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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LING TRAVEL

축제, 와인, 미술의 고장 프로방스 고흐의 밤하늘을 바라보며 세잔의 작품 속을 거닐다

프랑스 남부 아비뇽

프랑스 남부 아비뇽에는 알프스에서 발원해 지중해로 흘러 가는 론강이 유유히 흐른다.
론강에 있는 바르텔라스 섬에 서 강 건너편을 바라보면 육중한 성벽으로 둘러싸인 교황청 과 대성당을 비롯한 아비뇽 역사지구 건물들이 강물 위로 비쳐 풍광이 아름답다.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의 여름은 '아비뇽 연극 페스티벌'의 계절이다. 햇빛이 찬란하게 쏟아지는 들판에는 라벤더가 피어난다. 아비뇽 교황청 인근 '샤토 네프 뒤 파프' 마을엔 교황이 사랑했던 와인을 만들던 포도밭이 남아 있다. 프로방스는 고흐와 세잔 같은 화가들이 사랑했던 도시이기도 하다. 고흐가 15개월간 머물며 파란만장한 세월을 보낸 아를에는 현대미술관 '루마(LUMA) 아를'이 문을 열었다. 한국 이우환 화백 작품을 상설 전시하는 미술관도 지난해 개관했다. 올여름 프로방스로 와인과 미술 여행을 떠나보자.

축제와 와인의 도시

아비뇽은 축제의 도시다. 길거리와 광장 도처에서 마임과 무용 공연이 펼쳐진다. 아비뇽 교황청 밑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광장으로 올라서면 세상에서 가장 큰 고딕 건물이 당당하게 서 있다. '팔레 데 파프(Palais des Popes, 교황의 궁전)'. 면적 1만 5,000㎡에 이르는 육중한 석조 건물이다.

아비뇽 교황청
세상에서 가장 큰 고딕양식 궁전 '아비뇽 교황청'.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아비뇽 교황청은 1309년부터 1377년까지, 만 67년 동안 7명의 교황이 살던 곳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대연회실, 기도실, 예배실, 회랑, 주방 등 20여 개가 넘는 방을 관람할 수 있다. 교황청은 프랑스대혁명 이후 병영으로 변모하고, 19세기에 감옥으로도 사용되며 성상과 장식품이 대부분 파괴됐다. 그런데 입장객에게 주는 태블릿PC를 빈 벽에 비추면 중세시대 모습을 3D 증강현실 기술로 실감나게 살펴볼 수 있다.

많은 것이 사라졌지만 남은 것도 있다. 교황의 침실과 예배당, 대강당 등을 장식한 프레스코화가 그것이다. 이탈리아 화가 마테오 조바네티 등 13~14세기 화가의 작품들은 지금까지 생생함을 간직하고 있다. 교황 침실 벽을 장식한 포도덩굴과 떡갈나무 잎사귀 문양 속에는 다람쥐와 새가 숨어 있다. 클레멘트 6세 교황의 서재로 연결되는 복도에서는 사냥과 낚시, 꽃과 과일을 담은 벽화가 눈길을 끈다. 바티칸의 '천지창조'나 '최후의 심판' 같은 성화에 비해 세속적인 즐거움이 담겨 있어 사뭇 다른 느낌이다.

교황의 정원
교황의 정원.
아비뇽 교황청 성당 천장 프레스코화
아비뇽 교황청 성당 천장 프레스코화.

아비뇽 대성당 옆 계단으로 올라가면 론강 풍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 계단을 이용해 내려오면 '아비뇽 다리 위에서'라는 프랑스 민요로 유명한 다리가 나온다. '생베네제 다리'다. 원래 길이 920m로 한때 유럽에서 가장 긴 다리였는데, 현재는 22개 아치 중 4개만 남아 있다.

아비뇽에서 북쪽으로 12km 정도 떨어진 언덕에는 '샤토 네프 뒤 파프(Chateau Neuf du Pape)' 마을이 있다. 절반쯤 무너져 내린 성 앞에서 만난 '오랑주-샤토 네프 뒤 파프 관광사무소' 직원 마리 조제 씨는 손에 둥근 손잡이가 있는 고색창연한 열쇠를 들고 있었다. 그가 굳게 잠긴 성문 구멍에 열쇠를 밀어 넣자 붉은색이 칠해진 나무문이 "철커덩!"하고 열렸다. 14세기로, 교황의 별장 안으로 타임슬립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 성에는 원래 4개의 탑과 연회장, 화려한 장식이 있는 방이 있었습니다. 교황이 여름에 이 성에 올 때는 100~200여 명의 수행원과 함께 왔기 때문에 넓은 공간이 필요했죠."

이 지역을 대표하는 와인인 '샤토 네프 뒤 파프'는 교황(Pape)의 새로운(Neuf) 성(Chateau)이라는 뜻이다. 이 성은 아비뇽에 머문 두 번째 교황 요한 22세가 여름 별장으로 지은 것이니 이름에 딱 맞는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중에 독일군이 폭파시켜 현재는 성의 북쪽 절반이 파괴된 채 폐허로 남아 있다.

주변 포도밭을 걸어보니 밭에 감자만한 둥글둥글한 차돌이 가득하다. 아비뇽으로 유유히 흘러 들어와 지중해로 뻗어가는 론강을 따라 알프스에서 쪼개진 돌들이 들어와 자갈 마당을 이룬 것이다. 작은 몽돌이 아니라 해남 보길도 '공룡알 해변'에서 볼 수 있는 큼직한 차돌이다. '갈레 훌레(Gallet Roulet)'라고 불리는 이 돌들은 낮에 품은 프로방스의 강렬한 햇볕을 한밤까지도 유지하며, 반사열을 나무에 전달한다고 한다.

론강 풍경
생베네제 다리가 있는 론강 풍경.
'샤토 네프 뒤 파프' 포도밭
교황이 마시던 와인을 생산했던 '샤토 네프 뒤 파프' 포도밭.

그르나슈, 무르베드르, 시라 등 13가지 포도 품종을 블렌딩해 만드는 샤토 네프 뒤 파프 지역 최고급 와인은 대를 이어 만드는 경우가 많다. '샤토 드 라 가르딘(Chateau de la Gardine)'도 그중 하나다. 본래 교황청 소유였던 포도밭을 가스통 브루넬이 1945년 구입하면서 라 가르딘의 역사가 시작됐다. 이 와이너리를 대표하는 초창기 선조의 얼굴과 이름을 넣은 '가스통 필립(Gaston Philippe)'과 '임모텔(l'Immortelle)'은 수령 60년 이상의 나무에서 수확한 포도만 엄선해 만든다고 한다.

샤토 네프 뒤 파프에서 북쪽으로 약 11km 떨어진 오랑주는 고대 로마 유적의 보고다. 오랑주에 진입하면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이 기원전 49년에 세워진 로마시대 개선문이다. 높이 18m, 폭 19m, 두께가 9m의 이 개선문은 세 개의 아치로 구성돼 있다.

개선문에서 빅토르 위고 거리를 따라 계속 걸어가 구시가지를 지나면, 오랑주의 명물인 고대극장이 나타난다. 이 고대극장은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 때 지어진 것으로, 1981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매년 7~8월에 열리는 오랑주 오페라 페스티벌의 주요 무대다. 약 8,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반원형 극장이다. 무대 전면에는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부조상이 내려다보는 돌벽(높이 38m, 가로 103m)이 있어 객석 어디에서나 풍요한 반사음향을 들려준다.

로마시대 극장
오랑주에 있는 고대 로마시대 극장.

고흐와 세잔의 그림 따라 흐르는 여행

초저녁 론강 하늘에는 샛별이 낮게 떠 있고, 뭇별들이 반짝거렸다. 빈센트 반 고흐(1853~1890)가 그린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에'처럼 가로등 불빛이 강물에 기다란 그림자를 그려놓았다.

야외에 캔버스를 놓고 그림을 그렸던 인상파 화가들이 살던 프랑스 도시를 여행하는 것은 특별한 즐거움이 있다. 그들의 작품에 등장하는 바로 그 장소를 찾아갈 수 있어서다. 아를 시내 곳곳에는 고흐가 걷는 모습이 새겨진 길바닥 동판이 설치돼 있다. 그대로 따라가면 고흐의 발자취를 만날 수 있다. 35세의 고흐는 1888년 2월부터 1889년 5월까지 약 15개월간 아를에 머물며 '해바라기', '밤의 카페테라스', '아를 병원의 정원', '고흐의 방',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 등 유화 200여 점을 그렸다.

빈센트 반 고흐 그림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
빈센트 반 고흐 그림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
론강의 풍경
고흐의 그림 대상이던 론강의 풍경.

고흐가 고갱과 함께 살았던 노란 집은 2차 세계대전 때 폭격으로 무너졌으나, 그림 속 다른 건물과 기찻길은 현재도 그대로다. AD 90년 로마시대에 세워진 원형 경기장에서는 요즘도 투우 경기가 열린다. 발걸음은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편지를 부치러 다녔던 시청 앞 광장 우체국을 지나서 포룸 광장으로 행한다. 광장 한 쪽에는 고흐가 '밤의 카페 테라스'를 그린 카페가 있다. 고흐는 따뜻한 불빛 조명이 비친 벽을 노랗게 그렸는데, 푸른색 밤하늘의 별과 대조돼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현재도 '반 고흐 카페'로 영업 중인데, 그림 속처럼 벽을 온통 노랗게 칠하고 조명까지 복원해놓았다.

고흐 동상
생폴드모솔 수도원에 있는 고흐 동상.
밤의 카페
고흐 그림에 등장하는 '밤의 카페'.

함께 살던 고갱이 다툼 끝에 파리로 돌아가버린 크리스마스 이브 날. 고흐는 자신의 귀를 잘라 휴지에 싸서 한 여인에게 선물로 준다. 고흐는 이후 동네에서 쫓겨나 생레미 정신요양원으로 이송된다. 고흐가 귀를 치료했던 아를 시립병원 2층에서 그는 정원을 그렸다. 지금은 '에스파스 반 고흐'라는 기념관이 된 이곳에서 정원의 분수와 꽃밭, 노란색 기둥을 쳐다보며 그림 속으로 빠져든다.

아를에서 차로 약 30분 정도 가면 생레미 정신요양병원이었던 생폴드모솔 수도원이 나온다. 고흐는 이곳에 1년 동안 머물렀는데, 아침에 동트는 하늘을 바라보며 '별이 빛나는 밤에'를 그렸다. 요즘 세계 미술 애호가들의 뜨거운 관심이 몰리는 곳은 2021년 6월 개관한 '루마 아를' 뮤지엄이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을 지은 미국 건축가 프랭크 게리의 신작이다. 1만 1,000개의 알루미늄 패널을 벽돌처럼 쌓아 올린 4개의 은빛 탑이 물결처럼 일렁이며 하늘로 솟아올라간다. 외관이 마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 그림 속 사이프러스 나무처럼 타오르고 있다.

아를시립병원 정원
고흐가 귀를 치료한 아를시립병원 정원.
이우환 미술관
아를에 새로 문을 연 이우환 미술관.

지난해 4월 아를 시내에 문을 연 '이우환 미술관'도 핫플레이스다. 일본 나오시마, 부산시립미술관에 이어 아를에 세 번째로 지어진 이 화백의 작품 전시공간이다. 16~18세기 3층 대저택 '오텔 베르농(Hotel de Vernon)'을 개조해 만든 미술관이다. 미술관 1층과 야외 테라스에는 돌과 철로 구성된 '관계항(Relatum)' 작품 10점이 설치돼 있고, 2층에는 점과 선으로 이뤄진 회화 작품 30점이 전시돼 있다. 이 화백의 대형작품을 이렇게 많이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이곳에는 이 화백의 친구인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콘크리트 작품도 있다.

세잔의 아뜰리에

아를이 고흐가 사랑한 도시였다면, 엑상 프로방스는 폴 세잔(1839~1906)의 도시다. 도심 북쪽 고지대인 로브 언덕에는 세잔이 죽기 직전까지 사과를 그리던 아뜰리에(Atelier Cezanne)가 있다. 커다란 유리창이 있는 작업실 가운데 테이블에는 세잔 그림 속 사과와 물병, 접시가 지금도 그대로 놓여 있다. 또한 세잔이 입었던 물감 묻은 작업복과 모자, 석고상과 해골, 이젤과 팔레트, 모네와 주고받은 편지 등이 놓여 있다. 구석구석 세잔의 숨결이 느껴져 지금이라도 한쪽 문을 열고 세잔이 튀어나올 것만 같다.

세잔의 아뜰리에
엑상프로방스에 있는 세잔의 아뜰리에.

세잔의 아뜰리에 뒷쪽 언덕길을 약 15분 정도 오르면 '화가들의 땅(Terrain des peintre)'이 나온다. 세잔이 사과와 함께 죽기 직전까지 그렸던 생트 빅투아르 산이 훤히 바라다 보이는 지점이다. 세잔의 그림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뾰족한 산과 삼각형, 네모꼴 모양 집들이 점점이 박혀 있다. 세잔처럼 수첩을 꺼내 생트 빅투아르 산을 펜으로 그리고, 수채물감으로 칠하고 있는 관광객들의 입에는 미소가 담겨 있었다.

  • ARTICLE & PHOTO: 전승훈 동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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