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후 나쁜 삼중음성유방암,
표적치료제 개발 멀지 않았다
고려대 구로병원 암센터장을 맡고 있는 서재홍 종양내과 교수는 "현재 삼중음성유방암 표적 치료제 신약 파이프라인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머지않은 미래에 삼중음성유방암 환자들을 위한 혁신적 항암제를 선보이고자 열심히 연구 중"이라고 밝혔다.
서재홍 고려대 구로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유방암 항암치료 전문가로, 특히 삼중음성유방암 치료제 개발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갖고 있다. 그동안 발표한 SCI급 논문만 160여 건, 유방암 표적치료제에 대한 국내외 특허 출원은 30건에 이른다. 현재 고려대 구로병원 암센터장을 맡고 있는 서 교수를 만나 유방암 표적 및 면역치료 패러다임과 삼중음성유방암 신약 개발에 대해 들었다.
유방암에는 '국내 여성암 발병률 1위'라는 불명예가 꼬리표처럼 붙어 다닌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유방암이 국내 여성암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020년 기준 21.1%로, 2위 갑상선암(18.5%)보다 2.6%p 더 높다. 2020년 국제암보고서에 따르면 유방암 환자 수는 전체 암 환자의 24.5%(226만 1,419명)에 이른다. 유방암 사망률 또한 15.5%로 전체 여성암 중 가장 높다. 다행히 유방암 치료 기술은 꾸준히 발전하고 있다. 2000년부터 2019년 사이 유방암 생존율은 3.9배 이상 증가했다.
이 과정에 크게 기여한건 표적치료제 및 면역치료제 개발이다. 문제는 유방암 유형 가운데 가장 생존율이 낮은 삼중음성유방암의 경우 여전히 20~30년 전 개발된 세포 독성 항암제가 표준 치료법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점. 삼중음성유방암 표적치료제 개발이 절실한 상황이다. 유방암 항암치료 전문가로, 삼중음성유방암 치료제 개발 분야에서 독보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는 서재홍 고려대 구로병원 종양내과 교수를 만난 이유다.
고려대 구로병원 암센터장인 서 교수는 2010년대 초반부터 유방암 신약 개발을 위한 기반을 닦아왔다. 글로벌 임상시험을 70여 건 진행했고, 항암신약 기술 이전 사례도 3건 있다. 그에게 유방암 표적 및 면역치료 패러다임과 삼중음성유방암 신약 개발에 대해 들었다.
우리나라 여성의 유방암 발병률은 향후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여성호르몬에 오래 노출될수록 유방암 발생 위험이 커지는데, 한국 여성의 초경 시기는 만 13세 전후로 점점 빨라지고 폐경은 50대 중후반으로 점차 늦어지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유방 조직을 구성하는 세포는 여성호르몬의 자극을 받아 증식하고 분화한다. 이 과정에서 변이가 일어나면 유방암이 생긴다. 생리 기간이 길어진다는 건 여성호르몬에 더 많이 노출된다는 뜻이다.
임신하지 않는 여성이 늘어나는 것도 유방암 발병률 상승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요즘 젊은 여성은 결혼을 늦게 하는데다 임신과 출산, 모유 수유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생리 횟수가 증가하고, 그만큼 여성호르몬에 노출된다. 서구화된 식생활과 비만 등도 유방암 증가 요인이다. 건강검진 활성화로 유방암 진단이 많아진 점 역시 유방암 발병률 증가 원인 중 하나다.
유방암 치료는 크게 국소적 치료와 전신적 치료로 구분한다. 국소적 치료에는 수술적 치료와 방사선 치료가 있고, 전신적 치료에는 세포독성항암제를 이용한 항암화학요법치료와 표적치료제를 이용한 표적치료, 면역치료제를 활용한 면역치료 및 여성 호르몬을 억제하는 호르몬치료 등이 있다. 유방암 진단을 받은 환자의 연령, 호르몬 수용체(ER, PR) 유무, 표적 수용체(HER2) 유무, 조직학적 등급, 세포 분열도, 임상적 병기 및 환자 전신 혹은 심리 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최적의 치료법을 택하게 된다.
유방암 환자 대다수가 '수술-항암화학요법-방사선 치료' 순서대로 치료를 받지만, 종양이 크거나 림프절 침범 범위가 넓을 경우, 또 삼중음성유방암이나 HER2 과발현 유방암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수술 전 항암화학요법 또는 표적항암화학요법을 시행해 종양 크기와 림프절 전이를 줄인 뒤 유방 보존률을 높이며 수술을 진행하기도 한다. 종양 또는 상피내암 크기가 클 때는 미용적 측면을 고려해 전절제술 후 유방성형술을 시행하기도 한다.
표적치료 수용체 3개 다 없는 '삼중음성유방암'
그렇다. 유방암 여성호르몬 수용체(에스트로겐, 프로게스테론)와 HER2(사람 표피 성장 인자 수용체)를 기준으로 구별한다. 예를 들어 여성호르몬 수용체 양성, HER2 음성인 유방암은 '루미날 타입 A(luminal type A)'라고 한다. 유방암 가운데 가장 예후가 좋은 편이다. 반면 여성호르몬 수용체인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 HER2가 모두 없는 유방암을 삼중음성유방암이라고 하는데, 표적 항암제가 작용하는 3가지 수용체가 모두 없는 유형이라 일반 유방암보다 치료가 어렵다. 전체 유방암의 15% 수준으로 비율이 높지는 않지만, 예후가 가장 좋지 못하고 전이·재발 위험이 큰 유형이다.
여성호르몬 수용체를 가진 유방암의 경우 암세포 수용체와 여성호르몬이 결합해 암세포를 키우고 증식시킨다. HER2 양성의 경우 HER2 성장 인자가 암세포 성장을 촉진한다. 이처럼 암세포 증식에 영향을 미치는 원인이 특정된 경우, 그것을 타겟으로 하는 표적항암제를 사용할 수 있다. 삼중음성유방암은 아직까지 암 성장을 주도하는 유전자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치료제 개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여성호르몬 수용체 양성 유방암의 경우 항호르몬제로 암세포 증식을 억제할 수 있다. 항호르몬제는 암세포 성장을 촉진하는 호르몬이 수용체와 결합하는 것을 방해하거나 해당 호르몬 자체의 분비를 억제하는 약물이다. 최근 새로 개발된 암 치료제 'CDK 4/6 억제제'를 항호르몬제와 함께 사용하면 치료 효과가 크게 상승하는 것으로 밝혀져서, 여성호르몬 수용체 양성 유방암이 재발하거나 전이된 환자의 경우에는 두 약물을 함께 사용하는 것을 표준요법으로 사용하고 있다.
HER2 유전자가 과발현된 유방암은 HER2 수용체만 억제하는 다양한 표적치료제(Trastuzumab, Pertuzumab, T-DM1, Enhertu, Lapatinib)가 개발돼 있다. 표적치료는 암을 유발하는 돌연변이 유전자를 선택적으로 공격해 사멸시키는 치료법이다.
세포독성항암제를 이용한 기존 항암화학치료에 비해 부작용과 환자가 겪는 신체적 고통이 훨씬 덜하다. 그러나 삼중음성유방암의 경우 그동안 수많은 신약 후보물질을 연구해 임상시험까지 진행했지만 약물 개발로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삼중음성유방암을 치료할 수 있는 새로운 항암제 개발을 서둘러야 하는 상황이다.
전립선비대증 치료제에서 발견한 뜻밖의 효능
앞서 언급했듯 삼중음성유방암을 일으키는 주요 시그널을 밝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삼중음성유방암을 달리는 버스라고 가정하자. 우리의 목표는 버스를 멈춰 세우는 것이다. 그러자면 버스 안에 탑승한 승객보다는 운전사를 집중 공략해야 한다. 그런데 이 버스는 운전자가 여러 사람인 탓에 한 명만 공격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삼중음성유방암 유발 시그널 여러 개를 동시에 차단하는 새로운 치료제를 개발하는 방향으로 전략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내가 운영하는 연구실에서는 7~8년 전부터 임상에서 사용하는 약물 1,600여 개를 대상으로 삼아 삼중음성유방암 치료제로서의 가능성을 탐색했다. 연구 대상은 모두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약물로, 현재 항생제, 고혈압약, 소화제 등 다른 목적으로 쓰이는 것들이다. 그중 무엇이 유방암 치료에 효과를 보일지 오랜 기간 연구한 끝에 유방암 세포를 죽이는 효능을 가진 약물 24개를 발견했다. 최근에는 다시 약 3,000개 약물 가운데 삼중음성유방암 치료제로서 효능이 있는 것을 찾는 스크리닝 작업을 하고 있다.
그렇다. 독사조신(doxazosin)이라고, 전립선비대증 환자에게 사용하는 약물이다. 혈압을 낮추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 독사조신이 삼중음성유방암의 종양 크기를 줄일 뿐만 아니라 전이를 줄이는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동물시험을 통해 입증했다. 현재 이 약물을 기본으로 한 새로운 유도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향후 임상에도 적용이 가능한 약물을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세계 최초로 삼중음성유방암 표적치료 약물 밝혀내
예후가 나쁜 암일수록 간세포성장인자 수용체(CMET)와 상피성장인자 수용체(EGFR) 발현이 증가한다. 삼중음성유방암 역시 C-MET와 EGFR가 매우 활성화돼 있다. 수차례 실험을 통해 독사조신이 3차원 구조로 이뤄진 C-MET와 EGFR를 억제함으로써 암세포가 생존하고 증식하며 그 주변으로 전이되는 걸 차단한다는 사실을 우리 연구팀이 세계 최초로 밝혀냈다.
3,000개가 넘는 약물을 살펴보는 과정에서 눈에 띄었다. 강조하고 싶은 사실은 독사조신은 우리 연구팀이 구축한 신약 파이프라인(후보물질)을 통해 발견한 약물 중 하나라는 점이다. 이외에도 연구팀이 주목하고 있는 삼중음성유방암 치료 가능 약물은 수십여 개에 이른다.
서 교수는 고려대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동 대학원에서 종양내과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0년대 말부터 기초의학 연구 기반을 닦아왔다. '어느 한 분야에 최고가 되겠다'는 신념과 노력은 때때로 사람을 좌절에 빠뜨리기도 하고 성공으로 이끌기도 한다.
서 교수에게는 유방암 연구가 그랬다. 그는 유방암 발생기전을 연구하고자 2007년 미국으로 떠났다. 매사추세츠대 유방암 연구팀에서 신약 개발의 기반이 되는 기초 학문부터 실험까지 폭넓은 연구 내공을 쌓고 2009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후 당시 한국에는 없던 다학제 진료 시스템을 국내 최초로 도입해 암 치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하는 데도 앞장섰다.
암 치료는 환자 특성과 종양 조직의 특징 등의 영향을 받는다. 치료법이 매우 다양하고 복잡하다. 의사 한 명이 치료 방법을 결정하는 것보다 여러 의료진이 함께 치료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지난 15년간 유방암 신약을 연구하면서 크고 작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때마다 고려대 구로병원 특유의 연구 중심 문화가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데 큰 도움을 줬다. 현재 우리 연구팀에 연구교수 5명과 박사학위 학생 7명, 연구원 2명이 있다. 유방암 신약 연구를 위해 투자하는 연구비만 1년에 15억~20억 원에 달한다. 병원에서 연구에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고 여러모로 배려해 주는데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렇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삼중음성유방암 치료제는 인류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개발돼야 할 약물이다. 좋은 치료제가 나오면 유방암 환자의 생존율과 삶의 질이 높아질 것이다. 더불어 사회·경제적 가치도 기대할 수 있다. 정년퇴임하기 전까지 이 과업을 반드시 이루겠다는 각오로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목표는 분명하다. 삼중음성유방암 치료를 위한 신약 개발. 앞서 언급했듯 이미 신약 파이프라인을 다수 확보한 상태다. 머지않은 미래에 삼중음성유방암 신약을 세상에 내놓고 싶다.
- EDITOR: 김건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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