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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혈모세포 절반만 일치해도
혈액암 환자 살려낸다

성화정 교수(1)

고려대 안산병원 혈액종양내과 성화정 교수가 조혈모세포 이식 다학제 회의에 참석해 의견을 밝히고 있다.

고려대 안산병원 본관 12층에 자리한 조혈모세포 이식 병동은 경기도 안산·시흥·화성 지역에 하나뿐인 조혈모세포 이식 의료시설이다. 이 병원 혈액종양내과 성화정 교수를 만나 조혈모세포이식에 대해 알아봤다.

고려대 안산병원에서 조혈모세포 이식 병동이 문을 연 것은 2016년 1월. 보건복지부가 이 병원 암센터를 공식적으로 조혈모세포이식센터로 지정한 것이 계기가 됐다.

"고대안산병원 암센터에 조혈모세포센터가 설치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입니다. 골수이형성증후군을 앓던 20대 환자가 계셨는데, 때마침 센터가 개소돼 조혈모세포 이식 수술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분 말씀이 이전에는 혈액암 치료를 받아야 하거나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으려고 해도 서울 같은 큰 도시 병원으로 나가지 않으면 치료 받기가 어려웠다는 겁니다. 그런데 집과 가까운 곳에 조혈모세포이식센터가 생겨 얼마나 고맙고 다행인지 모른다고 했어요."

혈액내과 전문의로, 혈액암 치료 분야 권위자로 통하는 성화정 교수의 말이다. 그가 보기에 조혈모세포이식센터 개소는 지역에 거주하는 환자들 불편을 해소하게 된 것에 그치지 않는다. "병원과 의사 처지에서는 혈액암 환자를 완치에 가깝게 치료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 하나를 얻게 된 것이 아니겠냐"는 게 그의 평가다. 센터 개소에 따라 안산병원은 중증진료가 가능한 상급종합병원으로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하고 지역 의료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2021년 경기 지역 조혈모세포 이식이 168건 이뤄졌고, 이 중 안산병원에서 실시한 조혈모세포 이식은 40건(24%)에 달한다.

혈액암 완치를 목표로 하는 병원

우리 몸에서 조혈모세포에 이상이 생겨 정상적인 혈액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백혈병과 같은 혈액암이나 악성 혈액 질환이 발생한다. 조혈모세포는 스펀지처럼 구멍이 뚫려 있는 뼈 속 골수에 주로 분포한다. 분만 시 태반이나 탯줄 내에 전신을 순환하는 말초혈액에도 일부 존재한다. 환자의 불량 조혈모세포를 제거한 다음 건강한 조혈모세포를 이식해주는 치료법이 조혈모세포 이식이다.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의 '장기 등 이식 및 인체조직기증 통계'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5,919명의 환자가 조혈모세포 이식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그해 실제 이뤄진 조혈모세포 이식은 1,165건에 불과하다. 다음은 일문일답

조혈모세포 이식은 공여자 유무에 따라 동종 조혈모세포 이식과 자가 조혈모세포 이식으로 구분된다. 동종 조혈모세포 이식은 어떻게 이뤄지나.

"동종 조혈모세포 이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조직적합성항원이 일치하는 형제 및 자매의 골수를 이용하는 '혈연 동종 조혈모세포 이식'과 조직적합성항원이 일치하는 타인의 골수를 이용하는 '비혈연 동종 조혈모세포 이식'이다. 조직적합성항원이 어느 정도 맞느냐에 따라서 구분하기도 한다. 항원이 모두 맞는 '일치 이식', 항원이 8자리 중 1~2개가 맞지 않는 '부분 일치 이식', 항원 8자리 중 4개만 맞는 '절반 일치 이식'이다. 주목할 것은 환자와 가족, 타인과 조직적합성항원이 절반만 일치해도 이식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것을 반()일치 동종 조혈모세포 이식이라고 한다. 반일치 이식이 실행된 지 10여 년 정도 흘렀다. 초기에는 이것을 활용하는 사람이 한두 명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전체 이식의 절반에 달할 정도로 안전하고 효과적인 이식법으로 자리 잡았다."

성 교수는 이와 관련해 "조직형이 절반만 일치해도 이식이 가능하고 합병증을 막아주는 억제제의 효능도 좋아졌기 때문에 골수 공여자를 찾는 일은 이제 어려운 일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비정상 세포 제거하고 정상 조혈모세포 수혈

만일 국내에 조혈모세포가 일치하는 공여자가 없다면 어떻게 하나.

"전 세계 기증 희망자 목록에서 조혈모세포 동일자를 찾는다. 조직적합성항원이 부분 일치하는 가족이나 출산 시 제대혈(탯줄을 절단하고 난 이후에 태반과 탯줄의 혈관에 남아 있는 신생아의 혈액)에서 채취한 조혈모세포를 이용하는 제대혈 이식도 고려한다."

성화정 교수(2)
고려대 안산병원 혈액종양내과 성화정 교수.
환자 자신의 조혈모세포를 냉동 보관 후 사용하는 걸 자가 조혈모세포 이식이라고 한다. 이것은 동종 조혈모세포 이식과 어떻게 다른가.

"자가 조혈모세포 채집을 위해서는 면역증가 주사제를 수일간 투약하여 골수에 존재하는 조혈모세포를 말초혈액으로 흘러들어 나오게 해야 한다. 그러고는 환자 몸에서 혈액을 채취해 조혈모세포를 분리한다. 그다음 화학 요법으로 면역체계를 완전히 없앤 후 보관했던 조혈모세포를 다시 주입하는 것이다. 그러면 병적인 면역체계는 사라지고 건강한 면역체계가 새롭게 자리 잡는다."

혈액암이나 골수 기능 저하 질환 같은 중증 환자도 조혈모세포를 이식하면 완치도 가능한가.

"그렇다. 백혈병, 악성림프종, 다발성골수종, 만성골수증식성 질환 등의 혈액암의 경우 조혈모세포 이식을 통해 완치를 기대할 수 있다. 재생 불량성 빈혈이나 일부 면역 결핍 질환도 골수 기능 회복을 위해 이 이식법을 활용한다."

조혈모세포 공여자로부터 조혈모세포를 채취하는 방법은 어떻게 달라졌나.

"그동안은 공여자의 골수를 직접 채취하는 골수 이식 방법을 사용했다. 그러다 보니 바늘을 삽입하는 엉덩이 뼈 부위에 통증을 호소하거나 출혈 우려 위험이 컸다. 요즘에는 말초로 조혈모세포가 흘러나오도록 유도한 후 말초혈액을 통해 조혈모세포를 수집하는 말초 조혈모세포 이식 방법을 사용한다. 마치 헌혈을 하듯 간단하게 조혈모세포를 채집할 수 있어 이전보다 공여자의 통증과 위험성이 훨씬 줄어들었다. 요즘은 출산 직후 채취한 제대혈에서 조혈모세포를 분리해 수집하는 제대혈 이식도 이뤄지고 있다."

기증자 많을수록 새 생명 찾을 가능성 커져

조혈모세포 이식 원리에 대해 설명해 달라.

"일단 환자 혈액 안에 있는 비정상 조혈모세포를 제거한다. 이후 공여자로부터 채취한 정상 조혈모세포를 환자의 정맥을 통해 수혈한다. 이식이 이뤄지면 남아 있던 환자의 병든 조혈모세포 수는 감소하고 새로 들어간 정상 조혈모세포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조혈모세포 이식을 위해 어떤 전처치 과정을 거치게 되나.

"동종 조혈모세포 이식의 경우 이식 전처치는 두 가지 목적을 가진다. 첫째는 암 세포 파괴하기다. 둘째는 공여자로부터 이식받은 조혈모세포 생착과 조혈모세포 이식의 부작용 중 하나인 이식편대숙주 반응 줄이기다. 이식편대숙주 반응이란 조혈모세포 이식 시 수혈된 T림프구가 면역기능이 저하된 숙주(조혈모세포 이식을 받은 사람의 신체)를 공격해 피부발진, 간 기능 이상, 설사 등의 증상을 일으키는 질환을 일컫는다. 전처치 방법 중 표준 이식은 강력한 항암요법이나 전신 방사선 조사를 통해 환자 골수 내 조혈모세포를 최대한 제거한다는 장점이 있다. 잔존 암세포의 완전한 사멸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령 환자나 간, 신장, 심장 등 주요 장기 기능이 떨어진 환자는 어떤 치료를 받을 수 있나.

"전처치 과정에서 항암제 용량을 낮추거나 방사선 조사 용량을 낮추는 식으로 시행하는 '미니 이식'을 고려한다. 미니 이식은 이식 관련 사망률이 낮고 이식 후 골수 기능 회복이 빨라 고령 환자나 전신 상태가 나쁜 환자에게 시행하기 알맞다. 하지만 종양이 많은 환자에게 적용하면 재발 위험이 있기에 환자와 보호자, 의료진이 신중하게 논의해 결정한다."

조혈모세포 이식 병동에 모인 의료진
고려대 안산병원 조혈모세포 이식 병동에 모인 의료진. 맨 왼쪽이 고려대 안산병원 혈액종양내과 성화정 교수.
조혈모세포 주입 전 환자는 어떤 치료를 받나.

"일단 암세포와 병든 조혈모세포를 없애는 치료를 받는다. 면역억제 치료도 받는다. 건강한 조혈모세포가 환자 몸속에서 거부 반응 없이 자리 잡도록 유도하기 위함이다. 이 과정은 무균실에서 진행된다. 항암제 투약 또는 전신에 방사선 조사 시행 이후 환자 상태가 감염에 취약해지기 때문이다. 병원에서는 환자를 감염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공기 정화 능력을 갖춘 무균병실에서 집중 치료한다. 여기에 영양팀이 무균식을 여러 단계로 자체 개발해 환자 상태에 맞게 제공한다."

환자와 가족에게 치료 과정을 어떻게 설명하나.

"혈액암은 치료 기간이 적어도 1년, 많으면 2년에 달해 환자와 보호자, 의료진이 지난한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렇기에 환자와 보호자가 조혈모세포 이식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혈액암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치료 전 과정 교육을 제공한다. 조혈모세포 이식은 병원의 모든 진료과의 협업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매우 고도화된 의료기술이다. 감염내과, 진단검사의학과, 영상의학과, 방사선종양학과, 재활의학과 그리고 영양과 등의 관련 진료과의 긴밀한 협진을 통해 조혈모세포 이식수술을 진행하며, 정신건강의학과의 심리 상담을 통해 환자 중심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

조혈모세포 이식 때 가장 중요한 건 세포의 적합성 아닌가.

"맞다. 우리 병원에서는 공여자와 환자에게서 채취한 혈액을 증폭시켜 조직적합성항원의 일치 여부를 확인한다. 조직적합성항원은 염색체에 존재하는 유전자로,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다. 다만 사람마다 각기 다른 유전자형을 갖고 있는데, 유전자형이 일치할수록 거부반응과 합병증이 낮아진다. 타인과의 일치 가능성은 2만분의 1로, 부모와 완전히 일치할 가능성 5%, 형제 및 자매와 일치할 가능성 25%에 비해 매우 낮다. 가족 중 유전자형이 일치하는 사람이 없으면 등록된 기증자 희망자 중에 환자와 조직적합성항원이 일치하는 사람을 찾는다. 기증자가 많을수록 새 생명을 찾을 가능성이 커진다."

헌혈하듯 말초혈액에서 채취

조혈모세포 이식 후 기증자가 겪는 후유증이 있나.

"공여자는 조혈모세포 이식 전 사나흘 동안 촉진 주사를 맞게 된다. 이때 몸살 기운이나 발열 증상, 통증 등을 느낄 수 있다. 시간이 경과하면 후유증도 완화된다."

조혈모세포 기증 과정은 어떻게 이뤄지나.

"조혈모세포 채취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원래 조혈모세포는 골수에 몰려 있고 말초혈액에는 적다. 그래서 과거에는 기증자에게 전신 마취를 놓고 골수에 큰 바늘을 꽂아 조혈모세포를 채취했다. 조혈모세포 이식을 당시 골수 이식이라고 불렀던 이유다. 하지만 요즘은 골수 속 조혈모세포가 말초혈액으로 나오도록 촉진제를 사용한다. 헌혈하듯 기증자 양팔 혈관에 얇은 바늘을 꽂고 필요한 혈액 성분만 뽑는 원심분리 장비로 조혈모세포만 채취한다. 나머지 혈액은 다시 넣어준다. 기증자의 조혈모세포는 2~3주 안에 원래대로 회복된다. 조혈모세포를 어디에서 채취했는지에 따른 이식 성적 차이가 크지 않아 근래에는 골수 채취보다 기증자의 부담이 적은 말초혈액 채취를 많이 쓴다."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 통계를 보면 2022년 기증자 1,165명 가운데 90% 이상인 1,147명이 말초혈액에서 조혈모세포를 채취해 기증했다. 조혈모세포 기증을 희망하다가 돌연 거부하는 경우도 적잖다. 성 교수는 "기증 희망자의 가족이 조혈모세포 이식을 반대하는 경우가 많다. 질병 등 건강 상태가 등록 당시와 달라져 기증 의사를 철회하는 사람도 있다. 조혈모세포를 기증하면 합병증 또는 질환을 겪게 된다는 오해도 여전히 남아있는 게 가장 안타깝다"고 말했다.

  • EDITOR: 김건희
  • PHOTO: 박해윤, 고려대의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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