마가 얼마나 그리웠을까. 그럼에도 주 원장의 마음은 여전히 환자에게 가 있다. 팔순이 넘은 나이에도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비결이 바로 이걸까.

"젊고 바쁠 땐 모르다가 여유가 생기니 보이는 것들이 있어요. 환자의 마음도 그래요. 약 주고 수술 해주는 게 다가 아니에요. 병이 생긴 자체만으로 힘들 환자의 마음을 듣고, 이해해주고, 극복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가지라고 북돋아주는 노력이 필요해요."

  • EDITOR: 이주연
  • PHOTO: 조영철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