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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과 함께 찾아오는 계절성 우울증
2주 이상 지속되면 전문가 상담 받아야

한규만 교수(1)

한규만 고려대 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울증은 뇌의 기능적 손상으로 인해 발생하는 질환이다. 혼자 버티지 말고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만물이 깨어나는 봄은 우울증 환자에게 매우 위험한 계절이다. 국가통계포털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자살률이 가장 높았던 시기는 모두 봄철(2021년 3월, 2022년 4월, 2023년 5월)이다. 봄철 자살률이 증가하는 것은 전 세계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한규만 고려대 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를 만나 봄철 우울증이 많이 발생하는 이유와 예방법 등에 대해 들었다.

봄이 되면 일조량이 급격히 늘고 기온이 치솟는다. 달라진 환경은 뇌의 생물학적 시계에 영향을 미쳐 호르몬 불균형을 초래한다. 우울증 환자의 경우 그 여파로 급격한 감정 기복을 느끼며 증상이 악화할 수 있다. 만물이 생동하는 봄에 역설적이게도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이유다.

봄철 자살률이 급증하는 현상을 '스프링 피크(Spring Peak)'라고 하는데, 이 경향은 세계 각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한규만 고려대 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일반적으로 해가 빨리 지고 바깥 활동이 적은 겨울철 자살률이 높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데이터를 보면 오히려 봄철 자살률이 겨울철보다 20~30%나 더 높다"며 "봄철 자살률 상승에는 일조량 증가와 미세먼지 등 계절적 요인에 더해 심리적 요인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봄철은 졸업, 입학, 취업, 이사 등 사회적인 변화가 많은 시기다. 또 외부 활동이 많아지면서 사람 간 접촉이 늘어나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 과정에서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이 우울증 악화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 한 교수 설명이다. 한 교수는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잘 나가는 타인과 그에 못 미치는 자신을 비교하게 될 때 우울감이 깊어질 수 있다"며 "날씨는 화창하고 다른 사람은 모두 잘 사는 것 같은데 나만 그렇지 못하다는 생각에 우울증이 심화할 수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우리나라 우울증 발생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1위로, 대략 10명 중 1명이 우울증을 앓고 있다. 한 교수는 "환자 수 자체보다 더 큰 문제는 우리나라 우울증 환자 상당수가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는다는 점"이라며 "우리나라의 경우 다른 나라에 비해 우울증 치료를 받는 환자 비율이 매우 낮다"고 지적했다.

"최근에는 상황이 다소 나아졌지만 여전히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고 하면 주변의 오해나 편견 등을 받게 될까 걱정하느라 치료를 미루다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우울증도 다른 질환과 마찬가지로 조기 치료가 중요하다"며 "적당한 치료 시기를 놓치면 혼자 힘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우울 상태에 빠져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규만 교수 연구팀은 우울증 환자의 경우 정상인에 비해 뇌 주름이 감소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사진에서 파란색이 진할수록 감소 정도가 심하고, 옅을수록 감소 정도가 경미한 것을 의미한다. 회색은 차이가 없는 것이다.
백만종 교수(1)

출처: 한규만 등. Decreased cortical gyrification in major depressive disorder. Psychological Medicine. 2023;53(16):7512-7524.

40대 이상 여성, 우울증에 더 취약

하지만 현대인 대부분은 어느 정도 우울감을 갖고 살아가는 게 현실이다. 주위 사람에게 "나 우울해"라고 말하면 "나도 그래"라는 답이 돌아오기도 한다. 우울한 기분이 쓸쓸함이나 슬픔, 불안, 절망, 허무, 답답함, 초조함 등 다양한 감정으로 표현되는 점도 문제다. 나조차 내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대체 어느 정도 우울감이 있을 때 병원을 찾아야 할까.

한 교수는 "만약 2년 이상, 특정 계절마다 우울한 기분이 2주 이상 지속된다면 계절성 우울증을 의심해볼 수 있다"며 "이럴 때는 '괜찮겠지'라고 넘어가지 말고 병원을 방문하는 게 좋다"고 권했다. 또 우울감과 동반해 사회 생활에 필요한 기능 저하가 나타나는지도 살펴볼 것을 권했다. 예컨대 학생의 경우 평소라면 쉽게 이해할 수 있던 수준의 책을 제대로 읽을 수 없어 학업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한규만 교수(2)
한규만 고려대 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규칙적인 운동과 건강한 식습관, 충분한 휴식과 수면 등의 생활 방식을 유지하면 우울·불안 증상을 상당부분 개선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평소 무리 없이 직장 생활을 하던 사람이 갑자기 주변 동료들로부터 '왜 이렇게 실수가 잦아. 일 좀 똑바로 해' 같은 지적을 받게 된다면, 이 또한 사회적 기능 저하의 사례라 할 수 있다. 이 경우 정신과 전문의와 상담해보라는 게 한 교수의 조언이다.

일반적으로 봄철 우울증은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많이 나타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우울증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 가운데 여성이 남성보다 2.2배 정도 더 많았다. 특히 호르몬 변화가 급격해지는 40대 이상 여성이 전체 환자의 53.3%를 차지했다. 폐경기 이후 여성의 경우 우울증에 더 취약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우울증은 유전과도 관련이 있다. 가족 중 우울증 환자가 있을 경우 우울증 발병 위험이 2~10배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한 교수는 "가족력이 있다고 모두 우울증이 생기는 건 아니다. 다만 우울증 관련 유전 인자가 있는 사람이 특정 환경에 노출되면 우울증 발병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정서적으로 취약한 사람이나, 계절이 변화할 때 극단적인 감정 변화를 겪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우울증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우울증 치료는 크게 약물치료, 심리치료, 뇌 국소자극기기를 이용한 치료 등으로 이뤄진다. 이 가운데 가장 보편적인 치료법은 약물 치료로, 환자에게 항우울제나 항불안제를 투여해 세로토닌과 노르에피네프린 같은 뇌 화학물질 수치를 조절함으로써 우울감과 불안감을 줄이는 방식이다. 심리치료는 환자가 자신의 부정적인 사고 패턴을 인식하고 수정함으로써 건강한 행동으로 변화하도록 유도한다.

부작용 없이 우울증 개선하는 뇌 자극 치료법

뇌 자극 치료는 약한 전류로 뇌 전두엽 부위를 자극해 전전두엽 피질을 활성화하고 뇌유래신경영양인자(BDNF)와 세로토닌 등 신경전달물질 분비를 증가시키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최근 뇌 속에 더 넓고 깊게 자극을 전달할 수 있는 장비들이 속속 개발되면서 주목받고 있다. '경두개 자기 자극술(TMS)', '경두개 직류 자극술(tDCS)' 등이 널리 사용된다. 뇌 자극 치료는 성별 연령에 관계 없이 누구에게나 사용할 수 있으며 치료 효과가 빠른 것이 장점이다. 예를 들어 부작용 등에 대한 우려 때문에 약물 치료를 꺼릴 수 있는 임산부도 뇌 자극 치료는 받을 수 있다.

봄철 우울증 예방법

  • 햇볕을 충분히 받을 수 있는 야외활동을 한다.
  • 유산소 운동을 주 4회 이상, 회당 40분 이상 지속한다.
  • 수면 질을 관리하는 멜라토닌과 감정 조절에 관여하는 세로토닌 생성에 좋은 음식을 섭취한다.
  • 규칙적으로 생활한다.
  • 술은 우울제다. 가급적 피한다.
  • 단순당은 혈당을 급상승시켜 우울감을 유발할 수 있으니 섭취를 줄인다.

마음 건강을 잘 지켜 우울증을 예방할 방법은 없을까. 한 교수는 "가장 중요한 건 규칙적인 생활을 통해 건강을 잘 관리하는 것"이라고 했다. 야외 활동을 통해 햇빛을 충분히 쬐고, 규칙적인 운동, 건강한 식습관, 충분한 휴식과 수면 등의 생활 방식을 유지하면 우울·불안 증상을 상당 부분 개선할 수 있다는 게 한 교수 설명이다.

다만 갑작스러운 일상 변화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는 만큼 단계적으로 느리게 좋은 생활 습관을 만들어가는 것이 좋다고 한다. 평소 집 밖 외출이 드물었다면 일주일에 1번부터 시작해 2번, 3번 등으로 횟수를 늘리면서 산책을 하는 식이다.

낮에 햇빛을 보며 걸으면 체내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 합성에 관여하는 비타민 D가 보충돼 기분이 한층 나아질 수 있다. 브로콜리, 시금치 등 비타민과 엽산이 풍부한 녹색 음식을 먹는 것도 우울증 예방에 도움이 된다.

운동도 대표적인 항우울제다. 운동을 하면 세로토닌 전구물질(화합물을 합성하는 데 필요한 재료가 되는 물질)인 트립토판이 형성돼 세로토닌이 증가하고 우울증 발생 위험이 줄어든다. 한 교수는 "우울증 환자의 혈액을 검사해보면 뇌유래신경영양인자(Brain-Derived Neurotrophic Factor, BDNF) 감소가 확인된다"며 "운동은 BDNF를 증가시켜 우울증을 예방하는 확실한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운동은 인슐린 저항성을 정상화해 우울증을 예방하고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한규만 교수에게 듣는 우울증 최신 정보 Q&A

한규만 교수는 지난해 우울증 환자의 뇌를 연구한 논문을 정신의학 분야 국제 학술지 '뇌, 행동, 면역(Brain, Behavior, and Immunity)' 온라인판에 실어 화제를 모았다. 함병주 고려대 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등 동료 학자들과 함께 진행한 이 연구에서는 우울증 환자의 염증 관련 유전자 발현 수준이 일반인에 비해 높으며, 그것이 뇌에 구조적 변화를 야기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한 교수는 그 내용을 설명하며 "앞으로는 유전자 검사를 통해 우울증 발병 위험도가 높은 사람을 조기에 발견하고 예방적 치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우울증 그림
우울증이 만성 염증과 연관이 있나.

그렇다. 이번 연구의 핵심 내용은 우울증 환자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염증 관련 유전자의 발현 수준이 높다는 것을 규명한 것이다. 염증 유전자의 발현은 뇌를 비롯한 체내 염증 상태를 증가시킬 수 있고 감정 조절에 관여하는 뇌의 전두엽 부위에 구조적 이상을 일으켜 우울증을 유발할 수 있다.

이번 연구 과정을 소개한다면.

공동연구팀과 함께 먼저 동물 실험을 진행했다. 우울증과 유사한 행동 패턴을 보이는 동물에서 염증 조절 경로인 인터페론(Interferon) 관련 유전자 발현이 증가했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19~64세 사이 성인 중 우울증 환자 350명과 정상인 대조군 161명의 유전체 데이터를 바탕으로 유전자의 특정한 부분에 생기는 변화를 분석했다. 그 결과 우울증 환자군은 대조군과 비교해 염증 조절에 관련된 '유전자의 DNA 메틸화(유전자 발현 억제·조절)' 정도에 변화가 있음을 발견했다. 이는 동물 실험 결과와 일치한다.

우울증은 뇌의 문제 때문에 발생한다는 말씀인가.

그렇다. 우울증 환자의 뇌 자기공명영상(MRI)을 정상 대조군의 MRI와 비교하니, 우울증 환자의 뇌에서 정서조절을 담당하는 전두엽, 안와전두피질, 전대상피질의 주름이 약 5% 감소한 점이 확인됐다. 염증 관련 유전자의 DNA 메틸화 정도가 증가할수록 전두엽 부위의 대뇌 피질 두께가 감소한 것도 확인했다. 뇌에서 정서조절을 담당하는 영역은 부정적 감정을 인식하고 처리한다. 이 부위의 뇌 주름이 적을 경우 정서조절 신경회로의 기능 이상을 초래해 우울증에 걸릴 위험이 증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뇌 주름은 어떻게 형성되는 건가.

뇌 주름은 대체로 태아 시기부터 영아기 무렵의 유전적·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형성된다. 이후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나지 않아 전두엽, 안와전두피질, 전대상피질의 주름 정도가 개인이 타고난 우울증 발생 위험도를 측정할 수 있는 뇌영상 바이오마커(생체지표)로 활용될 수 있다.

우울증 환자가 자신의 뇌 주름을 확인할 수 있나.

현재 전두엽 부위의 주름 감소가 우울증 발생 위험을 증가시키는 생물학적 토대를 제공한다는 사실을 규명한 상태다. 앞으로 대뇌 피질주름에 대한 정량화된 데이터를 통해 개별 환자에게 우울증이나 정서조절 이상의 취약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려 한다. 이번 연구로 개인의 우울증 발병 위험도를 측정할 수 있는 새로운 방안이 마련된 만큼 유전자 검사를 통해 우울증 발병 위험도가 높은 사람을 조기에 발견해 예방할 수 있는 치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EDITOR: 장치선
  • PHOTO: 박해윤,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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