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으로 고통받는 저개발 국가 사람들을 위해 모인 한 뜻 '글로벌 호의 생명사랑 프로젝트' 더 많은 환자에게 새 삶 선물한다
이주성 고려대 안암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가 몽골 소녀 초크자야 나랑무크 양을 진찰하고 있다.
고려대의료원이 2028년 설립 100주년을 앞두고 여러 제약으로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해외 환자들을 초청해 치료할 목적으로 기획한 '글로벌 호의 생명사랑 프로젝트'에 최근 7억 원의 기부금이 답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프로젝트가 무엇이기에 기부자들이 선뜻 거액을 내놓는지, 해외에서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에게 어떤 사연이 있는지 살펴본다.
고려대의료원(의료원)은 최근 익명의 독지가로부터 '글로벌 호의 생명사랑 프로젝트'를 위해 써달라며 6억 3,500만 원을 기부받았다. 기부금을 담당하는 의료원 관계자는 해당 독지가에게 "좋은 일은 널리 알려 세상에 선한 파급효과를 일으켜야 한다"며 관련 홍보에 참여할 것을 권했지만, 기부자는 본인의 신상과 기부 배경이 알려지는 것을 한사코 사양하며 "좋은 일을 해서 느끼는 보람만으로 충분하다"는 의사를 전했다고 한다.
'글로벌 호의 생명사랑 프로젝트'는 경제적 어려움과 의료서비스 접근 제약으로 질병에 시달리는 저개발국가 환자들을 국내로 초청해 치료하는 프로젝트다.
세계보건기구(WHO·World Health Organization)에 따르면 각국의 노력에도 세계 인구 중 약 45억 명이 필수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해 고통받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이런 상황이 더욱 악화해 2022년 조사 결과 84% 국가가 필수 의료 제공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치료에 대한 경제적 부담 역시 큰 이슈다. 지구촌에서 약 20억 명이 감당하기 어려운 의료비 지출로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이중 3억 4,400만 명은 극심한 빈곤 상태에 놓여있다고 WHO는 밝혔다.
이에 의료원은 로제타 홀 여사, 김탁원·길정희 부부가 소외된 이들을 위해 조선여자의학강습소를 세운 정신을 잇고, 독일 차관으로 건립돼 오늘날 발전을 이룩한 고려대 구로병원과 고려대 안산병원의 역사를 되새기고자 '글로벌 호의 생명사랑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KU Medicine 창립 100주년인 2028년까지 프로젝트를 통해 총 100명의 해외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 목표다.
밝은 미소 되찾은 심장병 몽골 소녀
#1 몽골에 사는 만 10세 소녀 초크자야
나랑무크(Tsogzaya Naranmunkh)는 우심방과 좌심방 사이 결손으로 심장 내 혈류가 새는 선천성 심장병인 심방중격결손을 앓아왔다. 나랑무크는 친구들과 뛰어노는 걸 최고의 소원으로 여길 만큼 일상생활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2023년 11월 입국한 나랑무크는 고려대 안암병원 입원과 동시에 각종 검사를 받으며 치료 준비를 마치고, 입국 이틀 만에 이주성 소아청소년과 교수의 시술을 통해 건강한 새 심장을 얻고 환하게 웃으며 고국으로 돌아갔다.
심방중격결손은 분명히 나을 수 있는 병이지만 나랑무크 부모의 하루 수입은 한화 6000원 남짓으로 누군가의 도움 없이 치료는 꿈도 꾸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나랑무크의 시술을 집도한 이 교수는 "몽골의 어려운 의료 환경과 환자 가족의 경제적 여건 때문에 아이가 그동안 눈물로 지내온 시간을 생각하니 정말 가슴이 아팠다. 퇴원할 때 환하게 웃는 나랑무크의 얼굴을 보며 큰 보람을 느꼈다"는 소회를 밝혔다.
#2 아프리카 대륙 동남쪽에 위치한 섬나라
고려대의료원 다학제 협진을 통해 안면신경을 재건하고 오른쪽 눈 시력도 회복한 바우술루 씨(가운데)가 한승범 고려대 안암병원장(왼쪽), 정재호 고려대 안암병원 성형외과 교수와 함께 한 모습.
마다가스카르는 소설 '어린 왕자'에 나오는 바오바브(바오밥) 나무가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문제는 열악한 의료체계와 주민 사이에 팽배한 질병에 대한 잘못된 인식 때문에 힘겨운 삶을 사는 이가 적잖다는 점. 이 나라 국민의 95%는 평생 한 번도 병원을 방문하지 않으며, 몸이 아플 경우 저주에 걸렸다고 믿어 마을 무당을 찾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얼굴에 거대한 종양이 생긴 만 30세 여성 라소아안드라사나 바우술루(Rasoanandrasana Vaosolo)도 이런 인습의 피해자 가운데 한 명이었다.
바우술루의 종양은 얼굴 오른쪽 전체를 덮고 아래로 처져 내릴 만큼 컸다. 그가 앓고 있는 거대신경섬유종증은 피부와 중추신경계 이상을 동반하는 신경피부증후군의 일종이다. 이 병에 걸리면 유전자 변이로 세포분열 억제 기능이 저하돼 종양이 쉽게 발생한다. 바우술루는 그 과정에서 생긴 얼굴 혹 때문에 앞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그를 더욱 괴롭힌 건 '저주에 걸렸다'는 주변 시선이었다. 바우술루는 자녀들과 함께 외출조차 하지 못하는 고통스런 삶을 살았다.
마다가스카르 현지에서 20년 넘게 의료봉사를 하고 있는 이재훈 선교사(고대의대 51회)는 이 사연을 알게 된 뒤 모교 고려대에 치료를 요청했다. 바우술루는 지난해 12월 한국에 들어와 고려대 안암병원 성형외과 정재호 교수, 고려대 안암병원 이비인후과 정광윤 교수, 고려대 안산병원 안과 이화 교수의 다학제 협진을 통해 세 차례 수술을 받았다. 이 치료를 통해 다행히 안면신경이 대부분 재건돼 얼굴 좌우대칭이 복원됐다. 종양이 완전히 가리고 있던 오른쪽 눈 시력도 회복됐다. 이 수술을 집도한 정재호 교수는 "신경섬유종이 워낙 거대해 과다 출혈 위험이 컸다. 어려운 수술이었는데 성공적으로 마무리해 기쁘다"고 말했다.
바울술루는 건강하게 회복한 뒤 의료원에서 마련한 조촐한 퇴원축하 행사에 참여했고, 이 자리에서 정재호 교수를 수줍게 안으며 감사 인사를 전하는 예정에 없던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1월 24일 환한 얼굴로 퇴원해 아이들이 있는 마다가스카르로 무사히 돌아간 바울술루는 현재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기금 50억 조성, 환자 100명 치료 목표
현재 '글로벌 호의 생명사랑' 프로젝트에 모인 성금은 총 7억 원이다. 의료원은 다양한 모금 캠페인을 벌이고, 병원 로비에 설치된 키오스크 시스템 등을 활용해 약 50억 원의 기금을 조성해 총 100명의 환자를 초청해 치료한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미 시리아, 우즈베키스탄 국적을 가진 해외 환자 6명이 고려대병원에서 치료를 앞두고 있으며, 의료원 사회공헌사업팀이 세계 각지 네트워크를 활용해 치료가 시급한 환자들을 선별하고 있다.
윤을식 고려대 의무부총장은 "아무리 아파도 의사를 만날 수 없었던 조선 여성들을 위해 조선여자의학강습소를 설립한 로제타 홀 여사의 신념과 의료불모지에 차관으로 세워진 고려대 구로병원, 고려대 안산병원의 시작을 생각하며 이번 '글로벌 호의 생명사랑 프로젝트'를 기획했다"며 "이 뜻에 공감에 조용히 큰 힘을 보태주신 기부자분들께 진심어린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의학을 통해 인류에 기여하는 의료원의 활동이 더욱 넓고 깊어질 수 있도록 많은 분의 동참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