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치료 까다로운 루푸스,
현대 의학이 찾아낸 해법 있다
정재현 고려대 안산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는 "루푸스는 한때 원인 불명의 난치성 질환으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일상생활을 하는 데 무리 없는 수준으로 건강을 관리할 수 있는 질환이 됐다"며 "의학기술이 계속 발전하고 있는 만큼 치료 의지를 갖고 꾸준히 치료를 해나간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루푸스의 정확한 명칭은 '전신 홍반성 루푸스'다. 피부와 관절, 신장, 폐, 신경 등 전신에서 염증 반응이 일어나는 자가면역 질환으로, 발병 원인은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주로 젊은 여성을 위협하는 질환으로 주목받고 있는 루푸스의 원인, 증상, 치료법에 대해 정재현 고려대 안산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에게 들었다.
전신 홍반성 루푸스, 이른바 루푸스(lupus)는 대표적인 만성 자가면역 질환이다. 외부로부터 인체를 방어하는 구실을 하는 면역체계가 이상을 일으켜 오히려 자기 자신을 공격하면서 발생하는 질환이라고 할 수 있다.
루푸스는 라틴어로 늑대를 뜻한다. 이 질환의 대표 증상인 피부 발진이 마치 늑대에 물린 자국처럼 보인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병명에서 알 수 있듯 루프스의 대표적인 증상은 염증 반응이다. 정재현 고려대 안산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는 "루푸스는 피부뿐 아니라 장기 내부에도 생길 수 있다. 한 번 발생하면 증상이 악화하거나 완화하는 양상이 반복되며 오랫동안 낫지 않는 만성 질환이라 치료가 매우 까다롭다"고 설명했다.
루푸스 발병 원인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유전적, 환경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연구에 따르면 가족 중에 루푸스 환자가 있을 경우 발병 확률이 더 높다. 최근 학계에서는 유전 외에 다양한 원인을 추가로 지목하고 있다. 정 교수는 "고혈압 치료제인 하이드랄라진과 부정맥 치료제 프로카인아마이드 등을 복용한 사람 가운데 4% 정도가 약물 유발성 루푸스를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소개했다.
이런 환자의 경우 원인 약물을 끊으면 대부분 질환이 사라진다고 한다. 정 교수는 또 "과로나 스트레스, 자외선도 루푸스 발병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며 "루푸스 환자의 40% 정도가 햇빛에 민감하며 태양에 과도하게 노출될 경우 증세가 악화한다"고 말했다.
천의 얼굴을 가진 루푸스
루푸스는 발병 원인이 불투명할뿐 아니라 환자마다 나타나는 증상 또한 천차만별이다. '천의 얼굴을 가진 루푸스'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환자 80~90%에게서 관찰되는 증상은 뺨을 비롯한 온몸 피부 곳곳에 발생하는 발진이다. 뺨의 발진은 편평하거나 약간 솟아오른 붉은 반점 모양으로 나타난다. 주로 코 위쪽을 중심으로 대칭적인 나비 모양이 나타나곤 한다. 이러한 발진은 비교적 갑자기 나타나며 수일간 지속된다. 대개 경계가 불분명하며 가렵지 않고 코와 입술 사이의 주름을 침범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이와 달리 인체에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원판상 발진은 경계가 비교적 분명하고 붉다. 표면이 하얗게 일어나며 때로는 모공까지 깊게 뻗어가기도 한다. 두피에 이러한 증상이 나타날 경우 탈모로 이어질 수도 있다. 루프스로 인해 피부에 나타나는 발진은 호전과 악화를 반복하면서 수개월에서 수년까지 지속되다 흉터를 남기면서 치유되는 양상을 보인다.
햇빛 노출이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추정되는 '광과민성 루푸스'는 코, 항문, 생식기 등 전신 피부 어디에나 나타날 수 있다. 가장 흔하게 관찰되는 부위는 입 안으로, 구강에 함몰 부위가 발생할 수 있으며 심할 경우 통증이 있는 궤양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관절 이상도 루푸스 환자 4명 중 3명에게서 관찰되는 흔한 증상이다. 환자 중 일부는 부종이나 열감, 발진, 관절 운동 장애 같은 관절염 증상 없이 관절통만 경험하기도 한다. 가장 흔한 발병 부위는 손으로, 힘줄이나 인대 등 관절 주위 조직이 변화하면서 손가락이 심하게 펴지거나 구부러지는 운동성 장애가 오기도 한다.
루푸스는 신장을 비롯한 주요 장기에도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신장에 루푸스가 생기면 병을 알아채기까지 적잖은 시간이 걸려 매우 위험할 수 있다고 한다. 정 교수는 "신부전이나 신증후군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특별한 자각 증상이 없을 수 있다"며 "질환의 유무를 판단하려면 정기적인 신기능 검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밖에 폐, 심장, 위장관을 둘러싸고 있는 장기막 등에 루푸스가 발생할 경우 흉막염, 심낭염, 복막염 등의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루푸스는 신경정신병적 증상을 일으키기도 한다. 루푸스로 인해 우울증, 불안, 정신병, 주의력 결핍, 집중력 저하, 기억력 장애, 두통 등이 일어날 수 있으며 때로는 발작이 일어나기도 한다.
루푸스 환자가 또 주의해야 할 점은 젊은 나이라도 동맥경화가 잘 일어나 심근경색이 발생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심할 경우 사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관리로 좋아질 수 있는 병, '치료 의지' 중요해
루푸스가 의심될 때는 자가항체 검사, 일반혈액 검사, 간기능 검사, 신장기능 검사 등을 해볼 수 있다. 자가항체 검사는 자가면역 질환에서 흔하게 나타나는 항체들을 측정해 진단 및 질병 경과 파악에 이용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의료 현장에서는 항체 측정보다 일반적인 혈액 검사, 간기능 검사, 신장기능 검사 등을 좀 더 널리 사용한다.
정 교수는 "루푸스의 초기 증상이 보통 피부 발진이다 보니, 환자들이 이 질환을 다루는 류마티스내과가 아닌 다른 진료과를 방문하는 경우가 많다. 그 때문에 진단과 치료 시작이 늦어지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며 "앞서 설명한 루푸스 특징과 비슷한 증상이 나타나면 류마티스내과를 찾아 적절한 검사를 받아보기 바란다"고 조언했다.
루푸스는 최근 젊은 여성을 중심으로 환자 수가 늘어나는 추세지만, 흔히 생각할 수 있는 질환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진료과에서 바로 이 질환을 의심하고 적절한 대응을 하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루푸스 치료 경과가 좋아지고 있다는 것. 정 교수는 "불과 20년 전만 해도 루푸스는 발병 후 5년 생존율이 5%도 되지 않는 아주 치명적인 질환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의료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제는 치료가 가능한 질병이 됐다고 한다. 단, 경증부터 중증까지 증상과 정도가 매우 다양한 만큼 전문의와 상의하며 환자 맞춤형 치료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정 교수 조언이다.
경증 루푸스 치료의 첫 걸음은 생활습관 개선이다. 일반적으로 루푸스는 자외선에 장시간 노출되면 악화한다. 자외선 차단제를 꼭 바르고 모자를 쓰거나 소매가 긴 옷을 입어 피부가 직접 햇빛에 노출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정 교수는 "담배 끊기, 자외선 피하기, 선크림 잘 바르기 등만 실천해도 증상이 훨씬 좋아지는 경우가 많다"고 조언했다.
컨디션 관리도 중요하다. 루푸스는 피로할 경우 악화할 수 있기 때문에 환자는 의식적으로 적절한 휴식과 안정을 취해야 한다. 정 교수는 "루푸스 환자에게 휴식과 적당한 운동은 치료약만큼 중요하다"며 "특히 피로를 자주 느끼는 사람일수록 무리하지 말고 충분히 쉬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균형잡힌 식습관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고 한다. 병이 깊어지면서 식욕이 급격히 떨어질 때는 비타민 복합제를 섭취하면 도움이 된다. 신장이 정상적인 기능을 상실했을 때는 단백질 섭취를 제한해야 한다. 체액 축적으로 인한 부종을 막으려면 저염식 식단을 짜야 한다. 환자에 따라서는 작은 감염으로 병이 악화할 수 있으므로 감기에 걸리거나 세균에 감염되지 않도록 일상 생활에서 항상 조심해야 한다.
의학적인 조치로는 피부 증상이나 관절염이 나타날 경우 항말라리아제, 진통소염제, 소량의 부신피질 호르몬(스테로이드제) 등을 처방할 수 있다. 신장 문제나 심한 혈소판감소, 뇌졸중 등이 나타나는 중증 루푸스의 경우에는 고용량 부신피질 호르몬이나 강한 면역억제 요법으로 치료하는데 이는 매우 전문적인 치료인 만큼 반드시 류마티스내과 전문의 판단 하에 행해야 한다.
정 교수는 "루푸스 치료제로 주로 사용하는 약물은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초기 치료제 후보로 잠시 주목 받았던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이다. 환자의 증상에 따라 스테로이드나 면역억제제를 사용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또 B세포 활성화를 억제하는 '벨리무맙'이나 인터페론을 차단하는 '애니프로루맙' 같은 치료제를 사용하는데, 애니프로루맙의 경우 2022년 유럽 가이드라인에 새롭게 추가된 치료제라고 한다. 정 교수는 "루푸스 질환에 대한 표준치료법은 지속적으로 개선 및 발전되고 있다. 비록 완치가 어렵다 해도 과거에 비해 조기 진단되는 환자가 늘고 있고 치료 방법도 많이 발전해 꾸준히 치료를 받으며 일상생활에 지장 없이 잘 지내고 있는 환자가 많다"고 강조했다.
"중요한 것은 지속적으로 치료를 받는 것이다. 루푸스는 보통 증상이 좋아졌다 나빠지는 사이클이 반복되기 때문에 환자가 중간에 치료를 중단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환자가 내원을 하지 않아 치료가 중단되면 의사로서 무척 마음이 아프다. 꾸준히 약을 복용하고 의료진 지시만 잘 따르면 얼마든지 일상생활을 지킬 수 있는 질환인데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적잖다."라는 정 교수의 이야기다.
그는 "한 여성 환자의 경우 중간에 치료를 임의로 중단했다가 임신 후 다시 성실하게 치료를 받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큰 문제 없이 건강한 생활을 지속하고 있다. 이런 사례를 볼 때마다 적절한 치료를 꾸준히 받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한다"고 덧붙였다.
가족 중 루푸스 환자 있으면 각별히 주의해야
루푸스를 예방할 방법은 없을까. 정 교수는 "루푸스는 발병 원인이 아직 분명히 밝혀지지 않았고, 따라서 확실한 예방법도 말씀드리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다만 루푸스 발병에 유전적인 원인이 작용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만큼 가족 중 루푸스 환자가 있으면 자신도 발병 위험이 있다고 생각하고 주의를 기울이는 게 좋다. 관련 증상이 나타날 경우 바로 진단을 받아 즉시 치료를 시작하면 악화를 막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일단 루푸스 진단을 받은 뒤엔 합병증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하는 게 필요하다. 정 교수는 "루푸스의 대표적인 합병증인 인플루엔자와 폐렴구균 감염의 경우 예방접종을 통해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고혈압이나 고혈당, 지질대사장애 등 동맥경화와 연관된 인자들에 대해서도 의료적 조치를 통해 예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루푸스 진단을 받은 뒤 치료 과정에서 장기간 스테로이드를 사용하는 경우 골다공증이 발생할 수 있는데, 이 또한 의료진의 적절한 조치에 따라 예방 및 관리가 가능하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정 교수가 강조한 루푸스 예방의 첫 걸음은 좋은 생활 습관을 갖는 것이다. 정 교수는 "특히 체중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지방세포가 염증 물질인 사이토카인을 만들어내면서 자가면역 질환을 진행시키기 때문에 평소 건강한 식습관과 운동습관을 통해 적정 체중을 유지하는 데 신경을 써야 한다"고 밝혔다. "자칫 간과할 수 있는 기본적인 건강 관리가 심각한 자가면역 질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정 교수의 조언이다.
- EDITOR: 박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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