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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Y WALK

Reset & Reboot 화랑유원지 호수산책로

화랑호수의 낙조

화랑호수의 낙조. 보송보송한 구름 사이로 해가 뉘엿뉘엿 지는 풍경이 아름답다.

시계추처럼 반복되는 나날을 살다 보면 자칫 번아웃 될 수 있다.
신체적·정신적·정서적 에너지가 고갈되기 전, 소소한 행복을 만끽하는 사색의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녹음이 우거진 한여름 오후, 마음 가는대로 느릿느릿 산책해보면 어떨까. 도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연과 예술을 만날 수 있는 장소가 있다. 복잡한 일상을 '리셋'하고, 새로운 삶을 '리부트'하기에 제격인 공간이다.

시티워크 하면 미국 LA '유니버설 시티워크'와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시티워크처럼 상업지구와 연결된 호화스런 거리가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도심 가까이 있는 거리가 모두 소란스럽기만 한 건 아니다. 자연과 예술을 즐기며 일상의 여유와 휴식을 만끽할 수 있는 색다른 시티워크도 있다. 경기도 안산의 화랑유원지 산책로가 바로 그곳이다.

호수에서 불어오는 싱그러운 바람을 느끼며 길을 걷다 경기도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이건희컬렉션 한국근현대미술 특별전 '사계'까지 감상한다면, 올여름 더할 나위 없는 힐링의 시간이 될 것이다.

비포장 녹지의 매력, 화랑호수 산책로

화랑유원지는 지하철 4호선과 수인분당선, 서해선이 정차하는 초지역에서 도보 5분 거리다. 1998년 화랑호수 일대에 61만 8,175㎡(약 19만 평) 규모로 조성됐다. 축구장 면적의 약 87배에 이르는 크기다.

보통 유원지라고 하면 놀이공원을 떠올리는데, 이곳은 소란한 일상에서 벗어나 명상을 즐길 만한 평화로운 쉼터에 가깝다. 호수 둘레에 조성된 1.7km의 산책로를 걷다보면 자연, 문화, 인간이 소통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화랑호수는 인공저수지다. 안산은 예로부터 쌀과 포도농사로 유명했다. 일제강점기 농촌을 배경으로 한 소설인 심훈의 '상록수' 배경이 바로 안산이다. 전형적인 농촌이던 안산은 1979년 시작된 신공업도시정책으로 74%의 녹지를 확보한 전원형 공업도시가 됐다. 여름날 저녁, 보송보송한 구름 사이로 해가 뉘엿뉘엿 지면 화랑호숫가 낙조가 붉게 타오르며 장관을 이룬다. 호숫가 의자는 한여름 여유를 즐기기 최적의 공간이다.

화랑유원지 해바라기
화랑유원지 호수산책로에 만발한 해바라기.
화랑유원지 오리들
화랑유원지 산책로를 가로질러 이동하는 오리들.
이곳은 자전거와 인라인 통행이 금지돼 오리도 안심하고 건널 수 있다.

화랑유원지의 이 고즈넉함은 조만간 사라질 전망이다. 올해 하반기부터 '화랑유원지 명품화 사업'의 일환으로 시설물 리모델링 공사가 시작된다. 내년이면 호수 주변에 특수놀이시설과 X-게임장이 들어서고, 현재 비포장 상태인 둘레길에 350m 길이의 목재 데크가 놓인다.

호수 중앙에는 폭 32m, 높이 75m 규모 음악분수가 설치돼 형형색색 조명과 함께 물을 뿜어내는 화려한 볼거리를 선사할 예정. 그때가 되면 지금 이곳에 가득한 자연 그대로의 색채와 소리, 자작나무 숲에 스민 고요한 야간 경관이 그리워질지 모른다.

역사와 교감하는 전시, 경기도미술관 '사계'

화랑호수 산책로를 따라 굽이굽이 길을 걷다보면 경기도미술관(관장 안미희) 야외조각공원에 닿는다. 자유롭게 설치된 미술작품은 하나같이 쉽고 재미있어 예술과 인간의 거리를 좁혀주는 느낌이다.

화랑유원지 풍경
도시와 자연이 어우러지는 화랑유원지 풍경.
경기도미술관 외관
해양도시 안산의 이미지를 살린 경기도미술관 외관. 배와 돛대를 형상화한 건물로, 유리 벽판이 동서로 길게 뻗어 있다.

특히 시선을 붙드는 것은 높이 17m, 무게 23t에 달하는 정현 작가의 추상조각 '목전주'. 목전주는 전선이나 통신선을 매려고 세운 나무 기둥을 뜻한다. 요즘은 대부분 콘크리트 전봇대로 대체돼 마주치기 힘든 목전주가 색다른 매력을 풍긴다. 땅의 기운이 하늘에 닿을 것 같은 강한 에너지가 일품이다.

경기도미술관 후문 쪽에 이르면 물 위에 둥둥 뜬 최정화 작가의 '꽃꽂이'가 보인다. 플라스틱, 비닐 등 현대 물질문명의 산물인 비환경적 재료를 사용해 만든 거대한 꽃과 열매가 세련된 키치적 설치미술의 전형을 보여준다. 경기도미술관 건물도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이다. 안산의 도시 이미지를 살려 배를 형상화했고, 돛대 모양 유리 벽판이 동서로 길게 뻗도록 설계했다. 화랑호와 이어지는 배의 풍광이 절묘한 하모니를 이룬다.

정현 작가의 '목전주'
경기도미술관 야외조각공원에 있는 정현 작가의 '목전주'. 높이 17m, 무게 23t에 달하는 추상 조각으로 강한 에너지가 느껴진다.
최정화 작가의 '꽃꽂이'
경기도미술관 후문 쪽에 있는 최정화 작가의 '꽃꽂이'. 키치적 설치 미술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건희컬렉션 한국근현대미술 특별전 '사계' 포스터
8월 20일까지 경기도미술관에서 열리는 이건희컬렉션 한국근현대미술 특별전 '사계' 포스터.

경기도미술관에서는 8월 20일까지 이건희컬렉션 한국근현대미술 특별전 '사계'가 진행된다. 2021년 4월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유족들은 고인이 모은 미술품과 문화재 2만 3,000여점을 국가에 기증했다. 이중 국내외 근현대 미술작품 1,488점은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하게 됐다. 경기도미술관은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이건희컬렉션 근현대미술작품 46점과 경기도미술관 및 공사립미술기관 11곳의 소장품을 한데 모아, 이건희컬렉션 작가의 대표작을 두루 살펴볼 수 있는 한국 근현대미술 특별전을 기획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권진규, 김환기, 나혜석, 박수근, 이응노, 이인성, 이중섭, 장욱진, 천경자 등 한국 근현대미술 주요 작가 41명의 작품 90점이 관객을 만난다. 작품 제작년도는 1927년부터 2010년까지, 한국 근현대사 전반을 아우른다. 그 사이 한국인이 겪은 일제강점기, 전쟁과 분단, 민주화 운동 등 격동의 현대사가 예술가들의 시선을 통해 형상화됐다.

29세에 요절해 작품이 4점 밖에 남아 있지 않은 천재화가 김종태(1906~1935)의 '사내아이'(1929)부터 방혜자(1937~2022)의 '우주의 춤'(2010)에 이르기까지 우리 근현대 걸작을 두루 살펴볼 수 있는 전시다.

'사계'라는 전시 제목은 동명의 비발디 바이올린 협주곡에서 따온 것으로, 한국 미술의 자양분이 된 참여작가들의 수작을 이번 전시에서 다채로운 화음처럼 살펴볼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 각각의 작품에는 자연, 계절감, 시간성 등 '사계'와 관련해 볼 만한 요소들이 있다. 경기도미술관은 이를 조화, 자연, 향수, 순환 등 추상적인 개념으로 확장해 전시를 구성했다. 이건희컬렉션에 포함된 여성작가 작품을 '또 하나의 계절'로 구성, 한국 근현대미술사에서 각자의 예술 세계를 이룩해 낸 여성 작가를 집중 조명한 것도 이번 전시의 특징이다.

관람료는 무료. 경기도미술관 누리집(gmoma.ggcf.kr)에서 관람일을 예약한 뒤 방문하면 된다. 개인은 1인 2매까지 예약 가능하고, 평일 주중에는 단체관람도 할 수 있다. 현장 발권은 매회 잔여분에 한해 이뤄진다. 오후 5시부터 시작되는 마지막 회차는 예약 없이 선착순 입장이 가능하다. 미술관 관람이 끝나면 안산의 40년 산업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안산 산업역사박물관과 인공암벽등반장 등에서 여가를 즐겨도 좋겠다.

백남준의 'TV 부처'
나혜석의 '자화상'

경기도미술관 '사계' 전에서 감상할 수 있는 백남준의 'TV 부처'와 나혜석의 '자화상'.

  • EDITOR: 황승경
  • PHOTO: 황승경, 조형준, 경기도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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